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이 없는 사회

2006/04/25 17:03 / 생각
요즘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과 '대화(임헌영과의 대담)'을 읽어 냈고 최근의 술자리 대화에 의하자면, 경제적 중간계급이 상층 20%, 또는 하층 20% 로 급속히 전환되고 그 자본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어느 계급을 할 것 없이 '먹고 사는' 데만 모든 활동이 집중됨으로 인해 '지식인' 이란 생각하는 계급은 사라졌다는 독트린이 유효하다고 한다.


그로인해 지나친 계몽도 좋지 않지만, 우상에 대한 비판적 도전(리영희 선생의 말)조차 시들해진 마당에 존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무리들의 이상한 계몽의식과 우상 반열에 대한 맹목은 점점 그 세를 더하고 있다. 외국인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는 러시아의 네오나치즘의 무리들과 300조원과 국익을 운운하는 황우석 지지자들의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들의 몸을 동학(?)의 혁명적 기운으로 불태우지 않고 그들과 다른 생각의 몸에 신나를 뿌리지 않는다 보장할 수 있겠는가.


걸핏하면, 성조기를 앞세우고 구국기도회를 하던 기독교의 무리들이 세금은 모국에 내고 마음은 미국에 있으며 정체성이 온통 그들과 같지 않아 안달이 나서, 그들을 비판하는 보통의 계급들을 무리단위로 위협하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십일조와 맞바꾸더니, 살생 금지의 경지에서 모든 생명을 긍휼하던 불교가 황우석의 무리와 같은 목탁을 치는 광경은 사뭇 그 맥락이 통하였다 당위해야 하는 현상으로 봐야 하는 지경까지 왔다. 민간과 종교의 범주가 우상의 다름이 아니라 지식의 다름에서 경계된다는 것을 보면 종교의 소리는 오로지 믿음의 소리가 아니라 지식의 소통과도 같다. 그 소통이 이런 현안이고 보면, 오늘날 한국 종교는 신화만이 비타민인 허약한 체질이었음을 반증한다.


이것은 지식인이라 불리워져야 마땅한 계급이 스스로는 자유인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그 책임을 모면하려는 온갖 면피의 처세술의 밝음에서 기인했다. 또, 9할의 노동 보다는 재테크의 램프에 룩스를 높이는데 지식의 9할을 쏟아 붓는 상업주의에서 기인했다. 마땅히 지식인이라 불리워져야 하는 계급은 민중과의 연대에 기꺼이 참여해야 함을 강요 당하지 않더라도, 제대로된 혜안으로 말하지도 게다가 쓰지도 않고 있다면 자유를 향한다는 지식의 본래 목적이 참작된 인간의 이름인 '지식인'이 아니라 빌어 먹을 '양아치' 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2006/04/25 17:03 2006/04/25 17:03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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