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란?

2008/04/08 02:18 / 생각
"민생이 바뀝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대표 표어다. 이 정당에 투표하면 민생은 변할 것인가? 내 생각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봐라, 정당정치의 진정성은 없고 살리지도 못할 경제에 내몰린 다수결만 붙들고 있는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이 정당의 공동대표 2명이 지역구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 것 같은가? 좀 더 거들어서 정당지지도를 높혀 비례대표로 한 두석 더 얻는다고 치자, 원내 4명이서 민생을 바꾸겠다고? 295 의 다수결은 어떻하고? 절대 그들이 원하는 지속 가능하고 좋은 민생으로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바꿀 수 있는 곳에 투표하는 것이 맞겠다.

1000만원 등록금 때문에 격년으로 휴학하고 GS25 에서 날밤까는 아들, 딸을 위해 재산 100억 신고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면 언젠가는 연소득 4만불 된다고 하니 그곳에 투표하면 된다. GS25 의 시급이 터무니 없이 쥐꼬리 같다면 대운하 착공을 기다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행여 백골단에 쫓길지도 모를 어느 비정규직 보다 잡무에 시급이 짭짤할 수 있으니 말이다. 투표장 인근에서 삽 하나씩 사가지고 오는 센스를 발휘하시길. 게다가 장기 근무할까봐 대운하 공사 기간을 숨기고 있는데 몇몇 좌파 빨갱이 교수며 지식인들이 10년도 더 걸릴수도 있다고 하니 이번에 한번 인생 올인해보는 것도 한 방법, 인생 모 있어, 한방이지. 볼따귀 살짝 꼬집었다고 말만한 처녀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성희롱이라고 소리치는 세상 말이다, 우리 나라 축구 살리려고 세상 곳곳에서 폭탄주 마시느라 노인정에서 할머니들하고 놀아주는 것도 힘든 양반 간쪼그라들게 만드는 미친X 없는 세상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당당하게 대낮엔 아무 볼이나 꼬집고 어두워지면 아무 젖가슴이나 주물럭 거려도 되는 성개방된 세상 만들 수 있는 곳에 투표하면 된다. 어디 이것 뿐인가, 시장경제주의, 비즈니스 프랜들리는 죄다 재래시장 경기 살리자는 말 아니던가, 이렇게까지 재래시장을 위해주던 사람들이 또 어디 있었던가, 떡볶이 장사도 비즈니스이니 곧 3만원짜리 꼬리곰탕이 아니라 떡볶이가 청와대 점심만찬 공식 메뉴로 등장할 신명나는 세상이 될터이니 그곳에 투표하면 된다. 교육이 이렇게 된 건 죄다 양심에 털난 노빠들 때문이다. 개념 있는 대학에 자율을 주고 애들을 경쟁시켜야지 평준화시켜서는 안된다. 애들이 이렇게 공부를 안하는 건 순전히 평준화 때문인데다가 라이벌이 없어서 이렇게 된 거다. 조지게 패서라도 공부를 시켜야 되는데 학교는 학원보다 느긋하다. 사람은 어느 대학 가느냐에 따라 그게 사람될 놈인지 짐승될 놈인지 아는 거다. 공부하다 죽는 애들도 없는데 어륀지나 가져다 주고 죽도록 문제집 풀게 만들 수 있는, 그곳에 투표하면 된다. 이도 저도 싫으면 정치를 개그의 한 장르로 승화시킨 위대한 분들이 연대한 곳에 투표하는 것도 한 방법. 이분들 덕택에 곧 '여당', '야당' 이란 당 이름도 등장할 듯.

사표란 무엇인가?
제 처지를 모르고 찍어 대는 양심의 개털.
2008/04/08 02:18 2008/04/08 02:18
DrunkenSTAR 이 작성.

사형제

2008/04/04 14:48 / 생각

사형이 성립되는 죄가 있을지, 순진한 생각을 해본적도 있지만 다른 어떤 형벌보다 사형이야 말로 단순한 이치로 벌을 선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적건 많건 간에 사람을 죽였을 때, 그 독하디 독한 마음을 사회적 함의에 담아 처형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면 모두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과실도 있고 사고도 있는데다가, 적게 죽이면 살인자 많이 죽이면 정복자라는 봉건때적 구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으니 사형의 성립은 죽임의 행위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형이 존재하는 것은 일종의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사형이란 두려움이 전파하는 질서와 지배가 역사적 인식으로 증명 받아 왔기에 사형을 집행하던 하지 않던 그 존치만으로 지배자에게 안심을 줄 수 있지요. 이러한 안심은 피지배자도 마찬가지로 느낍니다. 사회의 안정과 질서의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사형이 없어지면 사형에 준하는 범죄가 활개칠 것이 분명하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지만, 이는 자신도 사형에 준하는 범죄나 과실을 범할 수 있고 따라서 사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는 또 다른 두려움을 동반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란 가정, 이것은 모두에 서술한 사형이 성립되는 죄가 있을까? 란 순진한 생각과 같은 맥락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가정은 보편적이지 않는 윤리나 양심에 비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수많은 전과를 가진 사람일 지라도, 일반적으로 설정하는 자기 안심, 본인 제외의 이성적 오류의 근거가 됩니다. 사람들은 사형은 있어야 되지만 나는 사형수가 될일이 없으며 어떤 범죄를 저질렀어도 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그것이 범죄일지라도 다음에는 걸리지 않게 저지를 수도 있다고 까지 생각합니다. 사형제의 존치 여부는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형제가 결과에 대한 사회적인 함의인 것처럼 원인을 꽤뚫는 것은 공동체에 의한 계몽과 교육 뿐인 것이지요. 하지만 지배자는 이러한 계몽이 사형과 같은 결과적 제도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것이 반복될 수록 원인을 계몽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배자, 오늘날의 공권력은 사형제를 암묵적으로라도 필요로 합니다. 사형제를 인권의 범주에서 해석하는 것과 사회적 질서와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여요. 인간이 존엄해야 하는 것에서 사형과 살인은 모두 극단적인 반인권적 사례인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질서라는 측면에서는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해석 가능하기 때문에 지배자건 피지배자건 간에 사형제를 진지하게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우리 마음속에 사형제는 모두 다르며 그것의 두려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제약 받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사형제 즉, 생명의 존엄을 놓고 토론을 하는 것도 애초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토론이나 합의적 담론을 통해 사형제의 존치나 폐지를 논하는 것은 일종의 용기와 무관심이 뒤범벅된 의미 없는 잡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사형에 준하는 범죄 또는 일을 당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의 정도를 우리는 결코 겪어 보지 않은 이상 도저히 이해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런일의 결과는 안타깝게도 그 사람마저 생명을 잃어 우리에게 한마디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형제의 존치를 논하기 전에 당사자를 생각해봐야 할 것 입니다. 앞으로 예정된 죽임을 당할 사형수도 당사자 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형수로 부터 죽임을 당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현장에 주목해야 할 것 입니다. 인간 감정의 가장 참혹한 두가지 의지, 죽임과 죽음이 공존하던 그 현장에서 부터 생각을 시작해야 할 것 입니다. 용서할 수 있을지, 용서할 수 없을지를 말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사형제 존치와 폐지를 언론의 어떤 피상적 현안에 기대어 짐짓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 그것은 죽임을 한 정모씨와 혜진이 예슬이 뿐만 아니라 찢어진 아이들을 부둥켜 안지도 못하는 부모에게 할 짓이 아닙니다.

2008/04/04 14:48 2008/04/04 14:48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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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희망이란 단어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는데다가 희망이 언어의 범주와 슬며시 이별하여 '희망' 이란 단어가 있었지? 추억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될 지경이다. 이쯤되면 분노는 세련됨을 잃고 거칠어진다. 이념따위로 무장한 논리도 희망이란 엔돌핀이 혈관을 타고 구석구석을 돌아 다닐 수 있을 때 하는 얘기다.

어느 사회든지 그 사회가 방어하고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는 법이다. 우리보다 더한 정치상황을 빗대어 제사회가 그것보다 덜하니 더 참고 더 견뎌야 한다는 논리는 그럴싸 하지도 않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희망' 자체가 어려워졌으며 희망이 지닌 무궁한 범주 또한 좁아져 버렸다. 대박을 쫓고 대박만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절망은 희망보다 쉽고 더 깊어졌다.

제로섬 게임인 자본주의에서 확률적으로도 대박은 1%안에서도 이뤄지기 힘든 우연이지만 이를 쫓는 99%에게는 언제부터인가 희망보다 절망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언어가 되버렸다. 현대사회는 희망이니 절망이니 하는 관념적 단어가 디테일해진다. 예컨데, 14조원의 무역수지 흑자는 19조원의 해외펀드 손실액이 날려 버렸다는 식으로 디테일한 절망이 우리의 관념적 희망마저 날려버리는 것이다.

마치 더 견뎌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빼앗아 와야 한다. 자본주의는 제로섬 게임이다. 한국은행에서 돈을 따오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정책입안자들은 민중이 절망에 접근하는 매우 일반적인 경로를 시스템으로 깨줘야 한다. 우리는 다 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좀 더 경쟁하여 빼앗아 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책임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계몽하고 선동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제는 고소영, 강부자, 명계남으로 코미디된 정권의 도덕적 상식적 무소유를 복기하는 일도 지겹다. 어물어물 하다 국가가 바뀌었고 지속가능한 '나은 삶' 의 열망 또한 금기시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스스로 5년동안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자 하는데 더 이상 무엇을 말리고 저항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나 또한 절망에 쉽게 방점을 찍어 버리고 냉소하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도 바람은 분다. 옥탑 위에 빤스를 널던 여자가 혼잣말 한다. 오늘 빨래 잘 마르겠다고.. 문득, 서럽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러워서 살아야 하는 실존이 기가 막힐 따름이지만 집안에 묵혀 두었던 빤스를 빨아 널어 보려 한다. 나은 삶에 대한 기대는 잠시 접어 두고 서러워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말려 보자.. 참여연대 회원으로 진보신당 당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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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3 14:53 2008/04/03 14:53
DrunkenSTAR 이 작성.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H경제신문사 OOO 기자 입니다.

이번에 저희 신문사에서 기획보도기사를 내려고 하는데요, 귀사가 저희 기획기사의 취지에 부합해서 기사 협조를 위해 전화 드렸습니다.

어떻게 대표이사님 인터뷰하고 회사 취재가 가능할까요?
아, 저기, 기사 내고 광고끼워서 내야 하거나 돈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거면 안할 건데요..
아닙니다, 이번 건은 기획 기사에요.
어떤 기획 이라고요?
네, 미래기업이란 기획 이고요, 이명박 정부와 함께 할 유망 기업을 몇군데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그런 미래기업이라고요? 이명박 정부와 함께하는?
네 그렇습니다.
그래요? 그 이상하네... 그건 어디서 정한 건가요?
그건 저희 신문사 리서치 센터에서.. 어쩌구 저쩌고.. 불라불라..
아 그래요.. 협조 공문 함 보내주시겠어요?
네 바로 보내드리구요, 살펴보시고 내일까지 연락 주세요.


선정기준
조사평가 지침은 국제표준을 기준지표로 삼으며 미국 CNN 의 우수 기업 선정 기준 및 경영품질의 노벨상으로 불리우는 미국의 말콤발드리지상의 국가경영품질상을 기준으로 선정한다.

준비사항
종합보도자료, CEO 프로필, 인터뷰, 제품사진, 회사로고, CEO 이미지

그리고... 예상 했듯이..
참가(후원)비용
3,000,000(VAT 별도)

아직도 일부 되먹지 못한 언론은 기사를 판다. 미래기업인지 뭔지, 말콤발드리지인지 뭔지 하는 개뼉다구 같은 기준을 3백만원에 팔아서 말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와 함께 미래를 여는 핵심기업'이라는 비웃음꺼리를 이마박에 척 부치고 다니는데 3백이란다. 게다가 금방 들통 날 것을 두고 거짓말 까지 한다.

안녕하세요, H경제신문사 입니다.

어떻게.. 살펴보셨는지요?
아니, 기사 내려면 3백만원 내도록 되어 있는데 왜 돈 내는 거 아니라고 하셨어요?
3백만원이 부담스러우세요?
... 됐구요.. 딴데 알아보세요.

기가 막혀서... 씨발.. 이런 것들 때문에 기자실 없애야되...


알권리를 포기하라

2008/04/01 17:46 2008/04/01 17:46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