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와 다이씨의 오만과 편견이 없었다면 좀 더 편한 사랑이 되었을까? 오만과 편견을 버리면 사랑이 좀 더 쉬워졌을까? 아마도 그럴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존재자로 여기고, 자존을 지키지 않는 존재자는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더 많고 조금 덜한 차이가 있을 뿐, 부재를 통한 존재자의 논함 자체가 넌센스이다.
오만과 편견이 악의에 의한 태도로써 언어적으로 용례되지만, 편견 없는 실존적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다. 현실적인 사물 또는 다른 존재자를 대하는 존재자가 편견(선입견,관) 없이 오아시스처럼 흡수하는 성질만 가지고 있다면 완전한 무의 상태로 존재하는 즉, 부재를 통한 존재자를 가리키게 된다. 지식의 내용이나 사상의 형식으로 구성된 편견 없이 오로지 객관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현상은 없다.
편견이란 것은 정체성에 관련된 의식이다. 나를 밖으로 내놓은 정체가 받은 사물과 현상을 판단하는데 선입견이 없다면 나의 안에서 밖으로 나와 사물과 현상을 받았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정체성이 없는 것과 같다. 애써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 것만 같은 의도는 때로 나의 얘기나 주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은 진정성 있는 판단이 아니거나 책임회피의 소재가 된다.
정체성의 기준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가의 잣대이다. 따라서 어떤 이념과 사상으로 갈라지기 마련이다. 선입견을 기준으로 다른 사상을 가진 양면에서 편협한 사고 운운하는 것은 가슴의 울림이 아니라 머리의 립싱크일 뿐이다.
사물과 현상의 판단에 양심과 사회적 책임이 있고 의식에서 나온 자신의 스토리를 통해 주장할 줄 안다는 것, 괜찮은 선입견, 진지한 편견 없이 될 수 있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무책임한 정체성을 요즘엔 '좌파신자유주의' 라고 하든가... 참, 알수가 없다.
오만과 편견이 악의에 의한 태도로써 언어적으로 용례되지만, 편견 없는 실존적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다. 현실적인 사물 또는 다른 존재자를 대하는 존재자가 편견(선입견,관) 없이 오아시스처럼 흡수하는 성질만 가지고 있다면 완전한 무의 상태로 존재하는 즉, 부재를 통한 존재자를 가리키게 된다. 지식의 내용이나 사상의 형식으로 구성된 편견 없이 오로지 객관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현상은 없다.
편견이란 것은 정체성에 관련된 의식이다. 나를 밖으로 내놓은 정체가 받은 사물과 현상을 판단하는데 선입견이 없다면 나의 안에서 밖으로 나와 사물과 현상을 받았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정체성이 없는 것과 같다. 애써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 것만 같은 의도는 때로 나의 얘기나 주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은 진정성 있는 판단이 아니거나 책임회피의 소재가 된다.
정체성의 기준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가의 잣대이다. 따라서 어떤 이념과 사상으로 갈라지기 마련이다. 선입견을 기준으로 다른 사상을 가진 양면에서 편협한 사고 운운하는 것은 가슴의 울림이 아니라 머리의 립싱크일 뿐이다.
사물과 현상의 판단에 양심과 사회적 책임이 있고 의식에서 나온 자신의 스토리를 통해 주장할 줄 안다는 것, 괜찮은 선입견, 진지한 편견 없이 될 수 있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무책임한 정체성을 요즘엔 '좌파신자유주의' 라고 하든가... 참, 알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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