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관찰에 대해 특별한 시선을 가지고 계신 박현주님의 블로그는 내가 가진 즐겨 찾기 중에서도 단연 훈장감이다. 블로그를 통해 작업 중이란 사실은 알았지만, 8월 9일에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Froken Smillas Fornemmelse For Sne, Smilla's Sense of Snow' 은 소설을 끊은지 오래된 패인의 금
단현상에 적잖은 부채질이다. 구색이 없어도, 아직 200여 페이지나 남은 텍스트가 있어도 서두르지 않을 수 없는 호기심이 생긴다. 아직 독서하지 않은 것보다 아직 사지 않은 것이 더 즐거운, 따라서 오랜만에 낭만적으로 책방에서 느긋하게 뽑아들 작정이다. 물론 최근 두달동안 느긋한 날도 없었고, 한가할라치면 잠과 조우하기 바뻤으니 난 언제나 바쁘고 핑계가 많은 놈이 되었지만, 간만에 가을이니...

sense of snow 를 맘대로 이해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세우고 널리 ID 함으로써 독서와 구매의 친밀감은 어느 금단현상보다 독하다. 금단현상이 머리를 아프게 하고, 모름지기 심장은 가슴이 아니라 발바닥에서 뛰어야 하는 세계를 깨닫는 요즘, 박현주님의 말 '짧지만 세상에서 가장 긴 글자들이 언제나 제목인 것입니다.' 또한 짬나는 퇴근 길 강변북로에서 젖을 충분한 상념꺼리이다. 긴 상념과 금단현상을 위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을 권한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답글에 주소를 남겨주시면 남겨주신 곳으로 책을 선물해드리겠습니다.
정보보호를 원하시면 secret 으로 남겨주셔도 되고...


책 소개
2005/09/01 22:15 2005/09/01 22:15
DrunkenSTAR 이 작성.

사랑의 예감

2005/03/24 21:46 / 관심/텍스트
김지원의 '사랑의 예감'(이상문학상 당선 '97)을 읽고...


'생명이 있는한 어디선가 만나게 되는 예정된 사랑'

플롯부터 다른 글쓰기였다. 1장과 2장으로 나뉜 중편크기는 장의 내용부터가 독자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독법을 요구하는 의지가 있었다. 처음부터 예정된 등장인물들은 수다로 시작한다. 넓지만 인종적인 이해관계가 마천루처럼 쌓인 뉴욕은 그다지 옆사람만을 응대하여 대화하기에는 좋은 장소는 아니다. 겹겹이 쌓인 문화적 혼합은 차라리 카오스적이지만 그들의 수다는 그런것들을 의식하지 않는 듯 하다.
몇가지 모티브적인 개체가 확연히 등장한다. 별, 시계, 그리고 공간과 시간이다. 별은 넓은 공간에 나름대로 빛을 내며 그대로 떠있는 섬이다. 무엇이든 두 개이상의 물체사이에는 공간이 있게 마련이고 별은 미약하지만 짜내듯 빛을 내며 공간이 있음을 채우고 있다. 시계, 시계라는 사치품(?)이 흔해졌음을 흐름으로 간주하며 시간은 공간속에서 어느것과도 섞이지 않는 평행선으로 우리들 삶중간을 꿰뚫고 누구나 손목에 찰수 있을 만큼 많아졌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대화를 하는 유부녀(신옥과 장미) 둘은 그들에 인연의 끈을 위해 뉴욕이라는 먼곳을 택했고 동창이라는 설정에 반가워했다. 대화의 주체로써 유부녀들은 과거와 현재를 공간에 배제된 상태로 그동안 공허로 남아있던 그들에 인연의 끈을 이으려한다. 그들의 남편들은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과정에 책임을 맡고 있다.
몇가지 설정된 대화관계, 즉 신옥과 장미, 신옥과 장미의 시누이, 신옥의 남편과 장미의 남편, 은 제대로된 선형적 구도에서 점차 순환적인, 복합적인 연결로 어지럽게 뻗어 나간다. 간간히 대화속에 인용되는 닥터유(장미 시누이의 남편)의 환상적인 운명은 시공을 잇는 삶에 도정을 의미하고 전체적으로 산만해 질 수 있는 대화소재를 하나의 점으로 이끄는 구심역할을 한다.

"시인(詩人) 이태백은 시간은 지나가는 과객이라 읊었으나,
지나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물현상뿐이더라, 시간은 '늘' 그대로다. 그래서 오'늘'이다"


닥터유의 독백같은 추억속에 간간이 산재되어 있는 이런 시간정의는 인간 개개인의 의식에 접근하고 대화 주체들의 개념적인 행동양식을 정하는 역할로 자리 잡는다.
시계라는 모티브로 전개방식을 정하고 미국교포사회와 한국적 현실-분단, 민족정체성, 인종, 언어장벽-을 대비시키고 자칫 주제를 빗나가는 소재적 빈곤의 극복을 인공수정과 결혼등으로 매꾸고 있지만 어색하지 않다. 이 소설에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열정적이고 애끊는 만남과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마치 그들의 대화속에선 그런 거추장스러움은 대화거리 조차도 되지 않는 듯한 구성이 사뭇 제목과 대비되어 독자를 조롱한다.

"대화는 피곤합니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부부사이에는 대화가 오히려 없는 것이 좋습니다....중략... 어떤이는 사랑을 한답시고 주고주고주고, 어떤이는 주고받고, 주고받고 어떤이는 받고받고받고, 그런데 어떤이는 시간과 공간을 줍니다. 행복이란 지극히 사사로운 감정이어서 무리하게 강요해서는 될일이 아닙니다."


신옥 남편의 대사는 현실적이고 냉소적이다. 인간관계로 깊이 자리잡은 부대낌과 미움과 고움의 정, 구속같은 사랑을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우연한 개기지만 강한 인연과 우연성으로 만난 결혼에 개인적인 독립과 암시적인 주장으로 익명적 행복을 요구한다. 행간 밑에 잠재적으로 깔아놓은 분단이라는 모티브와 개인 또는 민족의 정체성은 사실 커다란 줄기는 아니다. 간혹이지만 자연적, 또는 인공적인 생명의 연장이 소설을 이루는 페러다임으로 보고 싶다.
그런 연속선상에서 시간, 공간, 인위적인 국경같은 것에서 조차 차원을 달리하는 생명이 예감을 의미하는 사랑으로 승화됨을 보여준다. 대화의 종점에서 그들은 서투른 만남을 기약하지만 연속선상에 생명을 믿지 않았고 생각보다 빠른 만남이지만 그들에 존재는 다시 원래의 섬으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올림픽은 그 우연성을 촉매했지만 그다지 만족할만한 것은 못됐다.
이 소설은 1장은 뉴욕, 2장은 서울의 상반되는 구도속에서 상대적으로 작아진 사적공간과 만남의 우연성을 소설적 필연으로 연결시키며 영원으로 이어지는 인간관계의 연속성을 말하려 한다.
2장은 1장보다 더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에서 혼자사는 그저 평범한 여자다. 아이를 키우는 주부지만 약간의 특별한 장치가 있다. 다시금 등장하는 분단이라는 현실이 합성되어 1장에서 부부라는 태초적인 본능적 관계를 부인하는 인위적 효과가 그것이다. 그렇다고 납북된 남편에 대한 한스러운 망부가는 아니다. 단아하고 단정한 이야기 흐름은 어쩌면 5년이라는 시간차가 덮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단호한 안정감이 있다.
때때로 사람들은 현실속에서 무거운 안정을 유지하다가도 무의식상에서 보여지는 환영과 환청을 꿈이라는 현상으로 이어질때가 많다. 그 무의식의 현상속에서 수천년전부터 정해져온 인류의 것, 생성과 소멸은 여성의 봉긋이 오른 배에서 생성을, 처참하게 일그러진 사고속, 구역질나게 찢겨진 시체에서 소멸을 보여줌으로써 대비되는 시공, 현실과 꿈을 관조적으로 매듭 지어버린다.
그다지 놀랍지 않은 만남이 이곳에서도 있다. 여자와 신옥의 남편, 지루한 서술 끝에 분열적인 대화는 이상하리 만치 운명적임을 상징하려는 질긴 교감이 눈길을 끈다.

"저도 살아나가 기쁨니다... 중략...
아내의 뱃속에 든 아기를 초음파로 검사해 보았습니다. 눈물이 솟더군요 감동이 치밀어 울다가 웃다가 했습니다. 장례식을 가봐도 그렇고 사람들은 죽는일과 태어나는 일을 큰일인 듯 여기지만 그중간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언제 죽는지 다 잊어먹고 그냥그냥 생명을 유지하며 살고 있구나"


너무나 먼곳에서부터, 아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인간의 생성과 소멸을 눈앞에 대놓고도 시리도록 감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의 연속성과 생명의 잉태는 자기유사성이라는 독선으로 말미암은 침착함 같은 것이다.
생명에 대한 아집은 너무나 본능적이다. 소설은 그런 아집으로 대단원을 맺는다. 인간의 만남이 영원은 아니지만 공간과 공간속을 연결하는 목숨으로 인간은 어디선가 만나고 헤어진다. 부부라는 질긴 끈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은 스스로 끊기도 하고 잇기도 한다.
생명이 그들의 의지에서 비롯됨을 의미하듯이 약속시간을 정한다. 사랑의 예감은 그런 연속적인 생명의 흐름속에서 단호함을 보여주고 열정적이지 않아도 우연같은 만남속에 사랑을 의미하는 자체가 있다고 말한다.
생명은 그런 사랑을 감격으로 알게 해준다. 멀거나 가까워도 그것은 교감으로 교통으로 이어준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2005/03/24 21:46 2005/03/24 21:46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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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病)에게

2005/01/14 18:13 / 관심/텍스트
오랫동안 앓던 병보다 잠깐 들른 감기가, 어지간하면 고치려하지 않고 시간을 좀 들여 앓아 버리면 된다던 생각을 뉘우치게 한다. 감기에 비틀거리는 내 모양이 작년 내내 그 모양새다.
닳아 가는 육신만큼, 이틀만 앓고 나면 낫는 병도 차츰 없어진다.


병(病)에게
조지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는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린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2005/01/14 18:13 2005/01/14 18:13
DrunkenSTAR 이 작성.

시인 김춘수

2004/12/02 19:10 / 관심/텍스트
[뛰어난 시인과 뛰어난 산문가가 원래는 한 몸이라는 것을 행복하게 증거한다. 이성복의 산문을 읽다보면, 틀림없이 '산문'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시' 속으로 들어가 있기 일쑤다.]
시인 이성복의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 에 실린 소설가 이인성의 서평이다. 위와 같은 서평의 느낌을 시인 곽재구의 포구기행과 예술기행집에서 독후감한 적이 있다. 시인이 관찰하는 이 세계의 사물, 그 사물들은 나도 익히 봐왔고 만져봤던 것들인데도 그대로 시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눈과 가슴의 가난함을 탓하고도 남음이다.

샤갈전에 즈음해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이라는 시인 김춘수의 시를 찾아 읽어 보고 포스트를 남긴 적이 있다. 꽃과 릴케, 부다페스트와 샤갈을 노래 했던 시인 김춘수 선생이 지난달 타계했다는 소식에 나는, 꽃이라는 시인의 시를 학창시절 어느 벤치에서, 어느 여학생에게 낭송해준 이후로 다시 읽어 보게 되었다. 어느새 꽃의 시는 낱낱이 기억에서 사라져서 그때 그 감흥이 어지간해선 살아나지 않는 거름의 나이가 되어 버린 듯, 묵묵히 읽어 갈 수 밖에 없었는데, 도리어 세월의 생김새에 불편한 상채기만 딱지 져 흉이 되었는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꽃의 시 첫 노래에서 여학생의 치마속으로 불쾌한 손을 집어 넣는 듯한 섹츄얼리티를 느끼고 말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다음 구절에서 나는 이내 고개를 휘젓고 냉큼 담배라고 걸어 피우지 않고는 이 상상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 미술학적 의미 등으로 고상하게 해석되는 시 앞에서 불경스러운 나의 새로운 미적(?) 해석은 혼자 피우는 담배 내내 난감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꽃의 해석이 차라리 꽃이 되기 전, 꽃이 된 후, 그리고 사라진 꽃에 대한 전시상황의 어머니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려 했다. 이를테면, 전장에 아들과 남편을 내보내는 어머니가 불러보고픈 이름으로 그리고 그들을 꽃으로, 명분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전장에서 산화한 이름으로, 어머니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으로... 음미하는 것은 어떤가?
산화라는 말이 좀 걸리긴 한다. 산화는 본래 의미의 散華, 부처님께 꽃을 뿌려 공양하는 의식이라는 뜻에서, 散花 의 의미로 전장에서 전사함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변질된 散花는 일제시대 일본인이 만든 말로 '사쿠라 꽃처럼 지다' 라는 뜻으로, 황국군대에 목숨을 바친 황국민이란 뜻으로 혹세무민한 말이다. 어쩐지 내 세월이 비춘 생각이 여러면에서 껄끄럽다.

시인이 되지 못해 안달 복달이 났었던 소년이 이렇게 궁상 맞고 궁색한 어른이 되어, 추모를 해도 실례가 안될지 모를 지경이지만,
시인 김춘수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1922년 11월25일 ~ 2004년 11월 29일]

2004/12/02 19:10 2004/12/02 19:10
DrunkenSTAR 이 작성.

月下獨酌

2004/10/20 19:52 / 관심/텍스트

월하독작
이태백

天若不愛酒
하늘이 만일 술을 즐기지 않았다면
酒星不在天
어찌 하늘에 술별이 있으며
地若不愛酒
땅이 또한 술을 즐기지 않으면
地應無酒泉
어찌 술샘이 있으리요
天地旣愛酒
천지가 하냥 즐기었거늘
愛酒不傀天
술을 좋아함을 어찌 부끄러워하리
已聞淸比聖
맑은 술은 聖人에 비하고
復道濁如賢
흐린 술은 또한 賢人에 비하였으니
聖賢旣已飮
성현도 이미 마셨던 것을
河必求神仙
헛되이 신선을 구하는가
三盃通大道
석잔술은 大道에 통하고
一斗合自然
한말 술은 自然에 합하거니
俱得醉中趣
모두 취하여 얻는 즐거움을
物謂醒者傳
깨인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花下一壺酒
꽃 아래 한독 술을 놓고
獨酌無相親
홀로 안아서 마시노라
擧盃邀明月
잔들자 이윽고 달이 떠올라
對影成三人
그림자 따라 세 사람일세
月旣不解飮
달이 술은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
그림자만 나를 따라 다녀도
暫伴月將影
달과 그림자 데리고서
行樂須及春
함께 즐기는 이 기쁨이여
我歌月徘徊
내 노래하면 달도 거니는 듯
我舞影凌亂
내 춤을 추면 그림자도 어지럽다
醒時同交歡
깨이면 함께 즐기는 것을
醉後各分散
취하면 모두 흔적이 없이
永結無情遊
속세 떠난 맑은 사귐을 길이 맺고자
相期邈雲漢
멀리 은하에서 만날 날을 기약한다

2004/10/20 19:52 2004/10/20 19:52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