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오후 1시에 떠나는 KTX 에 표가 동이 났다. 도시의 감성으로 낮은 구름이 내려칠 듯 말듯, 장마는 여전히 꾸물거리고 있다. 1시 30분 표를 사고 나와 담배를 피웠다. 쓰고 달고, 몸이라고 구색을 맞춘 장기들이 니코틴을 받아 들이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나이가 실존에 간섭하는 범위가 그 모양새만은 아닐 것이다. 행색이 추레한 50대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조금 전부터 나의 흡연을 확인하려는 듯 바지 주머니에 시선을 꽂고 있었다는 것 쯤은 그가 2개피의 담배를 꿔 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는 추레했지만, 내가 담배를 꺼내면 그가 다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부러 5천원 신권을 준비하고 있었던 동정심 같은 것은 여름 오후 1시 KTX 와 함께 장마속으로 출발했다.
1,500인 선언과 박종철 인권상 수상에 힘입었다고는 하지만, 전단지 뒤에 얼굴을 디민 영화인과 정치인들의 지지글은 마치 새로 개봉될 영화의 30자 단평 같았다. 1000만인 서명을 받는 탁자에 다가갔더니 전직 승무원이며 어디서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그가 의식적인 호들갑을 떨면서, 얼마나 외웠을까?, 지지 서명을 가늘게 호소했다. 지난번에 서명 했는데 또 해도 될까요? 예측하지 못했던 나의 물음은 그를 비롯하여 옆에 있던 동료 까지도 나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이름을 쓰고 주소를 반쯤 쓰던 대학생만이 허리를 세우지도 고개를 올리지도 않고 하던 서명을 할 뿐이다. 1명이 중복되어 구백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구명이 되면 어쩌나, 그래도 될까, 그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짧게 동요했지만 이내, 한참을 살지 않고 견뎌왔던 자 만이 낼 수 있는 눈빛을 막막한 내 눈에 쏘아 댔다. 고맙습니다! 이거라도 읽어 보세요, 그는 전단지를 내민다. 힘내세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가방 1KG, 가방 안에 노트북 2KG, 잡다한 부속품들 1KG, 다이어리 1KG, 역사란 무엇인가 0.7KG, 대략 5.7KG 이 오른손 뼈마디에 매달려 달각달각 소리를 낸다. 파이이야기 0.7KG 과 반도에서 나가라 0.8KG, 0.8KG 도합 2.3KG 을 사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억제는 순전히 무게 때문이었다. 소설 다운 소설이란 감수성을 잃어 버린 뇌가 소비 전파를 내지 않은 탓도 있지만, 여전히 읽을 꺼리가 숱하기 남아 있는 방켠의 수북스러움이 최근 결심한 편찬 수준의 작은 글쓰기의 결과 또한 저 수북스러움과 동질감을 느끼는 터였기에 읽는 것보다 사는 것에 두었던 비중을 바꿀 수 있었다. 그냥 그저 써내려가기의 적은 무게를 편찬 수준까지 끌어 올려 보려는 특정 근육들의 쓰임은 아직 적당히 단단하지도 보기 좋게 기름칠을 하지도 않았다. 그럴때면 더 읽어야 겠다는 생각뿐이다. 역시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들에 대한 읽음이 당분간 지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훼방은 그 고된 고독보다 달콤하고 쌉사름하다.
이를테면, 어제 밤 11시에 반포에서 인사동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길에서 만나지 못했을 참여연대 C 간사와 비교적 명료한 관계가 되게 해준 쌉사름한 훼방을 마다할리 없는 술마시며 연대는 본능적으로 그 훼방 대오를 쫓아 가는 듯 했다. K 간사는 서러운 투쟁에 대해서 얘기해줬고, 나는 의리 없는 자살의 추억을 리바이벌 했다. 나의 이야기는 말해도 말해도 담즙이 나오는 부르조아를 닮아 있었다. 설명되어 질 수 없는 닮아 감이 싫어서 다시는 리바이벌이 없다고 다짐했지만, 내 얇은 관계는 허락치 않았다. 나의 작은 글쓰기를 스스로 소시민의 개화로 설명할 채비를 갖추었던 허술함도 한몫 거든다. 장마가 오려나 보다, 가슴이 따뜻하고 발이 젖는다.
장마가 오가면 여름이 아니라 가을이던 순진한 계절 터울, 그 하늘과 바람이 마냥 좋았던 지난 일요일의 삼청각에는 내가 그동안 비난했던 대중들이 좋은 것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충동이 오직 두가지로 압축된 시간을 거슬러 착지한 곳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두 가지 충동 중 독서는 이곳이 최고의 환경을 주겠다며 히죽였던 나의 비열함을 털어 내지 못하고 1시30분 동대구행 KTX 에 오른다. 10호차 1A 좌석에 역사란 무엇인가 를 던져 놓고 플랫폼에서 짐짓 여유롭게 담배를 피운다. 아까 그 추레한 사내도 남은 담배 1개피를 피우고 있는 중일까? 한국철도공사 서울지부 건물이 뿌옇다. 삼청각은 보이질 않는다. 눈이 방향을 훌터가지만, 오염된 안개를 뚫을 수 없었다. 답답한 안개, 담배갑속에 담배들이 널널해지기 위해 나의 폐는 얼마나 고되었던가, 그 사내는 내 폐의 은인이다. 담배값을 올리라는 유시민은 내 호주머니를 탐내던 그 사내의 눈빛일 뿐, 그 사내는 빌려 보이면서 나의 은인이 되었다. 나는 담배를 끈다. 다시 일터로, 누군가는 부당하게 빼앗긴 그것을 찾기 위해 맨끝에 홀로서서 시린 눈으로 서명을 받고 누군가는 가기 싫어서 발뒷굽에 꽁초를 지진다.
역사란 무엇인가, 60페이지까지 두번을 읽었지만 홍신문화사의 번역이 형편 없는 것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이런 예의없는 문체란, 30페이지 정도로 조망 가능할 정도가 되니 졸음이 온다. 대게의 경우 충동을 이긴다. 하지만 KTX 를 50번쯤 타고 생긴 실증적인 경험에 의하면 KTX 에서의 졸음은 피하는 것이 좋다. 짧은 시간과 안락하지 못한 좌석의 섬유가 사타구니를 조여오기 때문이다. 정신을 소멸시켜서 만들 휴식은 육체를 불편하게 만들고 다시 돌아온 정신이 급작스럽게 두통을 호소한다. 이것이 KTX 에서의 졸음이다. 그래서 역사란 무엇인가, 묻고 답해야 하는데 산만한 조사와 부사의 쓰임으로 인해 방켠에 두고 온 계간 창비 132호나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의 표지가 솔찮이 오버랩된다. 많이 읽는 것은 많이 쓰는 것보다 어렵다. 나의 방켠이 그것을 증명하며 미래와 소통하고, 내가 물려 받을 아버지의 보수적인 서재가 과거를 끌어 온다. 미래는 나에게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벌써부터 경고를 하고 나선다. 나는 그 울림을 바닥에서도 천장에서도 듣는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처럼 무의미한 질문을 삶 속에서 건져내어 속절 없는 인생들이 벌거숭이로 뛰어 다니는 해수욕장에 쳐 박어 놓고 나니 갯뻘의 그것처럼 구체성을 띤 생명들이 간신히 숨을 쉰다. 짐짓 모른체 살아 왔던 이웃들의 구덩이와 개화되어야 할 의식의 껍질과 부서지고 트여야 할 사회의 뚝이 소시민에게 시민으로 살아야 할 세상의 모든 예언으로 다가 온다.
하지만, 다짐하기에 나는 너무 낡고 너무 얕다. 유행가를 빌려서 세상의 소란스러움과 등을 맞대었던 나의 친절한 복종이 이 세상의 황사 바람이었고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잡음이었다. 나의 말미에 들어 찰 성찰의 시간에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이 정치적이며 세계적인 폐배의식과 오만에 두려움 없이 읽고 쓰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인간성을 호주머니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계속 의문한다. 그리고 충동한다. 이 장마가 차라리 아주 길었으면 좋겠다. 추악한 도시와 자본주의자들이 바라볼 감상 어린 노을을 덮고, 지상의 꽃에게 비를 뿌려 줄 수 있도록, 그동안 그 비 안에서 나는 나를 끊임 없이 배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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