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난신호

2005/01/23 19:31 / 기억
언젠가 저곳, 그 바다에 도착했을 때, 검고, 푸른 바다가 있을 법한 그 자리에서 내가 놓친 연자맷돌의 조난신호를 듣는다. 집에 문득 불이 켜지고, 다시 나는 혼자다. 저편을 보면 볼 수록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강... 기어이 바다에서 조난된 나의 사랑은, 잘 지내냐고 신호를 보낸다. 나는 그렇다고 창문 넘어 볼 수 있게 불을 켜둔다. 밝은 곳에서 비로서 나의 그리움은 감춰진다. 그렇게 감춰진다.

이미 5월에 내 심장은 동사 하였다. 그래서 겨울을 날 수 있었다. 봄에 새순이 돋아야 하는 이치를 내 심장은 모르고 있다. 벌써, 2월인데... 햇살이 봄이 되면, 다시 짜안해질 텐데... 약속이 매어져 있다면, 이태후 봄을 지금 끌어 올텐데...
2005/01/23 19:31 2005/01/23 19:31
DrunkenSTAR 이 작성.

생활의 사랑

2004/11/19 18:47 / 기억
언젠가 부터 나는 매일 아침마다 쉬지 않고 우울을 얘기한다. 내가 우울을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아직 병원에서 약이나 연극 같은 것으로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징조이다. 한강 다리를 건너다가 차를 세우고 검은 벨벳같은 강의 조수를 바라볼 수 있는 가끔, 내가 판단하는 우울이 지나쳐서 한쪽 발을 성큼 들어보기도 하지만 요절한 사내의 뒷모습을 오래 남겨 두지는 않는다. 우울을 판단하기란 너무도 쉽다. 일하다가 듣는 유행가 한줄 멜로디에, 혼자 보러간 영화관에서 운좋게 복도쪽 좌석이 걸렸거나, 두번째 읽는 소설책에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구절을 발견하고 연필로 밑줄을 그던가, 그렇게 하찮은 것들에 희망을 부여하는 나는... 판단하건데, 그때가 우울이다.
우울은 생활의 퇴적물이다. 생활을 파괴할만큼 공포에 휩싸인 우울이 아니라면, 그것이 계속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울은 어차피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울과 양립할 수 있는 것은 권태, 채념 등이 있지만, 단연 사랑이다. 사랑은 우울과 양립대립쌍이다. 이 둘은 겹쳐서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따로 따로 제 힘을 뽐내기도 한다. 한번에 하나씩 오는 양립대립쌍은 없다. 사실, 이때가 가장 두렵다. 생활을 단번에 파괴할 수 있다고 믿는 것들이 양립대립한다는 것은 곧바로 공포가 된다. 이것들은 우리가 잠재시켜 놓은 면역 인자들을 공격해나간다. 공포는 확산되고 괴롭고, 외롭고, 눈물을 흘리며 사랑을 얘기하게 하고 우울을 토해내게 한다. 그런 내가 협오스럽지만, 사랑과 우울은 계속된다.
우리가 사소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랑과 우울은 거기까지 이다. 사랑이 생활을 파괴하려고 할때, 사람들은 사랑에 핑계를 대지만 파괴의 의지는 사랑을 하는 자에게 있다. 사랑은 영원불멸의 가치가 아니다. 그건 생활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무너진 사랑쯤은 우울처럼 생활의 자양분일 뿐이다. 사랑은 아무나 한다. 먹고, 싸고, 자고, 죽는 것은 생활이지 사랑의 지배 영역이 아니다. 고로, 생활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사랑의 크기나 잣대가 제각각 달라 그것이 생활에 강요하는 바가 저마다 다르다 해도 먹고, 죽는 것에 정의가 없으면 사랑의 위력은 생활 앞에 한방울 피, 그것뿐이다.
결국, 술만 마시면 사랑을 떠벌리고 우울을 고양시키는 것이 겉멋의 일환인양 우쭐거렸지만, 생활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가벼운 제스처일 뿐이다. 사랑과 우울의 입장에 서서 생활을 결탁하려 든다면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누군가에게서 완전하게 소외 될 뿐이다.
생활의 입장에서 사랑의 선택은 그들의 가족을 내 가족처럼 내 살을 깎아 가족의 살을 찌우게 하고, 병에 걸렸을 때 치료비를 벌어다 주고, 마지막 순간까지 온갖 토사물을 거둬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2004/11/19 18:47 2004/11/19 18:47
DrunkenSTAR 이 작성.

죽도록 마셔도...

2004/10/14 16:38 / 기억
반가웠으나...
잔인한 날...
너무 술을 마셔서, 너무 취해서...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두번이나 쓰러진 새벽,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일주일동안 시동 한번 안건 차안...
내 모습이 이렇게 불쌍할 수가 없고... 나, 왜 이러니...??
모든 세포가 녹슬어 버린 듯 움직여주질 않고, 술취한 나를 보듬고 있던 라디오만 새근거리는 아침... 연자맷돌처럼 뚫려버린 가슴, 마음이 울어 부은 눈을 비비우고 나는 다시 제안설명회를 하러 12시30분 대구행 KTX 를 타야한다.
잔인했던 시간은 뒤로 보낼 수 있으나,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술로 적셔도 치유되지 않는...
2004/10/14 16:38 2004/10/14 16:38
DrunkenSTAR 이 작성.

여정

2004/10/03 03:48 / 기억
짤스부르크로 가시는 부모님을 배웅하고 두산베어스의 박명환과 일본 롯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승엽의 에이전트인 친구가 마침 일본에서 들어온다고 해서 터미널 구내를 설렁설렁 돌아다니며 기다리고 있었다. 배웅과 마중에 약한 사람들... 가시는 부모님에게도 짤막하게 고개만 끄덕이고 돌아섰던 나를 비롯하여 마중 나온 사람들은 마중 할 사람을 만나면 그저 옆에 서서 걷는게 보통이란 걸 목격했다. 마중은 배웅보다 휠씬 극적이고 해피엔딩한 것인데도... 여행갔다 오는 여자친구를 마중나와 힘껏 껴안아 한바퀴 빙그르 돌리며 기뻐하는 광경을 상상하며 씁쓸해 했다. 그리고 친구가 출국장에서 나왔을 때, 난 옆에서 같이 걷기만 했다.

그날 밤, 복매운탕을 안주삼아 소주 2병씩을 비우며 연愛얘기, 야구얘기, 연藝얘기 등을 하다가 내일 떠날 여행지를 즉흥적으로 정해버렸다.
야구에도 별 관심이 없고, 아는여자도 본지 얼마 안됐는데 영화 주인공인 공치성의 이미지 백그라운드가 박명환이라는 걸 친구를 통해 알았다. 장진감독과 박명환이 매우 친한 관계로 술자리에서 박명환이 농담으로 한 얘기들, 땅볼을 받아서 1루로 안던지고 관중석으로 던진다는 등 을 시나리오화 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추후에 장진감독과 만날 약속을 하고 내일 여행을 위해 서둘러 일어섰다.

지방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그나마 아직까지 잘 연락하고 있는 군대 후임병의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게다가 전라도는 나에게 여행의 오지이기도 했으니 쌓아놓은 설거지 감에서 쓸만한 젓가락 하나 건져낸 기분이 들었다.

익산 -> 해남 -> 구례 -> 통영 -> 부산 ->(카패리) 제주
이것이 나의 총체적인 여행 루트였고 내 즉흥적인 사적활동과 혼자여행의 정신적 부담감으로 볼때 통영쯤에서 상경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래도 해남이나 구례쯤에서 포기할 생각은 안하기로 했다. 일직분기점을 나오면서 전화를 했더니 후임병은 구례에 있다고 했다. 어차피 순서만 좀 바뀌는 거니 그쪽으로 가겠다고 하고 5시간 반 가량을 오로지 운전에 매달려야 했다.
2004/10/03 03:48 2004/10/03 03:48
DrunkenSTAR 이 작성.

천만에 말씀을.

2004/09/13 20:20 / 기억
죽었다니요?
실낱 같이 잘 살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슬픔에 젓어 명징한 하늘 또한 유쾌하기 이를때없이 외롭우니, 매우 잘 살고 있습니다.
죽었다니요? 천만에 말씀을...
덕분에, 베토벤 소나타 17번으로 귓청을 망각하고 동반자살로 차려놓은 만찬으로 배불러 터진 파탄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님이 주신 기대와 운명과 배반과 분노의 꿀물로 날마다 모기의 축복속에 근근히 죄오줌 같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죽었다니요?
목련인줄 알았던 갈대가 설마,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퇴비가 스며드는 시간이 지나면, 그때 소식이 있겠지요.
죽다니요, 천만에 말씀을...
2004/09/13 20:20 2004/09/13 20:20
DrunkenSTAR 이 작성.

건방진 희망

2004/08/14 15:22 / 기억
희망은 절망이 깊어 더 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을 때 온다.

연체료가 붙어서 날아드는 체납이자 독촉장처럼

절망은

물빠진 뻘밭 위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감은 눈 앞에

환히 떠오르는 현실의 확실성으로 온다.

절망은 어둑한 방에서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서랍을 열어 서랍 속의 잡동사니를 뒤집어 털어내듯이

한없이 비운 머릿속으로

다시 잘 알 수 없는 아버지와 두 사람의 냉냉한 침묵과

옛날의 病에 대한 희미한 기억처럼

희미하고 불투명하게 와서

빈 머릿속에 불을 켠다.

실업의 아버지가 지키는 썰렁한 소매가게

빈약한 물건들을

건방지게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는 백열전구처럼.

핏줄을 열어, 피를 쏟고

빈 핏줄에 도는 박하향처럼 환한

현기증으로,

환멸로,

굶은 저녁 밥냄새로,

뭉크 畵集의 움직임 없는 여자처럼

카프카의 K처럼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장석주]





건방진 희망이 대지를 난무하는 동안 몸은 영혼을 잃고 기적소리에도 쉬 흔들린다.

나는 지금이나 이전에도 세상을 의심하며 인생다운 인생을 갈망했다.

부조리와 희망의 공존이 불편한줄도 모르고 끝끝내 외로워하였고 비극적 디오니소스를 동경했다.

내 영혼은 바닥을 쳤다.

이제 다시 몸을 떠나는 일이 없다며 겨드랑이를 통해 스며든다.



비가왔고,

기형도라 쓰여진 간판이 젖을때

요제프K 라는 소년이 죽었다.

건방진 희망으로 날씨가 오락가락 하는,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기형도]

소년의 눈에서 내 영혼을 본다.

겨드랑이를 통해 들어온 놈은 자꾸만 나 아닌 나를 만들어간다.

정체성을 잃어 버리는 것일까?



모호하다.

생을 도모하는 내 희망은 그저 건방지기만 하다.



결국은, 희망이란 무엇이고 절망이란 무엇인가?



눈을 뜨지 마라 소년아~ 세상살이에 넌덜머리 난 나에게 세상에 눈을 뜨면 온통 해결해야할 것들 투성일 뿐이다. 감은 눈 그저 모호하여도 좋다. 건방지게 희망을 얘기하러 눈을 뜨지 마라...
2004/08/14 15:22 2004/08/14 15:22
DrunkenSTAR 이 작성.

고백

2004/08/14 14:27 / 기억


누군가에게 마구 나의 詩 를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나직이 불러주던 그 노래처럼,
내 사랑이 펄펄 날던 그날에 전화기에 소근거리듯 불러주던 '내가 만일' 같은 노래들...
우연히 발견한 어떤 싯구절은 폭발했던 사랑을 미치도록 기워 맞추고 싶은 소실점이 된다.
그런 날도 있고, 이런 날도 있다.

지금 할 수 있는건 너무나 또렷하다.
그저 숨을 들이키고 내뱉으면서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로,
두번 폭발시킬수 없는, 폭발해서는 안되는 사랑이었기에 나는 다시 고백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그건 니가 가진 쓸모없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그렇게도 다그치면서도 무심결에 소주한잔을 마시고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덜 숙성된 어른처럼 고개를 오른다.
그럴때면, 이사를 가야지 가야지... 했었던 생각이 사라진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내일은 潮水 가 무엇을 가져다 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직이 불러준 노래를 기억하고 누군가 찾아올지도 모를 일을... 매일매일 혼자 불러보기 때문이다.
어떻게 고백할지 매일매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백

김경미



나, 아무래도 지뢰인가봐 늘 인적 드문 곳에
몸을 숨기지 숨겨 기다리지 흙처럼 오직
사람 발자국만 모른 척 모른 척

마침내 누군가 다가오지 멋모르고 닿아오지
그 순간 그 환희 너무 두려워
폭발하고 말지 산산조각 폭발하고 말지

깨어보면, 그 사랑들 형체도 없다

내가 다 죽였단 말인가!
2004/08/14 14:27 2004/08/14 14:27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