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뮤지션

2005/09/27 22:43 / 관심
음악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많이 아는 것이 있다면, 음악은 문외한이라 해도 좋다. 날나리들이 그랬듯, 학창시절에 작은 밴드의 시절은 있었다. 기껏 크로메틱를 떼고 나서 치워 버렸지만, 음악이고 미술이고 많이 알고 보는 것보다, 많이 느낄 줄 알고 나서 아는 것이라는 어줍잖은 철학에 빗대어 보더라도 역시, 음악은 잘 모르겠다. 그렇다보니, 음악하는 사람치고 부럽거나 존경스러운 사람도 없기 마련이다. (이효리를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집중력이 필요한 일에서 주위와 단절되기 위해 일부러 꽂는 이어폰을 통해 Fusion, Acid Jazz, Indi-band 를 듣다가 최근에 부러운 두 사람이 생겼다. 미선이 였다가 루시드 폴이 된 조윤석, 언듯 보면 동사무소에서 등본이나 띨 것만 같은 사내지만, 서정시를 쓰는 개인주의자로서 그의 음악 '오, 사랑' 은 음계 위에서도 고즈넉히 낭송을 해도 좋다.(한 TV 프로그램에서 이적이 그것을 증명했었다.) 안치환의 '사랑하게되면' 이후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러도, 읽어도 이만큼 좋은 노래가 없을 정도다. 그리고 '널 그리다', Kiss the rain 의 그저그런 피아니스트인 줄만 알았던 그가 '멀리 돌아온 만남' 에 대해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루마, 조윤석 보다는 귀티나는 모습이지만, 그가 대하는 삶의 진지한 자세가 나의 숭고함을 일깨운다. 실천할 줄 모르는 이데올로기나, 최강이지 못하는 사랑따위와 거리를 둔 사람 같아 보이는 것도 좋다. 그들의 음악이 더 좋은 것은 그들의 글이, 그것의 씀씀이가 더 좋기 때문이다. 난 여전히 세상의 불공평을 성토하겠지만, 부럽고 그리고 숭고함에 대한 생각을 준 것으로 감사하다.


[미선이, 루시드 폴, 조윤석]


[이루마]


[이루마가 이분를 사랑하는가 보다, 이분도 이루마를 많이 사랑하시길]
2005/09/27 22:43 2005/09/27 22:43
DrunkenSTAR 이 작성.

언제나 그랬다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나의 관심과 세계를 말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그렇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렇지 않고 원래 그랬던 것은 변화하지 않은 고정 시각의 전유물이다. 철칙이라는 순수함 때문에 수없이 잃어야 했던 것들이 희생으로 포장되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것들이 있는 반면에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는 운명과 맞서온 사람에게서 오늘의 철학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순응이야 말로 안락한 금가르기다.

순수가 경험의 반대로, 경험은 이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탐구의 영역으로 검증되었다면, 책임은 경험에 대한 도전 인식으로, 이성은 경험에 의해 영역화되는 선입견으로, 비판은 '검사'가 아닌, 비판 그 자체로, 오늘의 제도와 전통에서 책임은 비판 받을 수 있다.

공화민의 공공선의 책임, 복지부동의 책임, 이데올로기의 순수성에 대한 책임 등 모두 비판의 대상이다. 그것은 자연적 책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에 의한 책임에 대한 것이며 물질의 옷(자본주의)을 입고 있는 동안 책임에 대한 비판을 면할 수는 없다. 특히, 합법칙성이라는 절차에 근거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절차에 의한 데모크라시가 지닌 한계 상황은 본질에 대한 접근이 방해되는 것을 의미하고, 즉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통한 반성적 이성견재 없이 경험적 절차의 중대성 강조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고, 타인의 관점에 의해 부여되는 존재성을 실존적으로 인식한다. 이렇듯, 자본의 물음에 순응하는 존재성 결여는 언제든지 정체성을 변칙한다.

변화하는 능동적 철학은 변칙과 다르다. 그것은 존재자에 대한 존재적 물음으로 부터, 감성의 섞임으로 비롯되어야 하는 책임이, 제도에 있음으로 해서 그것을 면할 이성으로 변칙되는 것을 말한다.

사유의 끝에서, 바라볼 실제적 제도속에서 분주히 실천되는 책임은 실존적으로 책임이 아니라 자기 방어를 토대로 한 면피이성으로 자연책임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그것만이 자본주의가 실천하는 책임 이데올로기이며, 순응하는 존재들의 남루한 삶인 것이다.
2005/09/25 11:30 2005/09/25 11:30
DrunkenSTAR 이 작성.

진부에 다녀와...

2005/09/19 11:19 / 생활
강원도 진부에 가기 전까지 한물간 pentax istD 를 사려는 욕심은 한결 Cool 해졌다. 한번 마음을 내어주고 보채다가 지치는 열혈 트랜드를 다독이며 나는 진부에 다녀왔다. 비는 제법 왔지만, 숯덩어리로 변한 산에 갇힌 채 민물 송어회를 먹는 동안 비는 소리만 내었다. 완성된 통나무 데크 위에서 아까 그 산을 때어다가 소금 묻은 젖가락으로 등심을 뒤집는 동안에도 비는 그저 소리뿐이었다. 그곳은 밤이 밤다웠다. 해발 700 은 된다는데, 달팽이관은 건재를 과시하며 소주 한두병에 더덕주 정도는 평지처럼 밋밋하게 대해주었다.
피곤한 생활, 4주동안 준비했던 컨설팅 중간보고, 2시간의 PT, 그 와중에 매도 타이밍, 틈틈히 노림수를 던지는 한물간 카메라의 존재, 쏜살 같은 공간 이동을 했지만, 당장은 느끼지 못하던 모자란 잠이나 욕심들이 밤을 세워 달려와 도착하는 다음날이 되면, 도무지 등이 떨어 지지 않아 딱딱한 목침을 베고도 코를 골며 떨어진다. 소리가 보이기 시작하다가 그쳤을 때 달겨드는 건, 빗소리에 씻겨 겨우 머리를 내민 감자밭의 감자, 내려온 만큼 올라가는 골짜기 안개, 뚝뚝 꺾이는 찰옥수수의 사투리... 비가 와서 모 찍지도 못할테니 잘 됐다... 열열한 나의 욕심은 감자를 줍지도 옥수수를 따지도 않는다. 언제부터 사진과 내 손가락뼈가 연관성이 있었다고... 욕심은 옥수수만큼이나 찰지고 쉽게 아쉬움이 된다.


'M 이 그 아끼던 카메라를 판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이내 전전긍긍했다. 한 이틀이 지나고 그것을 사들여야 겠다고 마음먹고 중간에서 거래를 해줄 사람을 물색했다. 사진을 할 생각이 아니라, 모셔둘 생각이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돌려줘야 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줄 사람이 이미 팔렸다고 전해왔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간 것만 같았다. 비가 왔고 강은 탁하게 불어났다.'


배가 나와 사진을 하겠다는 허술한 괘변은 본디 사진의 활동성에 기대어 보려는 수작이다. 그리고 어느날 M 이 나를 찍으려 바라보던 뷰파인더가 서러울 만치 그리웠던 카메라를 기웃거리다 보관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은 가시질 않는다. 다행이 비는 가시고 잊은 자의 하늘이 길게 다아 만든 노을이 소소하다. M 이 그렇게 사랑하는 '사진하기'는 무엇일까? 나는 이제서야 M 을 이해해보는 사소한 자세를 취해보는 것은 아닌지... 그때마다 눈이 그치고 꽃이 피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고 있는 것인지...
2005/09/19 11:19 2005/09/19 11:19
DrunkenSTAR 이 작성.

짧지만 세상에서 가장 긴 글자들이 언제나 제목이라는 말의 상념으로 부터 '메밀꽃 필 무렵' 이라 제목을 올려 놓고 나니 지금 부터 내용은 이효석, 봉평, 사진찍기 좋은 곳, 등으로 이어 나가야할 것만 같은 사로 잡힘은 제목으로써 상념을 가두는 것만 같다. 허기사 매년 매밀꽃이 필적마다 그 뉴스를 알리는 기사는 소금 같은 메밀꽃... 으로 시작하고 무렵이란 어중간한 시간을 선언하기 위한 제도로써 이효석 문화제가 그 무렵을 알린다. 한번이라도 쟁반국수를 먹어 본 사람이라면 그 소금 같은 꽃이란 로망에 이끌려 그 무렵에 다다를 봉평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런 것도 챙기며 살 수 없는 사람은 그런 것은 그냥 '시원'한 그리움만으로 족하다. 메밀꽃 필 무렵, 그 깔끔하고 산뜻한 색깔이 아무리 좋아도, 마냥 좋지 않지만 놓을 수 없는 시간의 예의로 인해 그저 핑계일 수 밖에 없는 그리움에 대해 그대는 나에게 묻는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지? 물기가 쏙 빠진 물음 앞에 그 어떤 거추장스러운 이데올로기도, 그 어떤 트릭도 사라진 듯 하얗다.
나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 '핑계'다. 가기 싫어서 핑계, 하기 싫어서 핑계, 먹기 싫어서 핑계, 잘하지 못해서 핑계, 없어서 핑계, 못나서 핑계, 그리고 놀기 싫어서 핑계.
놀기 싫다는 엄밀히 놀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를테면, 결혼하지 않는다는 능동태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결혼하지 못한다는 수동태로 변하는 모호한 엄밀함과 흡사하다. 놀지 않는다는 의미는 노는 것을 잃어 시든 영혼과 놀지 못하는 강박관념에서 기인한다. 놀아야 할 때조차 그 갑작스러움에 놀라 공벌레처럼 움츠러들고 로망만으로 그리움을 챙길 수 있을 때조차 그것을 메울 열정은 폭발적인 '핑계'를 내지르고 만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 많이 늙지 않고, 너덜너덜해지지 않아 잉여 존재는 되지 않았다는 것, 되지 않으려는 강박관념에 몹씨 시달린다는 흥미진진한 꿈은 연속되고 있다는 것, 이다. 그로인해 모두가 '핑계' 다.
중요하다는 것, 즉 누군가가 중요하다고 정리해준 삶에 대한 경멸은 달콤하지만, 이전에 내가 알았던 삶의 중요한 것은 이제 온전하지 못해 씁쓸하다. 메밀꽃이 핀다고 내 핑계가 하얗게 여백을 드러내며 천진난만해지지 않고, 오히려 오래도록 앉아 있던 의자가, 이 자리가 든든하지 못해 삐걱거리는 아득한 소리만 선명해지는 듯 하다.
삶의 반전을 오로지 '핑계' 로 안고 있는 나는, 그 순간 누군가가 중요하다는 것, 오래전에 내가 중요하다고 했던 것을 하나씩 잃어 버리는, 아니 언젠가 침몰할 종이배에 실어 보내는 지도 모른다.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에 대한 경멸, 넌 왜 하늘을 보지 않냐며 추긍하던 나는 더더욱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 쯤은 쉽게 경계할 수 있는 물기 잃은 푸석한 사람이 되가고 있는지도...
참,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 하니 마종기 시인의 '바람의 말' 이 나를 좀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 알맞은 '말'이 아닐까 한다. 교보문고 담벼락에도 마지막 구절이 인용되었다. 메밀꽃 필 무렵에...


바람의 말

2005/09/13 23:35 2005/09/13 23:35
DrunkenSTAR 이 작성.

전태일 거리 동판

2005/09/10 14:32 / 생각
전태일거리 동판, 이렇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가서보기 그리고 참여하기

관련 POST
2005/09/10 14:32 2005/09/10 14:32
DrunkenSTAR 이 작성.

카메라와 구매 패턴

2005/09/07 16:36 / 생활
통 움직임이 없는 주말도 지겹고, 날은 허구헌날 '끝장'을 볼 태세인데다가 배는 작정을 하고 나오기도 하고... 그래서 사진을 시작하기로 했다. 친구 빌리도 사진 하겠다고 공부 중이니, 같이 카메라를 사도 네고가 될 것 같다. 빌리와 내가 다른 건, 아마도 다를 것이다, 그동안 빌리를 봐왔을 때, 빌리는 입시공부하듯 사진 공부를 할 것이란 것이고 나는 어떤 카메라를 살 것인지 고르면서 알아 간다는 것. 게다가 내 독특한 구매 패턴은 충분히 이 다름을 반증한다.
어떤 물질에 대한 구매 충동이 발생하게 되거나,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구매 판단이 서면 두 가지 브랜드, 또는 두 가지 기종을 선택하고 단순 비교를 하게 된다. 스타일, 가격, 성능 정도 그 브랜드나 기종의 존재 가치적 비교를 하게 되는데 중요한 건 이 두 가지가 모두 결함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햇지 차원에서 하나의 브랜드나 기종을 더 선택해놓는다. 이를테면 삼각 비교 인데, 결국 선택은 나중에 햇지해놓은 브랜드나 기종을 선택하여 구매한다는 것. 먼저 선택한 두 가지는 너무 비교를 하다보니 결함이 발견되기 마련이니 당연히 햇지해놓은 브랜드로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선택하게 되면 선택에서 떨어진 브랜드를 조금 깎아 내리는 일도 잊지 않는다. 게다가 선택한 브랜드의 우수성을 객관화하기 위한 여론 수집도 겸하고 말이다.
나는 충동이 아니라 판단으로 구매를 하게 되면 그 행위를 하기 위한 도구에 충실하다. 나중에 구입해도 될 것을 한번에 다 구입한다는 얘기 되겠다. 혹자는 '오바' 라고 하고, 혹자는 '뽀대(스타일)' 이라고 한다.
'배도 나오고 하니 사진을 해야 겠다' 는 행위에 있어서 중요한 도구는 카메라 되겠다. 카메라... 옵스쿠라. 중세 환쟁이들의 눈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사물을 잡아두지 못하는 단점을 보완한 기계는 이제 전화기에도 장착되어 어디서나 물체와 빛을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만인의 사진사들이 고작 미니홈피를 꾸미기 위해 사진질을 하던 트랜드를 비웃었으니 사진을 찍어 블로그를 도배하는 짓을 하게되면 아마도 내 이중성을 누군가가 또 비웃어 주겠지... 결국 단초는 배가 나와서... 라고 뭉둥그릴 수밖에 없다. 아무튼 그건 찍고 나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모두에 말한 패턴 중에 빠진 건, 남이 많이 써서 점유율이 높은 도구는 구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삼각비교에 자체비교에 객관화 등을 거쳐서 선택된 카메라는 2004년 6월 출시된 팬탁스 istD DSLR 이다. 2005년도에 후속모델로 istDL, istDS 가 나왔다고 하는데 바디의 충실도가 떨어지는 단점 때문에 탈락, 색감과 환상적인 렌즈 라인업과 수동렌즈 인식까지, 무엇보다 세로 그립 장착을 통한 뽀대의 깔끔한 마무리. 캐논은 점유율이 높고 색감이 너무 밝아서 탈락, 니콘은 바디 스타일이 떨어져서 탈락, 콘택스는 너무 찍기 어려워서 탈락, 올림푸스는 특징이 없어서 탈락 등등... 구매 패턴에 의거하여 같이 구입할 것들은 렌즈 16~45 F4 / limited, 세로그립 등이고 더불어 Bessa-R 필카와 광각렌즈, 아무데나 무기 같은 SLR 카메라를 들이 댈 수 없으니까 캐논, 소니 계열의 순간 스피드가 빠른 일반 디지털 카메라 까지.
뭘 하려고 하면 구매 패턴을 지켜야 하는 이 오바시스템 때문에 뭘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작게 나마 해본다.
2005/09/07 16:36 2005/09/07 16:36
DrunkenSTAR 이 작성.

언어와 관찰에 대해 특별한 시선을 가지고 계신 박현주님의 블로그는 내가 가진 즐겨 찾기 중에서도 단연 훈장감이다. 블로그를 통해 작업 중이란 사실은 알았지만, 8월 9일에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Froken Smillas Fornemmelse For Sne, Smilla's Sense of Snow' 은 소설을 끊은지 오래된 패인의 금
단현상에 적잖은 부채질이다. 구색이 없어도, 아직 200여 페이지나 남은 텍스트가 있어도 서두르지 않을 수 없는 호기심이 생긴다. 아직 독서하지 않은 것보다 아직 사지 않은 것이 더 즐거운, 따라서 오랜만에 낭만적으로 책방에서 느긋하게 뽑아들 작정이다. 물론 최근 두달동안 느긋한 날도 없었고, 한가할라치면 잠과 조우하기 바뻤으니 난 언제나 바쁘고 핑계가 많은 놈이 되었지만, 간만에 가을이니...

sense of snow 를 맘대로 이해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세우고 널리 ID 함으로써 독서와 구매의 친밀감은 어느 금단현상보다 독하다. 금단현상이 머리를 아프게 하고, 모름지기 심장은 가슴이 아니라 발바닥에서 뛰어야 하는 세계를 깨닫는 요즘, 박현주님의 말 '짧지만 세상에서 가장 긴 글자들이 언제나 제목인 것입니다.' 또한 짬나는 퇴근 길 강변북로에서 젖을 충분한 상념꺼리이다. 긴 상념과 금단현상을 위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을 권한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답글에 주소를 남겨주시면 남겨주신 곳으로 책을 선물해드리겠습니다.
정보보호를 원하시면 secret 으로 남겨주셔도 되고...


책 소개
2005/09/01 22:15 2005/09/01 22:15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