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사고가 있은지 20년이 되었다. IAEA 에서는 겨우 50명 정도가 당시 즉사 했고 이후에도 갑상선암으로 4천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민간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보다 천배에 가까운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알길이 없다. 다만, 체르노빌 사고는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원자력에 대한, 핵에 대한 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기억하고 있다는 자체에 대해 바햐흐로 의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기억하는 것이 일상일 수는 없지만, 피폭에 대한 후세기적 역사에 있어서 체르노빌은 히로시마와 비견되는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에서 이에 대한 경중은 사뭇 다르다. 구소련 키에프시에서 발생한 이 사고로 피폭 영향지역에 있는 7백만명의 사람들에 대해서 히로시마의 사람들과 같은 동정을 보내는 이는 별로 없었다. 다만, 우리가 전혀 알 수 없었던 지역에서 발생한 크나큰 피폭 사고로 인해 전력 생산에 활용되는 원자력에 대한 공포마저 심화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0기의 원전이 있다. 원전은 해마다 증가하여 10년후에는 30기로 대폭 증가될 전망이다. 전력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원자력 만큼 효율적인 자원도 없는데다가 개발논리에 따른 전력 수급에 있어서 원자력에 대한 비판은 설 자리가 없다. 핵폐기물의 처리에 대한 근무자와 지역주민의 영향에 대해 오직 정치적인 논리만이 작용하고 있다. 장치에 대한 운영적 사고의 가능성은 이러한 정치와 개발 논리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의 일부 주민조차도 핵폐기물의 영구적 확산에 대해 관대해하고 있다.
이것은 오로지 정보의 부재에 의한 무지로 밖에 볼 수 없다. 피폭은 단 시간내에 사망하는 재래식이 아니라 가능성을 상존시키는 항구식 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별도로 만들어지기 전 원자력 발전을 담당했던 한국전력공사가 1992년부터 2000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실시했던 국내 원전 근무자와 주변 지역 주민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미 10년 전인 1995년에 100mSv(밀리시버트) 이상의 누적 노출량을 보이는 노동자가 135명이나 됐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체르노빌의 경우 1000mSv 의 방사능이 노출됐다.
원자력으로 인해 한반도는 내적으로 원전, 외적으로 북핵 위협으로 공포에 휩사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핵보유와 핵실험 위협에 대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반응은 당연히 반대다. 하지만, 국제 정치적 입장에서 미국이 행사하는 불합리한 차등 적용에 대해서도 응당한 반대의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 및 실험에 대한 그들의 논리는 불쾌하기 이를데 없다. 동북아에 대한 최종 방위선을 일본으로 두고 있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정치, 외교적으로 북한 만큼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동북아 균형국이 있을까 싶다. 중국과 중동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와 이스라엘의 핵보유에 대해서 관대하고 지원적인 미국의 논리는 북한이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남한의 핵보유는 반대하는 상반된 구조를 견지하고 있다. 북한을 어떤 체제로 인정하지 않는 미국에 있어서 악의 축은 비단 북한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한반도 전체에 대한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억지력은 없고 매파적인 남한 사회를 핵의 유무로 안보, 공안적인 상황으로 쉽게 몰아 넣을 수 있다는 발상과, 더불어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무력 행사를 감행해도 한반도 전체에 대한 군사적 유연성이 결코 미군의 투입이 아닌 미군의 철수였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핵에 대한 가시적 위협이 북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이미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하고 플루토늄을 생산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로 핵폭탄을 만들 때 2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주지 시키고 있다. 현재 일본은 핵무기를 단 60일안에 보유 할 수 있는 잠재 보유국이다. 물론, 미국은 이를 암묵적으로 승인하고 있다.
핵은 그것의 사용이 현재를 윤택케하기 위한 에너지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종말이 될 현재의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의 용도가 무기라면 더더욱 빠른 종말의 시작일 것이다. 관리 가능한 모든 투철함의 관리란 미국의 핵관리 정책은 허울 좋은 상상력이다. 자신들만이 가능하다는 핵의 우월 논리가 국제 정치에 있어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진보세력이 미국에 의한 종속적 지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대한 이유중에 하나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쳐 놓은 핵 우산은 핵으로 부터의 보호가 아니라 핵이 폭발하여 피폭을 당하는 범위임을 알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진행형으로 남아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점을 상기해야 하는 이유는 핵 우산, 내부의 사고 또는 북핵의 위협으로 인해 피폭이 있다면 체르노빌 처럼 20년이 지나도 아무도 그 고통을 알아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산업부 송의달 기자 같은 비참한 관점은 가지지 말자
Trackback URL : http://drunkenstar.x-y.net/tt/trackback/429
Trackback RSS : http://drunkenstar.x-y.net/tt/rss/trackback/429
Trackback ATOM : http://drunkenstar.x-y.net/tt/atom/trackback/429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
玄雨 2006/10/07 08:4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할말이 없군요... 조선일보 기자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저 기자가 개념이 없는건지.....
핵융합이 어서 현실적으로 이용가능해져야 할텐데 말이죠.. 같은 핵이지만 방사능 누출의 걱정이 없는 핵융합이니까요..
문득 쥬라기공원이 생각나는군요. 그 영화의 본질은 '공룡'이 아니라, 인간의 '관리 가능함'의 오만함에 대해서 이야기한것이었죠..
Jack 2006/10/08 01:02 편집/삭제 댓글 주소
벌써 오래된 기사지만, 조선일보는 근본적으로 해악한 역사관 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점이란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지요. 세상 도처에 존재하는 관리 가능함의 오만함을 극복할 수는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오만함이 꼭 필요할 때 발생하거든요, 아니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상황에서... 필요하다는 것은 판단인데, 좋은 판단과 나쁜 판단은 역사관 같은 것에서 비롯된다고 학자들이 그러더군요... 그럼 해악한 역사관을 가진 자들은 대체로 나쁜 판단을 한다는 것이 되는지...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