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장

2006/03/09 16:20 / 생활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사형 폐지론자들은 사형이 아닌 사형수에 집중한다. 언젠가 나도 사형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반동하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조갑제가 기자시절에 쓴 사형수에 관한 책에는 그도 한 때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도 지금처럼 함몰되기 전에는 아름다운 반동이란 것이 있었고 변증법으로 미봉되는 문제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는 지금 어찌된 영문일까? 이제 그는 내가 보내는 두 개의 초대장에 어울리지 않는 흉물이 되었다.


3월23일 홍대에서 고래 이모, 삼촌 모임이 있단다. 고래가 그랬어를 조카에게 선물했던게 벌써 1년이 됐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고래가 그랬어를 들고 나와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특하게도 입맛에 맞나보다. 1학년 된 조카는 정중히 올해도 구독을 부탁했다.


한 구좌, 좀 전에 다시 한 구좌를 텄는데 그리 큰 도움이 못된다. 그래도 고래를 위해 구좌를 튼 이유는 첫째 고래의 멸종은 조건 없이 막아야 겠고, 둘째 보편적인 감수성은 다른 세상이 아니란 점을 힘겹게 알리고자 헤엄치는 고래의 모양을 그냥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동정이 아니라 같이 헤엄치고 싶은 마음이 그럴 수 없는 몸에 대해 꾸중하는... 이것도 일종의 반동이다.

고래이모, 고래삼촌 만나요 잔치, 보편적인 감수성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같이 노래 듣고, 노래 부르는 잔치란다. 가고 싶은데 목요일이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있는 참여연대에서 회원 모임을 한단다. 안국동에서 거의 마지막 모임이 되지 않을까 싶다. 3월10일 금요일 7시 반, 역시 어중간 하다. 아무리 빨리 가도 뒷풀이 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안국동 사막에서 뒷풀이를 하면 더욱 좋고... 활기차
2006/03/09 16:20 2006/03/09 16:20
DrunkenSTAR 이 작성.

지상의 꽃

2006/03/07 22:02 / 생각
일주일에 두번씩 KTX 를 탑니다. 어디서 불어 오는지 아침 바람은 눈앞이 흐리도록 시립니다. 달리기를 시작한 KTX 의 창은 자신의 색을 비우고 속도로 뭉게진 세상의 색을 선사합니다. 날씬한 KTX 가 곧바로 가기 위해 흘린 눈물이 바람이 되어 날아오고, 그나마 온전히 남은 색깔이 평화롭다고 오해할 수 있어서 살아 갈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색을 명징하게 보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의 색을 인상주의 화풍으로 뭉게는 KTX 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상의 꽃이라던 여승무원들이 없어진 자리에 철도공사의 대국민담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비정규직인 것을 알고 취직한 여승무원들이 언감생심 사복으로 KTX 를 타려 하고 그로인해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칠 여지가 있는데다가, KTX 여승무원은 서비스를 담당하지 안전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조목조목 여승무원들의 집단 행동을 따지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안내방송이 이어집니다. 나긋나긋한 여승무원의 목소리를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좀 전에 자막 방송으로 보았던 철도 공사의 감흥 없는 담화와 섞여 여승무원들 괘심하다 푸념했을 법도 한(정치적 효과를 노린 듯 의심할 만큼) 탁한 목소리였습니다.


한 금융노조의 조합원이 그랬습니다. 어느 노조가 정규직한테 돌아 갈 수 있는 혜택을 버리고 비정규직을 위한 투쟁조항을 관철시키려고 하겠는가?
제도권의 조직은 유기적 관계를 기초로 하기 때문에 하나의 셀의 문제는 다른 유기 조직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합니다. 즉, KTX 여승무원이 아무리 어여쁘고 긍휼하여도 요구를 들어주었을 때 다른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지 않을 것 입니다. 유기적인 자본교환적 무리 아니랄까봐, 철도공사는 엽기의 창고를 뒤져서 선배의 급여는 동결하고 대신 이제 들어오는 후배의 급여를 하향조정 하는 반사회적인 방식을 채택하였다고 합니다. 철도공사의 이러한 마인드와 의도는 여승무원들을 가시 없는 장미처럼 비정규의 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노동자들이 파업만 하면 그동안 돌보기는 커녕 자본교환적 종족으로만 보던 소위 '고객', '국민' 들을 들먹이며 마치 대단했던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포장해서 그 책임을 파업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는 엽기정치선전은 이제 그만해주셨으면 합니다. 도대체 그 무리들이 생각하는 노동은 무엇이고 정규직의 노동은 비정규직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요...


5일 동안 워크샵으로 태국에 갔다 왔습니다. 여기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해외 워크샵에 비정규직도 같이 가는가 마는가 논쟁이 있었습니다. 논쟁이랄 것도 없습니다. 우선의 계급들이 모여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해지기 만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의 권리를 찾는 공동체적 정치의식이 있는 것도 아닌 우리들은(나를 포함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젊음과 진보 사이에 등호는 존재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기심으로 뭉쳐 행동이 자본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는 젊음이 겉은 동백잎처럼 제 멋대로 반짝 반짝 파랗습니다. 남보다 파랗치 않으면 남의 색을 시들게 해서라도 파래야 하는 것이 요즘의 젊은 계급입니다. 잔인함이란, 30분을 기다리기 싫어서 남의 생존권을 미봉하고 묵살해 버리는 무시무시함 입니다.
그런 젊은 계급의 해로운 파란 보다, 생각했고, 말하고, 연대하여 행동하는 여승무원들이 진정한 지상의 꽃이었습니다. 그들이 KTX 를 떠나 거리에 심어졌지만... 아~ 완연한 봄이었습니다.


- 가당치도 않게 우리와 식구였다는 것을 주장하는 영화배우 따위는 그저 스크린에서 혼자 피고, 대체로 향기 없고, 페이소스를 잊은 꽃일뿐. KTX 여승무원이야 말로 우리의 용감한 언니들입니다.
2006/03/07 22:02 2006/03/07 22:02
DrunkenSTAR 이 작성.

날개

2006/03/07 10:59 / 생활
태국에 다녀왔다.


여독은 말끔히 풀렸다.
KTX 타고 대구에 내려오며 비었던 5일을 거슬러 올라가, 잃어버렸던 자동차 키와 집키를 찾았다. 꿈속에서 기억이 날 줄이야...
대구에 내려오니 잠겼던 여독이 자물통을 열고 나왔다. 오른쪽 어깨가 화끈거린다. 태국에서 달고 온 불법 날개에 바세린을 발라야 겠다. 조금씩 가렵기 까지 하다.
2006/03/07 10:59 2006/03/07 10:59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