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블로그 이름은 "잠수함 토끼" 다. 시민단체 활동가, 수필가, 변호사, 교수, 사업가 그리고 그들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나, 스무명이 참여 하고 있다. 아직도 몇분은 헤매시고 계시고 어떤 분은 도중에 캠프 대변인으로 가버려서 참여를 못할 것 같고 몇 분은 나눔과 생명평화결사 활동이 너무 빡세서 들어와 보지도 못하신다. 괜찮다, 나중에 만나서 술 한잔 하면 된다.
잠수함토끼 http://www.submarinerabbit.net
조그만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종종 경영 문제를 물어 오는 후배가 있다. 들어보면 대게가 사람에 대한 문제고 사람의 인연과 사연에 대한 것이다. 회사라는 목적 가치에 오래도록 인연을 두는 일은 참 쉽지 않다. 건물은 그래도 둔 채 사람들만 사라지게 했던 IMF 중성자폭탄으로 인해 평생직장이란 가치는 사라지고 직업관은 능력과 시장요구에 부합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가치로 변화되었다. 여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조직이란 근거로 생긴 한가지 믿음이 있다. "한사람 없어진다고 회사가 무너지나" 란 것인데, 이 믿음은 꽤나 신앙이 깊은데다가 한사람 없어서 회사가 잘 무너지지 않았던 경험 코드까지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 평생직장은 이미 고전적 직업관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가치로 세계화를 하지 못해 온통 안달이 난 사회에서 평생직장은 마켓의 요구와 완전히 배치된다. 잉여자본이 노동유연성을 더욱 탄력적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개인은 더 이상 조직의 구성원이 아니라 개인주의적 객체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고 마켓에 어필해야 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기능이다. 조직은 더 이상 개인에게 어떠한 가치도 부여할 수 없다. 오로지 개인만이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 조직은 조직의 이상이라 생각되었던 어떤 비전, 미션으로 구성되기를 거부하고 자본 생산이 용이한 지점과 자본 재생산으로 노동의 탄력성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지점으로 끊임 없이 이동하기를 원하게 되었다.
세계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따라서 세상의 모든 동력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게가 '세상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마켓 안에 있다' 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로 인해 노동이나 사람은 마켓안에서 하나의 문제로 인식되어 진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등가의 원칙을 기본하여 개인과 개인, 개인과 회사를 계약으로 묶는다. 이러한 계약에는 개인이나 사회에 대한 책임, 나아가 회사에 대한 책임보다 더 포괄적으로 마켓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으로서의 사람은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 마켓이 침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언제나 치열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이러한 구조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노동의 치열함은 삶의 치열함이 아니라 마켓이 원하는 책임, 즉 자본의 창출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강제적 복무에 치열함을 부여할 뿐이다. 더 나아가서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연이나 사람간의 계약이 아닌 인연의 관계마저 부인하거나 마켓의 요구에 걸림돌인양 치부해버리고 만다.
중소기업을 하는 후배가 물론, 작은 회사에서 경영자가 일일히 챙겨야 하는 것도 순리일 수 있지만, 사람이 조직에서 들고 나는데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그와 함께 했던 오늘을 챙기고 칭찬하며 그의 미래를 격려해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적잖은 시간을 들이기를 바란다. 마냥 칭찬하고 격려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잖은 시간을 들여 사람을 생각한 경영자라면 충고하고 때로는 아프게 꾸짖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우애와 연대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리가 없다. 사람과 노동을 존중하는 경영자라면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온통 신세를 진 기분이다. 신세가 대체로 폐를 끼치는 일이다 보니, 결혼이 지닌 감당할 수 없는 무게란 내가 아는 모든 삶을 한자리에 모아서 정중히 신세를 짐을 인사했다는 것이다. 겨우 두 세시간만에 삼십칠년 생활을 구겼다가 편 기분이다. 진선생님 앞에서 후들후들 다리가 떨렸던 이유는 아마도 곧 뒤돌아 내 현재와 과거를 한꺼번에 맞닥들여야 할 먹먹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혼식장에서는 의지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 상황이 행동을 조율하는 곳이기에 나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행동했고 퇴장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는 예의 바른 결혼 멘트는 식상하다. 수많은 역할모델이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다. 애써 감당을 회피했던 '노릇' 이란 전통적인 굴레를 좋고 싫고 혹은 옳고 그른 어떤 느낌이나 인식도 할 수 없는 순간, 왜 사람들이 여행갈 생각 밖에 안난다는 욕구에 매몰될 수 밖에 없는지 깨달았다. 결혼을 하며 그토록 전통과 고정관념을 거부하며 사는 어떤 타인의 삶이 결코 간단치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울 것이다, 달 아래건 별 아래건 훌쩍 떠나 홀연히 만나던 무인 간이역이. 나는 간이역에서 깨기 싫은 눈을 억지로 뜨며 이 기차를 탈까, 다음 기차를 탈까 고민하는 방랑자와 같았다. 기차가 가는 방향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빛 속으로 돌진하며 작렬하는 파열음을 비스듬이 바라보고 있었다. 삶을 구겨 넣은 기차가 어느 간이역에서 풀어 내는 사연 모를 사연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요약할 수 있는 실존적 분위기란 없다는 것을 알아 버리기에 나는 지나치게 관조적이며 엄숙하다. 애써 눈물이 나지만, 눈물이라고 다 같은 눈물이 아니기에 금새 식어 버린다.
미안하지만, 내 가슴은 오로지 내 가슴만으로 이루어져 있질 않아서 한번도 간절한적 없던 피가 흐른다. 아직 나는 어느 고장에 가서도 그 고장이 끊임 없이 생산하는 진실에 한번도 진지하게 다가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겉멋과 패션만으로 히히덕 거리며 자신을 돌아 봤을 뿐이다. 나에 대한 관심이 오직 그러함에서 비롯되었으니 무엇이든 하고 나서 후회한다. 한번도 삶을 구기고 더 이상 너덜너덜해지지 못해 풀어 내었던 적 없던 반성은 해서 무엇하나. 간이역이건 제주도건 사구, 석호건 나는 그저 그립기만 할 뿐이다. 내 눈물엔 냄새가 없다.
전쟁 같은 일상이 함축한 의미는 세계의 실체적 움직임에 순응하느라, 그 전쟁 같은 지독함을 느끼서일 겁니다. 전쟁이 일상 같을 수 없고,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이치입니다만 역한 속물스러움을 느끼는 요즘은 "나 같은" 이란 말맴돌이에 힘겹습니다. 인간을 소통하게 했던 언어가 세계를 구성하면서 예술이 되었고, 과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은유로 들립니다. 은유의 반열에 이율배반이 있고, 표리부동 따위들도 의미적으로 합리하다고 하니 느끼고 말하는 문턱이 높아지긴 했나 봅니다.
세계의 문턱은 더 고달파졌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멀리 있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언어를 끊임 없이 표현해야 하니 일상이 전쟁 같은 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노선이 없는 대중들 보다 다중적인 주체들이 세계를 구성하는 언어들과 화해하지 못하여 반사회적이며, 반민중적이라는 타이틀로 공격을 받는가 봅니다. 언어가 있는 세계라면 형식을 통한 감수성이 표현될 것 입니다. 이러한 사조는 전체적으로 일관적일지 몰라도 디테일은 이율배반적 입니다.
자본주의에 살면서 사회주의를 꿈꾸고, 모더니즘의 바다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항해하는 모든 형식과 표현은 타당성이 없기에 모순이며 이율배반 입니다. 이율배반을 좋거나 좋지 않은 취미 판단으로 규정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옮거나 옮지 않은 윤리 판단의 잣대에 저울질 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사조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현대 사회는 일정량의 물리적 덩어리가 아니라 이율배반이라는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적으로는 은유의 시대이고 정치적으로는 이미지화 되었으며 예술은 이질적이고 탈중심적입니다. 현대사회의 디테일은 절대선과 절대악, 절대행복과 절대불행의 어중간한 지점을 자유롭게 맴도는 이율배반의 논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얼핏 어떤 정체성도 주체도 없어 보이는 이러한 어중간한 추구에 저항하는 이성은 지향 입니다. 정체성은 확고한 독립이 아니라 지향점 입니다. 지향은 스스로를 여러 형식으로 규정하려고 합니다. 잘된 규정은 참 인 두개의 명제를 놓고 이율배반을 노리게 되며 조금이라도 지향에 가깝게 규정하는 것 입니다. 그래도 이율배반인건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얼마나 자율적으로 규정했는가 라는 지점 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판단한줄로 착각하며 삽니다. 그만큼 세계를 구성하는 이율배반의 에너지가 강력합니다.
자율적인 지향과 규정은 이율배반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들을 규제하고 자율적인 실천에 의지적으로 변해가는 것 입니다. 디테일에 이율배반이 있다고 해서 모든 실천적 의지를 멈춰야 하거나 지향을 수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향이 덜 성숙되었고, 세계를 바라보는 피상적 관점이 지배적일 때 대체로 디테일한 이율배반에 좌절하고 구성된 세계로 안락하게 편입하길 원하게 됩니다.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어려운 시도에 열정을 사치하는 것보다 가깝고 먼 지향을 성찰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 입니다. 자율적으로 말 입니다. 고독은 이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침묵으로 무성했던 지독한 소문들에 대답합니다. 뭉개친 몸둥이를 한껏 풀어 헤친 기분 입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기특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자 많은 인생에 기꺼이 동참을 눈물내게 했던 사람에게 사랑한다, 고맙다, 하는 말 따위가 건방지고 시덥지 않습니다. 함께 땀흘리며 걷고, 강물과 먼지를 깨우치며 살아 보이려 합니다. 돈으로 살지 않고 몸으로 헤프게 살아 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도달하려는 어느 미래를 지나치게 꿈꾸지 않고, 지금 아파하고 보듬으며 용기를 내려 합니다. 언젠가 우리의 단출한 삶도 그칠 것을 압니다. 그때가 되어 우리가 헤쳐온 바다, 그리고 그 깊이를 알아야 할 때가 오면 우리가 함께 흘린 땀과 깨우침의 무게는 지금 그 바다에 던져 넣은 연자맷돌, 그것과 같을 것임을 믿습니다. 그렇게 결혼하려 합니다.
수술 천재인
어찌 되었던 2006년을 각설하고 2007년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지각을 하였고, 미천한 내 직업관은 2006년 12월31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우울함으로 가득했다. 한해의 첫날은 지난해의 모든 상념과 풀리지 않은 갈등만을 각설하지 않는 듯 했다. 올해의 첫날을 맞이하는 나의 자세가 오직 지난해의 삶만으로 각설될 수 없기에 하루를 사는 것은 지난 37년이 기억나지 않는 담담함과 무거운 시간의 속력으로 요약되어 달려오는 것을 온몸으로 받기 위해 단단하게 버티려는 신음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올해는 내년 이 시간에 각설될 38년의 순간들을 생각하며 힘을 쭉 뺀 한해를 보내는, 그야말로 가벼운 계획을 세워본다.
그러고보니, 정말 나에게 필요했던 영양제가 이 힘빼기 였지 않았을까, 한번도 힘뺀다는 생각이나 계산을 해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특별하지도 않으면서 특별한 존재로 기억되기 위한 가식적인 노력들을 하지 않으면 그 에너지를 그동안 느껴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곳에 쓸 수 있겠구나 까지 염두에 두지 말고 ... ... 가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까지 깔끔하게 끊어 보는 힘빼기. 사실 뒷부분은 다소 정치적이다. 게다가 힘뺀다고 생기는 에너지가 생체적으로 분량을 가늠할 수 없는 열정 같은 것일 테고 그것을 어디 다른 곳에 써야 한다는 염두 자체가 갈등이다. 완전연소되는 매카니즘을 만들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그 완성을 위한다는 명분 때문에 담보물이 필요해졌을 때, 그때 나의 자세는 분명 힘빼기의 본질과 다를 것이다.
어차피 내 인생은 그렇게 앞서 가지도 잘나지도 않았다. 다만 누군가가 내 인생을 과대포장해주는 것을 말리지 않은 것은 암묵적 동의와 같고, 그 동의 앞에서 과대포장을 더 깔끔하게 마감할 수 있도록 소스를 조금씩 떨어 뜨리는 행위는 마땅히 반성하고 비판 받아야 한다. 명예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에 대한 어떤 접점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행여 남들로 인해 키워진 나의 사회적 어떤 명예가 있다면, 그것을 적정하게 제한하지 않은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과장된 지위를 이용하려는 속셈으로 귀결지을 수 있다.
나는 매우 정치적인 인간이다. 개인에게 일어난 사건이 다른 개인이나 조직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결론을 내린다. 사건이 미칠 영향을 흘려 보내거나 이용하고 제한하는 활동을 함으로서 조직 내의 여러 사안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예측하고 관찰한다. 나는 이 모든 활동을 파워게임으로 규정하였고 그 동향을 예의 주시하여 이데올로기와 관계 없이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가치를 판단하고 분류하였다. 이 모든 과정에 나의 촉수는 온힘을 다하였다.
생각해보니 나의 인생은 대체로 사회적인 관점에서 지각생이다. 대학도 늦게 갔고, 군대도 늦게 갔다. 게다가 금융기관에서 조차 거래를 꺼려 하는 미혼인데다가, 이념적으로도 지각생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가열찬 관념보다는 더 배울 것이 많다는 낭만주의에 아쉬운 소리를 할 참이다. 지각생이니 많은 부분이 독학이다. 하지만. 부처가 아니니 깨닫지도 못했고, 공자가 아니니 고개를 숙이지도 못했다. 힘을 빼면 자연히 비워지고 뻣뻣했던 것들이 물렁해질지는 아직 모른다. 겨우 각설한 한해의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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