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몇몇 장관들이 대국민 담화라는 협박을 발표 했다. 이 협박은 거리에서 경찰의 확성기를 통해 듣던 확성녀의 헛소리와 다른 점이 없다. 맥락은 아주 간단하다. 오늘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다' 고 알려 주기 위해 어제 확성녀는 '당신들 미친 것 아니냐' 고 떠들어 댄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본은 이랬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전경버스를 파손하는 행위는 불법' 이라고, 그러더니 대본 없이 이런다 '당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돌아 보라고' 반성하란 얘긴데 매일매일 좆 잡고 반성하다보니 순정 어린 마음을 주체 못하고 거리에 나왔다. 구호라도 외치지 않고 노래라도 부르지 않으면 그것도 못하느냐며 반성하다가 돌아 버릴 것 같아서 그런다. 이제 새로운 대본이 나왔다. 국민이 아니라고 선포할 것이니 미친 집단으로 몰아가라는 대본이 그들끼리 존경해 마지 않는 청와대에서 내려 온 것이다.
전경버스를 끌어 내는 밧줄을 잡고 있으면 앞뒤에 선 건장한 시민들에 부대껴 두 다리가 공중에 떴다가 가라앉았다를 반복한다. 그렇다, 저 버스는 내가 그동안 꼬박꼬박 낸 소득세, 주민세, 방위세, 자동차세 등이 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내 갈 길을 막는 저 버스는 내가 파괴할 권리가 있다. 좆 잡고 반성해 보았다. 저 버스는 온갖 세금을 탈루하고도 불구속 입건 조차 되지 않는 이건희 따위의 원조 강부자 계급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이건희가 저 버스를 파괴하려고 했을 때 그게 불법인 것이고, 그게 진정한 폭력이다. 우리에게 비폭력은 맞아 주는 것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아야 하는 것이 마치 촛불집회의 존재 이유처럼 된 논리는 거부 되어야 한다. '이 개새끼야' 라며 방패를 아스팔트 바닥에 갈고 오는 경찰 앞에 서 보라, 두팔 벌려 우리 아들이고 형제고 동생들 입니다 며 끌어 안겠다고? 미친 짓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산 하이바와 방패를 내리고 맨 주먹으로 맞짱 뜨고 싶은 생각 말고 없다.
비폭력은 저항 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한다. 시위대에 끌려 나온 전경을 폭행하지 않고 돌려 보내는 것, 길바닥에 쓰러진 여성이나 노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을 군화발로 짖이기지 않는 것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패를 갈며 '개새끼야' 라며 덤벼드는 경찰이 있다면 난 눈에 보이는 뭐라도 들고 싸울 수 밖에 없다. 내가 한 일은 내 양심의 울림에 따라 촛불 든 것 밖에 없으니 당연히 정당방위다. 경찰도 양심의 소리에 따라 방패로 시민의 정수리를 깐 것일까? 그러니까 우린 더 이상 맞아 줄 수가 없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 짓밟았다고? 보편적인 인간은 누가 명령한다고 해서 여성을 짖이기고 아이에게 소화기를 뿌리지 않으며 노인을 질질 끌고가 방패날로 내리치진 않는다.
광우병 쇠고기 따위가 이제 이 집회의 목적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 버스를 넘어야 이명박을 만나 대통령으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온갖 악질적 행위에 대해 따질 것 아닌가. 이 거리의 상황은 광우병 쇠고기 고시 철폐를 넘어 섰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는 것도 그들에게 지나치게 명예스럽다. 이명박 정권은 폭력 집단이지 독재 집단이 아니다. 이 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폭력 집단에게 그냥 맞고 버티는 것이 국민의 의무 인 양 한가한 토론을 하는 것이다. 요즘 이 토론은 패배주의를 양산하고 있다. 정권의 힘이 얼마나 센지 알겠다는 둥, 저 윗분들이 비웃고 있다는 둥, 결국 우리는 해도 안된다며 절대 해서는 안되는 반성모드로 접어 든다. 이 반성모드의 끝에는 현대판 노예의 삶 만이 기다린다. 게다가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폭력 집단을 어디다가 신고도 고소도 할 수 없을 만큼 기능이 중지된 쇗덩어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남은 법은 헌법 1조 밖에 없다. 하지만, 이 폭력 집단은 국민도 국민 나름이라고 선언했다. 그들이 국민이 아니라고 한 우리는 그럼 무엇일까? 갑자기 정체성이 확 사라져 버리면서 두려움에 떨리는가. 얼마나 고마운 말씀인가 인간이 아닌 그들과 인간인 우리를 구별해 주었다. 촛불집회를 더 이상 촛불집회라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데 이 또한 바라는 바다. 이제 집회는 때려 치우자. 집회를 빙자하여 이 폭력 집단에게 맞아 주고 감금되는 일은 무기력한 일이다. 이제 촛불집회를 항쟁으로 부르자. 유모차도 그동안 고생하셨다. 촛불소녀도 그동안 고마웠다. 이제 항쟁을 할 강철 대오가 상상력이고 감수성이다. 더 이상 이명박 정권을 간지럽혀 이 거리의 폭력과 끝장난 권력을 끝낼 수가 없다.
검색어 '2008/06'에 대한 9 개의 검색 결과
- 2008/06/30 집회를 거두고 촛불항쟁으로 가야 할 때다. by DrunkenSTAR (1)
- 2008/06/26 국민이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한다. by DrunkenSTAR
- 2008/06/25 촛불집회, 이제 바뀌어야 한다. by DrunkenSTAR
- 2008/06/25 놀라운 프리존 by DrunkenSTAR (1)
- 2008/06/20 국회의원들이란? by DrunkenSTAR
- 2008/06/17 주성영 by DrunkenSTAR
- 2008/06/12 신중함, 우유부단 by DrunkenSTAR
- 2008/06/11 혁명, 소통, 쟁취 by DrunkenSTAR
- 2008/06/04 퇴사, 안녕 by DrunkenSTAR
오늘은 깃발을 들었다. 깃발은 처음 드는 것이라 좀 겁이 났다. 그랬을까, 순간 '깃발 앞으로' 란 외침이 대오의 앞에서 부터 전달 되어 이어졌다. 나중에 안 이유지만 경찰이 소화기를 뿌리면 깃발을 흔들어 소화분말을 날려 버리기 위해서 깃발은 앞에 선다. 오늘은 어떤 세상이건 바꿔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세상은 지금 이 세상보다 분명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명박의 치졸한 말 바꿈이나 인간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반성 따위가 이명박이나 이 정권의 덩어리들에게 바란다는게 얼마나 순진한 인간다운 정념인지 깨달았다. 시민들은 흥분했다. 백주 대낮에 주부, 국회의원, 노인의 사지를 들어 연행하더니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연행했다는 믿기 힘든 사실에 자유발언이나 연좌 따위로 시간을 끌지 말자고 들썩였다. 새문안 교회 골목으로 수천명의 시민들이 진입을 시도했다. 틈은 좁았다. 어김없이 소화기 분말이 뿌려졌고 순식간에 전경 2명이 끌려 나왔다. 몇명은 발길질을 했고 몇명은 그들의 무장을 해체 시켰다. 나는 순간 풀어줘라 고 소리쳤다. 전경 둘은 대오 끝으로 끌려갔고 뒤쫓아간 사람들은 풀어주라는 쪽과 풀어주지 말라는 쪽으로 갈렸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풀려났고 전경 무리로 돌아 갔다. 살수차가 머리 위를 맴돈다. 방송을 하던 여경은 불법집회, 폭력행위를 중단하라고 신경질을 내기 시작한다. 이 여경도 이준기에게 충고를 하던 현직 경찰관처럼 한번도 불법이나 폭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 없다는 말투다. 매일 밤마다 해방구가 되는 세종로사거리의 시민들에게 불법이나 폭력이니 하는 방송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불법은 불복종으로 그 폭력은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이라는 것을 적어도 스스로 학습한 시민들이다. 여기저기서 프락치와 조중동 기자들이 잡혀 시민들에 둘러 쌓여 있다. 서슬 퍼런 시민 수백명에 포위되어 언어적 린치를 당하고 있는 이들의 눈은 잔득 겁에 질려 있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행한 패악질을 반성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은 이명박과 한덩어리다. 절대 반성하고 재학습할 인간들이 아니다. 새문안 교회 골목은 앞에서 살수하고 골목 뒤에서 막으면 여지 없이 토끼몰이가 되는 지형이다. 빠져 나와야 했다. 겨우 1~2천명이선 어렵다. 이쪽은 뚫어 내기 힘들다. 여기저기서 주차장 담을 넘어 다시 진입을 시도하고 뚫렸다는 섣부른 정보가 전달되었다. 대오 끝으로 나오자 금강제화 골목을 막고 있던 전경버스 한대에 밧줄을 묶어 시민 수십명이 끌어 내는 중이다. 세종로 사거리와 새문안 교회 골목, 금강제화 골목, 시민들은 세방향에서 진입을 시도 중이지만 대오가 뭉쳐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도부의 부재. 지도부가 시위를 조직적으로 이끌 필요성 보다는 지도부가 없는 시민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곳곳에서 부상이 더 심하다. 곧 살수차에서 무시무시한 압력의 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애초에 소통이란 이 정권의 두뇌속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그 립서비스 마저도 철회했기 때문에 더욱 빨리 살수될 것이다. 이명박을 대통령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호사다. 하지만 이제 무엇으로 승리할 것인가. 사람들은 추가 협상을 했으니 이제 그만 하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문제다.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촛불 들고 소풍 나온 사람들의 입은 이처럼 가볍다. 이런 사람들이 도로 이명박을 만든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주권자가 요구한 사항이 관철 될 때까지 절대 물러서자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이 정도에서 물러 난다면 시민행동과 항쟁의 역사에 깊은 패배주의를 남길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종말을 의미한다. 아직은 민주주의다. 이명박은 우리 힘으로 하야 시킬 수 있다. 우리가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국민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 없다.
이명박 정권은 참으로 놀라운 발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역사에 기리 남을 치졸하고 지독한 집단이다. 이명박이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해서 정신상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말도 안되는 양보라는 것을 작금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행태를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이러한 집단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창피스러운 민주적 선거가 이 나라의 정체성이다. 이명박 정권이 선전하고 지켜야 하는 정체성이란 바로 거리에서 일어나는 무차별적인 공권력 남용, 폭력적이며 불법적으로 일어나는 강제 연행, 게다가 노인 초등학생 국회의원 할 것 없이 매우 공평하게 이뤄지는 대민중 폭력이 바로 이명박 정권이 지켜야 하는 정체성이다.
이젠 집회에 지도부와 투쟁 전선과 조직이 필요할 때다. 더 이상 이 정권의 말기적 정신분열 현상을 두고 보며 한가하게 밤샘 토론 따위를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젠 쇠고기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을 정확하게 겨냥한 노선이 필요하다. 이 정권은 절대 소통이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절대 깨달을 수 없는 무지한 집단이다. 이 정권이 촛불 집회 따위로 계몽될 것이란 것도 바뀔 것이란 막연한 기대도 얼마나 순진한 유아적 발상인지 전혀 새삼스럽지 않게 각인된다. 촛불 집회가 바뀌어야 한다. 이런 창피스러운 정권이 탄생된 신자유주의적 마음을 반성함으로서 촛불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촛불은 바로 이명박을 겨눠야 한다. 어느 교양머리 없는 국회의원 따위가 촛불 짓이 천민 짓이라고 하는데,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 천민들이 정권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 보여줄 때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우물이 있다. 한번 들어가면 더러는 개구리가 되고 더러는 구역질을 토하고 기어 올라 오는 프리존이라는 우물이 있다. 이곳에는 '애국심'과 '빨갱이' 라는 두 가지 가치만이 존재한다. 이곳에 쓰여 지는 글의 대부분은 대게의 사람들이 처음 들어 보는 어떤 사실을 나열하다가 섬뜩한 단어들로 수식한다. 이를테면 '비수를 꽂고...', '칼날을 드리대고...' 모 이런 식이다. 그러다가 결국 증오의 대상으로 '빨갱이', 빨갱이로 대리할 수 있는 좌익, 좌파, 주사파 등을 죄다 동원하고 이들을 처단하는 길만이 애국이라고 결론한다. 아무래도 자기들이 우물안에 개구리인 듯 갑자기 정신을 차리는 글에는 행동 강령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대게는 군대가 일어 나서 이 상황을 삽시간에 정리해야 한다고 힘차게 울부짓는다. 우물 안에서 개구리가 우니 울리기 마련이다. 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애국은 군복, 선글라스 끼고 광화문에 탱크를 몰고 온 박정희를 오마주하는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는다. 이 소리는 그들 안의 울화통 같은 애국심과 2차 화학 반응을 한다. 반응이 끝나면 느닷없이 그들만이 아는 모든 사실과 대게의 사람들이 아는 사실 간에 김정일이 등장한다. 한때는 김일성이었다. 이 사실의 대립은 빨갱이 때문이고 따라서 김정일이가 쳐들어 오려고 구식 라디오에 지령을 담아 획책, 선동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두려워 한다고 한다. 물론 자기들은 울화통 같은 애국심과 김정일의 칼로 찔러도 든든한 군복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때려 잡을 수 있는 것이 김정일이다. 사람들의 어떠한 사실이든 이들은 김정일과 통한다.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을 얘기해도, 황우석 박사의 거짓 줄기세포를 얘기해도, 어찌나 우국충정하신지 이러한 사실들이 모두 김정일과 통하고 따라서 모두 빨갱이라 결론한다. 우리 사회, 즉 현대 사회는 간단하지 않다. 이 복잡한 사회일 수록 분노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분노의 대상을 명확히 하는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이 프리존에 있는 인사들은 어디다가 분노를 해야 하고 사실은... 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정상적인 두뇌활동이 정지된 것처럼 행동 한다. 어떤 사안이든 여러 논리가 존재할 수 있는데 결론은 똑같다. 애국심과 빨갱이. 애국심도 여러 종류고 빨갱이도 여러 종류인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빨갱이도 정말 빨갱이가 있고, 정말 빨갱이와 술자리나 같이 하는 이른바 술자리 좌파도 있고, 좀 더 마시면서 빨갱이가 되어 볼까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과 친구인 나름 빨갱이도 있는데 무조건 김정일 빨갱이다. 애국심도 오로지 군복에 썬글라스 스타일만이 가능한 정념으로 한정 짓는다. 이 복잡한 현대 사회를 이 두가지 가치로 살아 간다는 건 어쩌면 기적과도 같다. 또는 사람들이 좋아 같이 살아 주는 지도. 어쨌든 실질적인 2MB 집단인 이들이 그래도 억척스럽게 자기 재산 불려가며 예수에 종사하던 이명박을 추종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이명박의 실용주의가 이들에겐 얼마나 위험한 사상인가. 누가 봐도 현대 사회에 쓸모 없는 애국심과 빨갱이 이념으로 무장한 그들은 전혀 실용적이지도 않는데다가 죄다 경제활동을 정지한 세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애국심과 국익? 이것은 같지가 않다. 이명박의 실용주의 앞에서는 이익을 주는 애국심만 애국심으로 친다. 썬글라스 끼고 광화문으로 탱크를 몰고 오려고 해도 고유가시대에 이익이 안되는 운행이라면 10부제를 지키며 무한괘도를 돌려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도 이명박을 휘호한다?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실용주의란 단어를 잘 알지 못한다. 아니 들어 본 적도 없다. 빨갱이도 아니고 애국심도 아닌 것을 해독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느닷없이 이런다. "촛불 시위의 배후세력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이다" 빠방~ 놀랍지 않은가?
무슨 말을 해도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사심과 사익은 대단히 중요한 담론이고 이런 사안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얘기 한다면 그것을 디테일하게 들어야 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정치가 없는 나라, 무슨 말을 사심과 사익으로 뭉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얘기 한다면 그안에 정치가 있다. 직업적으로 지 하나를 위해 사심을 꾀하려고 많은 사람들의 사익을 까고 뭉개는 투기꾼들이 정치라는 이름으로 악랄한 괴담을 프로파간다하기 때문에 이 나라의 국회의원과 대의 민주주의 따위가 거지 같은 것이다.
천민도 모르고, 자본주의도 모르고, 하물며 민주주의도 모르는 사람이 '법의 지배' 따위를 논하는 건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단 얘기되겠다. 게다가 생명도 생명 같지 않고 상업주의도 상업 같지 않은 이 마당에 생명과 상업을 합치면 그것이 마트고, 전국적인 마트화를 꽤하는 것이 그들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애꿋은 촛불이 마트란다. 이런 쪼다를 요즘말로 '듣보잡' 이라고 하는데... 듣보잡들이 모를 말이라 주구장창해도 뭔 말인지 모른다.
대열에서 빠져 나와 인사동 근처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모처럼 한낮 열기가 뜨거웠다. 그 온도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늙어 버린 보수단체집회 참석자들이 걱정 됐다. 스트로폼도 쇠파이프로 바꿔버리는 언론 때문에 행여 햇빛에 쓰러져도 촛불에 데였다고 보도 할지도 모를 일이기에 그랬다.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초등학생 얼굴이 촛불과 한낮의 열기를 식히는 아스팔트 위에서 벌겋게 달아 올라 있다. 측은했다. 한낮 열기를 견디던 노인들은 모두 그늘로 숨고 그 틈을 아이들이 메우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은 명백한 시위다. 하지만 생때 같은 가족들을 동원해서 산책 삼아 거리로 나온 엄마, 아빠가 태반인 이 거리의 시위에 명백한 시위라는 수식은 얼핏 가당치 않아 보인다. 오늘도 아침이슬을 부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하지만 명백한 이란 수식을 잃어 버린 우리는 낡은 뼈조각들이 또각또각 내는 소리를 경청했다. 해장국에 소주를 말아 먹으며 뉴스를 봤다. 조금전 대책위로 부터 70만 추산이란 문자를 받았으나 경찰 추산 8만이란 보도가 나왔다. 피식, 야유가 일었다. 70만이나 8만이나 도대체 얼마나 되는 규모인지 알 수가 없다. 세종로가 순식간에 사람들로 차 버리고 아무렇게나 걸어 다니는 흔치 않은 일은 이 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잠시 사람의 끝을 확인하러 떠난 일행이 이제 남대문에서 끝을 봤다고 연락이 왔다. 세종로사거리에서 남대문까지 사람이 들어 차면 8만일까, 70만일까. 언론은 양측의 추산에 반땅을 해버린다. 대략 40만. 설에 의하면 경찰은 축구장 크기에 사람이 얼마나 들어 가는지 평균치를 잡고 축구장 몇개 정도의 규모인지 파악해서 인원을 추산한다고 한다. 여기에 인도에 있는 사람들은 제외된다. 인도에 있는 사람은 시위자가 아니라 행인이기에. 하지만 정작 궁금한 축구장에 얼마나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느냐는 경찰 기밀인듯 아무도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70만에서 8만까지, 일단 시위를 시작했으면 세싸움이다. 요소요소에서 벌어지는 자유발언, 문화제를 형태한 공연이 6.10 항쟁의 대동단결 스크럼과 결사행진의 그것과는 달라진 모습이지만 세싸움은 여전하다. 사실 민주주의에는 숫자가 필요하지 않다. 게다가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거부하는 의식, 다수의 횡포가 아닌 다수의 양해가 이뤄지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이 거리에서 펼쳐지는 민주주의라는 스팩타클은 여전히 70만, 8만의 치열한 세싸움을 벌인다. 이 세싸움이 필요한 이유는 이 거리의 민주주의는 요소요소에서 저들마다 펼치는 자유발언과 경청 그리고 공연에 있을 뿐, 이것의 전체는 혁명이란 이름으로 마음속에 불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혁명을 시작했으면 숫자는 대단히 중요하다. 소수가 혁명을 일으키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아빠를 따라가던 그 측은한 아이는 집에 돌아 갔을까. 아이를 데리고 대열의 맨 앞에 서거나 밤 늦도록 시위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이건 우리 마음속에 이미 혁명이다. 아이가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존재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명박산성' 이 관광인파 5만 정도는 끌어 모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가족과 연인과 이 역사의 스팩타클에 동참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혁명을 이룰 수 없다. 이 거리가 가족끼리 나와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되어 어떤 점진적인 혁명의 세불림에 일조 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마음속에 혁명일지라도 이미 거리는 격동적인 시위의 현장이다. 아이는 어른들의 이러한 저항을 통해 더 나은 먹거리로 건강해지고 더 재미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해줘야 하는 것이지 아이 마저 8만에서 70만까지 추산되는 세력에 포함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해장국을 먹고 다시 대열로 돌아 가는 일행에서 빠져 나왔다. 다행인 것은 이명박 정부가 입에 달고 사는 '섬기는 정부' 와 '소통' 은 거짓이라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증거를 삼으려 해도 되지 않았으나 어제 세종로에 쌓은 콘테이너 박스 퍼포먼스로 관념적인 거짓은 명백한 실체가 되었다. 하지만 정부가 그 담을 넘어 국민의 요구를 경청하지 않고 불필요한 내각 총사퇴 같은 동문서답으로 '이 정도까지 한다' 며 국민을 설득하는 것처럼 거리에 모인 사람들도 그 담을 넘어 '들으라' 며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가슴이 뜨거웠지만 혁명을 할 만큼 진지하거나 절실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고 더 많은 읽을 거리와 정보를 원하고 있지만 아이의 손을 잡은 아빠와 연인의 손을 잡은 선남선녀는 집으로 돌아간 뒤다. 우리는 이 거리가 항시적으로 놀이터가 되기를 바라고 모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하물며 청와대로 전진해 가야 하는 물음에도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언론은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났다는 것에 포커스 되기 시작한다. 아직 쟁취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쟁취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 가는 것은 아닐까. 벌써 33차 촛불집회다. 이 장관을 그저 스팩타클로 남기느냐 아니면 촛불이 원하는 궁극의 이유를 쟁취할 수 있을지... 이제 마음속의 혁명을 밖으로 내 던져 그 울림을 경청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제 7년이나 머물렀던 회사를 떠나려고 해요. 오늘 날이 침침하면서도 상큼합니다. 며칠 인수인계하고 행정적인 절차가 정리되면 다시는 출근하지 않을꺼에요.
7년이나 부대꼈으니 아니 다사다난할 수가 없습니다. 적금도 수차례 깨졌고, 신용카드 돌려 막기도 해보고, 연애하고 이별하고, 싸우고 꿰매고, 나쁜 짓, 착한 짓... 이런 것들이 모두 제 삶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제 낡은 스킬과 세련되지 못한 자세를 견뎌주던 그대들에게 직급과 직위를 벗어 던지고 인간으로 술 한잔 대접하고 싶네요.
많은 것들을 섭취하고 배설하고 갑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 감았을 때 보았던 별들의 회오리를 그리워하며 이제 날이 밝았으니 반사회적이고 엥똘레랑스한 프로젝트에 서로 엉겨 있던 몸을 먼저 빼내려 한다고 아쉬워하진 마세요. 어쨌든 우리에겐 치열했고 지리한 시간이 공평하게 존재했고 이것은 우리의 소중한 직업이었으며 정체성입니다. 어느 봉우리에서 서로 얼룩진 땀을 발견할 날이 있을, 우리는 같은 종족이었다는 점을 잊지는 마세요.
그러하니 우리 아름답게 헤어집시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시를 쓴다면 그 시보다 더 시적인 사건들을 겪을 테니 우리는 시리고 아플 것 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자꾸만 잊게 만듭니다. 그러하니 헤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럴수록 우리 잘 있습시다. 저도 어떤 꿈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 갈 것이고 여러분도 그러하시길 바랍니다. 다만, 꿈은 결코 목적 지향적이지 않고 그저 다다를 수 없어도 슬프지 않은 것이면 됩니다.
나는 이만 그대들과 이 자리에서 헤어지겠지만, 여러분은 그 자리에서 서로 연대하며 아프지 않기를 바래요.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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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adeFire 2008/07/03 02:42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저는 님이 말씀하시는 "강철 대오"가 '물리력을 갖춘 대오'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제 이해가 맞다면, 그 "강철 대오"는 경찰의 물리력에 실질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젊은 남성들로 구성될 것이고, 님이 언급하신데로 "유모차"와 "촛불소녀"는 그 대오로 부터 배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님은 그들에게 성급해보이는 '작별 인사'까지 하고 계십니다.
저는 군대 경찰 등의 고도로 조직화된 물리력을 소유한 이명박 정권이 두려워하는 것은 항쟁자들의 (공격적인) 물리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젊은 남자들이 아무리 쇠파이프와 화염병 등으로 무장을 해서 "강철 대오"를 갖추더라도 그들이 소유한 물리력에 비하면 그것은 정말 새발의 피일뿐입니다. 그것으로 젊은 남자들이 거리에서 아무리 고립된 항쟁을 해봐야 "이명박 정권을 간지럽"히는 결과 밖에 초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공격적인 물리력이 이명박 정권에 입히는 타격보다는 우리의 대오를 고립시키며 스스로에게 미치는 타격이 더 크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미 경험에서 확인하였듯이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유모차와 촛불소녀 등 보다 광범위한 계층, 연령이 전국적 범위에서 형성하는 '촛불대오'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저 역시 구체적인 상황에서 적(?)은 구체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님의 "폭력과 비폭력 거리에서 결정할 것"이라는 글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일반화 시킨듯 보이는 "항쟁을 할 강철 대오"의 주장에서는 '조급함'이 느껴집니다. 비록 그것이 "상상력이고 감수성이다"라는 것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더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