건설업 뿐만 아니라 IT 에도 원청(클라이언트, 고객)에게 하청(에이전트, 업체)을 받을 경우 턴키베이스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건설업은 '설계 부터 시공까지 전부' 한 업체가 맡아서 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IT 도 마찬가지다. 여러 방법론이 있겠으나 '설계 부터 개발, 이관까지 전부' 를 한 업체가 맡아서 하는 경우의 입찰, 계약을 턴키베이스 라고 한다. (턴키베이스의 사전적 의미는 네이버에 잘 나와 있다.)

원청이 턴키 입찰 또는 계약을 하는 이유는
1. 사업(프로젝트) 규모가 클 때
2. 따라서 예산과 비용이 많이 들고
3. 규모와 예산의 거대함에 따라 자재(IT 는 HW/SW)와 용역(사람)이 많아 지고
4. 이에 따라 관리해야 할 업체 또는 영역이 많아 질 때 이다.

턴키의 기대효과는
1. 한 업체가 사업의 전체를 총괄함으로써 관리하기가 용이하고
2. 문제가 생겨도 한 업체만 소위 조지면 되고(한 업체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의미)
3. 따라서 우수한 인력과 훌륭한? 책임감을 담보 받을 수 있다.

이것은 계약 구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상식적인 얘기다. 턴키 계약에 로비며 담합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부정부패가 일어난다는 주장이 있다.(4대강 사업에서 나온 얘기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다. 로비며 담합은 턴키 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입찰, 계약 과정에 일어 날 수 있는 활동이다. 그렇다면 턴키 계약 과정을 살펴보자.

1. 원청이 해당 사업에 알맞은 업체들에게 RFP(Request For Proposal), 또는 과업지시서를 뿌린다.

2. 이때 '사업에 알맞은 업체' 에 방점이 찍힌다.
 - 원청이 A 라는 사업 전체를 한번에 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턴키 계약이 될 수 없다.
 - 즉, A 사업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업무를 쪼개서 별개로 진행하려고 한다면 이건 턴키 계약이 아니라 개별 프로젝트, 개별 사업, 개별 입찰, 개별 계약이 된다.
 - 이를테면, A 사업 안에 설계, 디자인, 개발, 테스트 라는 업무가 있어서 각 영역에서 알맞은 업체에게 별개의 RFP 를 보내 각각의 업무를 개별 업체가 동시에 진행하여 최종적으로 A 사업으로 묶는다는 개념이다.
 - 이렇게 되면 원청은 A 사업을 위해 4개의 업무, 4개 업체 이상을 관리 감독해야 한다. 당연히 관리가 힘들고 어려워지며 각 업무에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있어야 한다. 원청에 그런 업무의 전문가들이 포진 되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있다면 뭐하러 아웃소싱을 하겠는가.

3. 하청은 원청의 요청사항(과업)을 분석하여 이 사업에 알맞는 업체를 소싱하고 컨소시엄을 맺는다.
 - 이때 원청과 직접 계약하는 즉 턴키 계약하는 업체를 '을' 또는 '주사업자' 또는 '마더업체' 라고 부른다. 자연스럽게 원청은 '갑' 이 된다.
 - 을도 역시 단독으로 A 사업을 수행할 수 없기에 다시 말해 갑도 위의 사업을 4개 업체 이상이 해야 하는 업무로 파악하고 있기에 을도 최소한 3개 이상의 알맞은 업체를 소싱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물론, 갑이 재하청은 금지한다고 하지 않을 경우 인데 대규모 사업을 하는데 재하청금지 조항을 넣는 스마트하지 않은 갑은 없다.
 - 을이 설계 업무는 자신들이 맡고 디자인 업무는 가 라는 업체, 개발 업무는 나 라는 업체와 함께 하기로 했다면 가, 나 업체는 '병' 이 된다.
 - 이때 가, 나 업체도 자신의 업무를 쪼개어 ㄱ, ㄴ 이란 업체에게 줄 수도 있다. 원청에 하청에 재하청에 재재하청이 된다. ㄱ, ㄴ 업체는 '정' 이 된다.(갑을병정 다음에는 무기경신임계로 나간다. 하지만 무 까지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관계를 도급, 수급, 하도급 등의 용어로 설명되기도 한다.)
 - 을이 A사업을 하기 위해 모든 병과 정을 소싱했다면 이를 집합적으로 컨소시엄 이라고 한다. 연합군이 된 것이다.

4. 컨소시엄은 맺었으나 제안서를 쓰며 다시 이합집산을 한다.
 - 컨소시엄은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형태가 아니다. "같이 할래?", "그래" 이렇게 형성되는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수틀리면 전화 한통으로 관계는 바로 깨진다.
 - 컨소시엄이 깨지는 캐이스는 여러가지다. 대표적으로 1)사업범위를 파악해보니 자신들이 알맞지 않을 때, 2)을과 병이 사업범위에 대한 견적을 놓고 가협상을 하다가 을이 기존 병에 대항마를 소싱해오고 대항마의 견적이 더 저렴할 때, 3)갑 내부에서 들리는 정보를 통해 현재 소싱한 병에 대한 나쁜 인식이 있거나 갑이 은근히 바라는 병이 따로 있을 때, 4)제안서를 같이 써보니 실력이 허접할 때, 5)윗선의 이해관계가 있는 병이 갑자기 등장 했을 때, 6)시키는 대로 안하고 예의가 없을 때 등이다.
 - 여러 캐이스에 준하여 다른 컨소시엄에 들어 있는 병을 끌어 오기도 하고 병을 찾아 전국을 헤매기도 하거나 아예 프리랜서들을 집합시켜 작은 회사를 만들기도 한다.
 - 이때 영리한 병은 여러 컨소시엄에 동시에 발을 담가 놓기도 한다. 어차피 수주가 되는 을쪽에 붙어서 사업을 하면 되고 을은 해당 병이 사업에 알맞은 업체이니 그 정도는 넘어 가기도 하고 갑도 이해관계가 있으니 여러 컨소시엄에서 같은 병을 데리고 오더라도 다른 기준으로 을을 선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 사려 깊지 못해 한쪽에만 발을 담그고 기도하고 있던 병이 갑자기 을이 중간에 사업을 포기(드롭)하거나 다른 을과 배타적으로 컨소시엄을 맺어 버리면 자연스럽게 공중분해 된다. 속되게 '새 된다' 착한 을이면 소주 한잔 사준다.

5. 제안서를 제출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다.
 - 하면 된다.

6. 수주가 되었다. 보통 사업의 수주는 '너 밖에 없다, 너만 믿어' 가 아니라 우아하게 '우선협상대상자' 로 통보 받는 것을 말한다.  
 - 우선협상대상자란 남들 보다 먼저 사업 범위에 대한 가격 협상을 하는 자 라는 뜻이다. 협상하다가 수틀리면 우선협상자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 물론 그동안 협상하느라 수고했다고 등 두드려 주지 않는다.
 - 우선협상대상자가 협상에 실패하면 자동적으로 차선협상대상자가 호출되어 같은 협상을 하게 된다.
 - 차선협상대상자도 협상에 실패하거나 호출에 응하지 않으면 자동 유찰 되어 다시 입찰 전쟁을 치뤄야 한다. 이걸 다시 하고 싶은 갑과 을은 기본적으로 없다. 하지만...

7. 협상을 진행한다.
 - 대체로 사업 범위 조정, 이에 따른 가격 조정, 가격에 따른 용역 조정, 장비나 자재의 퀄리티 수량에 대한 조정이 이뤄진다.
 - 턴키베이스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갑은 A 사업 안에 여러 업무가 있지만 을 이라는 한 업체와 협상을 하면 된다.
 - 하지만 을은 A 사업을 위해 갑과 협상하고 그 협상에 따라 가, 나 업체(병)와 별개로 협상을 한다. 마찬가지로 가 업체는 ㄱ, ㄴ 업체(정)와도 협상 한다.
 - 갑은 을이 병과 어떤 협상을 하는지 알 필요도 없고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을도 병이 정과 어떤 협상을 하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차피 을이, 병이 해당 업무에 총괄적으로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 이때도 갑이 수틀리면 을을 바꿀 수 있듯(차선협상대상자로) 을도 수틀리면 병을 바꾼다. 역시 병은 새 된다.
 
8. 드디어 계약을 한다.
 - 갑은 4개의 업무가 들어 있는 A 사업을 한번에 을하고 턴키 라는 형식으로 계약한다. 따라서 계약서는 1개다.
 - 을은 A 사업의 4개의 업무를 담당하는 4개 이상의 병과 각 업무를 대상으로 역시 턴키로 계약한다. 그 업무는 니네들이 책임져 란 뜻이다. 하지만 계약서는 갑과 1개, 병들과 4개 이상이 된다.
 - 이로서 갑은 A 사업을 하기 위해 을만 조지면 되고 을은 A 사업을 하기 위해 4개 이상의 병을 조진다.

따라서 A 사업을 위해 알맞는 업체란, A 라는 사업과 유사한 a 라는 사업을 해봤던, 때문에 그에 알맞은 병 업체를 원활하게 소싱해오고 자신들이 할 일을 대신해서 때론 악질적으로 조질 수 있어서 A 사업을 정해진 일정과 비용 안에서 해결해주는 업체 되겠다.

4대강 사업에서 '턴키 담합' 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마치 턴키 자체가 부정부패라는 징후가 있어서 그 과정을 적어 본다. 물론, 위의 절차 안에서 정보 습득과 유리한 고지를 위해 로비가 이뤄지기도 한다. 보통은 RFP 나 과업지시서가 각 업체에 뿌려지기 전에 로비는 시작되고 끝이 난다. RFP 이후 로비는 바보나 하는 짓이다. 왜냐하면 그 절차상에서는 갑도 을을 만나주지 않는다. 보는 눈이 엄청 많으니까. 4대강 턴키 담합이 이런 절차안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을(4대강 사업에서는 대형 건설사들)들이 서로 짜고 치기로 했다면 그건 엄연히 공정거래 위반이다. 다만 턴키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란 점만 얘기하고 싶다.

그래도 턴키가 문제다 라는 시각이라면 갑이 해당 사업의 각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잘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어서 각 업무별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발주를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런 갑은 없다. 이미 IMF 를 겪으며 대한민국의 비즈니스 구조는 아웃소싱화 되어 있다. 갑이 모든 업무를 오롯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인력을 갖추는 구조를 포기했다. 한마디로 A 사업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보면 정답이다. 어떤 국회의원은 턴키베이스 공사가 문제이기 때문에 최저가 입찰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즈니스 계약의 ㄱ 자도 모르면서 하는 말이다. 턴키와 최저가 는 완전히 다른 입찰 형태이기 때문에 최저가가 턴키를 보완, 대체할 수 없다. 다음에는 최저가 입찰에 대해 알아 보겠다.

아무튼 난 4대강 사업 반댈세...

2009/11/13 17:41 2009/11/13 17:41
DrunkenSTAR 이 작성.

하얀거탑의 능수능란한 칼솜씨만큼 선덕여왕은 사극의 문법을 현실정치의 맥락으로 바꿔버린 보기 드문 드라마다. 생활속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이합집산의 정치를 다룬 하얀거탑은 선덕여왕에 비하면 차라리 아기자기하다. 조금만 시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씬은 여의도의 날치기를, 요 씬은 대의명분을 앞세워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을 거대하게 묘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이러한 지점에서 절대선인양 그려지는 선덕여왕은 대립구도인 미실의 오묘하고 미묘한 감수성을 이기지 못한다. 하얀거탑에서 비열하기까지 한 장준혁에 동화되고 감정이 이입되던 수많은 현대인들은 선덕여왕이 아니라 미실에게서 그 역할을 찾고 열광한다. 자신은 왜 현실에서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몸을 바쳐서라도 내 사람을 만들고 의기양양하게 "내 사람은 그러면 안된다." 말할 수 있는 배짱이 없었을까. 마치 저것이 사회생활의 다 인데, 느끼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었을까. 다시 보면 미실은 사람들의 욕망을 뭉쳐 놓은 덩어리다. 성골이 아니면서 나라의 주인이 되기를 욕망했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첨단 정치공학을 몸으로 치밀하게 수행한다. 있는 계급(기득권)은 낙점만 받으면 출세가 보장되지만 없는 계급(서민)들이 출세하기 위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방향을 미실은 발가 벗고 보여 준 셈이다. 봉건시대의 일이지만 현실과 다르지 않다.

우파는 기득권, 이란 공식이 있을지 모르나 우리나라의 현실 우파는 대략 세 부류다. 기득권을 가졌지만 애국심이 없는, 애국심은 있지만 기득권이 없는, 둘 다 있는 부류는 극소수 진성우파라 볼 수 있다. 애국심이 있지만 기득권이 없는 부류는 대체로 전쟁세대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인지라 이 나라의 기반을 다졌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빨갱이와의 전쟁에서 나라를 지켰으며 그 폐허에서 물적 기반을 이뤘다는 주장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그 분들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같은 우파라는 범주에서 애국이라는 이념만 가졌을 뿐 물질 기반은 다졌으나 실물 기득권이 없어서 애국심이 없는 부류에게 지배 당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행동대를 자처 한다. 전쟁이 없고 폐허가 아닌 시대에서 그 자부심을 표출하기 위한 분노로 행동한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애국이 있기에 풍요롭다. 하지만 언제나 기득권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 명분은 언제나 애국과 빨갱이다. 이 부류가 영리하기만 한다면 오늘날 완전한 미실의 부활이라 부를만 하다.

기득권을 가졌지만 애국심이 없는 부류들은 애국에 봉사하고 빨갱이에 치를 떨며 자본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부류들의 권리와 물질을 상속 받은 자들이다. 이들은 애국적 우파, 민족 우파의 이념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돈이 되면 하고 돈이 안되면 안하는 자유주의 우파다. 이들은 실물만을 상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이념과 경제이념을 분리하지 않는다. 그것이 권리, 즉 권력이며 권력의 생성 조합이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질을 만들었으나 그것을 증여하고 애국에 보험을 든 부류들은 여전히 생활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자유주의 우파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손 벌릴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버렸다. 자유주의 우파는 애국적인 일에 돈을 쓰지 않는다. 빨갱이라도 노동력이 있고 동일한 물질을 추구한다면 자유주의 우파에겐 환영이다. 돈을 써서 돈이 될만 하니까 말이다. 이들에겐 민족이나 국가 개념이 없다. 그것들은 이들에게 명분일 뿐이다. 이 부류는 사익에 영리하지만 국가에 대해서는 무지한 귀족들이다. 화백회의의 대등의 부활이라 부를만 하다.

선덕여왕에는 서민이나 백성이 존재하지 않지만 미실이 존재함으로서 계급투쟁의 역사를 그렸다. 오랑캐와 맞서 싸우는 애국투쟁의 역사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영리하지 못한 애국 우파들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이념을 빗대어 권리를 행사하는 오늘날 기득권층에게 계급투쟁은 살벌한 정치적 경제적 도전이기에 이 드라마는 좌빨 드라마가 된다. 이런 정의가 가능해야만 애국 우파들이 깨어나 조건 없이 행동할 수 있다. 문제는 드라마에 존재하지 않는 백성들, 오늘날의 서민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목도하는가 이다. 목도는 하겠으나 행간을 조명하진 못한다. 우파도 좌파도 아닌 그들은 언젠가 골프채에 왁스칠 하고 그저 제 새끼들 잘먹고 잘사는데 미실의 역량이 참고될 수 있냐는 것이 관심이다. 그 참고를 현실에 적용하면 십중팔구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대의 명문이 딱 하나 있다. 미실이 가진 애국 때문이다. 기껏 현실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대의란 회사를 위해, 비전을 위해 가 전부다. 차라리 내 새끼를 위해 가 휠씬 숭고하기 때문에 '내 사람' 이란 개념이 만들어 질 수 없다.

미실은 국경에 있던 군대가 자신을 돕기 위해 출병하는 보고를 받고도 그 출병을 거두고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명령으로 자신이 최후를 맞을 것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신국을 위한 대의를 미실은 결코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미실의 그런 숙연함을 오늘날 오마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현실이다. 애국하겠다는 사람들 조차도 어떻게 애국을 해야 할지 모른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애국은 돈을 벌어 오는 것이다. 그걸 못하는 애국 우파들에게 삶의 이유는 당연히 빨갱이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여기에 논리나 정작 애국 따위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현대인들은 애국을 거세한 미실을, 미실의 욕망을 추종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계급과 무관하게 부자가 되는 희망으로 기득권에 투표하는 것이 그들 나름의 계급투쟁이다. 그러한 사람들을 보듬는 척 실용적인 정치 수사로 현혹하여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 기득권이면서 애국심이 없는 자유주의 우파들의 사명이다. 제 새끼 잘먹고 잘살아야 하는데 우파나 좌파나 애국이 뭔 상관이란 말이냐, 미실의 역량을 참고하여 어떻게든 계급투쟁의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데 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영리하고 사려 깊은 중도 서민들이다.

하지만 어찌하냐.. 미실은 죽었다.
2009/11/12 12:59 2009/11/12 12:59
DrunkenSTAR 이 작성.

용산참사재판

2009/10/28 19:15 / 생각
오늘 용산참사 재판 선고가 있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분노가 어디를 겨냥해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경찰? 사법부? 공권력? 공적시스템. 다 아니다. 그런 국가와 국가기관이 아니다. 인간들이 밉고 저주스럽다. 죽은 그들이 무슨 열사냐? 의사냐? 아니다. 그들은 그저 우리처럼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나약한 약자일 뿐이다. 제대로된 법치는 이들의 생존을 지켜주는 것이다. 누가? 경찰이, 사법부가, 공권력이, 국가의 모든 기관이 그런 법치로 움직여야 되는 것이다. 이건 국가 기관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문제다. 오늘 이 사법부 참사에 가까운 선고를 내린 서울중앙법원 형사합의27부 판사들의 비겁과 비열함의 문제다. 지금 정제되지 않은 분노와 저주는 분명 사람을 향하고 있다.
2009/10/28 19:15 2009/10/28 19:15
DrunkenSTAR 이 작성.

지켜주세요.

2009/10/13 17:54 / 생각
손석희와 김제동의 하차가 액면으로는 고비용에 의한 구조 조정 활동일 수 있지만 시기적, 정치적 맥락은 이면을 겨냥하고 있다. 그들은 방송 내외적으로 상식을 지키려 했던 보기 드문 사람들이다. 그들을 잘라낸 몰상식하고 교양머리 떨어지는 반대편의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인가.

하지만, 우리는 지켜야 할 대상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권력의 미디어 장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망하게도 어떤 정권이나 미디어, 언론을 장악하려 시도했다. 솔직히 MBC 가 인민의 위한 방송은 아니질 않는가? KBS 는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다만, 그것 밖에 지킬 것이 없는 착한 사람들이 나서서 절절한 방아쇠를 당기는 중이라 생각한다.

정연주씨나 최문순씨가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도 코드 인사라 했다. 권력이 바뀌면 코드를 바꾸는 건 당연한 일이다.(물론, 자연스럽지만 옳은 방법은 아니다.) 다만 그 영역이 국민 대다수가 인정하는 균형있는 토론 사회자에게 개그와 코미디로 사람을 웃기는 딴따라의 영역에까지 코드토론, 코드웃음을 조장하는 악랄함을 자연스러운 경영, 개편활동이라 볼 수가 없게 만든다. 하지만 착한 사람들은 여기에도 반MB 구도의 절체절명의 싸움으로 명분화시킨다.

그들이 누구보다 먹고 살만 했고 서민의 지위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맥락으로 파악되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하차하게 된건 애석한 일이다. 하지만 너도나도 '지못미' 를 외치며 김제동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는 것은 사려 깊어 보이지 않는다. 지켜주지 못해 죽어간 사람들, 생존을 위해 모욕 당하는 사람들, 웃지 않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손석희씨나 김제동씨는 약자를 보호해줘야 할 사회적 강자가 됐다. 하지만 강자이면서 약자를 탄압하는 반대편의 사람들에 비해 명백한 차이가 있고 그 자긍심도 반드시 인정해줘야 한다.

손석희는 스스로도 '인본주의자' 라 했다. 김제동은 '사람이 사람에게' 라는 주제로 열렸던 마들산연구소 강의에서 상식은 "사람이 죽었으면 예의를 표하고 국민은 계몽과 협박의 대상이 아니라 꾸준히 희망을 주고 끝까지 끌고 가야 할 대상이다. 강자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은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라고 말했다.

이제는 손석희나 김제동이 우리를 지켜줘야 한다. 어쩌면 개그나 균형 있는 토론이 아닌 어떤 편으로 어떤 계급으로 말이다. 우리는 그들의 상식이나 균형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금과 같은 성원이 있으면 된다. 그들의 상식이 우리의 상식이고, 지금껏 그나마 사람처럼 살 수 있는 상식이 서로 다르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면 감정적인 지못미가 아니라 지금 그들에게 세상이 어떤 결정을 요구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해봐도 되지 않을까?
2009/10/13 17:54 2009/10/13 17:54
DrunkenSTAR 이 작성.

나영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에 치를 떨립니다. 딸아이를 키우는 아비의 입장이 아니어도 심정적으로는 신체를 찢어 버리고 싶을 지경이지요. 사정이 이러하니 가해자의 형량을 12년에서 무기징역으로,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보편적 양심이나 정서에 지나치게 벗어난, 게다가 보기 드물게 그 피해의 정도가 적나라하게 보도되었기 때문에 적잖은 파장이 일 수 밖에 없겠지요.

왜 12년 밖에 안되냐는 말이 많습니다. 다 찾아 보지는 못했겠지만,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관련법 형법 297조를 뒤져 봐도 10년형이상 이란 예는 없네요. 특별법과 연계하여 12년 형량이 나왔겠지요. 물론, 대한변협 인권담당 변호사에 의하면 다른 법률을 적용하면 무기징역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판사가 적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렇다는 군요. 만취 상태를 감안했다는 지점에서는 판사들이 별별 꼴을 많이 봐서 기계가 됐구나 란 생각도 들었지요.

양형 기준이 있는 각론은 꼼꼼히 점검한다지만 총칙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총칙 제 5조는 사회와 국민의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5조(사회의 책임) 모든 국민은 아동·청소년이 이 법에서 정한 범죄의 상대방이나 피해자가 되거나 이 법에서 정한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하도록 사회 환경을 정비하고 아동·청소년을 보호·선도·교육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가해자에게 전자발찌를 7년동안 채우게 됩니다. 잠재적 가해자를 잠재적 피해자로 부터 격리하려는 공공적 시도라고 보여 집니다. 이런 시도가 가능해진 것도 최근의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회적 합의도 합의 자체로 종결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또 다른 문제가 반드시 발생하니까요. 즉, 이런 짐승들을 완전히 사회와 사람으로 부터 격리시키려는 법규정이 짐승과 사람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과정의 장치를 가지고 있는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무고, 억울함에 대한 염려 또한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는 성범죄 뿐만 아니라 무고함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수업료를 많이 치뤘고 학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범죄로 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가해자를 죽도록 때리거나 거세를 한다거나 찢어 죽인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일까요. 그런 해소 이상으로 법정형량을 높이는 법개정도 중요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보호 대상에 대한 조치가 끝나고 개선되어야 할 어떤 현상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아니지요. 분노가 진공상태가 되어 가해자를 더 가혹하게 처벌해달라고 청원하고 무시무시한 형량으로 법개정을 원하는 것만으로 사회적 합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통해 이루어진 체제와 그 장치의 옳바른 작동이 더 중요 합니다. 범죄의 가해자가 되는 생각의 틀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인권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눠서 생각하게 되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분노로만 작동되게 된다는 점이지요. 스스로 범죄의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는 일은 아이와 사회를 보호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 한가로운 생각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지켜 보면 잠재적 범죄를 축적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남성은 여기자의 가슴을 주물럭 거리고 술집 마담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남성의 친구들은 남자가 그럴수도 있지 라고 하지요. 여자들은 이뻐야 1등 신부감이 된다고 어느 미모의 여성은 여성들을 모아 놓고 연설 합니다. 모여 있는 여성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디 그뿐 일까요. 어떤 범죄와 보호를 다루는 공권력과 병원등의 행태는 어떻습니까. 이런 어른들이 아이들을 교육시키겠다고 하는 일이 입시경쟁이고 사교육 정진이며 남보다 앞서고 남보다 잘나야만 하는 약육강식 교육 입니다. 아이들은 성의 희롱과 비하에 관대한 어른들의 태도를 배우고 그러거나 말거나 남을 이기기만 하면 죄가 사하여 진다는 자세를 교양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가령, 나영이의 가해자가 돈있고 힘있는 자였다면 사전에 돈으로 빽으로 다 해결했을 텐데 병신처럼 살아서 저렇다고 더 끔찍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을까요.

법이 있어도 작동되지 않는 것이 문제 입니다. 작동시키는 사람들의 인식이 문제지요. 가해자를 찢어 죽이는 상상만으로 대중들과 함께 피를 토하는 들끓음 말입니다. 어떤 정치를 용인했고 어떤 사회를 구축했는지 반성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죠. 벌써 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 보십시오. 권력은 뭐든 정치적으로 이용 가능하게 만듭니다. 나영이의 끔찍함을 위로하며 다른 쪽으로는 여기서 파생되는 대중적 효과, 인권의 저울질, 정치적으로 이용 가능한 목적성의 법률 개정으로 파장을 만들어 내는 것 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차단하고 더 근본적인 것에 매스를 댈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우리가 목격해야 할 지점은 피해나 가해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식과 주위를 목격해내야 합니다. 우리가 끊임 없이 만들어 내는 사회의 패단에 대처하는 방법 말입니다. 우리는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작동하게 하는 법과 일련의 매카니즘이 거치는 과정에 대해서 말입니다. 현재의 법과 사회가 왜 우리의 요구를 보호할 수 없는지 개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빌미를, 원치 않는 목적성을 띤 정치적 명목을 주어선 안됩니다. 우리가 나영이를 지킬 수 없었지만 또 지켜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돈과 경쟁적 교육으로 사회가 썪어 들어가고 있지만 그나마 인류가 인간다움으로 살아 왔던 그것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사 그 아이를 지키겠다며 덤벼드는 동정과 연민조차 잔인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2009/10/01 12:51 2009/10/01 12:51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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