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취지에서 모든 철학적 대입을 제하고 나면, 그것이 생겨 났을 때, '어떤 필요'에 의한 기원적 쓰임새만이 남게 된다. 이런 USE 에 대한 언어의 관점은 모든 단어의 쓰임새를 한정하게 되는데, 그 한정은 단어에 있지 않고 상황에 근거한다. 도구가 환경에 한정되 듯, 모든 언어도 상황에 한정되고, 상황은 적시성과 적소성을 포함하고 있다.
언어가 그리고 그 쓰임새가 외부의 영향과 상황에 의해 한정되고는 있지만, 실제로 언어는 그 쓰임으로 인해 그 영향과 상황을 제한하기도 하고 자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KAIST Concordance Program 을 통해 단어 색인의 용례를 검색해보면 '쓸데.없다' 는 3천가지가 넘는 용례를 가지고 있다. 쓸데. 없다며 외부 영향과 상황을 제한하지만, 그 자체는 구체적이며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쓸.의 쓰임새 기능과 데.의 적소성은 있다. 없다. 로 외부의 영향을 중대한 상황으로 반전시킨다. 있다. 없다 라는 극적인 주체성의 표현이 필요와 합쳐 졌을 때 현실은 드라마가 된다.
쓸데가 있음과 없음의 판단은, 도구의 쓰임새를 판단하는 전문가 양성의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에서 대체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이 된다. 무엇의 필요와 사용처는 쓸데가 있음으로 해서 자본적 가치와 이동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쓸데. 있다. 가 많을 수록 자본의 탄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자본주의의 성격이 쓸데. 로 판단할 수 있는 고전적인 도구의 개념을 넘어서 쓸데. 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들까지 자본적 가치와 이동의 범위안에 넣으려 하고 있다. 고전에 대한 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반동을 신자유주의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볼 수 있다.
쓸데.없다 는 자본가치의 쓸데.없음, 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쓸데.없다를 자본으로 규정했을 경우, 생산성을 떨어 뜨리는 감정과 철학의 요소들은 그야말로 이념적 쓸데.없다 로 분류되어 인간의 수고, 염려, 배려의 아름다움은 쓸데.있다 에서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상황에 한정되는 언어의 속성 상 쓸데.없다 로 분류된 진정 쓸데.있다 의 세계는 수요와 공급의 그래프에 지배되어 내재적 가치마저 잃어 버릴 것이다. 그때 세상은 황혼의 바닷가 백사장을 물컹물컹 걸어 다니며 자연과 발가락이 나누는 사랑은 쓸데.없다 가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나쁜 버릇은 모든 쓸데. 없다 를 쓸데. 있다 로 바꿔 부르려 시도한다는데 있다.
언어가 그리고 그 쓰임새가 외부의 영향과 상황에 의해 한정되고는 있지만, 실제로 언어는 그 쓰임으로 인해 그 영향과 상황을 제한하기도 하고 자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KAIST Concordance Program 을 통해 단어 색인의 용례를 검색해보면 '쓸데.없다' 는 3천가지가 넘는 용례를 가지고 있다. 쓸데. 없다며 외부 영향과 상황을 제한하지만, 그 자체는 구체적이며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쓸.의 쓰임새 기능과 데.의 적소성은 있다. 없다. 로 외부의 영향을 중대한 상황으로 반전시킨다. 있다. 없다 라는 극적인 주체성의 표현이 필요와 합쳐 졌을 때 현실은 드라마가 된다.
쓸데가 있음과 없음의 판단은, 도구의 쓰임새를 판단하는 전문가 양성의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에서 대체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이 된다. 무엇의 필요와 사용처는 쓸데가 있음으로 해서 자본적 가치와 이동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쓸데. 있다. 가 많을 수록 자본의 탄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자본주의의 성격이 쓸데. 로 판단할 수 있는 고전적인 도구의 개념을 넘어서 쓸데. 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들까지 자본적 가치와 이동의 범위안에 넣으려 하고 있다. 고전에 대한 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반동을 신자유주의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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