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회사는 매해 1월 전사 워크샵을 통해 앞으로 1년간 회사의 사업계획과 단기적 전략과제를 발표하고 공유한다. 전략 부분은 내 담당이기에 한창 전략 보고서를 다듬고 조율하는 중이다. 전략을 세우면서 중요한 것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절차와 Activity 의 구성이다. 전술적 절차에는 대체로 도입기, 성장기, 평가기 등의 단계를 거치는데 이러한 구성에서 언제나 걸리는 부분이 평가기다. 희망차게 출발했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전략을 평가하여 수정하거나 발전시키고 평가에 따라서는 폐기해야 하는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전략을 수립한 자가 평가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맞지 않다. 피평가자가 평가의 기준을 마련해본들 책임을 회피할 수단을 기준 안에 만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희망찬 수립을 해놓고 냉정하고도 치밀한 평가 기준을 마련할 만큼 인간은 겸손하지 못하다. 나 또한 수립한 전략의 모든 부분을 구성해 놓았지만, 평가 단계만을 빈칸으로 방치하고 고민중이다.

집사람이 바람을 피워도, 방명록에 댓글이 안올라와도 그 탓을 '노무현 때문이야' 로 돌리는 세상에서 그 당사자인 대통령은 국민들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겠다, 작년에 이미 포기했다 고 말하며 당당히? 맞섰다. 대중이 여론 형성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댓글에 대한 취급이 여전히 민주주의와는 역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개인적인 관념을 배제한다고 해도, 평가를 포기하고 스스로 독불장군을 선언한 대통령의 자세는 시정잡배의 시덥지 않은 짝다리와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 임기 초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은 언론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집권 정부와 보수 언론이 다루는 사회 현안들(한미 FTA,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비정규직 문제, 새만금 사업, 사회 양극화 등등)이 기본적으로 같은 인식의 틀안에서 정책적으로 반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서로를 공격하고 공격 당하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 하다. 따져 보면 노무현 정권이 보수 세력과 다른 정책은 두가지, 전시작전권환수와 햇볕정책 밖에 없다. 결국, 노무현 정권은 보수 세력과 정책적으로 코드가 맞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이 노무현 정권을 탄압? 하는 이유는 이미 그를 좌파로 규정했던 원칙을 깨고 있지 않는다는데 있고, 영원한 친북세력인 김대중 정권의 대북 햇볕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데서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문제는, 현재 집권 정부의 정책이 보수 세력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찰떡 궁합을 과시해야 할 때에, 무능이란 이름으로 정권을 비난한다는데 있다. 정책적 코드는 같지만, 추진 절차가 무능하다는 섬세한 지점을 지적하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언론을 비롯한 보수 세력이, 어쨌든 그들의 원초적 본능인 기득권 수호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노무현 정권을 비난하는 지점은 대게가 대북 정책부분과 인사 말고는 거의 없다. 노무현 정권을 좌파로 규정한 그들의 정신 세계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진보 세력에서는 일찍이 노무현 정권을 좌파로 규정한 적이 없다. 이는 진보세력이 좌파 정권이라 규정하고 동의한 적이 없는 노무현 정권을 보수 언론의 강력한 무가지로 떠밀어 낸 결과이거나, 진보세력이 노무현 정권과 충분한 거리를 두는데 게을렀다는 증거가 된다.

노무현 정권은 그들에게 최대의 적은 언론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언론은 우리 사회의 불량식품이란 정의를 만들어 냈다. 국정 파탄의 원인에 있어서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대통령을 보며, 언론에 대한 불량식품의 정의가 노무현 개인의 인식인지 정권의 인식인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이쯤되면 분열도 이만저만한 분열이 아니다. 독재와 독불, 파탄과 시행착오의 단어적 차이를 넘어서서 인간의 뇌 어디쯤에 자리잡고 있어야 할 판단이성을 잃어 버린 외로운 야생짐승의 목놓은 울부짐과 흡사할 뿐이다. 4년전 노무현 정권을 출범시키고, 탄핵을 온몸으로 막아 섰고, 집권정당에 과반수 의석을 밀어줬다. 대게의 대중적 국민들이 행사할 수 있는 참정권을 모두 사용하여 정권의 탄생부터 그를 밀어주고 막아주었을 때 밥벌이가 가장 숭고한 서민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인간답고 숭고하게 살고 싶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참정권을 다 사용한 정치적 대중과 밥벌이가 숭고한 경제적 서민에게 개혁법안은 고사하고 민생법안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집요한 양극화의 덜미는 서민을 더욱 뒷걸음질치게 하고 나서야 이제 바라는 것이 평가에 관심 없다, 즉 간섭하지 말라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최고 권력자가 더 이상 평가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독재가 아니고 단순한 어려움의 토로일 수가 있을까? 평가 받지 않는 자가 세우는 정책이 어떻게 민주적일 수 있을까? 사회의 생산과 체제를 새롭게 편성해 나가기 위해 세운 전략이 비전 2030 이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을 모델로 세운 이 전략을 거들먹거리면 응당 보수 언론에서 반색을 하고 사설이라도 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경제 만능주의로 가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부치면서 벤치마킹 대상이 초자본주의, 패권주의, 극우세력이 득실대는 미국과 일본이라며 공공연히 밝히는 것을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냉수 마시고 속 차리길, 중요한 건 경제가 아니라 사상이다. 사상은 사회와 민생을 돌보지 않은데 그 빛깔을 낸 정책을 만들려니 그 과정에 무능이라는 보수세력의 단어가 창궐하는 것이란 사실을 그토록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단정하건데 보수 우파가 이번 대선에서 집권할 것이다. 물론 그곳에 단한표도 던질 생각이 없지만, 이 부분은 명백히 노무현 때문이다. 지킬 기득권도 없는 밥벌이만이 숭고한 서민들조차도 사회적 분배와 평등의 가치가 경제성장보다 우선에 서지 않는다고 판단하게 됐고, 기득권에 기생하거나 경쟁적으로 기득권을 획득하기 위한 야생적 패배주의가 만연한 사회로 만드는데 있어서 결정적 책임은 노무현에게 있다. 그가 평가를 포기하고 평가 받지 않겠다는 토로는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면책하겠다는 알량한 포석일 뿐이다. 그가 이제 부터 삶에 지친 국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립싱크는, 립싱크 자체다. 즉, 입닥치고 있는 것 뿐이다.

나도 그만 입닥치고 겸허하게 전략에 대한 평가 기준을 만들어야 겠다.

2007/01/05 01:51 2007/01/05 01:51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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