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진보란, 80년대 반체제 운동을 했던, 최소한 그 무리의 언저리에서 같은 노선을 생각했던 사람들의 연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진보이고 '진보' 세력일까? 제대로 뛰면 참 멀리 뛸 수 있다는 설법의 자본주의 속에서 진일보한 사상이 그것인가? 그렇다면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이란 얘긴데, 그렇다면 좌파도 진보세력들의 진일보한 대안사상에 동의하는가? 좌파=진보라는 등식이 맞지 않음을 증명하기는 쉽다. 대신,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이념은 그 정체를 들어내지도 않고 전진하고 있지도 않다. 진보나 보수나 모두 행복하자고 하는 짓인데, 전진이 없다. 그래서 행복이란 주제는 깔끔하지도 않고 게다가 한심스러워 보이기조차 하다.
추구하다보면, 왠지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매번 자신의 이념에 따라서 합리시키면서 질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합리를 타협한다는 것이 감정적으로 지고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이 당연히 한심스러워진다.
행복에는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행복은 본능인가? 계몽주의가 있기 전에 성 아귀나스조차 여자는 영혼이 없는 존재로 존치하지 않았던가? 행복의 추구도 본능이 아니라 추구권에 의한 권리의 보편성에 기인했던 것은 아닌가?
본능의 절제, 양심의 숨김이 자유와 자본의 체제안에서 미덕이라면, 행복이란 것도 체제안에서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버거운데 체제의 온갖 명령어에 쑥스럽게 그냥 웃어버리고 마는 것과 양심이 책무를 다하려고 대안을 제시하고 찬물을 끼얹듯 사상을 체제의 진일보로 전진하는 것 사이의 모호한 틈, 행복은 그 결절에서 얼마나 잘 합리하는 가에 있다.
당연히 한심하다.
가족의 체제, 연애의 체제, 결혼의 체제 안에서 한심해질수록 행복해진다니, 진보는 한심스러운 행복을 부정하고 극복하는 것, 보수는 한심하지만 안락하게 행복해지는 것으로 일단락을 맺어도 될까?
추구하다보면, 왠지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매번 자신의 이념에 따라서 합리시키면서 질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합리를 타협한다는 것이 감정적으로 지고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이 당연히 한심스러워진다.
행복에는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행복은 본능인가? 계몽주의가 있기 전에 성 아귀나스조차 여자는 영혼이 없는 존재로 존치하지 않았던가? 행복의 추구도 본능이 아니라 추구권에 의한 권리의 보편성에 기인했던 것은 아닌가?
본능의 절제, 양심의 숨김이 자유와 자본의 체제안에서 미덕이라면, 행복이란 것도 체제안에서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버거운데 체제의 온갖 명령어에 쑥스럽게 그냥 웃어버리고 마는 것과 양심이 책무를 다하려고 대안을 제시하고 찬물을 끼얹듯 사상을 체제의 진일보로 전진하는 것 사이의 모호한 틈, 행복은 그 결절에서 얼마나 잘 합리하는 가에 있다.
당연히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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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빌리 2005/05/08 00:30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나.. 투스카니로 차 바꿀까바...? 진보야? 한심한거야? ㅋㅋ
Jack 2005/05/09 12:17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먼저, 와이프님께 허락을 득하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