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식별

2007/04/04 17:39 / 생각

한미 FTA 체결로 대중의 관심은 '살림 살이가 얼마나 나아질까?' 로 급선회를 하는 듯 하다. 대~한민국과 국익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대중들은 행여 국가 체면이 깎이지나 않을까,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을 터, 이제 한시름 놓고 차분히 계산기를 두두려 보며 대한민국과 국익 앞에 착취 당하는 민중의 뼈빠지는 삶에 대해 부르르 분노를 떨 사람이 도대체 몇명이나 될까 싶다. 한미 FTA 의 손익 계산서 앞에 망연자실한 진보 진영에도 이번 체결을 통해 한가지 확실히 얻은 것이 있다. 그것은 명백한 피아식별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대에 있어서 내용은 다르지만 반대의 행위가 일치하는 수구 보수세력과의 불편한 정신적 연대를 확실히 구별 지었으며, 노무현 정권의 기회주의적 정체성인 좌파신자유주의라는 황망한 정의에서 드디어 '좌파' 를 때어 낼 수 있는 희망을 보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따져볼 겨를이 없는 대게의 동시대인들은 한미 FTA 체결하면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로 살아 간다. 어떻게 나아 질 것 같은가? 라는 질문에 백이면 백 '시장 경제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닙니까?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고 그것을 통해 발전을 이루는 것' 이라 대답한다.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오늘을 살아 남은 자들의 이러한 비극적 논리를 탓할 필요는 없다. 이제 국회 비준되고 각종 법률을 미국의 요구대로 바꾸게 되면 당장 의료보험료가 한달에 4만원은 더 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이들에게는 더 벌면 되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중요한건 한달에 4만원을 더 낼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는 것인데도 말이다. 나보다 힘 없는 사람들을 지려 밟고 세운 성공과 윤택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는 이미 공동체가 가져야 할 보살핌의 철학을 잃은 살벌하고 무서운 사회다.
자본이 문화, 정체성, 역사, 인간성을 지배하는 이익 관계 사회에서 사상적 피아를 구별하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권력의 레임덕을 돌파하기 위해 수구 보수 진영에 당당히 서는 선택을 통해 정치적 레토릭과 립싱크를 이용하여 자신보다 힘이 약한 대게의 민중들을 어김없이 지려 밟는 명백한 사상 구별을 단행했다. 철없는 실용주의적 사고가 불러오는 치명적 실수인 절차와 기술적 내용에 대한 편집증은 기어코 긴 호흡의 역사 속에 조직될 진보와 민주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부정까지 일삼고 있다.

그가 인권 변호사로서 억압 받는 민중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시절을 진정성있게 보냈었다면, 한미 FTA 를 통해 수혜 받는 거대 자본과 재벌, 언론 권력의 콧노래를 신화화시키는 시간에 점점 삶의 질을 착취 당하는 대게의 서민들과 노동자들의 아픔을 보살펴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 그의 인식 안에 그 따위 혜안은 지워낸지 오래다. 사실 투쟁과 저항의 시작은 피아의 식별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제 시작이고 희망도 이제 시작인 셈이다.

2007/04/04 17:39 2007/04/04 17:39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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