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저는 무심코 노을이 뜨는 날처럼, 무심코 아버지가 계시구나, 아들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에 잠시 멈춰서서 인사를 하는 사이처럼 보입니다. '사이' 라는 말은 맞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느닷없이 아버지가 되셨고, 아들이 된게 아닐진데 사이라는 말속의 뼈가 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아버지는 아버지의 공장에서 저는 저의 공장에서 기계처럼 쉼없이 돌아 갔던 때문이 아닐까요. 가끔 노을이 뜨면 아버지가 저렇게 계시는 구나, 그렇게 안락하게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노을도 꽃을 피게 하는 볕인데도 말입니다.
미국에 가기전, 생각도 잘 나지 않지만 필시 그랬을, 제 귀찮은 손을 잡아 끌고 동행했었던 소백산, 기어코 정상에 가야 한다며 지쳐버린 자식을 또 잡아 끌으셨던 아버지의 손이 젓가락도 잡기 힘드실 정도가 되었다고. 아직도 아버지의 쉼 없는 노동은 어린 자식 끼니를, 다 큰 자식 결혼을 위해서랍니다. 아버지의 35년간의 지루한 노동에 대한 댓가는 그것뿐이랍니다. 저는 아직 아버지의 짐을 나누어 질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아버지의 손은 제게 준비를 하라고 이르십니다. 소백산에서 가득 부어주시던 막걸리만큼의 힘인데도, 아버지는 이제 그것도 없다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걱정처럼, 이 놈이 커서 제 앞가림은 하고 살까?, 아버지의 노동을 저는 부정했을 테지요. 아버지의 노동속에 신념이 저 때문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시련이 비록 저 때문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청춘은 온통 제 밥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否定이 전통에 대한 극복인양, 가부장에 대한 투쟁인양 저는 얇팍하게 떠들었을 테지요. 아버지의 세계속에서 공과 사의 구별, 겸양의 미덕, 사리의 비판은 차가웠지만 어버지의 모습이셨죠. 아버지는 제가 그것을 닮아 갈꺼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삶은 어쩌면 그대로 저의 삶이 되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아버지의 살아 보이심에 함부로 들어 섰으면서도 저는 그게 싫어 투쟁하기만 했지, 겸손할줄 몰랐습니다.
어제는 아버지, 노을이 풍경속으로 점이 되버리고, 오늘은 제가 옥상위에서 두들겨 패던 이불에서 먼지가 날아가 노을에 번집니다. 저로부터 나온 먼지가 여전히 아버지의 노을이 됩니다. 아버지는 오늘의 노동이 있기에 쉼이 없으며 아직도 자식이 혼자서 저렇게 있는 꼴이 아름답지는 않는 것이라며 병원도 가지 않으십니다. 아버지, 저 독신자로 살 생각 없습니다. 그저 마음속에 사랑을 잠시 기다리고 있는 것 뿐이라고, 말씀 드렸었던 가요? 그러니, 이제 아버지의 가열찬 노동을 멈추셔도 됩니다.
아버지는 제 삶을 위해 소백산을 오르셨지만, 저는 고작 아버지를 위해 병원을 수배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저 사이의 폐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눈물이 약이 된다면 며칠을 흘릴 수 있겠지만, 아버지의 대지엔 잠시 적셔지기만 하겠지요. 아버지의 책꽂이에 제 책이 쌓여 가는 두려움, 하지만 아버지, 전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질주하셨던 숨찬 광야이기에 전 두렵지 않습니다. 아버지... 아직도 이렇게 징징거리기만 하는, 미덥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자르고 못박은 의자를 거기에 내 놓을까 합니다. 언젠간 제 책이 나머지를 채울 것을 아셨던 것 만큼은 헤아리지 못하지만, 그 의자에서 아버지의 뼈가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오늘, 식사는 잘 하셨는지, 이제 제가 전화를 겁니다.
미국에 가기전, 생각도 잘 나지 않지만 필시 그랬을, 제 귀찮은 손을 잡아 끌고 동행했었던 소백산, 기어코 정상에 가야 한다며 지쳐버린 자식을 또 잡아 끌으셨던 아버지의 손이 젓가락도 잡기 힘드실 정도가 되었다고. 아직도 아버지의 쉼 없는 노동은 어린 자식 끼니를, 다 큰 자식 결혼을 위해서랍니다. 아버지의 35년간의 지루한 노동에 대한 댓가는 그것뿐이랍니다. 저는 아직 아버지의 짐을 나누어 질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아버지의 손은 제게 준비를 하라고 이르십니다. 소백산에서 가득 부어주시던 막걸리만큼의 힘인데도, 아버지는 이제 그것도 없다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걱정처럼, 이 놈이 커서 제 앞가림은 하고 살까?, 아버지의 노동을 저는 부정했을 테지요. 아버지의 노동속에 신념이 저 때문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시련이 비록 저 때문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청춘은 온통 제 밥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否定이 전통에 대한 극복인양, 가부장에 대한 투쟁인양 저는 얇팍하게 떠들었을 테지요. 아버지의 세계속에서 공과 사의 구별, 겸양의 미덕, 사리의 비판은 차가웠지만 어버지의 모습이셨죠. 아버지는 제가 그것을 닮아 갈꺼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삶은 어쩌면 그대로 저의 삶이 되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아버지의 살아 보이심에 함부로 들어 섰으면서도 저는 그게 싫어 투쟁하기만 했지, 겸손할줄 몰랐습니다.
어제는 아버지, 노을이 풍경속으로 점이 되버리고, 오늘은 제가 옥상위에서 두들겨 패던 이불에서 먼지가 날아가 노을에 번집니다. 저로부터 나온 먼지가 여전히 아버지의 노을이 됩니다. 아버지는 오늘의 노동이 있기에 쉼이 없으며 아직도 자식이 혼자서 저렇게 있는 꼴이 아름답지는 않는 것이라며 병원도 가지 않으십니다. 아버지, 저 독신자로 살 생각 없습니다. 그저 마음속에 사랑을 잠시 기다리고 있는 것 뿐이라고, 말씀 드렸었던 가요? 그러니, 이제 아버지의 가열찬 노동을 멈추셔도 됩니다.
아버지는 제 삶을 위해 소백산을 오르셨지만, 저는 고작 아버지를 위해 병원을 수배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저 사이의 폐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눈물이 약이 된다면 며칠을 흘릴 수 있겠지만, 아버지의 대지엔 잠시 적셔지기만 하겠지요. 아버지의 책꽂이에 제 책이 쌓여 가는 두려움, 하지만 아버지, 전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질주하셨던 숨찬 광야이기에 전 두렵지 않습니다. 아버지... 아직도 이렇게 징징거리기만 하는, 미덥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자르고 못박은 의자를 거기에 내 놓을까 합니다. 언젠간 제 책이 나머지를 채울 것을 아셨던 것 만큼은 헤아리지 못하지만, 그 의자에서 아버지의 뼈가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오늘, 식사는 잘 하셨는지, 이제 제가 전화를 겁니다.
Trackback URL : http://drunkenstar.x-y.net/tt/trackback/213
Trackback RSS : http://drunkenstar.x-y.net/tt/rss/trackback/213
Trackback ATOM : http://drunkenstar.x-y.net/tt/atom/trackback/213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