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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dertwasser

2005/05/04 01:10 / 관심/페인팅
화사한듯, 찬란한듯 하지만 서울의 봄은 도처에 모순 투성이다. 본래의 색을 내는 물질은 찾아 볼 수 없다. 햇빛 아래 발가벗고 서 있어도 내 그림자는 검지 않다. 무엇하나 생명의 세계가 아닌 굴절된 현대의 구축, 누구도 서울을 상대로 그림을 그리거나 동화를 꿈꾸지 않는다. 빈틈없는 공학과 엄숙한 조형으로 서울에선 다른 곳에서 그려온 감성의 색과 다른 곳에서 복원된 동화를 전시만 할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불쾌한 이성만으로 조립된 도시에서 오로지 행복이란 야수적인 왜곡으로만 완성될 수 있다. 세계를 표현하지 못하고 세상을 세계안에 넣어 광포하게 왜곡할수록 행복해지는 것, 이 도시에서 보통으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겸 화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 바서 Friedensreich Hundertwasser 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오스트리아 빈의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Hundertwasser House)다. 빈 시내 헤츠가세역 근처에 있는 이 연립주택은 삭막하고 특징이나 국적 없는 현대주택을 지양하고, 현대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주거건축물을 목표로 하여 과거 왕이 살던 위엄 있는 왕궁과 같은 대중의 집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특히 강렬한 색채와 서로 다른 모양의 창틀, 둥근 탑, 곡선으로 이루어진 복도 등이 조화를 이루며, 스카이라인이 신과 사람을 맺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생각 아래 중요시 하였다. 훈데르트 바서는 반지의 제왕에서 호비튼 마을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Hundertwasser House
1983-86 Vienna

인간이 세계의 진실이 아니라 세상의 진실로만 살아 가는 것은 얼마나 미덥지 않은가? 자를 대고 그린 선이 아니라 크레용으로 그린 가건축물은 진실이 아니라며 도태시켜버리는 파쇼의 도시에서 우리는, 훈데르트 바서의 호기심을 이미지로 저장하여 킨코스나 링코에 가서 확대 프린트하여 액자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조금은 디오니소스에 위로가 된다.


The 30 Day Fax Picture 1994
Mixed media (thirty A4 size FAXes)
151 x 130 cm Vienna

훈데르트를 반문명주의자, 생태주의자라고 하지만 그는 사람이 보통으로 자신의 세계를 꿈꾸고 표현하는 것을 지향했던 사람이다. 세계의 한계가 세상으로 인해 지워지지 않았음을 형식으로 보여준 사람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그것은 단지 꿈일 뿐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 [훈데르트 바서]
훈데르트 바서는 그 자체가 미궁의 도시였고 아날로그 였다.


Kunsthaus Wien - Blue Version
오스트리아 빈의 쿤스트하우스(Kunsthaus=개인화랑)


Last changed on 01/28/05. This album contains 2 items.
Island of Lost Desire. Mixed technique (1975), 59 x 48 cm.
Private Collection


Les Emanations - The Emanations 1999
Mixed Media : watercolor, egg tempera, oil, sheets of gold and silver
SIZE: h: 112 x w: 140 cm / h: 44.1 x w: 55.1 in


http://www.hundertwasserhaus.at/1st.html


2005/05/04 01:10 2005/05/04 01:10
DrunkenSTAR 이 작성.

사랑의 예감

2005/03/24 21:46 / 관심/텍스트
김지원의 '사랑의 예감'(이상문학상 당선 '97)을 읽고...


'생명이 있는한 어디선가 만나게 되는 예정된 사랑'

플롯부터 다른 글쓰기였다. 1장과 2장으로 나뉜 중편크기는 장의 내용부터가 독자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독법을 요구하는 의지가 있었다. 처음부터 예정된 등장인물들은 수다로 시작한다. 넓지만 인종적인 이해관계가 마천루처럼 쌓인 뉴욕은 그다지 옆사람만을 응대하여 대화하기에는 좋은 장소는 아니다. 겹겹이 쌓인 문화적 혼합은 차라리 카오스적이지만 그들의 수다는 그런것들을 의식하지 않는 듯 하다.
몇가지 모티브적인 개체가 확연히 등장한다. 별, 시계, 그리고 공간과 시간이다. 별은 넓은 공간에 나름대로 빛을 내며 그대로 떠있는 섬이다. 무엇이든 두 개이상의 물체사이에는 공간이 있게 마련이고 별은 미약하지만 짜내듯 빛을 내며 공간이 있음을 채우고 있다. 시계, 시계라는 사치품(?)이 흔해졌음을 흐름으로 간주하며 시간은 공간속에서 어느것과도 섞이지 않는 평행선으로 우리들 삶중간을 꿰뚫고 누구나 손목에 찰수 있을 만큼 많아졌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대화를 하는 유부녀(신옥과 장미) 둘은 그들에 인연의 끈을 위해 뉴욕이라는 먼곳을 택했고 동창이라는 설정에 반가워했다. 대화의 주체로써 유부녀들은 과거와 현재를 공간에 배제된 상태로 그동안 공허로 남아있던 그들에 인연의 끈을 이으려한다. 그들의 남편들은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과정에 책임을 맡고 있다.
몇가지 설정된 대화관계, 즉 신옥과 장미, 신옥과 장미의 시누이, 신옥의 남편과 장미의 남편, 은 제대로된 선형적 구도에서 점차 순환적인, 복합적인 연결로 어지럽게 뻗어 나간다. 간간히 대화속에 인용되는 닥터유(장미 시누이의 남편)의 환상적인 운명은 시공을 잇는 삶에 도정을 의미하고 전체적으로 산만해 질 수 있는 대화소재를 하나의 점으로 이끄는 구심역할을 한다.

"시인(詩人) 이태백은 시간은 지나가는 과객이라 읊었으나,
지나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물현상뿐이더라, 시간은 '늘' 그대로다. 그래서 오'늘'이다"


닥터유의 독백같은 추억속에 간간이 산재되어 있는 이런 시간정의는 인간 개개인의 의식에 접근하고 대화 주체들의 개념적인 행동양식을 정하는 역할로 자리 잡는다.
시계라는 모티브로 전개방식을 정하고 미국교포사회와 한국적 현실-분단, 민족정체성, 인종, 언어장벽-을 대비시키고 자칫 주제를 빗나가는 소재적 빈곤의 극복을 인공수정과 결혼등으로 매꾸고 있지만 어색하지 않다. 이 소설에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열정적이고 애끊는 만남과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마치 그들의 대화속에선 그런 거추장스러움은 대화거리 조차도 되지 않는 듯한 구성이 사뭇 제목과 대비되어 독자를 조롱한다.

"대화는 피곤합니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부부사이에는 대화가 오히려 없는 것이 좋습니다....중략... 어떤이는 사랑을 한답시고 주고주고주고, 어떤이는 주고받고, 주고받고 어떤이는 받고받고받고, 그런데 어떤이는 시간과 공간을 줍니다. 행복이란 지극히 사사로운 감정이어서 무리하게 강요해서는 될일이 아닙니다."


신옥 남편의 대사는 현실적이고 냉소적이다. 인간관계로 깊이 자리잡은 부대낌과 미움과 고움의 정, 구속같은 사랑을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우연한 개기지만 강한 인연과 우연성으로 만난 결혼에 개인적인 독립과 암시적인 주장으로 익명적 행복을 요구한다. 행간 밑에 잠재적으로 깔아놓은 분단이라는 모티브와 개인 또는 민족의 정체성은 사실 커다란 줄기는 아니다. 간혹이지만 자연적, 또는 인공적인 생명의 연장이 소설을 이루는 페러다임으로 보고 싶다.
그런 연속선상에서 시간, 공간, 인위적인 국경같은 것에서 조차 차원을 달리하는 생명이 예감을 의미하는 사랑으로 승화됨을 보여준다. 대화의 종점에서 그들은 서투른 만남을 기약하지만 연속선상에 생명을 믿지 않았고 생각보다 빠른 만남이지만 그들에 존재는 다시 원래의 섬으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올림픽은 그 우연성을 촉매했지만 그다지 만족할만한 것은 못됐다.
이 소설은 1장은 뉴욕, 2장은 서울의 상반되는 구도속에서 상대적으로 작아진 사적공간과 만남의 우연성을 소설적 필연으로 연결시키며 영원으로 이어지는 인간관계의 연속성을 말하려 한다.
2장은 1장보다 더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에서 혼자사는 그저 평범한 여자다. 아이를 키우는 주부지만 약간의 특별한 장치가 있다. 다시금 등장하는 분단이라는 현실이 합성되어 1장에서 부부라는 태초적인 본능적 관계를 부인하는 인위적 효과가 그것이다. 그렇다고 납북된 남편에 대한 한스러운 망부가는 아니다. 단아하고 단정한 이야기 흐름은 어쩌면 5년이라는 시간차가 덮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단호한 안정감이 있다.
때때로 사람들은 현실속에서 무거운 안정을 유지하다가도 무의식상에서 보여지는 환영과 환청을 꿈이라는 현상으로 이어질때가 많다. 그 무의식의 현상속에서 수천년전부터 정해져온 인류의 것, 생성과 소멸은 여성의 봉긋이 오른 배에서 생성을, 처참하게 일그러진 사고속, 구역질나게 찢겨진 시체에서 소멸을 보여줌으로써 대비되는 시공, 현실과 꿈을 관조적으로 매듭 지어버린다.
그다지 놀랍지 않은 만남이 이곳에서도 있다. 여자와 신옥의 남편, 지루한 서술 끝에 분열적인 대화는 이상하리 만치 운명적임을 상징하려는 질긴 교감이 눈길을 끈다.

"저도 살아나가 기쁨니다... 중략...
아내의 뱃속에 든 아기를 초음파로 검사해 보았습니다. 눈물이 솟더군요 감동이 치밀어 울다가 웃다가 했습니다. 장례식을 가봐도 그렇고 사람들은 죽는일과 태어나는 일을 큰일인 듯 여기지만 그중간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언제 죽는지 다 잊어먹고 그냥그냥 생명을 유지하며 살고 있구나"


너무나 먼곳에서부터, 아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인간의 생성과 소멸을 눈앞에 대놓고도 시리도록 감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의 연속성과 생명의 잉태는 자기유사성이라는 독선으로 말미암은 침착함 같은 것이다.
생명에 대한 아집은 너무나 본능적이다. 소설은 그런 아집으로 대단원을 맺는다. 인간의 만남이 영원은 아니지만 공간과 공간속을 연결하는 목숨으로 인간은 어디선가 만나고 헤어진다. 부부라는 질긴 끈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은 스스로 끊기도 하고 잇기도 한다.
생명이 그들의 의지에서 비롯됨을 의미하듯이 약속시간을 정한다. 사랑의 예감은 그런 연속적인 생명의 흐름속에서 단호함을 보여주고 열정적이지 않아도 우연같은 만남속에 사랑을 의미하는 자체가 있다고 말한다.
생명은 그런 사랑을 감격으로 알게 해준다. 멀거나 가까워도 그것은 교감으로 교통으로 이어준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2005/03/24 21:46 2005/03/24 21:46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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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病)에게

2005/01/14 18:13 / 관심/텍스트
오랫동안 앓던 병보다 잠깐 들른 감기가, 어지간하면 고치려하지 않고 시간을 좀 들여 앓아 버리면 된다던 생각을 뉘우치게 한다. 감기에 비틀거리는 내 모양이 작년 내내 그 모양새다.
닳아 가는 육신만큼, 이틀만 앓고 나면 낫는 병도 차츰 없어진다.


병(病)에게
조지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는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린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2005/01/14 18:13 2005/01/14 18:13
DrunkenSTAR 이 작성.

시인 김춘수

2004/12/02 19:10 / 관심/텍스트
[뛰어난 시인과 뛰어난 산문가가 원래는 한 몸이라는 것을 행복하게 증거한다. 이성복의 산문을 읽다보면, 틀림없이 '산문'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시' 속으로 들어가 있기 일쑤다.]
시인 이성복의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 에 실린 소설가 이인성의 서평이다. 위와 같은 서평의 느낌을 시인 곽재구의 포구기행과 예술기행집에서 독후감한 적이 있다. 시인이 관찰하는 이 세계의 사물, 그 사물들은 나도 익히 봐왔고 만져봤던 것들인데도 그대로 시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눈과 가슴의 가난함을 탓하고도 남음이다.

샤갈전에 즈음해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이라는 시인 김춘수의 시를 찾아 읽어 보고 포스트를 남긴 적이 있다. 꽃과 릴케, 부다페스트와 샤갈을 노래 했던 시인 김춘수 선생이 지난달 타계했다는 소식에 나는, 꽃이라는 시인의 시를 학창시절 어느 벤치에서, 어느 여학생에게 낭송해준 이후로 다시 읽어 보게 되었다. 어느새 꽃의 시는 낱낱이 기억에서 사라져서 그때 그 감흥이 어지간해선 살아나지 않는 거름의 나이가 되어 버린 듯, 묵묵히 읽어 갈 수 밖에 없었는데, 도리어 세월의 생김새에 불편한 상채기만 딱지 져 흉이 되었는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꽃의 시 첫 노래에서 여학생의 치마속으로 불쾌한 손을 집어 넣는 듯한 섹츄얼리티를 느끼고 말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다음 구절에서 나는 이내 고개를 휘젓고 냉큼 담배라고 걸어 피우지 않고는 이 상상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 미술학적 의미 등으로 고상하게 해석되는 시 앞에서 불경스러운 나의 새로운 미적(?) 해석은 혼자 피우는 담배 내내 난감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꽃의 해석이 차라리 꽃이 되기 전, 꽃이 된 후, 그리고 사라진 꽃에 대한 전시상황의 어머니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려 했다. 이를테면, 전장에 아들과 남편을 내보내는 어머니가 불러보고픈 이름으로 그리고 그들을 꽃으로, 명분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전장에서 산화한 이름으로, 어머니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으로... 음미하는 것은 어떤가?
산화라는 말이 좀 걸리긴 한다. 산화는 본래 의미의 散華, 부처님께 꽃을 뿌려 공양하는 의식이라는 뜻에서, 散花 의 의미로 전장에서 전사함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변질된 散花는 일제시대 일본인이 만든 말로 '사쿠라 꽃처럼 지다' 라는 뜻으로, 황국군대에 목숨을 바친 황국민이란 뜻으로 혹세무민한 말이다. 어쩐지 내 세월이 비춘 생각이 여러면에서 껄끄럽다.

시인이 되지 못해 안달 복달이 났었던 소년이 이렇게 궁상 맞고 궁색한 어른이 되어, 추모를 해도 실례가 안될지 모를 지경이지만,
시인 김춘수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1922년 11월25일 ~ 2004년 11월 29일]

2004/12/02 19:10 2004/12/02 19:10
DrunkenSTAR 이 작성.

먼저, 나는 사진에 대해서 잼병이다. 몇년전에 구입한 Nikon 885 가 차 뒷좌석에서 랜즈 덮개를 잃은 채 뒹굴고 있는 상태로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리라 본다.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는 사진에 대한 존경심이 아니라 롤랑 바르트에 대한 오마주에서 비롯된 독서로 보는 것이 맞다. 롤랑의 신화나 기호학은 그의 세계관과 공명하여 언제나 접근 불가능한 울림을 그나마 엿듣게 하곤 한다.
The Museum of Modern Art 에서 Robert Frank 의 'Parade' 라는 사진을 보다가 그의 사진전이 11월20일부터 김영섭화랑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브레숑씨의 사진전을 비롯해서 올해 사진 대가들의 작품이 러시되고 있는 것은 금값이 오르는 사회적 현상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지?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롤랑 바르트의 책은 어떤 것도 독자에게 쉽게 접근하고자 하는 미덕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는 텍스트들 뿐이다. 모두가 은유하고 환유하는 실존적 기호와 기의들이 난무한다. 그나마 롤랑의 유작이 된 카메라 루시다가 쉬운 편에 속한다. 카메라 루시다의 몇가지 구절에서 거추장스러운 사유의 편린을 제한하고 작살처럼 와 닿는 것은 그 증거가 된다.

"아주 오래전 어느날, 나는 우연히 나폴레옹의 막내 동생인 제롬 (Jerome, 1784-1860)의 사진 한 장을 보았다. 1852년에 찍은 것이었다.
그때 나는, 그 이후에도 결코 지워버릴 수 없는 놀라움과 함께, '나는 지금, 황제를 직접 보았던 두 눈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때때로 나는 이 놀라움에 관해 이야기 했지만, 아무도 그것에 공감하거나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삶이란 이처럼 작은 고독의 상처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 자신도 그것을 잊어 버렸다."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밝은 방으로 이끌은 사진에 대하여 프랑스 최고 지성의 통찰력은 그대로 나를 찌른다. 앙투앙 와토의 '시테섬으로의 순례' 를 본 로뎅이 등장인물들은 에고를 지닌 제각각이 아니라 시퀀스를 두고 배에서 섬으로 순례를 하는 한쌍의 등장인물로 통찰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진과 그림이 지닌 단 한번의 세계 형상이 실은 무한히 지속적인 놀라움을 부활시키는 실존적 표상이라는 것을 간과할 수 없게 해준다. 이것이 롤랑이 말한 푼크툼(punctum)과 연관성이 있는지는 잘은 모르겠다만...

한달 전쯤, 최근에 마지막으로 본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에서 얀 베르메르가 목재로 만든 커다란 암실로 그림를 투영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그것은 카메라 루시다의 반대인 어두운 방 즉, 카메라 옵스쿠라 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 미술의 거장들은 이 카메라 옵스쿠라를 빌려 투영된 물체를 온전한 작품 세계로 끌어 들이는 예술 작업을 했다.
협소한 의미에서 물질에 투영된 정신세계가 미술이라면, 물질에 투영된 자연세계는 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얀 베르메르를 비롯하여 렘브란트, 알브레히트 뒤러 등은 카메라 옵스쿠라를 통해서 정신과 자연의 세계를 동시에 투영하는 작업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을 예술이란 이름으로 온전히 인정하지는 않았다. 데이빗 호크니는 결국 미술이란 것은 화가의 정신이나 눈썰미가 아니라 기계적 투영의 반영일 뿐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사진학을 전공한 친구가 많이 찍는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지, 라고 한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찍고 보는 것에 잼병인 내가 일단 사진을 보는 것의 새로운 사유, "지금, 황제를 직접 보았던 두 눈을 보고 있다"와 비슷한, 고독으로 이루어진 삶의 고찰, 언제나 고독스러운 사진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실존의 의미, 그것에 접근해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는 것처럼, 어떤 학문도 어떤 동사(Verb)를 많이 경험하고 사색한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사진이 가르쳐 주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WATTEAU, Jean-Antoine
The Embarkation for Cythera
1717
Oil on canvas, 129 x 194 cm
Musée du Louvre, Paris
2004/11/12 18:15 2004/11/12 18:15
DrunkenSTAR 이 작성.

Chagall, Marc

2004/10/25 22:49 / 관심/페인팅
끝내 샤갈 전시회는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모짜르트의 [마술피리]를 주제로한 파리 오페라 극장의 천장화를 떼어 왔을리 없는 전시회였을테니 별반 후회는 없다.(아니, 아주 없지는 않다.)
샤갈에 대한 잘못된 소문 3가지를 든다면, 하나는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이건 너무 기초적인 진상규명이겠지만, 태생과 성장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에), 하나는 표현주의 화가라는 것(이건 미술 평론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듯, 이를테면 라파엘로가 르네상스적이라기 보다 마니에리스모적 이라는 극단적인 견해와 비슷할 듯), 하나는 샤갈의 그림중에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이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 샤갈은(Marc Chagall)Russian-born French painter 이고, 표현주의라기 보다는 큐비즘에 가까운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란 작품은 없고 시인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이란 시는 있다.
소문의 진상(?)을 밝히고 샤갈의 대표작중에 하나인 I and the Village(1911)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을 대입, 비교해 보았으나 억지 주장이 아니면 이 또한 관계가 없는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시인이 샤갈의 고향인 비테프스크나 파리 근교의 몽파르나스에 가보고 기의 한 것인지,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나와 마을'의 눈꽃을 보고 시적 감흥에 매료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은 형상체로는 도무지 세계와 대입이 불가능한 어떤 정신적 붓질인 추상표현주의의 저널리즘적 억지 주장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를 주제이긴 하다. 하긴, 표현주의, 큐비즘 등이 추상표현주의를 낳게된 주춧돌이라고 하니 아주 연관성이 없는 것도 아니겠다.
샤갈 특별전에 붙은 색체의 미술가라는 타이틀 또한 일종에 추상표현주의의 친구인 저널리즘의 횡포다. 샤갈의 작품이 색체에 있어서 공간의 변화를 추구함과 동시에 원근감 마저 색체에 근간(I and the Village / The Flying Carriage)을 두었다는 것에서 색체의 미술가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작품의 다양한 감상에서 색체의 고정관념은 샤갈의 태생과 성장에 있어서 착취와 억압의 배경, 그로인해 표현되는 슬픈 따뜻함의 역설(Self-Portrait with Seven Fingers), 통렬한 공간구조속에 놀라운 사랑의 설득력(Birthday) 등을 폭넓게 음미할 수 없도록 여백을 줄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

anyway!!
명작을 진품으로 보는 기회는 일생에 그리 흔한 경험이 아니다.



1913-1914 [Self-Portrait with Seven Fingers]


1913 [The Flying Carriage]


1915 [Birthday]


1911 [I and the Village]
2004/10/25 22:49 2004/10/25 22:49
DrunkenSTAR 이 작성.

月下獨酌

2004/10/20 19:52 / 관심/텍스트

월하독작
이태백

天若不愛酒
하늘이 만일 술을 즐기지 않았다면
酒星不在天
어찌 하늘에 술별이 있으며
地若不愛酒
땅이 또한 술을 즐기지 않으면
地應無酒泉
어찌 술샘이 있으리요
天地旣愛酒
천지가 하냥 즐기었거늘
愛酒不傀天
술을 좋아함을 어찌 부끄러워하리
已聞淸比聖
맑은 술은 聖人에 비하고
復道濁如賢
흐린 술은 또한 賢人에 비하였으니
聖賢旣已飮
성현도 이미 마셨던 것을
河必求神仙
헛되이 신선을 구하는가
三盃通大道
석잔술은 大道에 통하고
一斗合自然
한말 술은 自然에 합하거니
俱得醉中趣
모두 취하여 얻는 즐거움을
物謂醒者傳
깨인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花下一壺酒
꽃 아래 한독 술을 놓고
獨酌無相親
홀로 안아서 마시노라
擧盃邀明月
잔들자 이윽고 달이 떠올라
對影成三人
그림자 따라 세 사람일세
月旣不解飮
달이 술은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
그림자만 나를 따라 다녀도
暫伴月將影
달과 그림자 데리고서
行樂須及春
함께 즐기는 이 기쁨이여
我歌月徘徊
내 노래하면 달도 거니는 듯
我舞影凌亂
내 춤을 추면 그림자도 어지럽다
醒時同交歡
깨이면 함께 즐기는 것을
醉後各分散
취하면 모두 흔적이 없이
永結無情遊
속세 떠난 맑은 사귐을 길이 맺고자
相期邈雲漢
멀리 은하에서 만날 날을 기약한다

2004/10/20 19:52 2004/10/20 19:52
DrunkenSTAR 이 작성.

1500년 ~ 1700년의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생활의 소리로 인해 죽었던 감성의 고막이 트인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는 실은, 네덜란드의 화가 요한슨 베르메르(Jan Vermeer)가 그린 그림에 대한 얘기다.
어디를 찾아봐도 얀 베르메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로 표현된다. 영화에서도 묘사되는 것처럼 내성적이고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소심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그의 성격 탓도 있지만, 피렌체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르네상스의 물결이 닿지 않고 당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예술의 패트런들, 즉 영주나 교황과 친분이 없었던 것도 그가 잘 알려지지 않게 됐던 이유가 아닌가 한다. 이를테면 산치오 라파엘로 같은 인물은 수많은 제자를 거닐고 다니면서 교황청과 성을 오가며 사교를 즐겼다는 것을 보면 대비가 가능하다. 게다가 당시, 네덜란드에는 불세출의 꽃의 화가 램브란트가 있었다는 것도 그가 그늘에서 그림을 그리게된 동기가 아닐까? 평생 35점의 작품을 남겼어도 21점을 오직 한명의 패트런을 위해 작품활동을 한 점도 한몫했을 수도 있겠다.(영화에서 베르메르의 패트런은 색광에 파렴치한으로 나온다.)

빛이 투영하는 색깔의 범위를 붓의 몸짓으로 표현한 베르메르는 화풍으로 본다면 바로크적인 빛과 르네상스적인 색깔의 화가였던 것 같다. 상당수의 그림이 시점만 달리 할뿐 그의 아틀리에를 배경으로 그려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인지 영화의 도입부는 '화가의 아틀리에' 라는 작품을 연상케하는 소품들이 가득하게 펼쳐진다. 가냘프게 빛이 스며드는 모자이크 창문과 그에 반은 어둡고 반은 먼지가 얻혀진듯한 네덜란드 지도, 헝겁들이 널려 있는 탁자와 상젤리제, 이젤... 오페라를 보기전에 아리아를 듣고 가는 것처럼 그림을 한번이라도 보고 간 사람이라면 절로 탄성이 나올만 하다.

진주 귀걸이를 할 그리트에 대한 베르메르의 연민이 중세 특유의 생활의 소리와 퀄트 되면서 예술과 예술의 소품에 대한 신비감에 도취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튜브에 담겨진 물감이 없는 당시 색을 만들기 위해 식물, 광물질들을 섞어서 만드는 과정과 필시 잔 강에서 기어올린 물로 붓을 닦아내는 장면들은 예술이 '물질에 투영된 정신세계'이며 그때 존재하는 질료들에 의해서 표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가난했던 고흐가 가질 수 없었던 베르메르의 상대적 부유 같은 것 말이다.

트레이스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가 원작이긴 하지만 헤이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영화속의 그림, 베르메르의 작품은 '터번을 두른 소녀' 로 더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역시, 해석하기 나름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의 어떤 아름다운 부정, 절제, 연민의 정을 보고 있자면 왕가위의 '화양연화'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최근 열린 부산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한 왕가위의 신작 '2046' 이 화양연화의 연작이라고 하니 그도 꽤 볼만하겠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 터번을 두른 소녀]



[화가의 아틀리에]
2004/10/10 20:11 2004/10/10 20:11
DrunkenSTAR 이 작성.

Hopper, Edward

2004/09/15 18:28 / 관심/페인팅
미국회화의 조류는 역사적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제 대공항이나 2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미국예술 전반은 빠른 반전과 시대상의 반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된다.(물론, 언론과 함께) 그 반전의 소용돌이에는 에드워드 하퍼, 잭슨폴락, 그리고 앤디워홀이 있다.
감상자는 권태에 대한 즐거운 망상으로 하퍼를 보게 될 것이다.



Nighthawks(밤샘을 즐기는 사람들) 1942
Oil on canvas 84.1 x 152.4 cm



Night in the Park(밤에 공원에서)1921. Etching



People in the Sun,(일광욕) 1960. Oil on canvas, 40 3/8 x 60 3/8 in. (102.6 x 153.5 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Washington, DC, U.S.A.
2004/09/15 18:28 2004/09/15 18:28
DrunkenSTAR 이 작성.

시간이 남아 돌았던 나는 어제도 들렀던 우피치 미술관을 오늘도 8유로를 내고 들어와서, 3시간쯤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를 감상하고 있었다. 보티첼리의 방에는 '프리마베라' 와 '비너스의 탄생' 이 같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두 작품의 캔버스 크기가 생각 이상으로 컸기에 훔쳐갈 궁리를 하는 시간도 장장 3시간이 걸렸다.
결국 그 궁리를 포기하고 1층에서 Guide 두권을 샀는데, 그건 피렌체 여행 내내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사람에게, 기억의 의미로 선물하고 내겐 없다.

피렌체 공화국이 르네상스의 꽃이 될 수 있었던 건 메디치 가문의 패트런 정신 때문이다. 그런 메디치 가문의 궁전인 피티궁은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베키오를 건너서 300 미터? 400 미터? 쯤 직진하면 소박한 궁전의 벽돌담이 보인다. 피티궁에는 팔라티니 갤러리가 있는데 이곳은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아 우피치 보다는 휠씬 한가했다. 메디치 가문의 개인 소장품들을 볼 수 있는 갤러리를 찾지 않는다니... 피렌체의 절반을 놓친 것과 다르지 않고, 그런 기대는 결코 실망을 주지 않았다.

'냉정과 열정사이' 에서 준세이가 자주 보러왔었던 라파엘로의 '성자와 성모' 가 있는 갤러리이기도 했으며 준세이가 복원중에 스승이 칼로 찢어 놓은 치골리의 작품들이 수십점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왈칵, 쏟아 질것만 같은 말초신경의 긴장을 애써 조여 잡으며 라파엘로의 '성자와 성모' 를 훔쳐갈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프리마베라'에 비하면 소품인 이... 진품...을 어떻게 하면...
따로 막아 놓은 것도 없고 주위에 감시(?)하는 사람도 없어서 500년전 라파엘로가 붓을 들어 채색을 했었던 길을 따라 감촉을 느껴 보았다. 첫사랑의 팔짱 같은, 절정의 느낌.
그래서 이렇게,
2시간쯤 절도의 궁리 끝에 훔쳐와서 여기에 진품을 전시한다.


2004/09/04 17:51 2004/09/04 17:51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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