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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

2006/11/30 03:20 / 생활
하루에도 수백개씩 날아드는 정체 모를 트랙백을 지우며 글 쓰는 것을 잊고 머리는 공허 합니다. 제대로 읽지 않으니 머리에 고이는 것도 없고, 글은 익지도 않아 풋냄새가 납니다. 차리리 이렇게 잊고 트랙백이나 삭제하고 빠져 나가는 의미 없는 클릭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소멸하는 계절이 되고 해가 바뀌는 징조가 뚜렷하니 곳곳에서 정리하는 분위기가 사뭇 어색하지 않습니다. 크게는 올해 초에 맘 먹었던 책쓰기는 여전히 부표를 잃은 난파선이 되어 떠돌고 있습니다. 기어이 노년에 생각해봄직한 육각 창문에 짧은 커튼, 창문 밖으로 보이는 장독대와 살얼음 핀 식혜가 아니고는 제대로된 정리는 요원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것은 제 인생에 스스로 짊어진 굴레 입니다. 거창하지 않게 기어이 가지고 가야 할 욕심입니다.
올해 가장 잘한 일은 아무래도 시민단체 활동인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활동은 제대로 하지 않지만, 자원활동가라고 해주면 으레 힘이 납니다. 비록 스스로 정했지만, 차세대 진보 네트워크로서 발전시킬 '날개 인터네셔널' 프로젝트가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정을 미루고 어려운 개념들을 이해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지만, 간사님들도 열심이시니 잘 될 것 같습니다.
며칠동안 2006 웹어워드 코리아 최고 평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30개 사이트를 평가하고 일일이 평가글을 작성하고 드디어 자문위원까지 검토가 끝나 발표가 났습니다. 고백하건데 1000% 공평하고 공정한 평가를 했다고 자신할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조금은 압력을 가했는지도 모르고, 부당한 외압을 행사하려고 시도했었는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외압을 받는 내가 얼마나 잘 버티고 그것을 오직 스트레스로 승화시켰는지 자부할 수가 없네요. 그다지 영향력이 있는 위치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습관적으로 공정을 파괴하는 무리들과 섞여 있는 것이 싫어 마음속에 꾹꾹 담고 있었는데 강릉에서 폭발한 것 같습니다. 성질머리 하고는... 핑계거리를 구실삼아 새벽을 전속력으로 달려 오던 영동 고속도로에서 오래전 김규항님이 충고해주었던 의적 행세가 아닌가? 라는 말이 심장을 후벼 팠습니다.
기존 제도를 벗어나지 않고는 결코 이상향을 이룰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하는 심정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이런 다급한 심정에 현실적인 충고 하나가 매스가 되어 절개하고 고름을 짜고 봉합해버리는데 저녁 한나절과 소주 대여섯병이 필요하더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다운 기업,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를 버리고 노동자가 회사 자체가 되는 기업 한번 만들어 보자고 해 놓고 그동안 참고 기다려 온 시간을 겨우 이 정도에 해치워버리면 되겠습니까? 그도 취하고 저도 취하고 이모집을 전전하면서 다급했던 마음과 성질머리를 인사동 골목에 쳐 박아 두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그침이 있습니다. 그침을 안다는 것은 그때의 자세를 함께 생각하게 합니다. 나의 자세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살아 보임으로서 생겨 날 것이란 믿음에서 비롯되는게 아닐까? 아직도 살아 보임이란 태도가 부족합니다. 그안에서 잘 살아야지, 잘 해보아야지 하는 가열찬 마음은 의미가 없습니다. 먼저 몸이 그리할테니까요. 몸이 먼저 그리 하는 태도, 나는 아직 빈곤한데 화려한 것만 쫓는 가식에서 한껍질도 벗겨내지 못한 것은 아닐지.
2006/11/30 03:20 2006/11/30 03:20
DrunkenSTAR 이 작성.

훈훈한 비

2006/11/18 00:33 / 생활
오늘 그가 물었다.
술 끊을 수 있어?, 아니 못 끊을 것 같아, 친구들이 부르는데 안가면 서운해하지 않겠어?, 그렇겠지...
오늘도 술을 마시면, 전화라도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번쩍번쩍 기억을 놓아버릴 말을 할 테니 그게 너무 싫어서 오늘은 그 유혹들을 이겨 보았다. 색을 모두 삼킨 겨울밤을 지나치며 망설이는 마음을 꼭짜서 겨울 바람에 파닥파닥 내어 낼었다. 더러 술을 마셔야 겠지, 그동안 대게의 경우가 술을 챙기며 보낸 시간들이었으니 더러 술을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고, 하도 술에 절어 문득문득 킴스클럽에서 처분을 기다리는 자반 고등어처럼 될 수도 있는 경고에 대해 반성을 할 만큼 술을 좋아하지 않았던가.

겨우 한번 술 마시는 유혹을 이겨내고 보니, 만취해서 빠져 들었던 슬픔을 더욱 이겨내지 못했던 기억들이 생각난다. 술이 예찬 받아 마땅한 때가 지나고 나니, 생활을 부식시켜 가는 줄도 모르고 거꾸로 술을 예찬하고 있던 나의 뇌는 어느덧 빈집이 되어 갔다. 이상이나 동경 같은 것을 잃어 버린 것도 어쩌면 저 빈집 때문이 아닐까? 술을 멈춰 나라 경제를 일으키자는 거창한 서술을 생각한 것도 아닌데, 술을 한번 이겼다고 너무 거만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어찌되었든, 얄팍해진 마음과 구겨진 목소리로 만든 기계가 되어 술을 연료 삼을 까봐 덜컥 겁이 든 것도 있지만, 외로움을 달래던 훈훈한 비가 바뀐 연유도 있고 하니... 더러 실패도 하고 가끔 실수도 없지 않겠지만, 오늘 만큼은 많이 좋아 했던 것을 이겨내 보아도 좋다.
2006/11/18 00:33 2006/11/18 00:33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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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게으름

2006/10/30 00:54 / 생활

굳이 블로깅이 아니더라도 쓰는 일이 더뎌지면서 덩달아 읽는 일도 게으르다. 맑지 않은 머리속에 생각지도 않은 낯선 그래프가 요동치며 은유법을 잊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구석이 떨어져 나간 밀납 인형처럼 점점 머리속은 단단해져 가고 흉칙한 모습이다. 그나마 호흡하고 있는 생기는 그래프다. 세기가 오락가락 하는 싸이렌, 미래로 부터의 경고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기 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더딘 쓰기와 게으른 읽기 뿐만 아니다. 높은 하늘에 쭈그리고 앉을 수 있는 계단만 있으면 더 나은게 없다던 뼈들은 부실하게 삭아 가고 있는지 도통 움직일 줄 모르고 허리와 엉덩이에 의지하고 그냥 붙어 있기를 바란다. 쓰기와 읽기가 머무르면 반대로 사람이 하는 일이 지겨워지고 냉소하게 된다. 진보하지 않는 자들의 구석기적 머리속과 점점 주파수를 맞춰가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조용히 유감을 조롱하고 라면을 끓인다. 계란을 넣을까, 파를 넣을까, 둘다 넣을까, 인생이 이렇게 단순하게 요약된다.
하루만 게으르게 전화를 옆에 끼고 문명을 배달시켜 생체신호를 연장하기만 해도, 이 따위 신비주의에 침울해진다. 토인비가 그랬던가? 진보하지 않은 역사속에는 신비주의와 냉소주의만 있다고, 게으른 것들의 집합에서 깨달은 것은 인생을 요약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조직하는 것과 집합은 다르다. 게으른 것들도 조직하기 나름이다. 담배가 떨어져도 사러 나가기가 싫어 하루를 금연한다. 2주동안 계획한 이발을 미루고 장발을 정리하니 유행 비스므리 해진다. 이런 조직을 하고 나니 한결 생산적이 된다. 다시 오늘 아침이면 지겨운 사회적 조직들과의 부대낌을 알면서 견디려면 게으름의 조직이 필요하다.

2006/10/30 00:54 2006/10/30 00:54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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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hugs

2006/10/21 22:51 / 생활


게젤 샤프트적인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다른 개인으로 부터 소외되고 자본으로 부터의 축출로 모두 힘들고 외롭다고 하지요, 한번의 포옹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입니다. 잃어버린 사랑과 희망을 찾는데 거대한 계시와 반성 보다는 한번의 포옹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Jason Hunter 가 Free Hugs 라는 싸인을 크게 쓰고 거리로 나가 어떤 젊은 여성과 첫 포옹을 시작한 2001년부터 시작하여 전세계적으로 Free Hugs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a free simple hug 는 두 사람과의 짧은 교감에서 따뜻함을 얻고 그 따뜻한 색깔로 주위를 물들이게 됩니다. 위의 시드니에서 펼쳐진 free hugs 캠페인 동영상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거대한 담론이 필요 없고 다른 인종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들이 서로 포옹하는 것만으로 다름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며칠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캠페인을 했다고 하는데, 공짜로 포옹해드립니다가 아니라 자유롭게 안기, 자유롭게 안아드립니다, 등으로 해석해야 될 것 입니다. 종종 본질을 스토리로 망쳐버리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안아드립니다고 하면 누가 게젤 샤프트적인 사회 아니랄까봐, 1인당 천원이라도 받으면 돈이 될꺼라며 찌질거릴테니까요.

2006/10/21 22:51 2006/10/21 22:51
DrunkenSTAR 이 작성.

오름 기행

2006/10/01 06:26 / 생활

해안선은 볼만큼 본 것 같은 거만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8월에 처음 방문했었던 김영갑 갤러리의 환상적인 오름의 파노라마가 아주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오름에 올라 거창스럽게 뭘 얻겠다느니, 삶이 어쩌구 저쩌구 진지하게 고민할 생각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다만 3박4일의 짧은 일정동안 오름 여섯개(용눈이 오름, 새별오름, 따라비, 아부오름, 다랑쉬, 가메옥) 쯤은 오르겠다는 계획정도가 전부였다. 오름은 오르는 것보다 입구를 찾는게 더 힘들다는 유경험자의 충고는 첫날 부터 격언이 되었다. 김영갑 선생의 오마주인 용눈이 오름은 중산간을 가로지는 16번 도로에 연에 있는데다가 친절하게도 용눈이 오름 이란 돌명패까지 세워져 있어서 가장 손쉽게 찾아 오를 수 있었다. 가파르지도 않은데다가 상냥하기까지한 오름의 곡선을 따라 중간에 한번도 쉬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김영갑 선생이 오름의 아름다움을 담는데 파노라마 기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믿음은 용눈이 오름 정상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15미리 화각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부드러움에 한숨이 나왔다. 35미리나 50미리로 디테일하게 촬영하는 것은 오름의 태생적인 곡선을 잘라내어 지층에서 쏟은 내륙의 산과 평등하게 만드는 작업임을 깨닫게 한다. 특히 용눈이 오름처럼 정상에서 다양한 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오름에게는 치명적인 잘라내기가 된다. 멀리서는 잘자란 잔디처럼 보이는 초원은 거칠고 말과 소의 배설물 투성이 었다. 요리조리 피해 올라가도 어디 한군데 편히 앉을 곳이 없다. 삼각대를 펼치고 낮은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대체로 구름이라는 예보는 제주도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비가 올 수도 있고, 구름이 말짱히 걷힐 수도 있다. 다만, 지속되는 시간이 문제인데 오름 여섯개를 오르겠다는 계획이 발목을 잡는다.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도로에서는 몰랐던 바람이 으슬으슬 춥다. 어떤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높은 구름을 가리고 있는 낮은 구름이 한라산 쪽으로 밀려 올라 갈 수 있도록 해풍이 좀 더 불어줬으면 좋겠고, 이밥 태운 연기처럼 아랫 마을을 온통 덮고 있는 안개도 증발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내내 그런 시간은 오지 않았다.

두번째 오른 오름은 아직도 미스테리다. 아부오름이라고 생각하고 올랐으나 아부오름의 특징인 굼부리에 하트모양의 전나무 숲이 보이질 않았다. 용눈이에서 아부오름 방향으로 가다가 아부오름을 지나치고 착각을 했으니 칡오름이거나 민오름쯤으로 추측만 할 뿐, 여전히 아부오름은 아니다. 굼부리 주위를 솔나무가 곰보처럼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고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용눈이 오름에서보다 제법 시원하고 재잘거린다. 풀벌레 소리 보다 바람이 먼저 얘기를 걸고 지나치고 다시 다른 바람이 와서 전혀 새로운 얘기를 부치고 사라진다. 하늘을 쳐다본다. 바람은 구름을 밀어낼 얘기는 하지 않는 듯 했다. 도리어 성산쪽을 둘러 싸고 있던 구름 뭉치마저 중산간쪽으로 천천히 몰려 오는 듯 했다. 결국 아부 오름은 찾지 못했다. 용눈이 오름에서 너무 오래 지체했고, 그 이름모를 오름에서 내려와 농로를 잘못 타고 들어가는 바람에 길을 잃고 헤맨 시간까지 해서 다른 오름을 오르기엔 무리였다. 구좌읍에서 어떤 농로를 가로 질렀는지 모르겠지만, 벗어나고 보니 표선면이었다. 점심을 김밥으로 해결한 탓에 당케식당의 전복죽도 간절했지만, 일단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의 위치와 입구 정도만 파악해놓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따라비는 표선면 가시리 산 62번지이고 표고 342 미터, 오름의 할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그 자연미가 빼어난 곳이다. 하지만, 입구는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이 편치 못해 당케식당의 전복죽도 잊어 먹고 애월로 돌아와 버렸다.

마음이 급했다. 아부오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송당리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부오름을 앞오름으로 표시해 놓은 것을 알았지만, 입구라고 생각한 곳은 목장 입구였고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오름 주위를 몇차례 돌아 봤지만 도로는 점점 오름과 멀어지기만 했다. 목장 입구 건너편의 작은 농로를 따라 들어갔다.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는 길이 나왔다. 장비를 챙기고 숲을 걸어 올라가기로 작정했다. 가지런히 농로를 따라 둘러쳐진 삼나무 숲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오름을 가리고 버티고 있었다. 숲을 따라 한참을 걸었지만 뚫고 갈만한 오솔길 조차 내주질 않았다. 숲 건너에는 키만한 억새풀이 모험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듯 흔들거렸다. 삼나무 숲을 간신히 지나고 삼각대를 꺼내 억새풀을 휘젓자 마자 꿩 한마리가 푸닥거리를 했다. 간신히 지나왔다고 생각했었던 삼나무 숲을 달음질로 건너오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부오름이 저항을 하고 있었다. 나약한 도시인이란, 저항을 인정하는 것도 빠르고 쉽다. 아무렴 자연인데, 저항한다는데, 아직 오름이 많다, 합리화는 지적활동이 아니라 자기 위로다. 모험심은 더더욱 아니고... 카메라와 랜즈도 놀랐는지 여기저기 글킨 자국이 보인다.

다랑쉬 오름은 비교적 쉬웠다.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장비를 오르 내릴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았는지 계단이며 잡고 올라갈 수 있도록 밧줄을 당겨 놓았다. 그래도 하필 이렇게 경사가 가파른 쪽에 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힘에 겨웠다. 마지막 50여 미터를 남기고는 뒷굽이 바닥에 닿질 않아 거의 까치발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다랑쉬 오름은 높이 만큼이나 굼부리의 깊이도 상당했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 동쪽으로는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중산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날씨는 여전히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대체로 구름, 정확한 예보였다. 안개는 오늘도 새끼들을 낳았는지 마치 연못에서 뿜어져 나온 는개를 광불케 했다. 뭉쳐라 뭉쳐라 바람을 협박에 보았으나 굼부리 안에서 소용돌이 칠 뿐이었다. 다랑쉬의 굼부리 에는 돌탑 몇개가 쌓아져 있었다. 사람이 오르 내린 흔적이 있었지만 내려가진 않았다. 저 아래 깊은 바닥이 왠지 무덤처럼 보였다. 4.3 사건때 민간인들이 오름 굼부리에 숨었다가 발각되어 그 자리에서 학살되었다는 얘기가 진동되어 떨려 왔다. 삼다도, 눈물이 뭉쳐 만든 바람이 많고, 선지피가 마르고 엉켜 붙은 검은 돌이 많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자들을 모두 죽여 여자들이 많고... 그래서 삼다도라... 세월이 변해 이제 그 정상에서 칼라풀한 패러글라이딩을 한다. 나처럼 혼자 여행 온 니콘 유저가 삼각대를 펼치고 촬영 준비를 한다. 그와 날씨 얘기며 오름 얘기를 하다가 다랑쉬 오름 앞에 있는 아끈 다랑쉬 쪽이 일품이긴 한데 날씨가 이런데다가 한 두사람 오르는 사람도 없어서 좀 심심하다는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내려갈 참인데 내가 아끈 다랑쉬에 오를 테니 찍어 보라고 역시 약속 같지 않은 인사를 하고 서둘러 내려 왔다.

아끈 다랑쉬, 다랑쉬 오름의 동생 겪인 이 오름은 높이며 곡선이며 굼부리며 보잘 것이 없다. 다만 아끈 다랑쉬의 정체는 풀벌레 소리에 있었다. 얕으막한 초원 머리를 스치는 바람에 따라 풀벌레 소리가 눈을 감게 만든다. 새근거리는 중단 없는 홀림으로 모든 소리 조차 유혹하고 만다. 사람의 귀는 그저 대책 없는 포로가 된다. 드문드문 떠 있는 개망초꽃의 머리를 손바닥에 스치며 걷다 보면 곤드레 만드레 취한 파열음이 저도 모르게 입안을 맴돈다. 등산로가 없는 오름 그대로의 소리가 들린다. 아끈 다랑쉬 오름에서 굳이 사방을 둘러볼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매년 들꽃 축제가 열리는 새별오름은 제주도의 오름중에서 가장 유명할지도 모른다. 그 유명세 때문인지 허름하지만 오름 입구에 관광단지도 자리잡고 있고 주차장도 있다. 축제는 10월말이다. 지금은 입구에 방목하는 말들이 진을 치고 있을 뿐이다. 시간은 5시30분, 표고 519 미터로 꽤 높고 중산간에서 벗어나 애월읍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비교적 서쪽이라 일몰 시간을 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구름이 문제여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직 축제까진 한참 남아서 인지 길이 있음직한 곳에 키만한 억새가 온통 뒤덮고 있었다. 밀림용 장칼 따위가 있을 턱이 없고 무턱대고 손을 내저으며 걸어 갔다가는 거미줄에 구속되고 만다. 작은 나뭇가지를 앞장 세우고 걸어가면 그나마 거미줄을 걷어 내는데 도움을 준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새별오름 정상을 오르지 못한 이유는 야생 노루 때문이었다. 키만한 억새풀 숲에서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뛰어 다니더니 괴상망측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떠나질 않는다. 제 영역이란 것을 알릴 참인지, 그 소리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질 않았다. 새별오름에서 두려움을 가진 것은 내 다리 밖엔 없었다. 한발 한발 억새풀이 꺾이는 소리가 날 때마다 펄쩍펄쩍 뛰어 다니다가 괴상한 소리를 내고 몸뚱이는 보이질 않는데 가까운 숲이 흔들거렸다. 노루의 사냥감이 된 듯한 서늘한 느낌을 받아본 사람이 있을까 싶다. 역시 아부오름의 저항에 순응했던 것처럼 새별오름의 거샌 저항에 힘 입어 중턱에서 아직 덜 자란 억새를 촬영하는 것으로 오름 기행을 접었다. 며칠후엔 수천명의 사람들 때문에 어차피 제 자리를 내주어야 할 참인데 나까지 나서서 휘둘러 쫒아 보낼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내 자리에 안주해 왔을 때가 있었고, 남의 자리를 새로운 것이란 허울 좋은 핑계로 차지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자리거나 처음 발견한 것은 없다. 자연이 있었거나 사람이 있었거나 했을 터, 그 자리를 차지 했을 때거나 이처럼 잠시 방문 했을 때에 조차도 경외하고 겸손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 자리는 이미 자연이나 사람이 견뎌낸 시간과 역사가 있을 테니까...

2006/10/01 06:26 2006/10/01 06:26
DrunkenSTAR 이 작성.

글쓰지마라...

2006/09/13 02:37 / 생활

글 쓰지마라.. 단한자라도...
몸 그 자체가 역사다.
역겹다.. 니들의 쓰레기가...

2006/09/13 02:37 2006/09/13 02:37
DrunkenSTAR 이 작성.

매미가 다 죽었다

2006/09/05 18:01 / 생활

이런 찬란한 하늘을 견디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미쳐 풀지 못한 수학문제를 남기고 여름이 갔다. 슬픈 소설을 읽고 있던 한 소녀는 이제 슬픔을 잊은 것일까? 한참을 울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잠을 잘 잤다. 책을 덮고 수학문제를 잊고 소녀를 잊고... 일이 많은게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는 약속이 너무 많아 책을 덮고 지낸지 꽤 오래됐다. 그러다보니 생각할 시간이 줄고 고민거리가 없어 진다.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지식에 관한 호기심을 거두게 되면 자연히 이성을 잃고 감정을 쌓게 된다. 계절이 바꾸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스쳐가는 것에 극진한 사무침이 생긴다. 그러므로 나에게 잠을 잘 자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것일까? 따위의 고민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잘 살아서가 아니라, 잘 사는 것이 오직 남과의 비교 우위로서 쓰임새의 척도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잘 살아야지, 치열하게 살아야지, 따위를 다짐하며 그렇게 살아 보이는 것이 고작 돈 잘 버는 방법이고 돈 잘 버는 방법을 아는 사람의 편에서 수다를 들어 주는 것으로 귀결된다. 가을을 견디는 사람들의 주제가 온통 소비의 비교우위이다 보니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대체로 제도가 그렇게 만들었다, 제도의 피해자라는 지난한 담론에 빠지는 개인들의 주제는 알몸으로 역사관의 부재를 드러낸다. 역사의 일반화라든가, 역사의 교훈 같은 진부한 계몽은 제껴 두더라도 역사가 행하는 진보의 사명이 제도의 구조화가 아니라 개인의 사명으로 부터 진행되었다는 가치관 정도는 있어줘야 한다. 역시, 먹물들의 계몽적 사명인가?

계몽이라고 하면 치를 떠는 진보주의자들의 누에는 한철 울고 마는 매미의 삶에서 벗어 나야 한다. 역사에게는 계몽이 희망이다. 역사가 배려하는 것은 심각한 사명이 아니라, 사명을 가진 자의 계몽에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계몽하겠는가? 는 고민은 진보주의자들의 스킬을 요구하게 되고 진보주의자들의 진보는 스킬의 업그레이드에 집착되어 있다. 더 편집적이어야 한다. 진보는 천천히 가다가 결정적 순간을 맞게 되고 그때 필요한 것이 스킬이다. 매미는 다 죽었는데 무슨 소린가 싶다. 글도 그치고 생각도 그치고... 다시 독서가 필요하거나, 끼니를 거르지 않거나... 취미와 숭고의 차이이다.

2006/09/05 18:01 2006/09/05 18:01
DrunkenSTAR 이 작성.

강의를 제의 받고..

2006/08/13 03:32 / 생활

사실, 한 시민단체의 간사들과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기쁜 일이다. 물론 사회과학이나 현안 문제에 대한 강의일리는 없고 다만 스스로야 자부심을 가질지 모를 나의 이력이나 경력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없는 단체에서 흔히들 떠도는 평판이나 소문만으로 강의를 제의 했다는 생각을 했을 때, 오래간만에 강의 나들이를 하는 긴장감 보다는 부담이 한층 더 했다. 이를테면, 나와 같은 무명의 현장 기술자들(Field Players)은 현장에서 일하고 배우고 써먹는 과정에만 종사해도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을 경우가 많다. 신문에 이름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도 아니고 자자한 명성 따위를 구사할 저서는 꿈에라도 악몽이 될 지경이니 말이다. 따라서 나를 통해 알겠다는 인터넷 트랜드와 발전방향이나 인터넷과 시민사회활동에 대해서 2시간 30분의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그들의 의도가 무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에게도 결코 무모한 결론이 아니다. 그래도 어느 대학에서의 특강이나 컴덱스 코리아 따위에서 컨퍼런스 스피킹을 한 이력을 설명했던 것은 간만의 강의 제의도 제의지만, 단 위에서 잔득 긴장하게 될 온갖 세포들의 측은한 바램들이 한창 일을 끝내고 지쳐 있는 최근 나의 여러 상태들에 자발적인 의욕 같은 것을 주입할 수 있는 계기라고 말하는 듯 했기 때문이다.

강의 준비를 하면서 2시간 30분이란 시간은 적잖은 체력과 성대의 울림을 요구하겠지만, 문제는 자료이다. 게다가 인터넷 트랜드라는 주제는 몸으로는 알아도 머리로는 알 수 없는 막연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일전에 개발 방법론이나 프로젝트 관리 방법론에 대한 구체적인 강의에서는 전문적인 현장이나 이론적이며 지적인 얘기들을 가감 없이 쏟아 내어도 되었지만 트랜드는 시계열에 관련을 짓지 않을 수 없다. 과거를 제거하더라도 최소한 현재의 사례와 미래의 근거를 짚어 나갈 필요가 있다. 문제는 알려진 현재의 객관적 현상들을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견해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객관적 현상을 충실히 조합하기 보다는 파편적인 현상들을 조합하다가 주관적인 견해를 그 깨진 조각에 끼우려는 습관적인 나의 지적 생산 활동 때문이다. 자료의 수집과 분석을 통한 지적 호기심 보다, 관찰과 통찰에 의한 유레카를 선호하는 경향이 이번에도 어김 없이 양적 자료를 생산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물론 양적일 필요가 있겠는가마는, 2시간 30분 동안 열강이라 불리우는 강의 활동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간의 짧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조금이나마 버티게 해주는 것이 자료가 된다. 일단 자료에 몰입한 수강자들의 또렷한 눈동자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끔은 나의 견해가 두려울 때가 있다. 나의 견해에 대해서 내가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분석적인 자료를 통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관찰에 있었을 경우이다. 게다가 이러한 견해를 관철 시키기 위한 일련의 활동들을 포함하여 나의 견해에 몇몇 사람들이 변화를 생각하고 변화를 실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에서 행여 민감한 정책 설정에 나의 견해가 조금이나마 영향을 주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강의 마지막에 트랜드가 이러하니 우리가 인터넷에서 시민사회활동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토론을 해야 하는 과제까지 있으니 압박감이 이내 후회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도리어 반동하는 무모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직도 나의 견해에 주저함이 있다면 그동안 나의 인생이 너무 초라해지지 않는가. 게다가 견해가 없는 오늘과 이 땅에서는 더더욱 어떤 견해에 작은 용기 정도는 있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견해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견해를 창조하는 것이냐 아니면 발견하는 것이냐는 해묵은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이다. 다시 말해 아직은 견해에 대해서 알지 못하지만, 견해가 진리일 수도 없지만, 저기 어딘가에 알고자 하는 답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견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2006/08/13 03:32 2006/08/13 03:32
DrunkenSTAR 이 작성.

권한다

2006/07/10 22:11 / 생활

작동할 수 있는 가식을 모두 동원하고서도 아쉬움이 남는 것이 프로젝트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번엔 그렇지 않다. 나이가 들어가서 일까? 익숙해서일까? 아니면, 동원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소진해서 일까? 비슷한 말이지만 잊혀지는 떨림과 잃어가는 울림이 공존하면서 어느 것도 침묵으로 대변하거나 전가시킬 수 없는 첨예한 갈등들의 일시적 집합체가 이제 해체되려 한다. 때론 남몰래 기도하던 '제발..' 그날이 충분한 검증 없이 리더쉽만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독재인가, 애써 이 책임의 끝에 그대들을 끌어 들이지 않겠다는 모티브가 어느날은 흐믓했다가도 다음날은 온갖 부담의 축으로 톱니바퀴질을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촉각촉각 다가오는 제발.. 그날에 손가락이 거무튀튀하게 변하는 동료들의 피곤한 피부를 본다. 규명할 수 없었던 수많은 갑의 논리에 첨삭 없이 움직여준 을의 뼈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소리를 낸다. 외상이 없다고 하여 정신 노동이고 있다하여 육체 노동일 수 없겠다. 어느쪽이나 노동임금에 응당한 노동, 공평하고 사심 없는 노동을 추구해야 하는 가치관이 쉬울리 없지만 이제는 아낌 없이 노동했다는 것으로 삼아도 되는 위안을 권한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같은 노동을 하는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보는 사소함을 권한다. 내가 노동자라는 정체성만 가지고 있으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연대는 어렵지 않다.

오늘 행동을 하던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장마와 태풍이 소리치던 동국대역에서 그 스피커를 침탈 당했다. 소리를 빼앗긴 연대에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권력과 권력의 유령들. 죽을 줄 알면서 가는 길에 기꺼이 꽃잎을 깔아 놓는 집권세력과 이를 지켜보는 극우보수의 구경꾼들. 불순한 나의 피가 붉은지, 제 색에 못이겨 부글거리다가 지려 밟힌 꽃잎 위에 후두둑 떨어지는 꿈을 꾼다. 동료들의 손이 아직 노동중이다.
이럴때면, 세상을 확인하는 작업에 더욱 강력한 편집증을 느낀다. 어김없이 놓칠 수 밖에 없는 기회가 꼭 노동이 채 끝나기 전에 시작했다가 노동과 함께 마치는 건 안타깝다. 세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분께 아래의 토론을 권한다.

2006 전쟁과 혁명의 시대

2006/07/10 22:11 2006/07/10 22:11
DrunkenSTAR 이 작성.

장마

2006/06/28 21:42 / 생활

여름, 오후 1시에 떠나는 KTX 에 표가 동이 났다. 도시의 감성으로 낮은 구름이 내려칠 듯 말듯, 장마는 여전히 꾸물거리고 있다. 1시 30분 표를 사고 나와 담배를 피웠다. 쓰고 달고, 몸이라고 구색을 맞춘 장기들이 니코틴을 받아 들이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나이가 실존에 간섭하는 범위가 그 모양새만은 아닐 것이다. 행색이 추레한 50대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조금 전부터 나의 흡연을 확인하려는 듯 바지 주머니에 시선을 꽂고 있었다는 것 쯤은 그가 2개피의 담배를 꿔 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는 추레했지만, 내가 담배를 꺼내면 그가 다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부러 5천원 신권을 준비하고 있었던 동정심 같은 것은 여름 오후 1시 KTX 와 함께 장마속으로 출발했다.
1,500인 선언과 박종철 인권상 수상에 힘입었다고는 하지만, 전단지 뒤에 얼굴을 디민 영화인과 정치인들의 지지글은 마치 새로 개봉될 영화의 30자 단평 같았다. 1000만인 서명을 받는 탁자에 다가갔더니 전직 승무원이며 어디서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그가 의식적인 호들갑을 떨면서, 얼마나 외웠을까?, 지지 서명을 가늘게 호소했다. 지난번에 서명 했는데 또 해도 될까요? 예측하지 못했던 나의 물음은 그를 비롯하여 옆에 있던 동료 까지도 나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이름을 쓰고 주소를 반쯤 쓰던 대학생만이 허리를 세우지도 고개를 올리지도 않고 하던 서명을 할 뿐이다. 1명이 중복되어 구백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구명이 되면 어쩌나, 그래도 될까, 그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짧게 동요했지만 이내, 한참을 살지 않고 견뎌왔던 자 만이 낼 수 있는 눈빛을 막막한 내 눈에 쏘아 댔다. 고맙습니다! 이거라도 읽어 보세요, 그는 전단지를 내민다. 힘내세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가방 1KG, 가방 안에 노트북 2KG, 잡다한 부속품들 1KG, 다이어리 1KG, 역사란 무엇인가 0.7KG, 대략 5.7KG 이 오른손 뼈마디에 매달려 달각달각 소리를 낸다. 파이이야기 0.7KG 과 반도에서 나가라 0.8KG, 0.8KG 도합 2.3KG 을 사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억제는 순전히 무게 때문이었다. 소설 다운 소설이란 감수성을 잃어 버린 뇌가 소비 전파를 내지 않은 탓도 있지만, 여전히 읽을 꺼리가 숱하기 남아 있는 방켠의 수북스러움이 최근 결심한 편찬 수준의 작은 글쓰기의 결과 또한 저 수북스러움과 동질감을 느끼는 터였기에 읽는 것보다 사는 것에 두었던 비중을 바꿀 수 있었다. 그냥 그저 써내려가기의 적은 무게를 편찬 수준까지 끌어 올려 보려는 특정 근육들의 쓰임은 아직 적당히 단단하지도 보기 좋게 기름칠을 하지도 않았다. 그럴때면 더 읽어야 겠다는 생각뿐이다. 역시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들에 대한 읽음이 당분간 지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훼방은 그 고된 고독보다 달콤하고 쌉사름하다.
이를테면, 어제 밤 11시에 반포에서 인사동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길에서 만나지 못했을 참여연대 C 간사와 비교적 명료한 관계가 되게 해준 쌉사름한 훼방을 마다할리 없는 술마시며 연대는 본능적으로 그 훼방 대오를 쫓아 가는 듯 했다. K 간사는 서러운 투쟁에 대해서 얘기해줬고, 나는 의리 없는 자살의 추억을 리바이벌 했다. 나의 이야기는 말해도 말해도 담즙이 나오는 부르조아를 닮아 있었다. 설명되어 질 수 없는 닮아 감이 싫어서 다시는 리바이벌이 없다고 다짐했지만, 내 얇은 관계는 허락치 않았다. 나의 작은 글쓰기를 스스로 소시민의 개화로 설명할 채비를 갖추었던 허술함도 한몫 거든다. 장마가 오려나 보다, 가슴이 따뜻하고 발이 젖는다.
장마가 오가면 여름이 아니라 가을이던 순진한 계절 터울, 그 하늘과 바람이 마냥 좋았던 지난 일요일의 삼청각에는 내가 그동안 비난했던 대중들이 좋은 것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충동이 오직 두가지로 압축된 시간을 거슬러 착지한 곳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두 가지 충동 중 독서는 이곳이 최고의 환경을 주겠다며 히죽였던 나의 비열함을 털어 내지 못하고 1시30분 동대구행 KTX 에 오른다. 10호차 1A 좌석에 역사란 무엇인가 를 던져 놓고 플랫폼에서 짐짓 여유롭게 담배를 피운다. 아까 그 추레한 사내도 남은 담배 1개피를 피우고 있는 중일까? 한국철도공사 서울지부 건물이 뿌옇다. 삼청각은 보이질 않는다. 눈이 방향을 훌터가지만, 오염된 안개를 뚫을 수 없었다. 답답한 안개, 담배갑속에 담배들이 널널해지기 위해 나의 폐는 얼마나 고되었던가, 그 사내는 내 폐의 은인이다. 담배값을 올리라는 유시민은 내 호주머니를 탐내던 그 사내의 눈빛일 뿐, 그 사내는 빌려 보이면서 나의 은인이 되었다. 나는 담배를 끈다. 다시 일터로, 누군가는 부당하게 빼앗긴 그것을 찾기 위해 맨끝에 홀로서서 시린 눈으로 서명을 받고 누군가는 가기 싫어서 발뒷굽에 꽁초를 지진다.
역사란 무엇인가, 60페이지까지 두번을 읽었지만 홍신문화사의 번역이 형편 없는 것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이런 예의없는 문체란, 30페이지 정도로 조망 가능할 정도가 되니 졸음이 온다. 대게의 경우 충동을 이긴다. 하지만 KTX 를 50번쯤 타고 생긴 실증적인 경험에 의하면 KTX 에서의 졸음은 피하는 것이 좋다. 짧은 시간과 안락하지 못한 좌석의 섬유가 사타구니를 조여오기 때문이다. 정신을 소멸시켜서 만들 휴식은 육체를 불편하게 만들고 다시 돌아온 정신이 급작스럽게 두통을 호소한다. 이것이 KTX 에서의 졸음이다. 그래서 역사란 무엇인가, 묻고 답해야 하는데 산만한 조사와 부사의 쓰임으로 인해 방켠에 두고 온 계간 창비 132호나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의 표지가 솔찮이 오버랩된다. 많이 읽는 것은 많이 쓰는 것보다 어렵다. 나의 방켠이 그것을 증명하며 미래와 소통하고, 내가 물려 받을 아버지의 보수적인 서재가 과거를 끌어 온다. 미래는 나에게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벌써부터 경고를 하고 나선다. 나는 그 울림을 바닥에서도 천장에서도 듣는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처럼 무의미한 질문을 삶 속에서 건져내어 속절 없는 인생들이 벌거숭이로 뛰어 다니는 해수욕장에 쳐 박어 놓고 나니 갯뻘의 그것처럼 구체성을 띤 생명들이 간신히 숨을 쉰다. 짐짓 모른체 살아 왔던 이웃들의 구덩이와 개화되어야 할 의식의 껍질과 부서지고 트여야 할 사회의 뚝이 소시민에게 시민으로 살아야 할 세상의 모든 예언으로 다가 온다.
하지만, 다짐하기에 나는 너무 낡고 너무 얕다. 유행가를 빌려서 세상의 소란스러움과 등을 맞대었던 나의 친절한 복종이 이 세상의 황사 바람이었고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잡음이었다. 나의 말미에 들어 찰 성찰의 시간에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이 정치적이며 세계적인 폐배의식과 오만에 두려움 없이 읽고 쓰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인간성을 호주머니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계속 의문한다. 그리고 충동한다. 이 장마가 차라리 아주 길었으면 좋겠다. 추악한 도시와 자본주의자들이 바라볼 감상 어린 노을을 덮고, 지상의 꽃에게 비를 뿌려 줄 수 있도록, 그동안 그 비 안에서 나는 나를 끊임 없이 배반할 것이다.

2006/06/28 21:42 2006/06/28 21:42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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