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느날 당신의 이름으로 나를 이야기 하고 있을 때가 되면 그 때가 사랑일수도 있겠다며 거드름 피울 것 같았고, 어떤 마음이나 되려 손사래 치는 씀씀이가 시원치 않아서 기대 만큼 설레지도, 그렇다고 밀어 낼 만큼 덤덤하지도 않아 흐르는 강물에 된장 풀듯 밍밍했던 것을 이렇게 이야기 하오. 그래서 내가 그렇다 보니, 내가 마냥 서툴고 능글능글 하는 모양이 전혀 당신을 위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삼삼하게 나를 아우르고 때론 불쌍하게 봐주기도 하는 당신이 있어서 어디가서 섭섭한 일들이 생겨도 그다지 억울하지 않으니, 이런 얘기를 당신에게 해주지 못했구려. 삼삼한 당신, 바람도 전 같지 않게 부니... 내 새로운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려 하오.
검색어 '분류 전체보기'에 대한 0 개의 검색 결과
부대에 그런 전통이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제대할 때 쯤 뒷산에 벤치를 하나 만들었었다. 처부에 출근도 하지 않고 사역도 나가지 않는 그야말로 민간인과 다름 없는 말년 육군 병장의 짝다리가 꼴 사나워서 중대 행정관이 고안해낸 급전통이었겠지만, 서툰 톱질로 하나 완성하고 나왔다.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물리적인 의자가 되었지만, 고참이 물러나며 의자를 내주는 의식은 빈틈 없이 채우는 시간의 미분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고참의 의자에는 가치의 경중을 떠나 역사와 책임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후배이고 누군가의 의자에 앉아 시간을 적분하고 있다. 시간은 역사와 동일하지 않아서 모든 시간이 역사가 될 수 없다. 무엇이 될까가 아닌 어떻게 살아 보일까를 통해 미분된 시간, 즉 역사를 간직한 의자를 내어 주게 된다.
오로지 나만 책임지면 되었던 의자를 넓혀야 될 시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문제는 의자를 내주고 바닥에 앉거나 비슷한 것을 하나 더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벤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인데, 자꾸만 십여년전 왜 벤치를 만들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인생이란 의자 하나 밖에 내어 놓는 것이라 했던가. 어느 바닷가에 풍덩 던져 넣은 연자 맷돌, 그 무게 같은 것이 아니어서 벤치를 만들고 빈자리를 만들 수 있었는가 보다. 이제 중요한 시간이 다가 온다. 살아 보아야 할 자세를 고쳐 잡아야 겠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거나, 섹시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옛날 옛날 아주 그윽한 옛날부터 외로움과 기다림이 뒤범벅되어 철판 긁는 소리를 내던 날이 그쳐서도 아니고, 마음속에 두껍게 쌓인 녹이 깨끗하게 닦여 나가서는 더더욱 아니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남을 사랑함에 어리숙하여 사랑인가 싶을 때 뒤돌아 눈물이 나는 줄도 모르던 시절을 건너와서도 아니고, 담배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사막에서 세상의 모든 상념이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소멸하는 듯한 외톨박이의 간절함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네가 그저 밥 잘 먹었냐고 물어오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에게 얘기해주는 동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하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무엇이 아니던 때 내 심장은 말이 없었고, 조간 신문으로 덮어 놓은 짜장면 그릇이 주말 내내 집앞을 지키고 있는 동안 심장은 오직 딸꾹질 하는 데만 쓰이고 있었다. 푸른 페인트 칠을 한 동사무소 옆에 우체통이 있다. 깨끗한 빨래를 널어 놓고 게으른 의자를 타일러 우체통 옆에 놓는다. 소중한 것, 조금도 낡지 않는 것들을 적어 우체통에 넣을 수 있어서 기뻤다.
햇빛이 무거워 엉거주춤한 계절을 따라 나의 편지가 물들고 천년전에 눈물을 흘려 만든 바람이 그곳으로 날아가 내가 가장 작았을 때를 얘기해주고 네가 웃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에게 있었던 외로움이 나에게만 와 준다면, 세상에서 제일 고마워.
인생에 뭉둥그려진 모든 예의 바름과 이별을 고하고 나니 심장이 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것은 달리기, 천천히 그리고 긴 호흡으로, 한조각의 뼈라도 또각또각 움직여서 모든 남으로 부터 요약된 너를 만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다. 심장이 할 일은 오직 그것. 조난신호가 웅웅 거리던 바닷가에서 내가 부르는 지상의 노래가 있고 그보다 더한 그리움이 나에게만 와 그 무게를 물어보면 아무도 모르게 바다속에 던져 넣은 연자맷돌, 그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세상에서 제일 고마워.
눈이 없는 도시에서 길들여지는 무감각,
황실 노래방, 귀티 없이 '말 달리자'
혈액이 빠져 나간 관속에 온통 흑담즙만이, 무감각
이렇게 살다, 가면 되지...
이렇게?
살다 가는 길도 어려운데, 이렇게? 까지
다른 노래 찾다가도 자꾸만 펼쳐지는 'ㅂ'
무감각해져야해... 그래야 예의 바른거야,
온갓 허무에 허투
무감각해져야해, 그래야 카리스마라도 있지,
스포츠 신문이 만든 현대의 남성상
무감각하지 않고, 카리스마가 떨어져 말라 버린 혈액
숭고한 것도 탈이고, '보고 싶다' 하는 것도 탈이고
숭고하면 갑갑하고, '보고 싶다'면 부담이니,
차라리 싫은게 낫고, 상처가 낫다.
차라리 외로움의 상처가 있는 사람하고 사랑하게 해줄 테니.
아무튼, 헤어진 모든 것들은 잘 살아라(어떻게든, 이렇게든)
노래방에서 'ㄱ' 부터 'ㅎ' 까지
헤어진 것들에 대한 예의 바른 추억 뿐이다.
구실 없이 서두른 상행의 저녁으로 부터 하행의 아침까지, 굴러 들어온 복, 남김 없이 주어 담아도 연말이 되면 개똥만큼 찾아 볼 수 없을 것을, 애쓴 만큼 딱! 그 만큼도 복이 없는, 지지리도 사나운 연초의 액땜으로 여길 엉뚱한 움직임.
침목에서 삐져 나온 종이돌인가, 발꼬락으로 툭툭 치며 나이열 탓을 하며 열을 올리는 서울역에서 온전한 내 자리를 가진 기차는 이미 떠나고, 참았던 수북한 아쉬움이 쏜살 같아... 마음이 이미 과녁인걸...
여전히 잔설에 견디던 꽃을 뽑아 땅에 일던 파문으로 만든 다발은 시들고, 저 든든한 나무에도 아쉬움 같은 것 수북하면 하얗게 변해 앙상한데, 내가 끈질기게 싹을 틔워 파문 일고 다발로 묶을, 오직 이 한가지만 솔직한, 설레임.
나이열을 앓아 불편하여 정신이 깨는 오늘은 굉음일 뿐...
굉음은 지나간다,
이제는 문학을 몰라 기대지 못하는 진정성과 감수성이 거슬려 아팠고, 차마 떠나지 못하던 현실이 마치 '하루끼'의 먼 북소리처럼 어느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지 않고서는 도무지 견딜 수 없어 아팠다.
우리가 서로 떨어져 나와 얼마나 아파했는지 조차 모르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너도 나도 이제 어디론가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잘못 걸린 전화에도 흠짓 놀라 몇 시간을 생각하다 비로서 되걸어보는 소심함은 네 앞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묻고 싶은 맘 접어두는 것, 말 못하고 돌아서는 것
하필, 동짓밤 빈 가지 사이 어둠별에서,
손톱달에서 가슴 저리게 너를 보는 것 문득,
삿갓 등 아래 함박눈 오는 밤 창문 활짝 열고 서서
그립다, 네가 그립다, 눈에게만 고하는 것
끝내, 사랑한다는 말 따윈 끝끝내 참아내는 것
- 홍성란 '따뜻한 슬픔'
단조로운, 잔잔한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것은 역시 나를 위로하기 위함으로, 천천히 나를 스쳐가는 바람속의 말에 너를 그리다, 나의 꿈은 오로지 하오의 솔섬에서 붉게 자라는 우묵가사리의 정막함뿐이다. 네가 행복하게 부르는 휘파람 소릴 들을 수 있도록 붉게 자란 정막함이 오로지 나의 꿈임을...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라는데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곡괭이를 팽개치고 지평선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간다는데 걸어가다 어느 순간 걸음을
뚝, 멈춘다는데 걸음을 멈춘 순간 밭고랑에 쓰러져 죽는다는데
오르다 말고 걸어가다 마는 어떤 일생
-천양희 '어떤 일생'
태양의 서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빌리를 따라 통통배에서 바다낚시를 하다보면 그곳이 서쪽일까? 삶이 서쪽에서 요약된다면 태양과 같고 하루와 같고, 어느날 무릎사이에 파 묻은 고단한 머리가 눈을 뜨고 보는 단풍나무와 같고, 가는 날짜마다 샘을 하는 내 인생의 남루함과 같다. 늙고 붉어진 빈 소주병이 쪼그리고 앉은 화려했던 술판과 같다. 10월, 다시 술판이 시작된 내 인생은 지난 날의 절망의 내용을 다 까먹어 버렸다. 오로지 잘못이 없는 사랑의 추억만 고스란히 부표를 타고 서쪽으로 홀로 떠다닌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2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
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본다.
- 기형도 '10월'
5월이 간다. 폐허의 길을 건너던 맨발은 결석한 여자가 창호지로 드리치는 노을에 대고 읽던 이별소설의 행간 위를 걷기 시작한다.
끊어진 다리를 절룩거리며 폐허를 걷다가 도착한 그곳엔 보이지 않던 사랑이 차가운 얼음처럼 황무지에 등을 대고 붙어 있을까? 늙어 버린 햇살로 부지런히 문지르면 다시 찬란하게 녹아 번질까?

연애 편지를 쓰다가도 자꾸만 이 편지가 그에게 도착했을 때, 잘 잊고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 도리어 실수가 아닌가... 편지지는 그렇게 오열을 하며 구겨진다. 어느새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듯 하다. 삶은 반복되며 고통과 갈등을 자성하게 한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슬픈 것은 동일한 평행선을 긋는다. 마음이 자꾸만 다쳐가는데, 정말 원하는 것은 리버스되지 않는다.
나에 대한 선생이 나 라는 맹목적인 과신으로 나는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나는 왜? 무엇을 하는 가에 다소 입맛을 다셔 가는 중에도 물끄러미 그가 보고 싶단 말이다. 실은, 무엇을 자성해야 할지... 그런 것조차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나 이다.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