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버스를 탔다.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는 마을 버스도 오후 1시에는 텅 비어 있다.
앞자리에 앉은 아줌마의 두피가 훤하다.
봄 햇살이 머리칼 구석 구석을 비춘다.
남편, 자식들 뒷바라지에 머리가 다 빠져 버린 아줌마들만 오후 1시
마을 버스를 타고 내린다.
마르크스가 사라진 도시에서 마르크스적인 것은 햇살 뿐이다.
이 햇살 눈에 익다.
1년전, 아이가 태어 나고 어미는 현대적 의료 시설에서 몸을 가눌 때
빤스, 양말 챙기러 빈집에 들어 가던 날, 그 햇살이다.
마을 버스는 곧 재개발이 있을 것이란 현수막을 히뿌엿게 지나면서
곧 부서질 동네를 닮은 구겨진 몸둥이들을 내동댕이 치고 있었다.
그 더미에 그 햇살이다.
그 햇살에 마른 빤스를 걷어 개고 신문 위에 발톱을 자르는데
안양에서 초등생이 변을 당했다, 그 활자에 그 햇살이 비춘다.
마을 버스를 탔다
배웅을 모르는 아이가 아비를 배웅한다.
아내가 흰머리칼 좀 보라고 한다. 아이가 자라니 흰머리가 생긴다.
안양은 여전히 안전하지 못하고 재개발이 사람들을 옥상에서
태워 버렸다.
햇살에 빤스는 잘 마르는데 그 햇살에 그 활자가 눈에 익다.
출근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진 마을 버스에는 화장끼가 빠진 세대만이
웅크리고 있다.
아비가 어떻게 살았길래 그 햇살은 그대로 공평하고 지폐 뭉치가 증발된
이 도시에 재개발 현수막은 어떻게 새 것으로 매달릴까.
아이가 배웅을 알고 마중을 아는 인생이 되면 아비의 삶은 끝날 것이다.
재개발로 마을 버스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고
그 햇살에 아이는 아이를 기를텐데
마을 버스를 타다가 아비가 졸던 그 햇살에
아이도 고된 머리를 떨구겠지
검색어 '2009/03'에 대한 4 개의 검색 결과
유튜브 동영상 서비스는 참 좋다, 고 말하는 사람들 조차, 이른바 웹전문가라는 사람들도 그렇게 좋은 것을 자신이 하는 서비스나 개발 범위 안에 유효하게 적용시키지 못한다. 이러한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고객이 원하지 않아서, 비용이 적어서, 시간이 없어서, 대체로 사업 진행에 관계된 관리의 범주에 손쉽게 핑계를 던지면 모순도 합의가 되고 자기 합리도 가능해진다. 실무자이며 전문가가 소신과 관리의 상충에서 관리를 택하는 것은 책임 소재 때문일 경우가 태반이다. 그것도 실무자의 업무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그들이 볼 때 세상에서 가장 한가한 부류가 관리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실무자 사이에서도 이런 경우에 자충되고 마는 이유 중 가장 현실적인 것을 들자면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라는 것을 들 수 있다.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듣자 하면 전문가스럽지만 전문가 사이에도 실체가 없는 그야 말로 해석 불가능한 허울이며 강박관념에 가까운 언어다. 이러한 강박관념을 스스로 해체 시키고 해방된 파편을 현장에 능동적으로 적용하여 새로운 모방을 시도하는 사람이야 말로 전문가에서 비로서 고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문가로 불리지만, 진정 하수인 전문가는 유튜브의 동영상 올리기가 그야 말로 지극히 편리하고 검색 하나로 보고자 하는 동영상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에 감탄 하면서 자신의 현장에서는 동영상을 올리는 팝업 디자인에 열을 올리는 성의를 보이고 만다. 하수인 전문가는 급기야 동영상 올리기 기능과 그 기능을 덮고 있는 레이아웃의 두께와 컬러가 어떤 함수 관계를 가지는지 처음 듣는 이론을 만들어 낸다. 특이한 상황은 이때 부터 발생하는데 시간이 없고 돈이 없을 때는 잊고 이 이론이 관철되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없을 만큼 큰 일이 난 것마냥 사색, 정색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관리하는 사람은 "똥고집 싼다" 고 생각하는데 웃기는 건 자기들끼리도 저 관리자 "똥고집 부린다" 라고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글세, 그들은 옹고집, 병신 이런 뜻으로 쓰나 본데, 나는 "서서 똥이나 싸세요" 라는 뜻인데... 어떻게, 용어 정리 좀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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