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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어 '생각'에 대한 239 개의 검색 결과
- 2008/07/25 의료, 건강, 경쟁 by DrunkenSTAR
- 2008/07/17 독도, 성장, 국가동원 by DrunkenSTAR
- 2008/07/05 국민 승리를 선언하면 되는 것일까? by DrunkenSTAR
- 2008/06/30 집회를 거두고 촛불항쟁으로 가야 할 때다. by DrunkenSTAR (1)
- 2008/06/26 국민이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한다. by DrunkenSTAR
- 2008/06/25 촛불집회, 이제 바뀌어야 한다. by DrunkenSTAR
- 2008/06/25 놀라운 프리존 by DrunkenSTAR (1)
- 2008/06/20 국회의원들이란? by DrunkenSTAR
- 2008/06/11 혁명, 소통, 쟁취 by DrunkenSTAR
- 2008/05/29 어느 현직 경찰관의 인식의 한계 by DrunkenSTA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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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시위의 불법성에 대처하는 폭력적 자세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그때는 군과 철조망도 동원되었고 두명이나 비명횡사했다. 어청수가 지금 사용하는 물대포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맥락일까? 한번 생각해 보자. 사회적 인간의 폭발적 의지가 동일했을 때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몇이나 될까? 그건 그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가에 달려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리의 크기에도 관계가 있다. 집회는 언어의 근원과도 일치한다. 의지는 언어를 생산하고 언어는 인간들끼리 모여 대화를 통해 작동한다. 모이지 않는 이상 의지도 언어도 집회도 아무것도 일어 나지 않는다. 10만명? 20만명? 이 정도 인간이 모여 집회를 할만한 공공 장소가 서울에는 없다. 조중동이나 이명박 일당이 말하는 합법적 집회란 인도에서나 가능하다. 선거만으로 민주주의의 가치가 모두 완성될 수는 없다. 뽑았으니 믿으라는 교조적인 담화는 소망교회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민주주의의 의지는 이명박이 말은 할 수 있어도 절대 실천할 수 없는 소통에 있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모여서 대면해야 하는데 도대체 서울엔 이 강력한 인간의지가 모일 장소가 없다. 그러하니 어떠한 철학도 필요치 않은 무리들은 이 부분만 물고 늘어지며 불법, 위법만을 강조하면 된다. 철학이 없으니 불법말고 다른 논리를 만들면 더 추해진다.
미국산 쇠고기, 이명박 퇴진과 함께 폭력 비폭력은 거리의 절대 화두 중 하나다. 폭력과 비폭력은 촛불을 든 시민들만의 화두는 아니다. 저들, 즉 권력을 비호하는 일당에게도 그런 비슷한 화두가 있다. 철학은 없고 더러운 기름으로 작동하는 기계처럼 불법에 대처하는 그들의 기계적인 폭력말이다. 거리에서 공권력은 권력을 지키는 경찰로 대리된다. 이 나라에 공권력이란 장애인과 여성, 노인은 카메라 없는 곳에서 패라고 명령하는 직업경찰과 멋도 모르고 인간들을 족치는 2년짜리 비정규직 전투경찰더미가 전부다. 솔직히 그 거리에서 나쁜놈은 몇명 밖에 안된다고 구분하는 시민을 보면 성자를 보는 듯 하다. 나는 그만큼 넉넉한 오지랖을 가지지 못한 것 일까. 촛불을 든 시민 중에도 나쁜놈과 좋은놈이 있다고 구분이 가능할까. 어청수는 가능하다고 한다. 물대포에 형광물질을 넣어 뿌리면 물대포 맞은 놈은 나쁜놈이라고 구분 가능하다고 한다. 촛불소녀가 웃는다. 저는 나쁜년인데요. 거리에는 촛불을 든 시민과 방패를 든 경찰로 나뉜다. 이건 의지와 명령의 차이다. 육체를 타고난 인간은 어차피 그 자체가 폭력이다. 우리가 나눠야 하는 것은 폭력과 비폭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로인해 어떤 폭력이냐는 구별이 가능해진다. 여성을 넘어 뜨려 발로 차는 인간이 있다. 그냥 쳐다 보는 인간과 발로 차는 인간의 면상을 후려치는 인간과 어느 쪽이 더 폭력적일까? 좁은 도시에 10만, 20만이 더 많은 사적이익을 도모할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모일 만큼의 언어가 작동하고 소통을 원하는 하나의 인간 의지가 있다. 이것을 불법이라는 집시법 위에 두고 이 인간들을 토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정자들이 그 민주적 의지를 제단할 수 있을까? 폭력이 구별 가능해지면 어떤 폭력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이 역사이며 역사가 오늘을 비춘다. 명령이 의지를 이겨 본 적이 없다.
이제 오늘 국민이 승리 했다고 선언하자고 한다. 900여명이 강제연행 되었고 10명이 구속됐다. 미국산 쇠고기는 유통되고 있고 조중동은 여전히 설레발치고 있다. 이명박은 뒤에 숨어 대폭 개각할 듯 하더니 소폭 개각하고 지들끼리 재신임 중이다. 거지 같은 인권은 동물적으로 변질되고 조중동을 제외한 언론과 통신은 각종 탄압의 전조를 울리고 있다. 게다가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대중들을 위해 공약한 이명박의 대표적인 공약인 747 은 미국소 주저 앉듯 앞대가리 부터 4로 시작할 조짐이다. 우리는 무엇을 승리한 것일까? 신부님, 마음속에서 그렇게 가다듬고 외쳐야 하는 건가요? 고해성사 하듯요? 우리는 아무것도 승리한 것이 없다. 앞으로 시민들이 계속 촛불을 들 것이니 조바심내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나마 주최자인양 하던 국민대책회의도 뿔뿔이 흩어 졌다. 어느 누구도 음향기기나 무대차를 촛불집회에 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의지가 있다. 시민들이 더 다치지 않게 승리를 선언해주시는 32인의 지식인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 감사하다. 하지만, 승리했다고 월드컵 그날 처럼 시청광장에서 미쳐 날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에도 며칠 촛불집회 하다가 물대포 맞고 방패에 찍혀 백병원 들락 거리다가 어느날 승리를 선언해 버리고 말 것인가? 아직 우리는 승리하지 않았고 의지가 남아 있다. 이런 거지 같은 인간들이 권력을 잡고 국민에게 말도 안되는 명령 따위를 할 것이 분명한 미래지향이 이 거리에서 목도 되고 있는데 밑도 끝도 없이 승리를 선언하는 고해성사에 반대한다.
정부의 몇몇 장관들이 대국민 담화라는 협박을 발표 했다. 이 협박은 거리에서 경찰의 확성기를 통해 듣던 확성녀의 헛소리와 다른 점이 없다. 맥락은 아주 간단하다. 오늘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다' 고 알려 주기 위해 어제 확성녀는 '당신들 미친 것 아니냐' 고 떠들어 댄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본은 이랬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전경버스를 파손하는 행위는 불법' 이라고, 그러더니 대본 없이 이런다 '당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돌아 보라고' 반성하란 얘긴데 매일매일 좆 잡고 반성하다보니 순정 어린 마음을 주체 못하고 거리에 나왔다. 구호라도 외치지 않고 노래라도 부르지 않으면 그것도 못하느냐며 반성하다가 돌아 버릴 것 같아서 그런다. 이제 새로운 대본이 나왔다. 국민이 아니라고 선포할 것이니 미친 집단으로 몰아가라는 대본이 그들끼리 존경해 마지 않는 청와대에서 내려 온 것이다.
전경버스를 끌어 내는 밧줄을 잡고 있으면 앞뒤에 선 건장한 시민들에 부대껴 두 다리가 공중에 떴다가 가라앉았다를 반복한다. 그렇다, 저 버스는 내가 그동안 꼬박꼬박 낸 소득세, 주민세, 방위세, 자동차세 등이 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내 갈 길을 막는 저 버스는 내가 파괴할 권리가 있다. 좆 잡고 반성해 보았다. 저 버스는 온갖 세금을 탈루하고도 불구속 입건 조차 되지 않는 이건희 따위의 원조 강부자 계급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이건희가 저 버스를 파괴하려고 했을 때 그게 불법인 것이고, 그게 진정한 폭력이다. 우리에게 비폭력은 맞아 주는 것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아야 하는 것이 마치 촛불집회의 존재 이유처럼 된 논리는 거부 되어야 한다. '이 개새끼야' 라며 방패를 아스팔트 바닥에 갈고 오는 경찰 앞에 서 보라, 두팔 벌려 우리 아들이고 형제고 동생들 입니다 며 끌어 안겠다고? 미친 짓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산 하이바와 방패를 내리고 맨 주먹으로 맞짱 뜨고 싶은 생각 말고 없다.
비폭력은 저항 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한다. 시위대에 끌려 나온 전경을 폭행하지 않고 돌려 보내는 것, 길바닥에 쓰러진 여성이나 노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을 군화발로 짖이기지 않는 것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패를 갈며 '개새끼야' 라며 덤벼드는 경찰이 있다면 난 눈에 보이는 뭐라도 들고 싸울 수 밖에 없다. 내가 한 일은 내 양심의 울림에 따라 촛불 든 것 밖에 없으니 당연히 정당방위다. 경찰도 양심의 소리에 따라 방패로 시민의 정수리를 깐 것일까? 그러니까 우린 더 이상 맞아 줄 수가 없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 짓밟았다고? 보편적인 인간은 누가 명령한다고 해서 여성을 짖이기고 아이에게 소화기를 뿌리지 않으며 노인을 질질 끌고가 방패날로 내리치진 않는다.
광우병 쇠고기 따위가 이제 이 집회의 목적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 버스를 넘어야 이명박을 만나 대통령으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온갖 악질적 행위에 대해 따질 것 아닌가. 이 거리의 상황은 광우병 쇠고기 고시 철폐를 넘어 섰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는 것도 그들에게 지나치게 명예스럽다. 이명박 정권은 폭력 집단이지 독재 집단이 아니다. 이 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폭력 집단에게 그냥 맞고 버티는 것이 국민의 의무 인 양 한가한 토론을 하는 것이다. 요즘 이 토론은 패배주의를 양산하고 있다. 정권의 힘이 얼마나 센지 알겠다는 둥, 저 윗분들이 비웃고 있다는 둥, 결국 우리는 해도 안된다며 절대 해서는 안되는 반성모드로 접어 든다. 이 반성모드의 끝에는 현대판 노예의 삶 만이 기다린다. 게다가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폭력 집단을 어디다가 신고도 고소도 할 수 없을 만큼 기능이 중지된 쇗덩어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남은 법은 헌법 1조 밖에 없다. 하지만, 이 폭력 집단은 국민도 국민 나름이라고 선언했다. 그들이 국민이 아니라고 한 우리는 그럼 무엇일까? 갑자기 정체성이 확 사라져 버리면서 두려움에 떨리는가. 얼마나 고마운 말씀인가 인간이 아닌 그들과 인간인 우리를 구별해 주었다. 촛불집회를 더 이상 촛불집회라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데 이 또한 바라는 바다. 이제 집회는 때려 치우자. 집회를 빙자하여 이 폭력 집단에게 맞아 주고 감금되는 일은 무기력한 일이다. 이제 촛불집회를 항쟁으로 부르자. 유모차도 그동안 고생하셨다. 촛불소녀도 그동안 고마웠다. 이제 항쟁을 할 강철 대오가 상상력이고 감수성이다. 더 이상 이명박 정권을 간지럽혀 이 거리의 폭력과 끝장난 권력을 끝낼 수가 없다.
오늘은 깃발을 들었다. 깃발은 처음 드는 것이라 좀 겁이 났다. 그랬을까, 순간 '깃발 앞으로' 란 외침이 대오의 앞에서 부터 전달 되어 이어졌다. 나중에 안 이유지만 경찰이 소화기를 뿌리면 깃발을 흔들어 소화분말을 날려 버리기 위해서 깃발은 앞에 선다. 오늘은 어떤 세상이건 바꿔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세상은 지금 이 세상보다 분명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명박의 치졸한 말 바꿈이나 인간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반성 따위가 이명박이나 이 정권의 덩어리들에게 바란다는게 얼마나 순진한 인간다운 정념인지 깨달았다. 시민들은 흥분했다. 백주 대낮에 주부, 국회의원, 노인의 사지를 들어 연행하더니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연행했다는 믿기 힘든 사실에 자유발언이나 연좌 따위로 시간을 끌지 말자고 들썩였다. 새문안 교회 골목으로 수천명의 시민들이 진입을 시도했다. 틈은 좁았다. 어김없이 소화기 분말이 뿌려졌고 순식간에 전경 2명이 끌려 나왔다. 몇명은 발길질을 했고 몇명은 그들의 무장을 해체 시켰다. 나는 순간 풀어줘라 고 소리쳤다. 전경 둘은 대오 끝으로 끌려갔고 뒤쫓아간 사람들은 풀어주라는 쪽과 풀어주지 말라는 쪽으로 갈렸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풀려났고 전경 무리로 돌아 갔다. 살수차가 머리 위를 맴돈다. 방송을 하던 여경은 불법집회, 폭력행위를 중단하라고 신경질을 내기 시작한다. 이 여경도 이준기에게 충고를 하던 현직 경찰관처럼 한번도 불법이나 폭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 없다는 말투다. 매일 밤마다 해방구가 되는 세종로사거리의 시민들에게 불법이나 폭력이니 하는 방송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불법은 불복종으로 그 폭력은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이라는 것을 적어도 스스로 학습한 시민들이다. 여기저기서 프락치와 조중동 기자들이 잡혀 시민들에 둘러 쌓여 있다. 서슬 퍼런 시민 수백명에 포위되어 언어적 린치를 당하고 있는 이들의 눈은 잔득 겁에 질려 있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행한 패악질을 반성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은 이명박과 한덩어리다. 절대 반성하고 재학습할 인간들이 아니다. 새문안 교회 골목은 앞에서 살수하고 골목 뒤에서 막으면 여지 없이 토끼몰이가 되는 지형이다. 빠져 나와야 했다. 겨우 1~2천명이선 어렵다. 이쪽은 뚫어 내기 힘들다. 여기저기서 주차장 담을 넘어 다시 진입을 시도하고 뚫렸다는 섣부른 정보가 전달되었다. 대오 끝으로 나오자 금강제화 골목을 막고 있던 전경버스 한대에 밧줄을 묶어 시민 수십명이 끌어 내는 중이다. 세종로 사거리와 새문안 교회 골목, 금강제화 골목, 시민들은 세방향에서 진입을 시도 중이지만 대오가 뭉쳐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도부의 부재. 지도부가 시위를 조직적으로 이끌 필요성 보다는 지도부가 없는 시민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곳곳에서 부상이 더 심하다. 곧 살수차에서 무시무시한 압력의 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애초에 소통이란 이 정권의 두뇌속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그 립서비스 마저도 철회했기 때문에 더욱 빨리 살수될 것이다. 이명박을 대통령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호사다. 하지만 이제 무엇으로 승리할 것인가. 사람들은 추가 협상을 했으니 이제 그만 하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문제다.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촛불 들고 소풍 나온 사람들의 입은 이처럼 가볍다. 이런 사람들이 도로 이명박을 만든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주권자가 요구한 사항이 관철 될 때까지 절대 물러서자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이 정도에서 물러 난다면 시민행동과 항쟁의 역사에 깊은 패배주의를 남길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종말을 의미한다. 아직은 민주주의다. 이명박은 우리 힘으로 하야 시킬 수 있다. 우리가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국민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 없다.
이명박 정권은 참으로 놀라운 발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역사에 기리 남을 치졸하고 지독한 집단이다. 이명박이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해서 정신상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말도 안되는 양보라는 것을 작금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행태를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이러한 집단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창피스러운 민주적 선거가 이 나라의 정체성이다. 이명박 정권이 선전하고 지켜야 하는 정체성이란 바로 거리에서 일어나는 무차별적인 공권력 남용, 폭력적이며 불법적으로 일어나는 강제 연행, 게다가 노인 초등학생 국회의원 할 것 없이 매우 공평하게 이뤄지는 대민중 폭력이 바로 이명박 정권이 지켜야 하는 정체성이다.
이젠 집회에 지도부와 투쟁 전선과 조직이 필요할 때다. 더 이상 이 정권의 말기적 정신분열 현상을 두고 보며 한가하게 밤샘 토론 따위를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젠 쇠고기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을 정확하게 겨냥한 노선이 필요하다. 이 정권은 절대 소통이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절대 깨달을 수 없는 무지한 집단이다. 이 정권이 촛불 집회 따위로 계몽될 것이란 것도 바뀔 것이란 막연한 기대도 얼마나 순진한 유아적 발상인지 전혀 새삼스럽지 않게 각인된다. 촛불 집회가 바뀌어야 한다. 이런 창피스러운 정권이 탄생된 신자유주의적 마음을 반성함으로서 촛불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촛불은 바로 이명박을 겨눠야 한다. 어느 교양머리 없는 국회의원 따위가 촛불 짓이 천민 짓이라고 하는데,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 천민들이 정권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 보여줄 때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우물이 있다. 한번 들어가면 더러는 개구리가 되고 더러는 구역질을 토하고 기어 올라 오는 프리존이라는 우물이 있다. 이곳에는 '애국심'과 '빨갱이' 라는 두 가지 가치만이 존재한다. 이곳에 쓰여 지는 글의 대부분은 대게의 사람들이 처음 들어 보는 어떤 사실을 나열하다가 섬뜩한 단어들로 수식한다. 이를테면 '비수를 꽂고...', '칼날을 드리대고...' 모 이런 식이다. 그러다가 결국 증오의 대상으로 '빨갱이', 빨갱이로 대리할 수 있는 좌익, 좌파, 주사파 등을 죄다 동원하고 이들을 처단하는 길만이 애국이라고 결론한다. 아무래도 자기들이 우물안에 개구리인 듯 갑자기 정신을 차리는 글에는 행동 강령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대게는 군대가 일어 나서 이 상황을 삽시간에 정리해야 한다고 힘차게 울부짓는다. 우물 안에서 개구리가 우니 울리기 마련이다. 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애국은 군복, 선글라스 끼고 광화문에 탱크를 몰고 온 박정희를 오마주하는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는다. 이 소리는 그들 안의 울화통 같은 애국심과 2차 화학 반응을 한다. 반응이 끝나면 느닷없이 그들만이 아는 모든 사실과 대게의 사람들이 아는 사실 간에 김정일이 등장한다. 한때는 김일성이었다. 이 사실의 대립은 빨갱이 때문이고 따라서 김정일이가 쳐들어 오려고 구식 라디오에 지령을 담아 획책, 선동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두려워 한다고 한다. 물론 자기들은 울화통 같은 애국심과 김정일의 칼로 찔러도 든든한 군복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때려 잡을 수 있는 것이 김정일이다. 사람들의 어떠한 사실이든 이들은 김정일과 통한다.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을 얘기해도, 황우석 박사의 거짓 줄기세포를 얘기해도, 어찌나 우국충정하신지 이러한 사실들이 모두 김정일과 통하고 따라서 모두 빨갱이라 결론한다. 우리 사회, 즉 현대 사회는 간단하지 않다. 이 복잡한 사회일 수록 분노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분노의 대상을 명확히 하는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이 프리존에 있는 인사들은 어디다가 분노를 해야 하고 사실은... 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정상적인 두뇌활동이 정지된 것처럼 행동 한다. 어떤 사안이든 여러 논리가 존재할 수 있는데 결론은 똑같다. 애국심과 빨갱이. 애국심도 여러 종류고 빨갱이도 여러 종류인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빨갱이도 정말 빨갱이가 있고, 정말 빨갱이와 술자리나 같이 하는 이른바 술자리 좌파도 있고, 좀 더 마시면서 빨갱이가 되어 볼까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과 친구인 나름 빨갱이도 있는데 무조건 김정일 빨갱이다. 애국심도 오로지 군복에 썬글라스 스타일만이 가능한 정념으로 한정 짓는다. 이 복잡한 현대 사회를 이 두가지 가치로 살아 간다는 건 어쩌면 기적과도 같다. 또는 사람들이 좋아 같이 살아 주는 지도. 어쨌든 실질적인 2MB 집단인 이들이 그래도 억척스럽게 자기 재산 불려가며 예수에 종사하던 이명박을 추종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이명박의 실용주의가 이들에겐 얼마나 위험한 사상인가. 누가 봐도 현대 사회에 쓸모 없는 애국심과 빨갱이 이념으로 무장한 그들은 전혀 실용적이지도 않는데다가 죄다 경제활동을 정지한 세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애국심과 국익? 이것은 같지가 않다. 이명박의 실용주의 앞에서는 이익을 주는 애국심만 애국심으로 친다. 썬글라스 끼고 광화문으로 탱크를 몰고 오려고 해도 고유가시대에 이익이 안되는 운행이라면 10부제를 지키며 무한괘도를 돌려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도 이명박을 휘호한다?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실용주의란 단어를 잘 알지 못한다. 아니 들어 본 적도 없다. 빨갱이도 아니고 애국심도 아닌 것을 해독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느닷없이 이런다. "촛불 시위의 배후세력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이다" 빠방~ 놀랍지 않은가?
무슨 말을 해도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사심과 사익은 대단히 중요한 담론이고 이런 사안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얘기 한다면 그것을 디테일하게 들어야 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정치가 없는 나라, 무슨 말을 사심과 사익으로 뭉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얘기 한다면 그안에 정치가 있다. 직업적으로 지 하나를 위해 사심을 꾀하려고 많은 사람들의 사익을 까고 뭉개는 투기꾼들이 정치라는 이름으로 악랄한 괴담을 프로파간다하기 때문에 이 나라의 국회의원과 대의 민주주의 따위가 거지 같은 것이다.
대열에서 빠져 나와 인사동 근처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모처럼 한낮 열기가 뜨거웠다. 그 온도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늙어 버린 보수단체집회 참석자들이 걱정 됐다. 스트로폼도 쇠파이프로 바꿔버리는 언론 때문에 행여 햇빛에 쓰러져도 촛불에 데였다고 보도 할지도 모를 일이기에 그랬다.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초등학생 얼굴이 촛불과 한낮의 열기를 식히는 아스팔트 위에서 벌겋게 달아 올라 있다. 측은했다. 한낮 열기를 견디던 노인들은 모두 그늘로 숨고 그 틈을 아이들이 메우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은 명백한 시위다. 하지만 생때 같은 가족들을 동원해서 산책 삼아 거리로 나온 엄마, 아빠가 태반인 이 거리의 시위에 명백한 시위라는 수식은 얼핏 가당치 않아 보인다. 오늘도 아침이슬을 부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하지만 명백한 이란 수식을 잃어 버린 우리는 낡은 뼈조각들이 또각또각 내는 소리를 경청했다. 해장국에 소주를 말아 먹으며 뉴스를 봤다. 조금전 대책위로 부터 70만 추산이란 문자를 받았으나 경찰 추산 8만이란 보도가 나왔다. 피식, 야유가 일었다. 70만이나 8만이나 도대체 얼마나 되는 규모인지 알 수가 없다. 세종로가 순식간에 사람들로 차 버리고 아무렇게나 걸어 다니는 흔치 않은 일은 이 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잠시 사람의 끝을 확인하러 떠난 일행이 이제 남대문에서 끝을 봤다고 연락이 왔다. 세종로사거리에서 남대문까지 사람이 들어 차면 8만일까, 70만일까. 언론은 양측의 추산에 반땅을 해버린다. 대략 40만. 설에 의하면 경찰은 축구장 크기에 사람이 얼마나 들어 가는지 평균치를 잡고 축구장 몇개 정도의 규모인지 파악해서 인원을 추산한다고 한다. 여기에 인도에 있는 사람들은 제외된다. 인도에 있는 사람은 시위자가 아니라 행인이기에. 하지만 정작 궁금한 축구장에 얼마나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느냐는 경찰 기밀인듯 아무도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70만에서 8만까지, 일단 시위를 시작했으면 세싸움이다. 요소요소에서 벌어지는 자유발언, 문화제를 형태한 공연이 6.10 항쟁의 대동단결 스크럼과 결사행진의 그것과는 달라진 모습이지만 세싸움은 여전하다. 사실 민주주의에는 숫자가 필요하지 않다. 게다가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거부하는 의식, 다수의 횡포가 아닌 다수의 양해가 이뤄지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이 거리에서 펼쳐지는 민주주의라는 스팩타클은 여전히 70만, 8만의 치열한 세싸움을 벌인다. 이 세싸움이 필요한 이유는 이 거리의 민주주의는 요소요소에서 저들마다 펼치는 자유발언과 경청 그리고 공연에 있을 뿐, 이것의 전체는 혁명이란 이름으로 마음속에 불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혁명을 시작했으면 숫자는 대단히 중요하다. 소수가 혁명을 일으키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아빠를 따라가던 그 측은한 아이는 집에 돌아 갔을까. 아이를 데리고 대열의 맨 앞에 서거나 밤 늦도록 시위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이건 우리 마음속에 이미 혁명이다. 아이가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존재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명박산성' 이 관광인파 5만 정도는 끌어 모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가족과 연인과 이 역사의 스팩타클에 동참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혁명을 이룰 수 없다. 이 거리가 가족끼리 나와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되어 어떤 점진적인 혁명의 세불림에 일조 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마음속에 혁명일지라도 이미 거리는 격동적인 시위의 현장이다. 아이는 어른들의 이러한 저항을 통해 더 나은 먹거리로 건강해지고 더 재미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해줘야 하는 것이지 아이 마저 8만에서 70만까지 추산되는 세력에 포함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해장국을 먹고 다시 대열로 돌아 가는 일행에서 빠져 나왔다. 다행인 것은 이명박 정부가 입에 달고 사는 '섬기는 정부' 와 '소통' 은 거짓이라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증거를 삼으려 해도 되지 않았으나 어제 세종로에 쌓은 콘테이너 박스 퍼포먼스로 관념적인 거짓은 명백한 실체가 되었다. 하지만 정부가 그 담을 넘어 국민의 요구를 경청하지 않고 불필요한 내각 총사퇴 같은 동문서답으로 '이 정도까지 한다' 며 국민을 설득하는 것처럼 거리에 모인 사람들도 그 담을 넘어 '들으라' 며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가슴이 뜨거웠지만 혁명을 할 만큼 진지하거나 절실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고 더 많은 읽을 거리와 정보를 원하고 있지만 아이의 손을 잡은 아빠와 연인의 손을 잡은 선남선녀는 집으로 돌아간 뒤다. 우리는 이 거리가 항시적으로 놀이터가 되기를 바라고 모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하물며 청와대로 전진해 가야 하는 물음에도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언론은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났다는 것에 포커스 되기 시작한다. 아직 쟁취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쟁취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 가는 것은 아닐까. 벌써 33차 촛불집회다. 이 장관을 그저 스팩타클로 남기느냐 아니면 촛불이 원하는 궁극의 이유를 쟁취할 수 있을지... 이제 마음속의 혁명을 밖으로 내 던져 그 울림을 경청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영화배우 이준기씨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촛불문화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올려 놓았나 보다. 이를 보고 어느 현직 경찰관이 반론을 한 기사를 보았다. 요지는 '촛불문화제는 더 이상 현행법상 평화로운 집회가 아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해산 시킬 수 밖에 없다' 는 것이다. 짐짓 이준기씨한테 어른으로써 충고와 타이름까지 덧부치는 글을 보니 오늘 아침 무심한 담벼락에 붙어 있던 경찰의 푯말의 생각났다. 역시, 립싱크인 것을 확인시켜 줄 것까진 없었는데 말이다.
현직 경찰관에게 현행법 좀 무시해주고 마음속의 얘기를 들어 달라고 관념적인 요청을 할 이유는 없다. 그 또한 추후도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한발도 전진하지 않는 호두껍질의 단단함을 천명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위법행위자는 경찰의 연행에 순순히 동행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현직 경찰관의 비애는 그래서 강제적일 수 밖에 없는 연행의 절차를 '강제적' 이었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니까 절대 불법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찰의 행위는 '항상' 정당하기에 그렇다는 거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러하니 촛불집회에는 비보이가 나와 랩에 맞춰 공연하고 이를 구경하고 돌아가면 평화롭고 아름답다고 한다. 그는 촛불집회를 그저그런 '하이 서울 패스티발'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상황이 아주 평화롭지 않고 게다가 집시법 14조에 의거 주최자는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의 질서를 문란케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15명의 전의경이 시위현장에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쓰러지고 머리 터지고 방패에 찍힌 촛불집회참가자들 수를 취합해 들이 대고 부등식을 하자는 얘기인가? 누가 더 얻어 터졌는지, 그런 것을 상호 견주어 보자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보호 할 사람에게 맞는 것과 보호 받을 줄 알았던 사람에게 맞은 것의 차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다. 글세, 경찰과 국민의 차이가 어떤 차이인지 경찰임용교육과정엔 없는 것일까?
도로점거만을 준법의 준거로 삼는 현직 경찰관의 말은 역시 현직은 현직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왜 이렇게 얄굿게 들릴까. 이는 오래도록 우리 사회의 무분별한 준법의식에 또아리를 튼 대표적인 인식의 한계와 같다. 군사독재를 종식시킬 민주화의 과정에도 이 무단 거리 점거의 준법의식은 경찰의 주된 자세였다. 민주화건 뭐건 광장과 거리를 지키는 경찰의 모습은 민주화 이후에도 똑 같은 경찰의 모토다. 왜 민주화가 필요한지, 왜 저들은 저런 주장을 하는지, 경찰의 수동적이며 관성적인 거리지키기의 강제적 연행방식을 알면서도 왜 저들은 거리로 나오는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무지한 인식의 한계가 오늘 서울 거리에서 시민과 경찰이 대치할 수 밖에 없는 방점인 것이다. 민주화를 이루는 것도 미친소를 먹지 않는 것도 교통 보다 중요하지 않고 그런 주장이 있다면 조용히 집구석에서 평화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반민주적인 경찰들이 짐짓 충고어린 말투로 가증스러운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대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한계를 양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주장을 자율적으로 주장해본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왜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들은 사용자들의 영업을 방해하다가 경찰에 강제로 연행될까? 왜 사람들은 경찰이 수십명을 연행했다는 보도를 접했는데도 다음날 거리에 나와 자발적으로 닭장차에 올라타고 '나를 연행하라' 며 스스로를 고발할까? 마음속의 울림에 귀기울이고 그것을 옮다고 믿고, 그렇지 아니하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것을 표현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런 사람들의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 같은 거리에서도 누군가는 우리 모두 미친소를 먹지 않아야 된다고 외치는데 누군가는 재미나게 공연 감상하다가 거리로 나오기만 하면 폭력적으로 연행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해시킬 수도 없다. 정말 불가피하게 거리로 나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자신의 자유권을 내던지면서까지 공공을 위해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의 주장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그런 주장을 집에서 소리 높여 평화롭게 외치면 국가는 그것을 들어주었던가? 현직 경찰관인 당신이 경찰이 될 수 있었고 당신이 가정에서 민주적이며 사람답게 살아 가며 당신의 가족 모두가 반드시 건강하게 살아야만 하는 고귀한 일이 오직 당신이 어느날 고시학원에서 밤낮으로 공부한 경찰 시험 때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집회, 결사, 해야 할 것이 있으면 해야 하고 그것을 방해할 어떠한 공권력이나 외부 압력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이 나라의 헌법이고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당당히 거부하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의 마땅한 권리이며 존엄인데다가 그것이 1987년부터 이 나라가 작동한 방식이다. 자신들도 연행될 수 있고 얼마간 자유를 박탈당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생계에 지장을 받을 것인데도 왜 거리에 나와 저항하는가? 이것은 우리가 민주화를 이뤘던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과 1987년 6월항쟁의 정신이 그러했기 때문이고 누가 이해시켜주지 않아도 그것을 이어 받을 수 밖에 없는 시민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잡아 가라, 잡아 가지 말라고 구차하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경찰들이 한가롭게 거리점거를 운운할 때 시민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학습하고 그에 따라 자율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20년전 항쟁의 그것보다 더한 시대정신을 지닌 시민들이 뭉치고 있는데 이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한번이라도 그런 이유를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것이다. 현직 경찰관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경찰관을 해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설프게 집시법 2개 조항을 들먹이며 가당치도 않는 충고를 늘어 놓기 전에 말이다.
이준기씨에게 띄우는 현직 경찰관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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