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종종 경영 문제를 물어 오는 후배가 있다. 들어보면 대게가 사람에 대한 문제고 사람의 인연과 사연에 대한 것이다. 회사라는 목적 가치에 오래도록 인연을 두는 일은 참 쉽지 않다. 건물은 그래도 둔 채 사람들만 사라지게 했던 IMF 중성자폭탄으로 인해 평생직장이란 가치는 사라지고 직업관은 능력과 시장요구에 부합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가치로 변화되었다. 여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조직이란 근거로 생긴 한가지 믿음이 있다. "한사람 없어진다고 회사가 무너지나" 란 것인데, 이 믿음은 꽤나 신앙이 깊은데다가 한사람 없어서 회사가 잘 무너지지 않았던 경험 코드까지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 평생직장은 이미 고전적 직업관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가치로 세계화를 하지 못해 온통 안달이 난 사회에서 평생직장은 마켓의 요구와 완전히 배치된다. 잉여자본이 노동유연성을 더욱 탄력적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개인은 더 이상 조직의 구성원이 아니라 개인주의적 객체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고 마켓에 어필해야 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기능이다. 조직은 더 이상 개인에게 어떠한 가치도 부여할 수 없다. 오로지 개인만이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 조직은 조직의 이상이라 생각되었던 어떤 비전, 미션으로 구성되기를 거부하고 자본 생산이 용이한 지점과 자본 재생산으로 노동의 탄력성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지점으로 끊임 없이 이동하기를 원하게 되었다.
세계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따라서 세상의 모든 동력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게가 '세상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마켓 안에 있다' 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로 인해 노동이나 사람은 마켓안에서 하나의 문제로 인식되어 진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등가의 원칙을 기본하여 개인과 개인, 개인과 회사를 계약으로 묶는다. 이러한 계약에는 개인이나 사회에 대한 책임, 나아가 회사에 대한 책임보다 더 포괄적으로 마켓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으로서의 사람은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 마켓이 침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언제나 치열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이러한 구조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노동의 치열함은 삶의 치열함이 아니라 마켓이 원하는 책임, 즉 자본의 창출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강제적 복무에 치열함을 부여할 뿐이다. 더 나아가서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연이나 사람간의 계약이 아닌 인연의 관계마저 부인하거나 마켓의 요구에 걸림돌인양 치부해버리고 만다.
중소기업을 하는 후배가 물론, 작은 회사에서 경영자가 일일히 챙겨야 하는 것도 순리일 수 있지만, 사람이 조직에서 들고 나는데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그와 함께 했던 오늘을 챙기고 칭찬하며 그의 미래를 격려해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적잖은 시간을 들이기를 바란다. 마냥 칭찬하고 격려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잖은 시간을 들여 사람을 생각한 경영자라면 충고하고 때로는 아프게 꾸짖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우애와 연대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리가 없다. 사람과 노동을 존중하는 경영자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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