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안녕

2008/06/04 16:46 / 편지

이제 7년이나 머물렀던 회사를 떠나려고 해요. 오늘 날이 침침하면서도 상큼합니다. 며칠 인수인계하고 행정적인 절차가 정리되면 다시는 출근하지 않을꺼에요.
7년이나 부대꼈으니 아니 다사다난할 수가 없습니다. 적금도 수차례 깨졌고, 신용카드 돌려 막기도 해보고, 연애하고 이별하고, 싸우고 꿰매고, 나쁜 짓, 착한 짓... 이런 것들이 모두 제 삶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제 낡은 스킬과 세련되지 못한 자세를 견뎌주던 그대들에게 직급과 직위를 벗어 던지고 인간으로 술 한잔 대접하고 싶네요.

많은 것들을 섭취하고 배설하고 갑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 감았을 때 보았던 별들의 회오리를 그리워하며 이제 날이 밝았으니 반사회적이고 엥똘레랑스한 프로젝트에 서로 엉겨 있던 몸을 먼저 빼내려 한다고 아쉬워하진 마세요. 어쨌든 우리에겐 치열했고 지리한 시간이 공평하게 존재했고 이것은 우리의 소중한 직업이었으며 정체성입니다. 어느 봉우리에서 서로 얼룩진 땀을 발견할 날이 있을, 우리는 같은 종족이었다는 점을 잊지는 마세요.

그러하니 우리 아름답게 헤어집시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시를 쓴다면 그 시보다 더 시적인 사건들을 겪을 테니 우리는 시리고 아플 것 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자꾸만 잊게 만듭니다. 그러하니 헤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럴수록 우리 잘 있습시다. 저도 어떤 꿈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 갈 것이고 여러분도 그러하시길 바랍니다. 다만, 꿈은 결코 목적 지향적이지 않고 그저 다다를 수 없어도 슬프지 않은 것이면 됩니다.
나는 이만 그대들과 이 자리에서 헤어지겠지만, 여러분은 그 자리에서 서로 연대하며 아프지 않기를 바래요.
그럼, 안녕..

2008/06/04 16:46 2008/06/04 16:46
DrunkenSTAR 이 작성.

2006/03/22 23:18 / 편지
무정부주의자인척 하던 그는 결국 어항속에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연기가 아가미를 가르고 피가 나왔다. 어느 뼈에 걸려 있었던 혈액인지 색깔이 푸르다.
관리비가 밀리고, 가스 사용료 독촉장이 쌓였다. 그, 인생의 고비는 고작 여분의 과태료 정도다. 그래서 그, 고민이 없다. 그의 정신이 고여 피가 푸르다.
피가 말라 뼈만 남아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추억을 더듬는다. 동냥하던 금붕어에게 추억을 팔아 버린 기억만 남아 있다. 그는 여전히 허기지고 문명 사용료를 내지 않은 채 노숙을 시작했다.
딱, 몇달만 그렇게 살아보면 그,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고 했다. 우울한 건 생존 자체에 관심이 없는 자들의 소유물이라고 했다. 그는 아침마다 어제 토해낸 푸른 피를 다시 마신다.
그, 더 이상 몸이 고여 노숙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과태료를 좀 물고 가야할 곳을 만들겠다 했다. 그, 그립고 보고 싶은 것에 편지를 쓴다. 혓바닥에 묻은 푸른 피를 몽당연필에 연신 찍어가며 다시 만드는 내일을 준비한다.
그,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다. 푸른 피를 마시는 무정부주의자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2006/03/22 23:18 2006/03/22 23:18
DrunkenSTAR 이 작성.

I 社 와 K 에게...

2005/07/12 22:04 / 편지
내가 대학교 때, 국제경제학 교수였던 호테크 선생은 이런 말을 했었다. '여기에서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배운 국제 학생들은 여기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의 고국에 돌아가 배운 것들을 부단히 써먹어야 한다. 비즈니스는 여기서나 제군들의 고국에서나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 말씀에 감동을 먹고 네셔널리티에 한껏 고무되어 막연한 애국심이 불탔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한마디로 'Yellow, Go home!' 아닌가?

나도 정통부 기준 기술자 등급에서 고급인 사람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식 비즈니스의 정치라면 할만큼 해 봤다는 얘기 되겠다. 그래서 약아 빠진 속물로 봤다면 정중히 충고컨데 좀 더 떡을 썰고 찾아 오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예의를 갖춰 좀 더 솔직해 지면, 감동 어린 말이나 글이 없다는 뜻이다. 그대들이 무슨 말을 해도 비판할 준비가 되어 있는 냉소적인 사람이란 뜻 되겠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나를 소개할 때는 이정도는 순수해진다. 게다가 나는 잘못하지도 않았잖은가...

부당하거나 그릇된 것이 있다면 그렇다고 말하고, 혹여 그것이 용기를 백배해도 어렵고, 또는 홍길동식 비즈니스 정치의 미덕에 어긋난다면, 그대들은 충실한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기에 하지 말라는 짓을 서슴 없이 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백보를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잘못한 사람이 사과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어떤 인더스트리에서 충분히 그대들의 역할이 출중하여 성장했던 역사에 대해서 못 인정할 부분은 없다. 대략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그 탑에 명예라는 돌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잘못을 한 것 치고는 너무나 가증스러운 그대들의 입장, 타인의 명예를 침해한 것 치고는 너무나 얕은 술수, 거기에 치졸한 비즈니스, 비겁한 자기 방어, 방만한 도덕, 순수하지 못한 자존심, 그리고 이어지는 뻔뻔한 생활까지... 이종격투기 판이 되어도 좋을 각본은 모두 갖추고 있는 일이라면 그대들의 거친 숨을 들으며 피를 묻혀도 좋다. 그대들의 명예를 지켜주고 특히 K, 그대의 경력으로 밥은 굶지 않게 해야 겠다는 나의 걱정은 그대들이 처절하게 나이브 하다고 가르쳐주고야 말았다.

그대들이 한 행위에 대한 나의 관대는 이것으로 끝이다. 그대들은 나의 걱정을 자괴심으로 바꿔 놓았으며, 그대들은 명예를 훼손 당한 사람에게 주어진 회복의 시간을 그대들의 비열한 정치적 시간으로 사용하였다. 모르지 않았으나 내 참고 지켜봤다. 난 담담하게 그대들의 최초의 잘못된 행위 뿐만 아니라, 그대들이 30여일 가량의 시간 동안 보여준 허튼 행위 자체를 더러운 쥐오줌으로 규정한다. 그대들은 볕이 드는 구멍이라도 할당된 쥐새끼조차 못된다.

내 감수성이 그대들의 역사를 묻어 더러운 쥐오줌이 핀 벽지를 새로 도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그로 인해 내 정서에 흠집이 생겨 사랑을 좀 더 아름답게 할 수 없고, 무지개 너머 넓은 세상을 꿈꾸지 못하더라도 나의 정직한 노동은 팽겨치고 왜곡되어도 좋다.
비열한 행위 자체에 대해서 묻기도 전에 사회 구성원인양 인간 실격의 자세를 보여주는 생활은 여기서 멈춰주어야 한다. 그 생활을 하는 동안 명예라고는 조금도 알길 없는 그대들은 피해자를 파렴치하게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을 테니, 그대들의 역사를 묻어 비록 원수가 되어도 좋다.
내가 더욱 철저해지고 피가 차가워지기 전에 오르다 말고 걸어가다 마는 인생만 있는 것이 아님을 부디 깨닫고 무릎 꿇기를 바란다. 또 다른데 가서 타인이 고생한 것을 훔쳐 지것인양 행세하면서 세상에 쥐오줌이나 비비지 말고... 그대들이 줄타기하던 운은 나를 만나 여기서 끊어질 것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노라.
2005/07/12 22:04 2005/07/12 22:04
DrunkenSTAR 이 작성.

아버지에게

2005/06/01 21:01 / 편지
아버지와 저는 무심코 노을이 뜨는 날처럼, 무심코 아버지가 계시구나, 아들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에 잠시 멈춰서서 인사를 하는 사이처럼 보입니다. '사이' 라는 말은 맞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느닷없이 아버지가 되셨고, 아들이 된게 아닐진데 사이라는 말속의 뼈가 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아버지는 아버지의 공장에서 저는 저의 공장에서 기계처럼 쉼없이 돌아 갔던 때문이 아닐까요. 가끔 노을이 뜨면 아버지가 저렇게 계시는 구나, 그렇게 안락하게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노을도 꽃을 피게 하는 볕인데도 말입니다.

미국에 가기전, 생각도 잘 나지 않지만 필시 그랬을, 제 귀찮은 손을 잡아 끌고 동행했었던 소백산, 기어코 정상에 가야 한다며 지쳐버린 자식을 또 잡아 끌으셨던 아버지의 손이 젓가락도 잡기 힘드실 정도가 되었다고. 아직도 아버지의 쉼 없는 노동은 어린 자식 끼니를, 다 큰 자식 결혼을 위해서랍니다. 아버지의 35년간의 지루한 노동에 대한 댓가는 그것뿐이랍니다. 저는 아직 아버지의 짐을 나누어 질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아버지의 손은 제게 준비를 하라고 이르십니다. 소백산에서 가득 부어주시던 막걸리만큼의 힘인데도, 아버지는 이제 그것도 없다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걱정처럼, 이 놈이 커서 제 앞가림은 하고 살까?, 아버지의 노동을 저는 부정했을 테지요. 아버지의 노동속에 신념이 저 때문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시련이 비록 저 때문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청춘은 온통 제 밥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否定이 전통에 대한 극복인양, 가부장에 대한 투쟁인양 저는 얇팍하게 떠들었을 테지요. 아버지의 세계속에서 공과 사의 구별, 겸양의 미덕, 사리의 비판은 차가웠지만 어버지의 모습이셨죠. 아버지는 제가 그것을 닮아 갈꺼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삶은 어쩌면 그대로 저의 삶이 되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아버지의 살아 보이심에 함부로 들어 섰으면서도 저는 그게 싫어 투쟁하기만 했지, 겸손할줄 몰랐습니다.

어제는 아버지, 노을이 풍경속으로 점이 되버리고, 오늘은 제가 옥상위에서 두들겨 패던 이불에서 먼지가 날아가 노을에 번집니다. 저로부터 나온 먼지가 여전히 아버지의 노을이 됩니다. 아버지는 오늘의 노동이 있기에 쉼이 없으며 아직도 자식이 혼자서 저렇게 있는 꼴이 아름답지는 않는 것이라며 병원도 가지 않으십니다. 아버지, 저 독신자로 살 생각 없습니다. 그저 마음속에 사랑을 잠시 기다리고 있는 것 뿐이라고, 말씀 드렸었던 가요? 그러니, 이제 아버지의 가열찬 노동을 멈추셔도 됩니다.

아버지는 제 삶을 위해 소백산을 오르셨지만, 저는 고작 아버지를 위해 병원을 수배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저 사이의 폐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눈물이 약이 된다면 며칠을 흘릴 수 있겠지만, 아버지의 대지엔 잠시 적셔지기만 하겠지요. 아버지의 책꽂이에 제 책이 쌓여 가는 두려움, 하지만 아버지, 전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질주하셨던 숨찬 광야이기에 전 두렵지 않습니다. 아버지... 아직도 이렇게 징징거리기만 하는, 미덥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자르고 못박은 의자를 거기에 내 놓을까 합니다. 언젠간 제 책이 나머지를 채울 것을 아셨던 것 만큼은 헤아리지 못하지만, 그 의자에서 아버지의 뼈가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오늘, 식사는 잘 하셨는지, 이제 제가 전화를 겁니다.
2005/06/01 21:01 2005/06/01 21:01
DrunkenSTAR 이 작성.

C 와 Y와 L 에게...

2005/03/31 20:18 / 편지
이 지상에는 내가 아는 이름보다 휠씬 많은 사람들이 한줌의 삶을 기탁하며 살고 있다. 내가 아는 이름 중에 20명이, 그들의 삶속에 기록될 공통의 노동을 위해 여기 모여 있다. 그것을 프로젝트 라고 낭만하고는 담쌓은 언어로 부른다는 걸, 알고 있지?
알다시피 20명중에 3명이 있다. 그 3명은 자기들 C, Y, L 이다. C 는 사념없는 노동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잘 모르고, Y 는 마음이 여려서 안되는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곧잘 눈물을 흘리지, L 은 팀의 막내면서 몸이 약해서 잘 아프고 끼니를 거르기 일쑤야, 그리고 C,Y,L 자기들은 모두 신입사원이지. 걷고 걸어 별까지 가야 하는 삶속에 C 와, Y 와, L, 자기들은 위태한 서까래 밑에 잠 재운 아이들 같아.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어제 철야한 Y 는 집에 들어가 자고 있을까? 어제 저녁 밥을 거른 L 은 라면이라도 끓여 먹었을까? 오늘쯤 C 는 관점을 바꾸고 제대로된 문서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출근을 하지... 정말로...
내가 오늘 자기들한테 한 말들을 적어보자, "또 밥 안먹었어? 따라와 나랑 같이 밥 먹자, 다시 한번 이런 컨셉으로 해보자, 이 정도 가지고 팔아 먹을 수 있겠어?, 이메일만 날리면 끝? 체크를 해야지, 여긴 모르고 있자나..." 등등 이었지.
하나하나 닦아주고 입혀주고 떠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사람은 쉬더라도 노동은 쉴 수 없다는 나의 관점. 더 이상 성실한 노동이 아름다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Y 에게 온몸이 부셔지도록 추궁을 했고, Y 는 울었어. C 의 관점은 더 이상 인정해줄 수 없었기에 가차없이 노동에서 철수시켰어. Y 는 울면서 담배를 피웠고, C 는 입맛이 없다며 밥을 걸렀고, L 은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는 것도 알고 있다.
Y 와 C, 자기들을 불러서 이런 말을 했지...
"지금 현재 뭐가 제일 힘드니? 자존심 상하지? 쪽팔리고? 상심하고 있지? 왜 이 직업을 택했나 회의가 쓰나미로 밀려오지? 옥상 올라가면 확 뛰어 내리고 싶지?"
"지금 상심하고 있으면, 계속 상심해... 더 상심하고 더 쪽팔려해... 죽고 싶을 만큼 해... 대신, 기간은 오늘까지야. 그리고 앞으로 99번 더 상심해야 할테니까 이 기분을 잘 기억하고 있어, 100번은 상심하고 100번은 자기일에 회의를 느껴야, 남에게 충고할 수 있는 가치관과 신념이 생기는 거야, 17명은 다 걸어서 별에 가려고 하는데 니들만 뛰어서 별에 가려고 했어? 이제 시작했을 뿐이야, 앞으로 99번 남았는데 이렇게 어깨가 죽어 있으면 어떻게..."

C, Y, L... 노동엔 사념이 없는거야, 대신 힘들고 어려운 일 있으면 꼭 날 찾도록 해... 도움을 청하는데 손을 내려칠만큼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진 않으니까... 밥 맛이 없을 땐 소주라도 사줄테니, 특히 옥상에서 뛰어 내리고 싶을 땐 꼭 날 불러...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도 손은 잡아 줄테니...
2005/03/31 20:18 2005/03/31 20:18
DrunkenSTAR 이 작성.

스티브에게

2005/03/19 19:20 / 편지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오늘 들었다. 주차장에서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벌써 며칠이 지났다고... 네 살갖이 내 살갖과 부대끼던 10년전의 시간을 거슬러 너는 나에게 이런 소식을 전하는 구나. 살아 있을 때는 소식 한번 없던 네가, 죽어서 비로서 말을 건네다니...
겨우 서른, 흐린 눈을 부비고 나니 너와 나의 10년의 공터가 새삼 서운하고 서글프다. 이제 슬퍼도 울 수 없는 공터가 되버렸다. 너를 끔찍이 사랑하던 네 누나와 너를 보살피지 못해서, 가슴 한켠을 너에게 내주지 못해서 내내 어둡기만 하던 네 아버지... 너를 보내고 기적처럼 견디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목구멍에서 가시가 돋는다. 이제서야 네가 보고 싶구나, 어떻하다가... 지지리도 운도 없고 지지리도 못난 녀석아...
또 한 10년쯤 지나서 네가 죽은 뉴욕의 어느 에비뉴에서 만나면 대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이 되면 네가 묻힌 묘지가 날 기다리겠구나. 잘 살기를 바래, 무엇보다 건강하기를... 그런 막연함이 너에게는 통하지 않겠구나.
너와 내가 아슬아슬 하게 보냈던 시절만이 잿더미로 남아 뜸금 없는 어느날 무턱대고 생각나겠지, 해픈 웃음을 짓다가도 네 죽음이 두르마리 화장지처럼 풀리는 날이면, 목이 메어오겠지... 마치 내 허망한 질주를 탓하듯... 매 순간 목숨처럼 살다가도 그것이 없으면 무슨 소용일 건지, 그렇게 너는 나에게 또 하나의 빈집이 되는 구나.


1993년 봄, 네쉬빌 테네시 ~ 2005년 3월 8일
2005/03/19 19:20 2005/03/19 19:20
DrunkenSTAR 이 작성.

혜령이에게

2005/03/03 21:39 / 편지
카페 Plastic 에서 "오빠, 매일매일 재밋게 보냈어" 라고 말하던 네 눈가가 빨게 지더구나, 오후 2시 버스를 타고 떠난 겨울 때문도, 멀리 떠나신 아버지 때문도 아닌, 선홍빛 의미를 내가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네가 2년만에 일본인을 친구로 데리고 와서 유창하게 대화를 하는 모습이 너무나 대견스러웠는데, 가뜩이나 약해진 내 심장도 어느덧 네 눈빛과 같은 색을 내는구나.
네가 "지금 한국에 가도 할일이 있을까?" 전화로 고민을 털어 놨을 때, 할일은 있는데 오지 말라고, 거기 계속 있으라고 말해 놓고 나서 내가 무슨 권리로 네 삶을 오라 가라 말아라 할 수 있는지, 행여 네 처지나 네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행여 섣부르게도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섬짓했었다. 그래서 네가 다시 전화를 했을 때, 보고 싶으니 언능 오라고, 전편의 실수를 희석시키는 어정쩡한 말을 하고 말았다. 내 실수를 덮어주기라도 하듯 너는 그곳에 남아 기어이 대학원에 들어가고야 말았으니, 난 네가 고맙고, 15년을 알고 지냈는데 지금 네가 가장 멋지고 가장 이쁘다.
갈비를 실컷 먹고 일본에선 있어도 못 먹었다며 바닷가 문방구에서 물감을 산 포구의 소녀같은 네 표정은 아직은 네가 씩씩하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해주었다. 앞으로도 그 표정은 잃지 말기를...
그래, 네 말대로 가난은 힘든 것이고 낭만적이지 않다. 돈만 있었다면 스타벅스에서 주말까지 일하지 않아도 됐고, 이단 교구의 기숙사에 살며 전도를 강요당하며 네 시간을 뺏기지 않아도 됐고, 한국어 과외를 하며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됐고, 식당에서 접시를 닦지 않아도 됐다. 그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고 싶었던 네 마음은 네가 아니더라도 나도 잘 알고 있다. 네 힘든 생활을 너 같은 사람 많다며 뭉둥거릴 수 없는 것은 네 생활은 그것으로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네 눈물들을 하나씩 보여주며 그래도 씩씩하게 "오빠, 내가 너무 불쌍해 보여? 아니야, 실은 매일매일 재밌게 보냈어" 라는 너에게, 내 엉성하고 날날이 같은 유학생활은 예제가 될 수 없었다.
2년후에 나이 그렇게 먹고 네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고민이고, 그런 고민은 부족함 없이 더 하도록 해라... 중요한건 네가 이제 당당히 네 힘으로 길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던 네 걱정은, 네가 식당에서 어두운 기숙사에서 생활의 가난에 스스로 내린 핍박과 공부의 갈등 속에서 흘린 수천개의 눈물은, 네가 앞으로 지금 서 있는 길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을 절실함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엔 꼭 알테니, 지금은 너무 조급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분명, 그 절실함이 네 평생의 버팀목이 될 테니...
바람을 맞아 보았니? 다른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 바람이 되어 네 빰에 닿는 느낌을... 네 절실함은 다른 사람의 절실함 처럼 바람이 되어 또 나 같은 다른 사람의 빰에 닿을 거야, 너는 네가 짊어 지고 해치고 가야 할 수풀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신작로를 내기 시작한 것이고, 그렇게 살아 보여줌으로 나 같은 날날이들에게 경외를 선물하기 시작했다고...
이제 며칠이면 일본으로 돌아 가겠지... 오빠는 네 소녀 같고 씩씩한 모습이 또 보고 싶어 질 것 같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철 없는 날날이 오빠가 절대 후원한다는 것도 잊지 말고, 그닥 든든하진 않겠지만...^^ 이제 자주 전화할께... 건강해야 하고...
2005/03/03 21:39 2005/03/03 21:39
DrunkenSTAR 이 작성.

정남이에게

2005/01/21 20:36 / 편지
네 편지를 보니까, 어느 옛날 내가 논산훈련소에서 보낸 6주간의 시간이 절박하게 묻어 나는, 그것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그 어떤 막막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병역특례로 겨우 4주간의 훈련, 또는 소풍?, 또는 두뇌의 휴식? 이 그 위치를 망각하고 빡세게 돌리고 돌아가서 네 입에서 단내가 폴폴 풍겼으면...하고, 못되먹은 생각도 아니 하진 않았으나, 명예로운(ㅋㅋ) 병장 제대도 아닌데, 나라에 충성 또는 기간병들의 부당한 폭력으로 네 몸을 훈련장에 지나치게 바쳐서 행여 훈련이 끝난 후에 팔, 다리 어디 하나에 삐그덕 병에 덜컥 걸려서 앞으로 나와 같이 홍대 클럽에 못가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병특의 나라 사랑은 훈련을 통해서가 아니라, 키보딩을 통해서 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도록 해라...

네가 훈련소에 가기전에 부탁 했던 어떤 생각할 꺼리를 네 소원대로 적어 보낸다.
#1
국내 굴지의 보험사는 다음과 같이 세가지 전략이 있다. 브랜딩, 프로세스,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전략이다. 우리가 키워드를 가지고 전략을 풀어 내듯이, 이 세가지 전략이슈를 하나의 키워드 'SMART' 라는 전략 키워드로 묶으려고 한다. 그래서, 각 Word 마다 고유의 컨셉을 도출하여 세가지 전략에 Matching 시켜 이슈트리를 완성해봐라
예) 커뮤니케이션 : S --> Super > 고객을 위한 슈퍼맨
#2
국내 굴지의 금융기관은 다음과 같은 고민에 빠져 있다. 작년의 트랜드인 통합에 대한 이슈가 폭풍처럼 지나갔는데 향후에는 어떤 전략이 대세이며, 그 대세론에 포탈의 개념을 도입하고자 하는데 금융 업무별 포탈의 개념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 그 방대한 프로젝트를 한번에 진행할 것인지, 개별 단위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다. 이러한 고민을 컨설팅해줘야 한다. 비용과 업무 진행의 측면에서 장단점을 생각하고 무엇이 최선의 방향인지 제시하도록...
힌트) 단위 업무별로 범위와 예산이 다른 4개의 프로젝트가 있다. 올해의 비즈니스 트랜드는 마케팅의 관점에서 업무를 관리(안되는 업무의 제거, 되는 업무의 부각)하는 것이다.

그래, 남자의 인생에는 짬밥이 필요한 때가 있다. 남자가 짬밥을 먹을 때는 뒤에 두고온 미련 따위는 저버리는 법이다. 남자가 짬밥을 먹을 때는 가슴에 있던 목숨을 두고 왔기 때문에 애초에 미련 따위는 없어야 되는 법, 네 목숨은 여기 잘 있으니 피우고 싶은 담배를 거기서 피워봐야 네가 피우는 것이 아니라 니 전투복이 피우는 것이고, 마시고 싶은 술을 거기서 마셔봐야 니 전투화만 적실 뿐이다. 참! 넌 4주 훈련 받고 나올꺼지... 쩝...
밖에 소식은 궁금해 할 것 없다. 너 없어도 잘 돌아가고 있다..ㅋㅋ 왠일인지 거래소, 코스닥 주가도 잘도 올라서 재미도 좀 보고 있고, 여기저기서 제발... 프로젝트 좀 해달라는 통에 수주하면 걱정인 구도가 확실히 잡혀서 날마다 부사장님, 홍과장과 어떻게 하면 수주를 줄여볼까 목하 고민중이다. 그러니, 여기 생각은 하지도 말고 어디 한 군데 다치지 말고, 특히 키보드를 열심히 쳐야 하는 손가락은 잘 관리해서 부디 빨리 회사로 돌아와 재미나게 제안 작업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해라...
사람들이 너 준다고 홈런볼, 쬬리뽕, 에이스 등을 상자에 가득 사가지고 왔길래, 왠지 예비군까지 끝나 버린게 솔찮이 아쉬운거 있지? 옆에 있는 싸이하고 싸이좋게 나눠 먹도록 하고, 연예인 X 파일엔 싸이는 없다, 그러니 넘 실망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전언도 부탁한다. 그리고 사격할때는 잘 쏠라고 눈을 가늠쇠에 너무 가깝게 부치지 마라, 멍든다. 수류탄을 던질때는 냅다 던지고 터지는거 구경한다고 고개 내밀지 마라, 구정물 튄다. 각개전투할 때는 되도록 웅덩이 옆에 엎드리지 마라, 웅덩이 물튄다. 행군할 때는 뒤에서 걷지 말고 앞에서 걸어라, 앞에선 걷고 뒤에선 뛴다.
그리고 어제 회식했다. 네 얘긴 하나도 안했으니 행여 너 없다고 뒷담화할 것 같은 걱정도 안해도 된다.
어무쪼록 몸조심하고, 네 맡은 바 불침번에 최선을 다해 빨리 일어 나도록 해라~ 네가 돌아오면 조촐하게 인터콘티넨탈 호탈 크리스탈 볼룸에서 축하연을 할 계획이니, 월급 받은거 행여 PX 같은데다가 쓰지 말고 고스란히 가지고 나오도록... 그걸로 축하연 할꺼니까...
그럼... 나름 힘들고 추울텐데, 내복, 깔깔이 잘 챙겨 입고... 형은 추워서 소주한잔 하고 퇴근할라고...

2005년 1월 21일
너 불침번할 때 술 취해서 귀가하는 재크 형이...
2005/01/21 20:36 2005/01/21 20:36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