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님 생신은 기억이 특별하다.
재작년 봉평에서 1박 2일 동안 팬션을 빌려 친척들이 모두 모여 싱싱한 송어회며 소시지를 구워 먹던 캠프파이어 까지, 피붙이들끼리 이런 부산스러운 모임을 다시 가질 수 있을지... 나이가 들어 가시는 어른들은 갈수록 돗수 낮은 술을 찾으신다.
어제, 다시 돌아온 고모님 생신... 혼자 살고 있는 곳에서도 그리 멀지 않으면서 찾아 뵙지 못한 것이 엔간히 찔리기도 했는데, 조금 넣은 용돈 봉투를 드리면서 더 젊어 지시는 거 같아요, 했더니 웃으시면서 봉투를 냉큼 챙기신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웃기던지... 손을 잡았더니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과 어쩜 그렇게 똑같은 지...
형들과 술이 두어 순배 돌아가고 행정수도이전 위헌에 대한 얘기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주위에서 그 때문에 손해본 사람들의 사연을 얘기하다가 힘들지만 지금의 정치적 다양성과 자유가 기득권과 연관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의견에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찾는 지금의 현상이 더 활발해야 하고, 지금 우리가 힘든걸 견디지 못하면 저기 있는 저 조카 애들이 다시 짊어질 짐이 아니겠냐고 낮술에 약간 췻기가 오른 뒷말까지 덧붙였다.
옆에 계시던 어머니 대뜸, 노무현이 이따위로 정치해서 이렇게 힘든데 그래도 노무현이 좋다고? 하신다. 한나라당의 절대 지지자 이시고 모 국회의원의 여성후원회장이시기도 한 어머니는 정치 얘기만 나오면 열이 난다시며 뭘 모르는 애들이나 우리당 지지하고 노짱 지지한다, 라고 일축하신다. 뭘 모르는 것, 도대체 내가 뭘 모르는 걸까?
저만치에서 듣고 계시던 큰아버지, 우리 집안은 대대로 집안에서 찍으라는 사람 찍었고, 지지하라는 정당을 지지했다, 하신다.
집안에서 정치적 성향을 달리하게 된 것은 국민참여정부 바로 이전으로 돌아간다. 이것도 하나의 다양성과 다름의 증거로 고민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집안 어른들이 다 계신데 큰아버지께 반기를 들 듯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는데요, 라고 말은 못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다는게 내 생각이다.
할아버지는 큰아버지와 아버지를 아버지는 나를 나는 내 자식을, 이런 피붙이 구조를 전적으로 가부장적인 구조로 파악하고 부정할만한 용기는 없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집안의 정치성향을 따라가야 할 이유도, 적당한 당위성도 없다. 이를테면, 피붙이니까... 정도가 이유가 될만 하겠다.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이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마땅히 당신의 생각과 같을 것이란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다. 아버지는 신탁, 반탁으로 서로가 갈갈이 찢어지다 못해 전쟁을 통해 형제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셨을테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그 모진 인권 유린의 시대에 몸을 움추리고 살아남는 법도 배우셨을 것이다. 살아오신 삶의 지혜를 오늘의 잣대로 섣불리 폄하할 수 없는 시대를 견디셨다는 점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다만, 피붙이의 그것으로 더는 얘기를 꺼내지 않고 고분이 앉아 있었지만,
내 생각은... 여전히 다르다.

P.S 읽기..

2004/11/01 01:14 2004/11/01 01:14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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