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게다가 너무 오래된 스페인 내전을 때때로 기억해내는 이유는 스페인 내전이 파시스트와 반파시스트의 전쟁이어서가 아니라 로버트카파의 한 장의 사진 때문일 것이다. 풀썩 쓰러져 죽기 직전의 공화국 병사 말이다.(그 병사는 분명 죽었다, 그 병사의 이름은 '페데레코 가르시아' 이다.) 이 사진은 너무 많이 배포된데다가 전쟁이 하나의 이미지와 영상이 되어버린 오늘날에는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한다. 게다가 불경스럽게도 이 사진 연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더러 남는다. 하지만 최초로 사진에 찍혔던 크림전쟁 당시 로저 펜튼이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거대한 상자 4개를 짜맞추고 전쟁 현장에서 인화를 해야만 했던 시절처럼 '인정된 연출' 은 없었던 것이 로버터카파의 이 사진에 정설이 된 이유는 스페인 내전이 사진가들에게 간단한 조치로 필름을 되감을 수 있게 한 35미리 라이카 카메라가 보급되어 그 진가를 발휘한 최초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작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로베르 두아노의 '파리 시청앞에서의 키스' 는 파리를 사랑의 도시로 묘사하기 위해 남녀를 미리 섭외하여 카메라가 설치된 곳에서 키스를 하도록 연출했다. 이 정도는 애교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조 로젠탈의 '수리바치산의 국기게양(이오지마섬의 국기게양)' 은 사진사가 찍고 싶은 스팩타클을 연출한 악랄한 포착의 전형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퓰리쳐상의 대표격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사진은 연출되어선 안되는 것일까? 포토샵으로 칼라를 덧칠하고 콘트라스트를 대비하는 행위가 또 하나의 포착이 된 시대에 사진의 연출이란 무엇인가, 어쨌든 사진에는 구성이 존재하고 구성은 무엇을 배제하고 무엇을 넣느냐는 문제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여기엔 양심이 필요하다.

연출이나 조작 없이 전쟁을 찍을 수 없었던 시절의 로저 펜튼에게 '카메라 모랄' 이 있었을리 없다. 오늘날에도 어떤 장면을 찍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종종 연출을 가능케 하고 이것은 기록이 아니라 시각예술이라는 미덕이 된다. 문제는 사진의 조작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피사체에 충분히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 라 했던 카파의 말을 동어 반복하여 조작은 어떤 두려움이나 어떤 연민에 다가가지 못하게 만드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은 포토와 포토 저널리즘의 극복될 수 없는 차이와 같다. 포토는 기술과 시각예술의 정밀한 조합인데 반해 포토 저널리즘은 '기록하기 위해 떠나는 용기 있는 결단' 같은 것이다. 어차피 사진이 가진 포착의 형태는 피사체의 앞에서 다르지 않다. 다만 용기 있는 결단으로 있어야 만 하는 장소로 떠나 그곳에 결국 있었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사실 이 차이는 저널리즘에서 매우 크다.) 따라서 포토의 그것엔 있어야 만 하는 장소가 아닌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장소의 풍경과 아름다운 색깔만이 깨진 빗살무늬 토기처럼 흩어져 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둘 중 하나의 취미에 반응할 것을 종용한다. 사실 저널리즘과는 다르게 포토에는 이런 미덕에만 충실해도 사람들은 흥분하지 않는다. 포토 저널리즘이 어떤 떠남의 결단이란 점은 가장 극적인 역사적 주제가 필요해서인지도 모른다. 대체로 포토 저널리즘의 어떤 충격은 알림과 계몽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전쟁이나 인류적 이동과 같은 가장 극적인 파노라마가 일어나는 곳으로 떠나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는 지도 모른다.

인류가 서로를 치열하게 파괴하는 전쟁이나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삶의 현장에서 이주해야만 하는 가혹한 현장은 언제나 교훈적이고 때로 장엄하기 까지 하다. 그중 전쟁을 기록한 포토 저널리즘에는 전쟁의 공포와 '볼만한 스팩타클' 이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전쟁이 언덕 위에 풀썩 쓰러지는 공화국 병사처럼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전쟁이나 피사체에 한발 더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물론 공화국 병사의 사진이 오늘날 바그다드 하늘에 뿌려지는 대공포의 섬광을 적외선 카메라로 찍어 내는 CNN 의 영상보다 '볼만한 스팩타클' 을 제공해주진 않지만 우리는 스페인 내전과 마찬가지로 이라크 침공과 같은 대인류적 파괴에 대해 영상 이상의 어떤 것으로 접근하는 것을 꺼린다. 이것은 두려움으로 이뤄내는 어떤 연민마저도 합리적으로 거세하는 감정의 거리이며 미국에 협력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먼 어느 고장의 사정일 뿐이라는 내제적 안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식량과 물이 없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휘둥그런 눈과 파리와 함께 널부러진 플라스틱 그릇에 투영되는 감정, 미개한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불쌍한 일들이란, 것과 같은 부류인 셈이다.(그곳에 패리스 힐튼이나 안젤리나 졸리가 콘트라스트로 대비되는 포토는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어도 아름다움과 추함의 미덕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반계몽적 감정에선 공화국 병사의 죽음을 통해 스페인 내전을 공화국 정부군과 반란군을 당사자로한 전세계적인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충돌로 규정하거나 피카소의 '게르니카' 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로 조응되는 탐구와 연결되지 못한다.

오늘날 포토 저널리즘의 문제는 더 이상 사진 밖으로 고통이 전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민주화가 한창이던 당시 이한열 열사의 피격 사진은 거대한 고통의 전이를 일으켰다. 하지만 한미FTA 를 반대하며 분신한 허세욱 열사의 영상은 좀 처럼 볼 수 없는 분신 자체의 스펙타클에서 분신의 이유였던 反한미FTA 로 전진하지 않은 체 탐구가 제거된 통조림 안에서 짧은 유효기간을 가질 뿐이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가 수많은 포토 저널리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는 것으로 그 모두를 함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 양심적 사진가들과 포토 저널리스트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 익숙해지기 위함이나 추상적인 안도감을 견고히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비되어야 하는 사회는 다만 아직 그 사진의 피사체가 되지 않은 사회일 뿐이다. 하지만 사진은 그것을 목격한 사진가가 의도한 어떤 양심이나 도덕을 알리는데 있어서 언제나 관람객과 적당한 거리를 가진다는 단점 때문에 거의 대부분 그 사진의 고통이나 양심이 왜곡된다. 이러한 거리의 왜곡은 페데레코 가르시아나 허세욱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아들, 남편 그리고 친구 였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연을 간과하면서 부터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지극 당연함에서 조차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면 한 장의 사진을 통한 교훈이나 전진하는 역사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신기루인 것이다. 이쯤되면 포토 저널리즘은 점점 더 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더 장관인 광경에 종사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어떠한 현상에도 그것의 원인이나 이유에 대해 탐구하지 않는, 지배하기 간편한 '통치된 종족' 으로 취급 받게 되는 것이다.

보급형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젊은이의 다수가 사진가인 세상이다. 모두가 무언가를 기록한다고 하지만 대체로 그들의 기준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아름다움은 추함에서도 일어나는 감정이다.)자체, 또는 아름다운 빛을 쫓는다. 따라서 이들의 사진은 시각예술의 미덕에서 탄생한다. 포착을 통해 주제가 동반되지 주제를 위해 포착이 집합되진 않는다. 주제를 위해 포착을 집합하는 것은 하나의 의식과도 같기 때문에 긴 호흡이 필요하지만 시각예술적인 포착은 디지털처럼 쉽게 삭제, 재생이 가능하기 때문에 호흡이 짧다. 이 때문에 기술적인 것에 집착하기 마련이고 사진에 주제나 제목 그도 아니면 피사체의 이름 대신에 촬영장비, F넘버, ISO, 셔터스피드 따위를 기록하게 된다. 오늘날 만인의 사진가들은 목격한 피사체와 소통하는 대신 카메라의 뷰파인더와 카메라에 내장된 첨단 컴퓨터 장치와 인터페이스를 가질 뿐 이다. 때문에 로버트카파의 양심이나 메시지를 탐구하진 않고 카파를 그저 신화나 영웅쯤으로, 한번쯤 봐야 하는 스팩타클한 사진기술로 생각하고 마는 왜곡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포토 저널리즘에 복무할 필요는 없지만 피사체에 슛(Shot)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도의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한 법이다. 게다가 배포가 용이한 오늘날의 시대에는 더욱 더 소통의 방법과 연민의 전이를 준비해야 하는 법이다. 이는 무명씨를 찍고 장비의 내역을 설파하는 사진의 기술에서 무명씨를 알아 내고 피사체의 이름을 부여 하는 것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 기술과 시각예술과 기록이 아무렇게나 섞여 배설된 주문이 아닌 피사체 그대로의 이름 말이다. '허세욱 2007년 4월1일' 이런 식으로 소통이 시작되는 '각성된 사진' 으로 부터 우리 사회의 인식은 변하기 마련이다. 자본으로 부터 개발되는 사회가 아닌 책임과 연민으로 얽혀 인간으로부터 변화하는 사회로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안상수 선생의 'one eye' 는 사뭇 탐구할 만 하다. http://www.ssahn.com/

2008/03/24 23:41 2008/03/24 23:41
DrunkenSTAR 이 작성.

밤눈

2006/12/28 01:23 / 사진

깊은밤과 새벽녘의 중간쯤, 오랫동안 서러웠던 골목에 사나운 눈이 땅에서 쏟아 올랐다. 내 뒤에는 아무도 없고, 내 단단한 손은 뼈조각을 움직여 달그락 소리를 내며 그날도 이 얕은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울음이 끝날 때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돌아섰다. 예의 없는 뼈와 영혼으로 가득찬 내 속은 울음을 중지시킬 침묵도 없으면서 셔터를 누를 욕망만 가득했다. 밤눈이 거듭 사나워져 꾸짓고 꾸짓어도 세상은 하나도 하얗게 변하지 않는다. 힘을 빼고 가볍게 진정만을 가지고 하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내 속의 검은 얼음이 땅에서 쏟아 나와 이 서러운 골목에 배설해낸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내 속은 하나도 비워지지 않았다.


2006/12/28 01:23 2006/12/28 01:23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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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웃으면 슬프니까

2006/10/20 02:30 / 사진
삼선동 장수3길에 서서 북한산과 도봉산을 보며 웃고 있지 않으면 슬프다. 처음엔 어디로 휘고 꺾일지 알 수 없었던 골목길을 그래도 서너번 오르고 내렸더니 비로서 막다른 길도 알아채고 호남슈퍼에서 캔커피도 사 마실 있게 되었다. 평상은 어느 골목에 있는지, 낡은 거울을 내 놓은 집은 어디이고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민화투를 치는 마실소리가 마냥인 집은 어디인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웃지 않고 서 있으면 골목길은 슬프다. 바르고 곧은 아랫 마을을 피해 골목은 위로 위로 올라와 삼선동 장수3길에서 멈췄다. 골목의 상상력은 이 지점에서 중지되었고, 골목대장도 숨바꼭질도 사라졌다. 그 지점에 핫셀브라드를 든 사진꾼들이 어슬렁 거리고 술취한 젊은이들이 오줌을 갈긴다. 동네는 문단속을 하고 개들은 낯선 발소리를 걸러내려는 듯 우렁차다. 골목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북한산이나 도봉산을 바라보며 두려워진 골목 탓을 한다. 지구가 별로 태어나 디딜 곳과 빠질 곳으로 갈라지면서 땅이 생기고 길이 생겼다. 골목이 추억이 아닌 가난으로 자리 잡고 멈춰버린 지점에서 더 이상 디딜 땅을 찾지 못한 골목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는 해발 120 미터에서 웃지 않으면 슬프다.

2006/10/20 02:30 2006/10/20 02:30
DrunkenSTAR 이 작성.

오름

2006/10/16 00:33 / 사진
용눈이 오름을 오르는 길 곳곳에는 제주도 전통 무덤들이 있다. 제주도식 무덤은 산의 비탈을 깎지 않고 비탈의 생김새 대로 봉분을 만들어 둘레에 돌담을 쌓는다. 이 담을 제주도에서는 산담이라고 부른다. 봉분이 산이라는 의미이다.
용눈이 오름의 굼부리는 밋밋한 분화구가 아니라 파도처럼 물결친다.
용눈이 오름에서 구좌읍 송당 방향의 스카이라인이다. 제주도의 깊은 내륙은 여인의 가슴처럼 봉긋하다. 침침한 가스가 하루종일 내려 앉아 있다. 성산 방향에서 해풍이 불어 오는 탓이리라. 가벼워 바닥에 접착되지 않는 트라이포트는 흔들거렸고 바다는 안개를 출산해서 뭍으로 밀어 보냈다.
다랑쉬 오름의 굼부리에는 1948년 4.3 사건시 수많은 민간인들이 사변을 피해 살고 있었다. 진압군에 의해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이 굼부리에서 학살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굼부리를 지나 반대편 봉우리로 건너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하루종일 나는 이런 밀림을 뚫고 오름을 오르기 위해 오름 입구를 찾아야만 했다. 사람은 없고 바람과 들풀들이 무릎을 치고 있었다. 무엇을 잘 찍겠다, 인생이 어쩌고 하는 한가로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풀을 헤치면 뭐가 나올지만이 관심사가 되었다. 바로 앞에 무엇이 있을지...
다랑쉬 오름에서 바라본 용눈이 오름과 손지 오름이다. 오른쪽 손지 오름은 삼나무가 서로 걸쳐서 자라고 있다.
아끈 다랑쉬 오름은 얕은 굼부리에 가지런한 초원이 있었다. 풀벌레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생각이 하얗게 변한다.
다랑쉬에서 바라본 아끈 다랑쉬 오름, 멀리 성산이 보인다. 구좌읍에 있는 오름에서 성산을 볼 수 있었던 순간은 이번 뿐이었다. 그렇다고 날씨가 저주스럽지는 않았다. 시원했고, 때론 따뜻했다.
2006/10/16 00:33 2006/10/16 00:33
DrunkenSTAR 이 작성.

들판에 서서

2006/08/29 00:44 / 사진

어느 고장에 닿았을 때, 그 고장은 아무것도 스스로 내비치지 않습니다. 그 고장이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얘기들을 흔하디 흔한 괭이밥을 통해서도 들려주지 않습니다. 올해만 벌써 두번째 방문인데도 제주도는 낯설은 빛과 바람과 구름만을 좌판에 펼쳐 놓습니다. 시간을 멈춘 노인이 순하디 순한 양치기 개와 나란히 앉아 빛과 바람의 틈에서 소주를 마십니다. 나는 늙어 가고 있습니다. 루게릭 병에 걸린 김영갑님이 1년전 세상을 떠나며 남긴 두모악 갤러리로 가는 외진 동네, 중산간에는 사납게 비가 옵니다. 늙고 시든 왼쪽손을 핑게 삼으려 해도 셔터는 경거망동하고 뷰파인더는 더 이상 간극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편하게 찍으려 했던 자세가 화근이었나 봅니다. 외로움이 더는 깨닫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듯 모든 것이 불편해집니다. 들판에 서 봤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있을까, 언제쯤 저 빛이 행복해지는 시간에 셔터를 누를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서 있어야 이곳에서 사연을 가진 모든 것들과 같은 존재로 바람을 맞으며 조잘거릴 수 있을까, 들판에 서 봅니다. 제주도를 방문할 때마다 그 풍경에 반해 그 너머에 항상 소홀했던 태도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흔하디 흔해 지난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섬으로의 착지가 내내 설레이기만 했었던 이방인의 호기심 그대로였습니다. 그저 조금 불편한 마음, 풀리지 않는 도시에서의 일과 이제는 차분한 어떤 추억들이 흐트러짐 없는 전진의 동력이었습니다. 경이로움 없는 삶과 도시의 오물이 감각을 막아 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덕스럽게 내리치던 비가 그치고 나의 삶도 언젠가 막아 서는 것도 없이 그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한번도 이름을 가져보지 못한 들판은 바람의 리듬에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언제가 그칠 것을 아는 듯, 들판은 그렇게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나의 걸음이 재법 묵직하게 다가 갔는데도 그 낯설은 개입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도시에서 오지 않습니다. 이 들판에서 삽시간에 변하는 빛처럼 그런 희망을 품어 봅니다. 다음에도 구름이 들판을 그늘에 묻어 버리지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기를, 다음에도 처음 온 것처럼 그렇게 대해주기를 바랍니다.







2006/08/29 00:44 2006/08/29 00:44
DrunkenSTAR 이 작성.

행복한 착륙

2006/07/31 19:25 / 사진

일행과 떨어져 나왔는데 핸드폰이 바다 바람에 삭아 작동을 멈췄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서둘러 연락을 취해야 했지만, 나는 늘 그랬던 배짱이처럼 굴었다. 어슬렁 어슬렁 동네 사내도 나처럼 다니질 않는데, 일행과 연락할 마땅한 방법도 없으면서 맥주 한캔 사서 길바닥에 주저 앉아 버린다. 나에게 제주도는 늘 행복한 착륙이다.

바다 거북과 조오련을 시합 시킬 수 있는 시절의 친구들을 보았다.

사진열기..

2006/07/31 19:25 2006/07/31 19:25
DrunkenSTAR 이 작성.

삼청각

2006/07/01 16:34 / 사진

어제 술을 마시고 민망하게 울다간 새로 사귄 친구가 오늘 탈선한다고 해서 잘하라고 했다. 어제 술을 마시고 아침일찍 또 술을 마시고 쓰러진 친구에게 문자를 세통이나 보내놓고 오늘 탈선하고 아주 안돌아오겠다고 해서 탈선은 돌아와야 탈선했다고 믿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의기양양하게, 위풍당당하게 돌아오라고 했다. 나는 돌았나?
나는 삼청각에 갈꺼다. 좋은 것 차지하고 나도 지도 날개가 없으면서 멀리 볼 궁리만 하는 사람들을 보려고, 맑은 삼청각에 갈꺼다. 저 아래에서 탈선하는 친구와 술 마시자는 친구들이 어울려 못사는 궁상들을 보려고, 내 생을 위로 하지 않고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고독을 쫙 펴고 니들은 덥지도 않니 눈핀잔 주려고, 삼청각에 갈꺼다.
여기를 권력자들이 그렇게 좋아 했다지...

삼청각

more..

2006/07/01 16:34 2006/07/01 16:34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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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 점프를 하다

2006/05/24 18:56 / 사진
철새들도 머문다. 텃새가 빈병에 소주를 조금씩 따라 한병을 만들며 발가락을 한개씩, 두개씩 잘라 가는 것 처럼. 철새들이 나알아~ 간다, 구름이 바닥친 하늘에 뿌연 햇빛 먼지가 배가 하얀 철새떼에 갈리고 나면 유행가 소리가 틈을 비집는다. 한탄강에서 자라는 씀바귀, 그 길 지나는 고독에게 나누는 말씀은 없고 노란 먼지 훌터 나알아간 철새며, 뛰어 내린 요절한 사내의 사연만 한움큼이라던가? 내가 나와 나눌 풍경이 점점 늘어 나는지, 점점 줄어 드는지? 모르는 야생초 이름 만큼 내일이면 또 모르는 야생초 이름의 씨앗이 풍경속에 자라겠지. 이렇게 풍경을 거니는데, 내 어린 날의 꿈도 고소 공포증의 이유도 만나질 못하니 나의 폭은 여전히 협소하다.
뛰어 내린 자가 외로워 보인다. 외로워야 한다면 차라리 고독해야 함을 알아 챈다.


이음말..
사람이 정말 싫어질 때마다, 뛰어 내리고 싶어진다.
논개정신으로다가... 대신, 난 번지고 넌 알아서 하시고...
2006/05/24 18:56 2006/05/24 18:56
DrunkenSTAR 이 작성.

궁평포구에 가 보았더니 아직 일러 절경이라는 낙조는 없고 샛바람만 가득 채운 소주잔을 흔든다. 든든하게 횟집에 엉덩이를 부치고 낙조 말고는 더 바랄게 없는 포구에서 인정 사나운 뱃사람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취할 생각은 일찌감치 침몰하고 고물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찬 소주병을 주머니에 차고 일부러 찾아올 턱이 없는 멋대가리 없는 포구 반대편에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건너가 보았더니, 역시 아무도 있을 턱이 없는 작은 모래사장에서 사랑을 천칭에 달면서 시작된 일체의 상념들을 들춰내 보았다. 그러므로 응당 통속적인 감정으로 부터 센티멘탈한 자세를 가져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는데, 그런 자세가 도대체 별 볼일 없는 세간 살이와 유폐된 감수성에 무슨 호사스러움으로 사기를 치려 하는지 알아채 버리고 나니 넉넉히 할 일도, 사색도 신통치 않게 되었다.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설레이는 끈과 의심스러운 묶임들이 있었던 시절에서 착잡한 잡념들을 끌고 어여쁘게 입을 벌린 지옥문 같은 포구에 정박하는 배가 있어, 한사코 올라 타 보았더니 얼마나 멀리 갔다 오는 길인지 인연들이 만선이다. 이렇게 살았구나, 한번에 묶고 풀 수 있는 배를 기다리는 판타지가 뱃사람들 눈총 피해 들이킨 찬 소주 한병 탓은 아니겠지만, 이미 인연을 묶고 풀었던 배들이 궁평 포구 모래사장에 한가득이라, 아니 막연히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도 취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었다.


궁평포구 사진

2006/04/20 21:12 2006/04/20 21:12
DrunkenSTAR 이 작성.

대추리에서

2006/04/17 20:20 / 사진
그 논두렁에서 붉은 석양이
어깨에 짊어 진 삽얼굴까지 붉은 물을 들여
뚝뚝 떨어 질 때,
왠지 재수 좋은 기분이 드는 저녁이면
먹는 풋고추는 유난히 맵고
아직 일손 놓지 않은 아버지 콧등에
솟은 땀 냄새까지 나는 날.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이야기,
은하수 떨어지는 소리까지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은 작은 동네였습니다,
담도 없는 대추리는, 그랬습니다.



이어지는 대추리에서..



대추리 바로 알기(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
2006/04/17 20:20 2006/04/17 20:20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