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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그의 지지자도 비판자도 무너져 내리고 있을 때 대인배처럼 다가올 일전을 숨죽이고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다. 토요일 아침 찰나 부터 완전히 잊혀진 사람, 신영철 대법관이다. 전국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그를 거의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려 깊은 냉철함으로 세상과 소통하지 않았다. 사실상 후배들이 이제 유령이 되시라, 완곡한 읍소에도 어떤 소실점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폭주기관차 처럼 사정 봐주지 않았다. 이 기관차를 멈출 수 있는 장치가 대한민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작동을 멈췄으니 소통만 하지 않으면 임기를 버텨도 된다. 그런 그가 삼성그룹 편법 상속에 대한 판결에서 이건희 손을 번쩍 들어 줬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법에 앞서 부끄러움이 있다면 인간이 상식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열등의식이 강하면 강할 수록 부끄러움은 희석된다. 타인에 대한 악랄함이 가중되고 자신에 대해선 관대해진다. 이런 자세를 지켜 본다면 경외마저 느낄 정도다. 이러한 종족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신을 고독 속으로 밀어 넣고 오로지 타인을 파괴하여 자신의 우월을 자위하지 않고서는 하루를 살기 힘든 숭고함을 갖춘다. 신영철씨의 열등감은 사법부의 수장답게 대한민국 최고다. 대게의 사람들이 그 권위에 존경을 표하는 대법관의 아우라조차도 그의 열등의식을 우월적 지위로 환원시켜주지 못했다. 그럼 뭘까? 그의 열등감은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열등이다. 후배들의 반란, 민중의 비웃음 이런 것은 그의 숭고함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는 이상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을 충분히 견뎌낸다. 하지만 현실적이기 때문에 미래를 걱정한다. 따라서 평생을 걸친 스스로의 삶이 세상에서 어떠한 교환가치도 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 뿐. 불행히도 대한민국 사람 누구도 가져서는 안되는 열등감, 인간의 모든 자유와 가치관을 경제적 차원으로 바꿔버리는 이건희에 대한 열등감이 그를 숭고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제 유령이 되어 관리를 받게 될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열등감을 부여 잡고 좀비로 살아 갈 운명이다.
하지만 호들갑 떨일이 아닌 것이 그가 언제부터 좌파 작가 였던가 말이다. 1989년 방북했다가 옥고를 치뤄다는 이유만으로 그에 대해 과대포장된 규정이 좌파 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게 조중동을 통해 야시시하고 세련되게 1면기사로 다뤄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MB 가 백번 라디오 방송하는 것보다 휠씬 보기 좋은 전향서가 되고도 남음이다. 여운형과 이승만도 해내지 못한 '21세기 남조선 좌우합작' 의 결정체로 찬양을 싸질러댈 사설이 벌써 부터 기다려진다.
그의 나이 66세다. 이제 부터 나이 값을 하겠다는데, 참고로 '나이값' 은 국어 사전에 없어서 '나이' 와 '값' 을 띄어 써야 한다. 어느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너무 돈 돈 한다' 고 했던데 이제 부터 할 나이 값의 값은 얼마일까 궁금해지고 그 값이 저금리 내지는 한창 떨어지고 있는 환율에 적용 받는 값인지 부가세는 포함된 것인지 언제까지 나이 값을 할 예정인지 확실히 값어치를 먹이고 그래프로 추이 동향도 제공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잘난 민중들은 등록금이 없어서, 가스비가 없어서 제발 짜르지나 말고 연봉 조금만 올려 달라며 제 나이 값을 못해 맨날 돈 돈 하는데.. 왜 그런지 중앙아시아에서 돌아오면 집구석에서 좆잡고 생각 좀 해봤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남북문제, 통일 따위의 소설적 낭만은 그가 현실을 직시하고 나서 첨언할 리얼리티의 문제다.(몽골? 알타이 문화권? 우끼고 있네...)
낮에는 이 망해 먹을 사회에서 어떻게든 먹고 살겠다고 도시근로를 하고 있는 나에게 밤은 늘어지게 누워 손가락으로 리모콘이나 작동시키다가 자는 게 대부분이지만 소중한 휴식 시간이라오. 그러하니 앞으로는 역겨워 도저히 두고 봐 줄 수 없는 견해(조선일보 시론)를 세상에 밝히지 않아 주었으면 싶소. 일찍 자고 쉬고 싶소. 아무리 볼테르처럼 똘레랑스를 해보려고 해도 당신의 견해는 교수치고 변호사치고는 너무 구리오.
일단 내 정치적 스탠스는 참여연대 시민위원, 진보신당 당원이오. 당신들의 업자 용어로는 빨갱이라고 하지요. 빨갱이, 헌데 나는 여러 차례 이 누추한 블로그를 통해 내 태생적 한계에 대해서 말하곤 했듯이 빨개지려고 노력하는 정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겠소.
내가 하도 바빠서, 막말로 환율 오르고 유가 오르고 주식 떨어지는데도 죽어라고 바쁘오, 9월8일 참여연대 후원의 밤에는 참석하지 못했소. 그나마 한 10만원쯤 후원해야 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좌이체도 못시켰다오. 시민단체가 돈이 없다는 통념과 달리 40억원이나 되는 빌딩을 지었으니 무슨 돈으로 지었는지 질문하는 사람이 많을 터라고 했는데 그렇소, 많이 질문들 하시오. 14년동안 근검절약해서 모은 돈, 보금자리 후원을 통해 추가적으로 후원 받은 돈, 은행융자 이렇게 해서 지었소. 왜 지었냐고요? 집주인 눈치 보며 시민운동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닙디다, 게다가 운동을 하려면 연대를 해야 하는데 그런 연대의 근거지를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고 앞으로 100년동안 쓸 집으로 생각하고 무지 무리해서 걍 지어버렸소. 시민단체는 돈이 없다는 통념? 이게 통념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럼 조선일보는 돈 많다는 통념도 성립이 되는 것이오? 법률가라면 논리로 살아야지 통밥으로 살면 되겠소? 그럼 그 통념부터 얘기해 봅시다. 시민단체 돈 없소, 그래서 시민단체 상근자들 급여는 가히 살인적이오. 노동 강도로만 급여를 받는다면 시민단체 상근자는 당신보다 많이 받아야 할 것이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당신 같은 기득권 세력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오. 뭐 그것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없소. 나는 당신 같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돈 없는 시민단체도 후원하고 시민단체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심도 가지고 힘이 좀 나는 날이면 손수 참여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오. 물론, 당신이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에서 그런 활동을 하고 있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오. 만약 그렇다면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는 돈이 많소? 그쪽이나 이쪽이나 다 같은 시민단체인데 통념에 의하면 똑같이 돈이 없을 것 아니겠소. 그러하니 그 통념으로 시민단체는 다 돈이 없다 그러니 살인적인 급여도 참고 운동에 매진해라 고 말하려고 한다면 당신의 시론은 우파, 좌파를 동시에 양비해야 논리적이지 않겠소? 이상하잔소, 돈이 없는 시민단체는 좌파인 것 처럼 통념을 깔고 가는 당신의 논리가 말이오. 맹세컨데 40억짜리 참여연대 빌딩에는 정부의 돈이 들어 있질 않소. 게다가 난 당신 같은 통념이 사라졌으면 싶소. 우파나 좌파 시민단체가 그 단체에서 상근하는 아이 있는 가장에게 그 잘난 학원은 보낼 수 있을 만큼 급여를 주면서 운동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오. 그러려면 회원이 많아야 하오.
참여연대가 이제 회원이 만명이오. 만명이 만원씩 회비를 내면 한달에 1억인데 형편 껏 내는 제도가 있어서 대략 7천에서 8천 정도가 한달 회비 수입이오. 모 참여연대 홈페이지 가면 다 나오는 자료니까 확인 바라오. 당신이 후원의 밤에서 대기업의 후원금을 안받은 이유가 그동안 순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고 한 것처럼 불필요한 통밥을 예단하고 했던 일이오. 순수? 근데 법률가가 순수 라는 단어도 쓰시오? 이게 당신의 가치관에 빗댄 순수요? 아니면 통념적 순수요? "꼭 순수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뜻인 듯하다." 이런 서술형태는 또 뭐요? 아니었다는 뜻인 듯 하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라면 모를까 법률가가 이런 긴가민가형 서술어를 감히 조선일보 시론에 써도 되는 것인지 당신의 법철학적 양심과 글쓰기 실력에 묻고 싶소.
환경운동연합에도 나쁜 놈은 있기 마련이오. 참여연대에도 내가 모르는 나쁜 놈이 있을 것이오. 조선일보나 뉴라이트에는 나쁜 놈 없소? 사회에는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분포가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인 것이오. 돈을 삥쳐 먹었으면 그게 환경운동연합이던 조선일보던 변호사던 나쁜 놈, 나쁜 짓 되겠소. 이 나쁜 짓을 무슨 집시법 같은 것과 같은 맥락의 불법으로 이해해선 안되는데 벌써 당신은 그렇게 이해했으니 이것 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하오. 모든 법이 똑같은 원리로만 작동되는 것마냥 생각하는 비현실적인 법이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오. 도대체 왜 법률가들은 아직도 소크라테스 시대를 그리워하는지 모르겠오. "자금 관리와 부정에 대한 처리가 동창회만도 못한 듯하다." 당신, 동창회 안해 봤소? 대한민국 동창회에서 총무라는 놈이 동창회 통장 들고 튀는 일 비일비재하오. 부정에 대한 처리요? 에이 친구끼리 왜이래, 걍 술이나 한잔 하고 풀어... 이게 동창회 아닌감요? 뭐 좀 산뜻한 논리 없소? 초장 부터 통밥에 계속 통밥인데다가 변호사 쯤 했으면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 산전수전 다 겪어 봤을 법도 한데 허술하기 이를데가 없소.
"좌파가 주도하는 시민운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 맞은지 오래되었소. 아니 시민단체가 바라보는 사회는 언제나 위기이고 그 위기가 시민운동의 동력인데 오늘날 사회의 위기는 운동의 기폭제가 되지 못하오. 왜냐하면 시민사회가 그 위기를 통채로 감당하려 하는 패배주의에 휩싸였기 때문이라오.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투표하고 저항은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소. 시민단체의 위기는 시민사회의 위기오. 이건 일전의 학생운동에서 사용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자본과 글로벌의 문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오. 근데 무슨 유레카인양, 2000년 총선의 낙선운동에서 그걸 찾으시오? 게다가 혁혁한 성과를 냈는데 정파성과 선거법 위반으로 국민이 견제 없는 권력을 견제 하기 시작해서 좌파적 시민운동이 위기를 맞았다굽쇼? 해괴하구려, 해괴해... 지금 국민은, 아니 시민은, 아니 민중은 자신들의 사회가 어떤 위기를 맞고 있는지도 분간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오. 종부세를 내려 부자들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서민은 이에 대한 저항을 거세하고 언젠가는 나도 종부세를 내고야 말겠다는 허망한 희망으로 노동에 박차를 가하거나 로또를 산다오. 이런 사회 제도에서는 개인의 노동만으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는데도 분간을 하지 못하오. 물론, 당신 같은 신자유주의적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가난한 자의 이런 허망한 희망이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굴리며 자본에 종사하고 당신들은 그런 자본으로 자본을 굴리면 되는 아주 이상적인 사회체제에 박수를 보내겠지만 말이오. 차라리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본 이 셋중에 하나만 나왔어도 당신의 그 좌파가 주도하는 시민운동의 위기론에 논리적으로는 인정을 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오. 근데 이건 도무지 통밥을 넘어 해괴로 가고 있으니 참으로 이 나라 법률이 어떻게 되려고 하는 건지. 걱정만 생기오.
"그 시점에서 시민단체는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으로 전환했어야 했다....... 불법시위에 늘 앞장섰다. 야간의 도심을 '해방구'로 만들었던 광우병 촛불시위에도 어김없이 참가했다." 그 시점이란 2000년 총선 낙선 운동 때를 말하는 것이오?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이란 무엇이오? 광우병 촛불시위에는 수십만명, 아니 연인원으로는 수백만명의 시민이 참여 했소. 이렇게 많은 시민이 거리에서 토론하고 광우병 쇠고기 먹지 않겠다고 저항했는데 이때 시민단체가 참여하지 않으면 무엇이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이오? 당신이 혹여 해괴하게도 청계천 광장에서 비보이 공연을 주최하는 시민단체 같은 것을 설마 떠올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지성을 보호해주고 싶소. 시민단체의 운동성, 최소한 참여연대로 국한해서 보겠소. 물론 당신은 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을 것이오. 참여정부때 참여연대인사들이 청와대나 국무총리실로 많이 가지 않았느냐 모 이런 얘기. 그렇소, 당신들은 140명 갔다고 하는데 당신들이 잃어버린 10년동안 70명 정도 정부기관으로 이동 했다고 하오. 그래도 참여연대는 비판을 끊지 않았소. 예를 들어 이런 가정을 해봅시다. 민주노동당이 집권을 했다고 칩시다. 이때 참여연대인사들이 너도 나도 정부쪽으로 움직이고 민주노동당이 하는 일에 죄다 동의하고 힘실어 주는 운동만 한다고 칩시다. 그럼 참여연대는 끝이오. 시민단체가 아니오. 이런 일은 정부기관이 하는 것이지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위기를 모니터링하여 제도 개선을 운동적으로 해 나아가야 하는 시민단체의 가치는 아닌 것이오. 권력의 코드에 맞는 일을 한다면 이런 가치를 잃어 버린 것이기 때문에 참여연대는 간판을 내려야 하오. 민주노동당이 집권을 해도 권력은 권력인 것이오. 비판이 있어야 하는 법이고 그것이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이 되는 것이오. 왜 뉴라이트가 시민단체가 아닌지 좀 감이 잡히는지 모르겠소.
아마도 당신이 중점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정부에서 보조금 받고 그것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광우병대책회의 활동을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고 싶은 것 아니오? 광우병대책회의에 참여한 시민단체 85곳에서 총 122억원의 정부 보조금이 그야 말로 보조되었다고 하오. 당신의 말에 의하면 그렇소.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한 시민단체는 대략 1,500개 정도 되오. 나는 이런 의문이 생기오. 왜 85곳만 받았을까? 1,500곳 전부 정보 보조금을 받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당신의 최초의 통밥과 이것에 약간의 논리 적용이 가능할 것 같소. 건강하고 민주적인 정부라면 세금으로 시민운동을 보조해야 할 책임 같은 것을 느끼리라 생각하오. 시민단체는 통념적으로 돈 없이 이념만으로 사는 사람들의 오가니제이션이 아니기 때문이오. 불법시위에 앞장서는 시민단체에 돈을 대주는 선진국은 없다고 했는데, 선진국은 시위 자체를 불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같은 뜻으로 회합을 하려면 거리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다가 그 집회에 어울리지 않는 또 다른 시민들을 분리시켜 최대한 보호하고 일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불편을 덜기 위한 방법과 집회를 보장하는 방법을 강구하지 물대포를 쏘진 않는단 말이오. 프랑스 같았으면 수십만명의 시민이 일주일만 거리에서 시위를 하면 연합노조가 자동으로 총파업을 하는 시스템이오. 그렇게 많은 시민이 모여 그만큼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고 정부는 그 소리를 성실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오. 이러한 운동에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해서 활성화 시키는 것이 선진국의 민주적인 정부의 사례이며 권력에 대한 시민의 견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동의 하는 것이 선진적 이성이란 것이오.
"정부지원사업비의 30~40%를 단체의 운영비로 전용한다는 사실은 '업계'의 상식이다." 당신의 논리가 왜 이렇게 해괴한지 보여주는 단어가 드디어 말미에 등장하오. '업계', 시민단체를 업계로 보는 당신의 조악한 인식의 한계 말이오. 그리고 무슨 사업을 하려면 그 사업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법률가라 사업은 잘 모르시나? 어쩌려나... 암튼 사업에는 인건비가 가장 많이 들고 인건비는 곧 운영비오. 30~40% 가 아니라 100% 를 써도 모자른 것이 인건비인데 시민단체 상근자들한테는 급여를 동결하고 그나마 나머지로 더 좋은 스피커, 더 좋은 프랭카드라도 써서 사업하는데 뽀대내서 관심이라도 끌려고 60~70% 를 쓰니까 사업이 되는 것이오.
"시민운동은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자체 회비로 운영되는 게 원칙이다." 아주 좋은 얘기오. 참여연대 자체 회비로만 운영되고 있소. 당신들의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도 반드시 그리해주길 바라오.
"범법자의 생활비를 세금으로 대 주는 일이 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률가라면 집시법 한가지만 운운하지 말고 헌법 같은 것도 읽어 주고, 시대 상황, 그리고 왜 그리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지 전후 사정을 다 고려하고 법을 들이 대길 바라오. 게다가 범법자의 생활비 라는데, 살인자도 국가가 제공하는 감옥에서 먹고 자고 입고 싸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소. 살인자도 그 죄에 벌을 받는 동안은 우리가 그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는 말이오. 이런게 사회요. 서로 의지하고 책임지며 홀로 외롭지 않도록 하는 사회 말이오. 내 생각엔 당신은 범법자에게 생활비를 대주는 것이 너무 아까운 것 같은데 이참에 세금을 내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이오. 게다가 그렇게 순수한 분이 변호사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소. 무죄를 추정해야 겠지만 꼭 무죄인 사람만을 골라 변호하지는 않을 것이지 않소? 그럼 그 범법자가 주는 수임료는 어떻게 순수한 마음으로 받으시는지... 그야말로 범법자가 주는 수임료로 생활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오?
아무쪼록 이 가을, 지성을 흠집내는 이성과 가치관을 키우는 독서를 권장하는 바이오.
P.S
행여 또 오해 할까봐서, 참여연대나 진보신당의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이거나 그런 입장은 아니니 호들갑 떨지는 마시오.
조선일보 시론 [시민단체와 돈]
천민도 모르고, 자본주의도 모르고, 하물며 민주주의도 모르는 사람이 '법의 지배' 따위를 논하는 건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단 얘기되겠다. 게다가 생명도 생명 같지 않고 상업주의도 상업 같지 않은 이 마당에 생명과 상업을 합치면 그것이 마트고, 전국적인 마트화를 꽤하는 것이 그들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애꿋은 촛불이 마트란다. 이런 쪼다를 요즘말로 '듣보잡' 이라고 하는데... 듣보잡들이 모를 말이라 주구장창해도 뭔 말인지 모른다.
류근일은 걱정스럽다. 그동안 '대한민국 진영' 이 광우병 괴담으로 반미 수준이 아닌 그동안 온갖 패악적 문필로 막아 왔던 남한이 미국의 괴뢰였다는 사실이 들통 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것 같다. 보수주의자들은 옳은 말을 하는 지식인과 거리의 선량한 시민들을 빨갱이와 폭도로 몰아 매장시키는 데는 익숙했지만, 이명박이 실용주의로 넘나드는 이념의 줄넘기에 발맞추기에는 이미 너무 늙어 버렸다는 것을 그들의 지지 진영으로 부터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더 조급증이다.
촛불은 꺼지지 않고 설마 입에 담아 공포스러운 민중혁명이라도 일어 나는 날엔 망명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강부자도 제가 착취할 땅을 잃으면 난민에 불과한 것을. 이제는 짐짓 이명박을 훈계하고 나서지만, 이명박의 사상은 조선일보도 이익이 되어야 청와대로 불러 꼬리곰탕을 먹을 수 있는 스탠스이니 도무지 주적 개념이 없는 듯 한 행태가 답답할 것이다. 도대체 청와대는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그나마 경찰추산 촛불 집회 참가자가 줄어 드는 것을 보고 받으며 '거봐 쎄게 나가면 되는 거야' 라며 케잌을 커피에 찍어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게 아니면 이런 시급한 시국에 한가롭게 중국 마실이나 나갈 수 있는 것인지. 류근일은 행여 후진타오의 해남도 별장으로 초대라도 받았으면 어찌할 뻔 했는지 가슴을 쓸어 내렸을까? 이번 투쟁에는 다행이 화염병도 깨진 보도블럭도 없다. 하지만 류근일 따위가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동안은 최소한 '독재타도' 라는 구호는 듣지 못했는데, 이제 구호의 끝에서 더 이상 구호가 먹히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화염병도 등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벌써 부터 경찰과의 충돌을 예사로 알고 스스로 잡아 가라며 닭장차에 매달리는 희안한 일까지 있다니 더욱 걱정이다.
그렇다. 이번 투쟁은 양상이 다르다. 어차피 정부는 고시할 것이고 쇠고기를 처먹어라 할 것이다. 남한이 미국의 괴뢰였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해 왔던 지난 친미독재정권들의 스마트함이 밥 먹여주냐며 걷어 차 버린 이명박 정권의 실용주의는 위태롭다. 류근일이 보기에도 그것은 좌우 진영이 아니라 '대한민국 진영' 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왜냐하면 그래도 정권이 시민에게 지는 척이라도 해왔던 것이 지난 잃어 버린 10년인데다가 아직도 민주화의 관성을 간직한 386 이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곧 유권자가 될 10대들까지, 그것이 아무리 괴담이고 맹목적일지라도, 거리에서 MB탄핵을 외치며 각성하고 있는 사태를 목도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일 것이다. 겨우 5년 집권으로 끝날 역사가 100일지난 정권에게서 청사진으로 비춰지는 데다가 이 투쟁이 행여 시민들의 승리로, 행여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날에는 조중동도 같이 몰락할 것만 같은 참담한 분위기는 더더욱 혹독하다. 류근일으로서는 살아 남기 위해 더 악랄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용득 전 한국노총위원장과 같은 사람이야 말로 존경은 고사하고 대접 받을 수 없는 어른의 전형이다. 배울 점이라고는 '멍충이가 되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 는 만사의 교훈 뿐이다. 선거를 백주대낮에 뿌려지는 돈다발쯤으로 생각하는 집단과 정책연대를 한다는 발상자체가 판타지 아니었던가. 생각이라고는 돈되는 곳 개발하자와 때려 잡자 빨갱이 밖에 없는 아메바들의 기억력을 철석 같이 믿고 온갖 거짓된 액면(새 지도부가 강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위원장 선거에 불출마 한다, 총선 출마용도 아니고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더니 정책연대의 완성을 위해 비례대표에 출마한다는 따위)을 팬티에 질질 흘리고 다니던 그는 아메바에 가끔 속기도 하는 3살 짜리 정치인이었다. 한나라당의 차때기 메뉴얼도 숙지 하지 못한 그가 감히 앉아서 권력의 개평을 받아 먹으려 하니 아무리 아베바 집단이라고 해도 줄서는 기준은 있는지라 그의 팽은 아메바의 망각이 아니라 아메바의 기억에서 오래전부터 이용과 배제를 넘나 들었던 존재 였을 것이 분명하다.
이용득은 '속았다'고 했다. 이 말은 이미 그가 총선에 출마 할 뜻이 없다며 거짓말을 하고 다닐 때부터 한나라당과 모종의 합의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위원장이라는 상징을 통해 발언과 행동을 일삼는 70만 한국노총 조합원이 졸지에 이용득의 사리사욕에 동원된 '덩어리' 가 되었는데도 그는 양지에서 뻣뻣한 목을 자랑하고픈 금뱃지 청사진에 황홀했을터다. 사회적 영향이 큰, 작지 않은 공동체를 상징 했고 한때는 인간과는 결코 끊어 질 수 없는 노동의 위대함을 전파했던 한사람의 몰락에는 그 덩어리에게 조차도 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다. 살인을 해야 만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가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지 못한 것은 그나마 참 잘된 일이다. 더 이상의 정신 분열적 패악질을 예방한 것이니 말이다. 그가 해로운 이유는 그가 노동운동을 하다 갑자기 비즈니스 프랜들리 해진 것이 아니라 돈이 되면 뭐든 개발하고 빨갱이들은 때려 잡을 수록 좋다는 구린 생각에 노동이나 진보가 얼마든지 들러리 설 수 있음을 떠들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은 너무 가혹하고 끔찍하다.
[우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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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2009/06/19 19:07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그네들의 최대 업적은 우리로 하여금 민주주의를 다시 공부하게 한다는 것 같습니다.
헌법 제1조를 암송하게 만들었으니 이러다간 헌법 전문을 줄줄 외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ㅜㅜ
DrunkenSTAR 2009/06/20 23:46 편집/삭제 댓글 주소
설마 그거 다 외울 때까지 가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