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무엇이 중요하지 않고 그저 인생을 곰씹어 약속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이 계절쯤 되면 하찮게 여겨지는 꼭두서니 새해의 다짐들도 그렇고(뭐, 좀 있으면 또 새로운 다짐을 할테니), 누가 찾아와서 내 블로그를 보겠어, 본다해도 내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주겠어 그러니 가장 편한 묘사로 나로부터 흉금없는 세계를 블로깅 하겠다는 약속 또한 온데 간데 없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모든 것은 왜곡된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타인으로부터 부여되는 존재감에 대해서 고민한다. '작품을 텍스트로, 작가에서 독자에게로' 의미를 던진 롤랑바르트의 시도는 순수성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 내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학문적 연구나 사상의 깊이를 논할 수 조차 없는 나에게는 철저히 타인의 시각을 존중하며 '써내려가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한 써내려가기는 '약속하지 않는 것' 이라 말 할 수 있다. 어떤 써내려가기가 묘사로 이루어진 흉금없는 세계로 이루어졌을리 없고, 흉금없는 세계의 왜곡이라면, 그 세계가 꼭 흉금없이 보여야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써내려가기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타인에 대해 어떤 약속도 하지 않는 부담 없는 텍스트가 될 것이다. 이런 부담 없는 텍스트는 자유상상의 브릿지 이다. 부담의 부재는 누구에게나 자유를 음미하게 하기 때문이다.
동어반복적인 오류에 기꺼이 빠져 본다면, 약속을 하지 않고 써내려가기를 하는 사람은 부담없는 텍스트를 생산하고 부담없는 텍스트는 자유를 의미하기에 자유,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약속이 없는 부담없는 텍스트이며, 그런 사람이고... 등등 등등, 우리 세계가 온통 동어반복이라는 사실은 굳이 증명을 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진중권선생의 가벼운 글쓰기만으로도 쉽게 증명된다.
동어반복적인 세계의 일부인 계절에 이르러 이처럼 스웨터가 필요한 때에는, 약속의 의미가 희석된 부담 없는 텍스트는 오로지 공기중에 분해되는 말로 귀결되고 나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묘사의 부족함을 느낀다. 계절이 온도의 부족함을 강요한다는 것 만으로 나는 모든 것이 바뀌고 있음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나의 가장 강력한 우성인자인 외로움 같은 것을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흉금없는 세계를 묘사하지 못하여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소주 한두병에 젖은 홍대에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랑에 빠지지 못한다며 중얼거렸다. 아무도 듣지 못하게, 역시 나의 왜곡은 계속된다. 나의 일부분이 결핍을 느끼게 되면, 나의 모든 것은 부족함을 느낀다.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결핍과 적빈의 차이, 둘중 하나를 채우기 위한 시도의 첫걸음은 약속이다. 또는 그것을 맹세로, 강한 호흡의 맹세로 말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서툴고 아직은 다른 사람에게 그 호흡을 내기가 쉽지 않다. 나의 문제는 어렵지만,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 누구도 행간을 가늠하기 어렵게, 나 스스로만 풀 수 있는 문체로 말이다. 그래야 왜곡하기로 마음먹은 써내려가기에서 약속함 없이 자유로울 수 있을테니...
그러니 사랑... 스웨터의 계절에 너무도 부족한...
사랑...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학문적 연구나 사상의 깊이를 논할 수 조차 없는 나에게는 철저히 타인의 시각을 존중하며 '써내려가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한 써내려가기는 '약속하지 않는 것' 이라 말 할 수 있다. 어떤 써내려가기가 묘사로 이루어진 흉금없는 세계로 이루어졌을리 없고, 흉금없는 세계의 왜곡이라면, 그 세계가 꼭 흉금없이 보여야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써내려가기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타인에 대해 어떤 약속도 하지 않는 부담 없는 텍스트가 될 것이다. 이런 부담 없는 텍스트는 자유상상의 브릿지 이다. 부담의 부재는 누구에게나 자유를 음미하게 하기 때문이다.
동어반복적인 오류에 기꺼이 빠져 본다면, 약속을 하지 않고 써내려가기를 하는 사람은 부담없는 텍스트를 생산하고 부담없는 텍스트는 자유를 의미하기에 자유,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약속이 없는 부담없는 텍스트이며, 그런 사람이고... 등등 등등, 우리 세계가 온통 동어반복이라는 사실은 굳이 증명을 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진중권선생의 가벼운 글쓰기만으로도 쉽게 증명된다.
동어반복적인 세계의 일부인 계절에 이르러 이처럼 스웨터가 필요한 때에는, 약속의 의미가 희석된 부담 없는 텍스트는 오로지 공기중에 분해되는 말로 귀결되고 나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묘사의 부족함을 느낀다. 계절이 온도의 부족함을 강요한다는 것 만으로 나는 모든 것이 바뀌고 있음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나의 가장 강력한 우성인자인 외로움 같은 것을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흉금없는 세계를 묘사하지 못하여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소주 한두병에 젖은 홍대에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랑에 빠지지 못한다며 중얼거렸다. 아무도 듣지 못하게, 역시 나의 왜곡은 계속된다. 나의 일부분이 결핍을 느끼게 되면, 나의 모든 것은 부족함을 느낀다.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결핍과 적빈의 차이, 둘중 하나를 채우기 위한 시도의 첫걸음은 약속이다. 또는 그것을 맹세로, 강한 호흡의 맹세로 말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서툴고 아직은 다른 사람에게 그 호흡을 내기가 쉽지 않다. 나의 문제는 어렵지만,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 누구도 행간을 가늠하기 어렵게, 나 스스로만 풀 수 있는 문체로 말이다. 그래야 왜곡하기로 마음먹은 써내려가기에서 약속함 없이 자유로울 수 있을테니...
그러니 사랑... 스웨터의 계절에 너무도 부족한...
사랑...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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