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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수양이 부족하든가, 배움이 모자른 탓이다. 나는 무지에서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책 몇자 읽었다고, 시민단체 사람들과 술 몇사발 먹고 다닌다고, 바쁘니까 기부나 좀 한다고, 우쭐대는 시건방을 떠는 것은 아닌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모두 즐겁지 않은데,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 속절 없는 글귀들과 유희를 나누는 것은 아니었던가?
여전히 명품 신발을 신고, 고집스럽게 순대국집에서 소주를 마신다고 계급이 바뀌는가 계급을 이해하는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작정할 수도 없는 우리의 진실한 모습 앞에 서있을 수 있는가?
정말 알아야 할 것들을 내게서 떨어 내면서 잃어 버리려 노력했고, 잃었던 것 마저 잊으려 노력하던 나는, 그렇게 떨어져 나간 나의 울림을 들으려 했던 적이 있었던가?
내게 강력했던 것은 무엇인가? 오직 기득권을 줍기 위해 부르조아 하려는 생각과 행위만이 강력하지 않았던가? 그런 나의 인색함이 사회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프로페셔널이라든가, 지위라든가, 권위라며 누구에게도 서운하게 대접 받을 수 없다는 듯 체면 차리던 모습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볼 줄 아는가... 나는 무지에서 너무 멀리 와 있지 않은가..

[전태일통신]나는 무지하지 않은가..

2006/06/22 19:30 2006/06/22 19:30
DrunkenSTAR 이 작성.

무슬림 후세인씨

2006/06/01 11:58 / 생활

이슬람교 서울 성원의 후세인씨는 우리말을 잘한다. 마침, 아스르(오후예배)를 끝내고 나오는 후세인씨에게 예배당 안을 구경시켜달라고 했다. 이슬람교의 사원을 영어로는 모스크라고 부르지만, 아랍어로는 마스짓이라 부르고 경건함을 기초로 하지만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신자들이 모여 사는 얘기를 하며 서로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하루에 예배를 5번하는데 예배에 걸리는 시간은 보통 5분 정도다. 마스짓에 나오지 않더라도 카으바(아담에 의해 건립된 제단,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으며 마스짓 내부의 예배 방향은 모두 카으바가 있는 쪽을 향한다.)가 있는 방향으로 각자 있는 곳에서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 한다. 이슬람교는 흔히 남녀를 차별하는 종교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예배당에서 남녀가 예배를 보는 장소가 달라서 생긴 오해이거나 서방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교를 다양한 종교적 자유로 보지 않고 충돌의 대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후세인씨는 말한다. 후세인씨는 예배당에서 남녀가 따로 예배를 보는 이유는 다른 종교와 다르게 예배간에 신자와 신자간의 간격이 비좁고 절 등을 하는 움직임이 많아 서로의 신체가 닿아서 생기는 불쾌감을 없애기 위해서지 다른 이유가 있지 않다고 한다.(그럼, 현실 속의 여성을 차별하는 부르카 같은 것은 어떻게 설명 되어야 하나?) 게다가 다른 종교보다 휠씬 더 양성 평등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사람을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보지 않고 영혼 그 자체로 보기 때문에 젊음과 아름다움이 사라진 육체에 대해 감성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영혼 자체는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 한다. 특히, 성직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자와 하느님이 일대일로 만나 기도하는 종교라고 한다. 그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호메트는요? 그는 단지 하느님의 말씀을 최초로 설교한 자이지 경배의 대상이 아니란다. 기도는 오직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지 설교자나 예언자에게 하는 의식이 아니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후세인씨에게 그 유명한 '후세인' 이라는 이름 때문에 난처한 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후세인이란 뜻은 '아름다운 생각을 하는 사람' 이란 뜻이라며 그냥 사람 좋게 웃어 보인다. 금요일 설교 때 오면 좋다고 추천해주었지만, 사정이 사정인지라 토요일 아스르 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뭔가 현실과 괴리되는 듯한 설명인데, 유일신을 믿는 건 이슬람이나 개신교나 마찬가지고 유일신의 숭배는 차별과 차이에 대해 정리가 안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슬람교 서울성원

2006/06/01 11:58 2006/06/01 11:58
DrunkenSTAR 이 작성.

병나다

2006/05/29 20:49 / 생활

2박3일동안 술을 마셨더니, 병명을 알 수 없는 병에 쉽게 걸렸다. 이제 이 정도도 못 버티는 구나 싶었는데 좀 심했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가르치려 들지 않고 함부로 남의 인생에 끼어 들지 않는 부족한 사람들에게서 부족한 내가 배우고 알아가고, 무엇보다 억지로 손목을 끌어 깃발을 들게 하지도 않으면서 나의 한발작 한발작 문턱을 넘는 조심스러움 탓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새벽 꼭두서니 빛을 맞으면 이제껏 토해놓은 온갖 담론들이 뱀파이어의 몸뚱아리처럼 분해되어 날아간다. 지금부터 아침을 맞이하는 이웃들을 위해, 그리고 다음에 만나 또 같은 담론을 꺼내어도 새벽까지 토론할 우리들을 위해, 날아간다.

낮술, 대담해졌다. 도봉산에서 생두부에 막걸리로 브런치를 흉내내며 대낮 날강도의 대담처럼 꺼리낌이 없다. 더군다나, 누구 들을까봐 눈치 씀씀이가 쓰이는 대화에는 전통적인 술법보다 신묘한 갑자를 발휘한 낮술을 권할만 한다. 하지만, 압구정이란 곳은 도무지 소스라치는 소나기와 낮답지 않은 어둠에 낮술을 할만한 곳이 못된다.

짝패를 보기 위한 낮술이 덜 된 탓도 있고, 사명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가볍게 안국동 사막으로 스며드었다. 동갑내기 주인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도 좋고, 원룸 주방 같은 데서 내오는 맛없는 참치김치찌게도 그런데로 봐줄만 하니까, 그 스산한 골목을 찾는다. 무엇보다 도기다시 계단에 멋대가리 없이 발라놓은 타일을 볼때마다 앙금이 스며들고 상념이 침잔하기에는 이만한 데도 없다는 생각이다. 진짜 사막에 대한 눈물나는 추억 같은 것을 상상하지 않아도 멀리 바람이 바람끼리 부닥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를 그런 날이면, 실연한 사내가 꾸역꾸역 노래 두곡을 부르고 홀연히 사라지는 그런 곳, 누군가 지나다가 생각없이 찾아 들지 못하게 맨구석을 차지한 사막은 그냥 그대로 가슴 시리다. 이곳을 알게 된 것도 술자리 좌파를 못내 미안해하는 이 친구 덕분인데, 청계천 5가에서 전태일 동상에 제사 지내고 서로의 동판에 막걸리를 붓자는 약속을 기어이 술마시기 2박3일째 되던 날 지켰다.

다 잊어 버려야 편안했던, 나의 꿈을 대신했던 인스탄트 식품들, 멀어져가는 사랑들, 애써 무심해버린 식구들이 쉬이 부패하지 않던 것처럼 그렇게 타박을 해도 온전히 안녕한 내 글쓰기를 시작해야 겠다는 다짐은 잊어 버리지 못해 불편하다.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고 다 해낼 수 있을까? 그렇게 2박3일을 견디고 건조한 병에 걸렸다.

2006/05/29 20:49 2006/05/29 20:49
DrunkenSTAR 이 작성.

노래를 불렀다

2006/05/13 13:34 / 생활
인사동 '천강...' 에서 사람들과 술에 취해 낮게
노래를 불렀다.
소금인형, 사랑하게되면...
탁자에 마주 앉아 우리는 낮게
노래를 불렀다.


탁자에 앉아 얼굴을 보고 노래를 부르면
금새 그 사람을 많이 알게 된 것 같아 진다.
그 사람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것 같아 진다.


브라운관에 뜨는 가사를 보고 부르던 노래는
이제껏 노래가 아니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낮게
노래를 불렀다.
우리 마음이 섭섭해진다. 그래서 그리워진다.
우리 마음이 그렇게 착해진다.
2006/05/13 13:34 2006/05/13 13:34
DrunkenSTAR 이 작성.

내가 한국보다는 대한민국으로 즐겨 불리우는 한반도의 남쪽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은 것이 설령 공부를 못해 자꾸만 떨어지는 시험과 충분히 연관성이 있었지만, 가끔은 행운, 하지만 총체적으로 불행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 도피 유학이 실상 당시의 우연이 아닌 운명이었다면 내 인생에 있어서 비록 몇 번 없는, 없을, 설명 가능한 운명이 아닌가 한다. 나이가 들면서 어떻게 살아야 겠다며 특별할 것도 없는 생각을 하게 되면, 기필코 내 제도권의 삶을 극복하고자는 의지 때문에 스스로 헐거운 무장 운운하며 자발적인 갈등을 유발한다. 남자가 36살이나 되었는데 늙으신 부모님 챙기는 것은 소홀하면서 홀트아동복지회다, 시민단체다, 고래다, 달마다 기꺼이 호주머니를 열어주는 모습에 혀를 차는 낯익은 동시대인들에게 힘껏 적도의 열정 같은 주장을 하고픈 갈등의 반동에 휩싸인다.


통계를 빌어 한반도의 남쪽에서 가기 싫은 곳을 가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온 남자가 36살이 되면, 키 2개, 통장 2개, 보험 증서 2개가 생긴다는데 실은 나를 그 범주안에 넣는다면 티도 안나는 기부는 죄의식에 대한 면죄부일 수도 있고, 자본가의 동정어린 적선으로 본다한들 무엇이 다르다고 강성 외침을 지를 수 있는 적절한 논리 보다 변명의 외침을 펄럭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기득권과 권력을 가진 자를 비판하는 일갈 현안의 통찰을 즐기기 시작하고, 사회와 역사에 책임감이 없고 도덕을 뽑아 까마귀 밥을 준 기득권자들과 인간이 그대로 공산품이 되는 곳에서 흠뻑 적셨던 정신에 감성의 진정성이 있었을까.


키도, 통장도, 보험도 없는 학생이었다면? 운동의 역사가 보여주듯 이념과 행동이 곧 진정성이 아니었겠는가, 나는 분명 그 운명을 만회하려는 36살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도피는 학습부진아의 부적응이 아니라 안전한 이념과 예상된 강성에 대한 격리였고, 이 설명 가능한 운명이 내 상념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한다.


현안의 통찰은 스포츠가 아니다. 즐기며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이유로 안타깝고 단호해야 한다. 태도에 대한 반동적 역설은 명랑, 즐거움이 아니라 진지, 숭고이어야 한다. 나도 모르던 강성과 감성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원했다면 단순히 자격을 얻기 위한 적빈한 자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변화, 내 흑담즙질한 세계의 담즙질한 변화가 어떻게?의 요구였던 것은 무엇보다 명징하다.
아웃사이더의 경외적 매력에 빠져 주류 사회의 좌파적 시뮬라크르는 아니었는지, 비판 자체의 멋스러운 표상에 눈이 먼 패션주의에 매몰된 것은 아닌지 반성. 그리고 뜻깊은 사과가 필요한 때다.
2006/03/23 19:18 2006/03/23 19:18
DrunkenSTAR 이 작성.

승리의 불편함

2006/03/21 13:19 / 생활
이기는 것을 싫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기는 것은 정체성의 재발견이며 자존심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이 좋은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말이 있다, 개뿔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기는 것은 누군가의 굴복을 요구하는 것, 그러하기 위함은 얼마나 잔인한가? 인간에게 정당한 굴복은 없다. 그러함을 포장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현실론자들의 설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도처에 존재한다.


일본을 이기는 것은 그것이 야구이던 축구이던지 간에 언제나 통쾌했다. 황금깃봉에 매달린 태극기가 마운드에 꽂혀 펄럭이기 전까지. (나만 불편했나...) 월드컵이 다가온다. 우리는 또 이기는 것에 열광하고 도처에 태극기로 잔치상을 차릴 예정이다. 평소에 야구며 축구며 관심 없다가도, 하물며 규칙이나 어떻게 진행되는지 조차 몰라도 태극기가 있고 '이기는 것' 이라면 기꺼이 광장에 붉은 토사물을 쏟아 낸다.(그것을 이명박이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보면 그대들이 어떻게 이용당하고 있는지 포괄적으로 이해가 되려나)


국가 대항의 '이기는 것' 에만 열광한다. 주변 환경이 없어도 정신력만으로 이뤄온 것이 너무 많다. 응원만 하면 '이기는 것' 은 실제로 이기게 되어 온 것들이 너무 많다. 민족과 국가로 스포츠를 덮고 경쟁과 이기는 것만으로 사회의 약자와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김맨다. 현실론자들을 좀 따라가 준다고 치자, 그래서 이기는 것이 있다면 이기고 나서 헤아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 좀 하는 건 어떻겠니?
2006/03/21 13:19 2006/03/21 13:19
DrunkenSTAR 이 작성.

초대장

2006/03/09 16:20 / 생활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사형 폐지론자들은 사형이 아닌 사형수에 집중한다. 언젠가 나도 사형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반동하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조갑제가 기자시절에 쓴 사형수에 관한 책에는 그도 한 때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도 지금처럼 함몰되기 전에는 아름다운 반동이란 것이 있었고 변증법으로 미봉되는 문제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는 지금 어찌된 영문일까? 이제 그는 내가 보내는 두 개의 초대장에 어울리지 않는 흉물이 되었다.


3월23일 홍대에서 고래 이모, 삼촌 모임이 있단다. 고래가 그랬어를 조카에게 선물했던게 벌써 1년이 됐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고래가 그랬어를 들고 나와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특하게도 입맛에 맞나보다. 1학년 된 조카는 정중히 올해도 구독을 부탁했다.


한 구좌, 좀 전에 다시 한 구좌를 텄는데 그리 큰 도움이 못된다. 그래도 고래를 위해 구좌를 튼 이유는 첫째 고래의 멸종은 조건 없이 막아야 겠고, 둘째 보편적인 감수성은 다른 세상이 아니란 점을 힘겹게 알리고자 헤엄치는 고래의 모양을 그냥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동정이 아니라 같이 헤엄치고 싶은 마음이 그럴 수 없는 몸에 대해 꾸중하는... 이것도 일종의 반동이다.

고래이모, 고래삼촌 만나요 잔치, 보편적인 감수성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같이 노래 듣고, 노래 부르는 잔치란다. 가고 싶은데 목요일이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있는 참여연대에서 회원 모임을 한단다. 안국동에서 거의 마지막 모임이 되지 않을까 싶다. 3월10일 금요일 7시 반, 역시 어중간 하다. 아무리 빨리 가도 뒷풀이 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안국동 사막에서 뒷풀이를 하면 더욱 좋고... 활기차
2006/03/09 16:20 2006/03/09 16:20
DrunkenSTAR 이 작성.

날개

2006/03/07 10:59 / 생활
태국에 다녀왔다.


여독은 말끔히 풀렸다.
KTX 타고 대구에 내려오며 비었던 5일을 거슬러 올라가, 잃어버렸던 자동차 키와 집키를 찾았다. 꿈속에서 기억이 날 줄이야...
대구에 내려오니 잠겼던 여독이 자물통을 열고 나왔다. 오른쪽 어깨가 화끈거린다. 태국에서 달고 온 불법 날개에 바세린을 발라야 겠다. 조금씩 가렵기 까지 하다.
2006/03/07 10:59 2006/03/07 10:59
DrunkenSTAR 이 작성.

조각난 몸

2006/02/27 23:45 / 생활
며칠 전부터 엄지와 검지가 말을 듣지 않는다. 목덜미에서 팽팽한 끈이 검지를 잡아 당기고 엄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는 3초 가량 정지하여 후크 선장의 오른손을 오마주 한다. 튕기 듯 끈이 풀리면 팔과 연결된 어깨는 매운 손바닥이 치고 나간 것 처럼 화끈거린다.
몸의 일부는 유해가 증명된 디지털의 파동에 억류되어 결국 어느 꼭지점부터 선지피의 동력을 끊어 버리기 시작했다. 내 몸은 알록달록 움직이는 이퀄라이저가 되어 있는데 입김이 살아 있는 말의 아날로그가 맥박이 멈춰버린 막대 하나를 다시 뛰게 하지는 못하리라...


조각난 몸을 억지로 맞추려 하지 말자,
너무 오래 살려고 욕심 내지 않으면, 나를 제외한 나머지를 보는데 까칠해지지 않으리...
2006/02/27 23:45 2006/02/27 23:45
DrunkenSTAR 이 작성.

사사로움

2006/02/23 17:01 / 생활
햇수로 5년전에 무버블타입을 설치하면서 블로그를 하기 시작했으니, 그때 썼던 글들이 남아 있었다면 상당한 아카이브가 되었을 터였다. 무버블에서 피머신으로 옮기면서, 사랑에 치였고 역사는 잊혀지기 쉬운 곳으로 입양되었다. 그 역사에 아까운 것이 있기 마련인데, 특히나 사랑하고 이별하며 생겼던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한 감정들이 그것이었다. 솔직히 그 보다 사랑하기 위해 따로 열심이었던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모든 것을 미루고 공부하고 정리해갔었던 수많은 업무 모델과 정신과학적인 모형들, 안국동을 쏘다니다가 문인들과 어울려 오랜 술에 쩔어 새벽을 맞게되면, 되도 않는 시를 낭송하거나 등단하겠다는 지망생들과 어울려 문파를 조직했던 일, 미술학원 두달 다닌 미천한 예술 경력에도 불구하고 집착 성향마저 보였던 서양 미술사 등이 있다.(생각해보니 이별하고 그리움 때문에 생긴 취미도 있다. 사진)
사랑해서 보신탕 맛을 알게 되었다는 어떤 여인의 이야기처럼, 나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고, 비록 입양되어 그리울 수 밖에 없지만, 술이 깬 아침에 기억은 나지 않아도 몸이 지난 밤 한 일을 느끼는 것처럼 감정의 아카이브가 되어 사랑을 하지 않는 지금에도 삶의 온전한 일부가 되어 있다. 때때로 그 영위의 것, 예전에는 없었는데 사랑하다가 생긴 일부가 미래의 나를 가르키며 '그것이 되라' 던가, '그것을 해라' 던가 불쑥불쑥 얘기하는 통에 당황할 때가 있다. 그저 존재자로 낯설게 하지 않고, 나의 존재로써 내 적잖은 삶이 살아지는 동안 이탈하지 않고 꼭 안겨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갈등은 애초에 안착의 성질이 없는 것 같다.
안착은 차재하고 갈등은 말굽 자석처럼 완전히 다른 갈등을 간단히 끌어와 부쳐 버리는 성질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를 사랑하게 되어 현재 온전한 삶에서 갈등이 된 것들이 있다면, 정치시각과 언어관점은 이제 나서 한창 걸음마를 하는 갈등이다.
정치시각에 변화가 온 것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해서 비롯되었다. 어떻게 살아야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따로 따로 생각했던 것을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꺼번에 고민하게 되었고, 따로 때어 냈을 때 무엇이 현상의 무엇으로 국한되었다면, 같이 고민했을 때의 무엇은 철학의 무엇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자연히 내 생각을 표출하는 이런 공간은 어떤 철학인가로 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행위가 한정되어 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직한 표출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다시 한정하기 때문에 일단 표출하는 이런 공간에 생각을 배설하고 나면 가벼운 목로의 주점에서도 자유로운 행위 이전에 생각이 절제되고 절제된 만큼 이전에 분방했던 행위가 제한되어 갑갑함을 느낄때도 있다. 그래서 아직 성찰이 덜 된 탓이라, 아예 끝까지 술을 마셔버리고 태초의 인간의 되어 버리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몸은 갑갑해도 생각은 자유로워서 그냥 친구여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 웃음이 되어 버리던 이야기도 토론이 되곤 한다. 친구가 화장실이라도 가고 나면 왜 아직도 저런 비인권적이고 수구적이면서 투철한 자본주의적 생각만으로 제단을 할까? 앞으로 대화가 안되겠거니 하곤 했었다. 하지만, 좌파건 우파건 그들끼리 이념이 다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다니는 것이 아니듯, 실은 이념시각 이전에 정치시각은 품위와 태도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깨닿는다. 그러고 보니 대화가 안통하던 친구가 있어 토론이 되고 바람 잘 날이 없기에 술자리도 재미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른, 즉 완전히 다른 시각이 존재하는 관계도 태도가 서로 공유된다면 마찬가지 일 것 같아 보인다. 민족이 다르다고 해서,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시각이 달라서 어느 한쪽은 매장되어야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정치시각도 마찬가지지만, 언어관점은 특히나 누군가를 사랑해서 생긴 것이 아닌, 이제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음을 선언하고 나선 대표격이다. 좀 더 미시적으로는 컨설팅을 하면서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와 어감의 차이가 실제 살아온 삶과 생각의 바로미터가 되고, 더군다나 미래 소실점의 위치가 되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고찰해보고자 하는 것은, 언어의 일반적인 사용법이 아니라 정치시각을 비롯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유추되는 언어감정과, 그 언어가 만들어진 본래의 관점들을 조망해보는 의도이다. 하지만, 그런 의지는 곧바로 갈등이 된다. 언어관점을 새로 바라보자니 시덥지 않은 것도 취향에 맞지 않은데다가, 그것을 따르자니 상당한 공부가 병행되어야 하겠음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그것이 미학이던, 경영학이든, 정치학이든지 간에, 언어를 통해 현상, 현안을 조망하는 다양한 관점의 기술은 지금 시작한다고 해서 나중에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의 기원이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면서 생겨난 것이므로 나의 오롯한 조망은 단지 꿈이거나 상상일수도 있다.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그것은 단지 꿈일 뿐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 [훈데르트 바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필연적인 것 보다 대체로 우연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우연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 날 수 있는 일이고, 아니 일어 날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 하는 것.
언어의 조망은 그렇게 사람에 대한 다른 상상을 기술하고픈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욕심에서 시작했기에 여러 사람이 같이 꿀 필요는 없다. 나의 사사로움을 읽고 다른 꿈을 꾸어도 그로써 멋지고, 아름다울 테니까.
2006/02/23 17:01 2006/02/23 17:01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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