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channel>
		<title>DrunkenSTAR</title>
		<link>http://drunkenstar.x-y.net/tt/</link>
		<description>빤스 속까지 정치적일 때 자유로우며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희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할 때 생긴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31 Jan 2010 20:55:08 +0900</pubDate>
		<generator>Textcube 1.7.8 : Con moto</generator>
		<image>
		<title>DrunkenSTAR</title>
		<url>http://drunkenstar.x-y.net/tt/attach/1/1102563230.jpg</url>
		<link>http://drunkenstar.x-y.net/tt/</link>
		<width>170</width>
		<height>170</height>
		<description>빤스 속까지 정치적일 때 자유로우며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희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할 때 생긴다.</description>
		</image>
		<item>
			<title>턴키베이스 입찰, 계약에 대해서</title>
			<link>http://drunkenstar.x-y.net/tt/704</link>
			<description>&lt;p&gt;건설업 뿐만 아니라 IT 에도 원청(클라이언트, 고객)에게 하청(에이전트, 업체)을 받을 경우 턴키베이스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건설업은 &#039;설계 부터 시공까지 전부&#039; 한 업체가 맡아서 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IT 도 마찬가지다. 여러 방법론이 있겠으나 &#039;설계 부터 개발, 이관까지 전부&#039; 를 한 업체가 맡아서 하는 경우의 입찰, 계약을 턴키베이스 라고 한다. (턴키베이스의 사전적 의미는 네이버에 잘 나와 있다.)&lt;br&gt;&lt;br&gt;원청이 턴키 입찰 또는 계약을 하는 이유는&lt;br&gt;1. 사업(프로젝트) 규모가 클 때&lt;br&gt;2. 따라서 예산과 비용이 많이 들고&lt;br&gt;3. 규모와 예산의 거대함에 따라 자재(IT 는 HW/SW)와 용역(사람)이 많아 지고&lt;br&gt;4. 이에 따라 관리해야 할 업체 또는 영역이 많아 질 때 이다.&lt;br&gt;&lt;br&gt;턴키의 기대효과는 &lt;br&gt;1. 한 업체가 사업의 전체를 총괄함으로써 관리하기가 용이하고&lt;br&gt;2. 문제가 생겨도 한 업체만 소위 조지면 되고(한 업체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의미)&lt;br&gt;3. 따라서 우수한 인력과 훌륭한? 책임감을 담보 받을 수 있다.&lt;br&gt;&lt;br&gt;이것은 계약 구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상식적인 얘기다. 턴키 계약에 로비며 담합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부정부패가 일어난다는 주장이 있다.(4대강 사업에서 나온 얘기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다. 로비며 담합은 턴키 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입찰, 계약 과정에 일어 날 수 있는 활동이다. 그렇다면 턴키 계약 과정을 살펴보자.&lt;br&gt;&lt;br&gt;1. 원청이 해당 사업에 알맞은 업체들에게 RFP(Request For Proposal), 또는 과업지시서를 뿌린다.&lt;br&gt;&lt;br&gt;2. 이때 &#039;사업에 알맞은 업체&#039; 에 방점이 찍힌다. &lt;br&gt;&amp;nbsp;- 원청이 A 라는 사업 전체를 한번에 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턴키 계약이 될 수 없다. &lt;br&gt;&amp;nbsp;- 즉, A 사업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업무를 쪼개서 별개로 진행하려고 한다면 이건 턴키 계약이 아니라 개별 프로젝트, 개별 사업, 개별 입찰, 개별 계약이 된다. &lt;br&gt;&amp;nbsp;- 이를테면, A 사업 안에 설계, 디자인, 개발, 테스트 라는 업무가 있어서 각 영역에서 알맞은 업체에게 별개의 RFP 를 보내 각각의 업무를 개별 업체가 동시에 진행하여 최종적으로 A 사업으로 묶는다는 개념이다. &lt;br&gt;&amp;nbsp;- 이렇게 되면 원청은 A 사업을 위해 4개의 업무, 4개 업체 이상을 관리 감독해야 한다. 당연히 관리가 힘들고 어려워지며 각 업무에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있어야 한다. 원청에 그런 업무의 전문가들이 포진 되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있다면 뭐하러 아웃소싱을 하겠는가.&lt;br&gt;&lt;br&gt;3. 하청은 원청의 요청사항(과업)을 분석하여 이 사업에 알맞는 업체를 소싱하고 컨소시엄을 맺는다. &lt;br&gt;&amp;nbsp;- 이때 원청과 직접 계약하는 즉 턴키 계약하는 업체를 &#039;을&#039; 또는 &#039;주사업자&#039; 또는 &#039;마더업체&#039; 라고 부른다. 자연스럽게 원청은 &#039;갑&#039; 이 된다.&lt;br&gt;&amp;nbsp;- 을도 역시 단독으로 A 사업을 수행할 수 없기에 다시 말해 갑도 위의 사업을 4개 업체 이상이 해야 하는 업무로 파악하고 있기에 을도 최소한 3개 이상의 알맞은 업체를 소싱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물론, 갑이 재하청은 금지한다고 하지 않을 경우 인데 대규모 사업을 하는데 재하청금지 조항을 넣는 스마트하지 않은 갑은 없다.&lt;br&gt;&amp;nbsp;- 을이 설계 업무는 자신들이 맡고 디자인 업무는 가 라는 업체, 개발 업무는 나 라는 업체와 함께 하기로 했다면 가, 나 업체는 &#039;병&#039; 이 된다. &lt;br&gt;&amp;nbsp;- 이때 가, 나 업체도 자신의 업무를 쪼개어 ㄱ, ㄴ 이란 업체에게 줄 수도 있다. 원청에 하청에 재하청에 재재하청이 된다. ㄱ, ㄴ 업체는 &#039;정&#039; 이 된다.(갑을병정 다음에는 무기경신임계로 나간다. 하지만 무 까지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관계를 도급, 수급, 하도급 등의 용어로 설명되기도 한다.)&lt;br&gt;&amp;nbsp;- 을이 A사업을 하기 위해 모든 병과 정을 소싱했다면 이를 집합적으로 컨소시엄 이라고 한다. 연합군이 된 것이다.&lt;br&gt;&lt;br&gt;4. 컨소시엄은 맺었으나 제안서를 쓰며 다시 이합집산을 한다. &lt;br&gt;&amp;nbsp;- 컨소시엄은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형태가 아니다. &quot;같이 할래?&quot;, &quot;그래&quot; 이렇게 형성되는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수틀리면 전화 한통으로 관계는 바로 깨진다. &lt;br&gt;&amp;nbsp;- 컨소시엄이 깨지는 캐이스는 여러가지다. 대표적으로 1)사업범위를 파악해보니 자신들이 알맞지 않을 때, 2)을과 병이 사업범위에 대한 견적을 놓고 가협상을 하다가 을이 기존 병에 대항마를 소싱해오고 대항마의 견적이 더 저렴할 때, 3)갑 내부에서 들리는 정보를 통해 현재 소싱한 병에 대한 나쁜 인식이 있거나 갑이 은근히 바라는 병이 따로 있을 때, 4)제안서를 같이 써보니 실력이 허접할 때, 5)윗선의 이해관계가 있는 병이 갑자기 등장 했을 때, 6)시키는 대로 안하고 예의가 없을 때 등이다. &lt;br&gt;&amp;nbsp;- 여러 캐이스에 준하여 다른 컨소시엄에 들어 있는 병을 끌어 오기도 하고 병을 찾아 전국을 헤매기도 하거나 아예 프리랜서들을 집합시켜 작은 회사를 만들기도 한다. &lt;br&gt;&amp;nbsp;- 이때 영리한 병은 여러 컨소시엄에 동시에 발을 담가 놓기도 한다. 어차피 수주가 되는 을쪽에 붙어서 사업을 하면 되고 을은 해당 병이 사업에 알맞은 업체이니 그 정도는 넘어 가기도 하고 갑도 이해관계가 있으니 여러 컨소시엄에서 같은 병을 데리고 오더라도 다른 기준으로 을을 선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lt;br&gt;&amp;nbsp;- 사려 깊지 못해 한쪽에만 발을 담그고 기도하고 있던 병이 갑자기 을이 중간에 사업을 포기(드롭)하거나 다른 을과 배타적으로 컨소시엄을 맺어 버리면 자연스럽게 공중분해 된다. 속되게 &#039;새 된다&#039; 착한 을이면 소주 한잔 사준다.&lt;br&gt;&lt;br&gt;5. 제안서를 제출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다. &lt;br&gt;&amp;nbsp;- 하면 된다.&lt;br&gt;&lt;br&gt;6. 수주가 되었다. 보통 사업의 수주는 &#039;너 밖에 없다, 너만 믿어&#039; 가 아니라 우아하게 &#039;우선협상대상자&#039; 로 통보 받는 것을 말한다. &amp;nbsp;&lt;br&gt;&amp;nbsp;- 우선협상대상자란 남들 보다 먼저 사업 범위에 대한 가격 협상을 하는 자 라는 뜻이다. 협상하다가 수틀리면 우선협상자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 물론 그동안 협상하느라 수고했다고 등 두드려 주지 않는다. &lt;br&gt;&amp;nbsp;- 우선협상대상자가 협상에 실패하면 자동적으로 차선협상대상자가 호출되어 같은 협상을 하게 된다. &lt;br&gt;&amp;nbsp;- 차선협상대상자도 협상에 실패하거나 호출에 응하지 않으면 자동 유찰 되어 다시 입찰 전쟁을 치뤄야 한다. 이걸 다시 하고 싶은 갑과 을은 기본적으로 없다. 하지만...&lt;br&gt;&lt;br&gt;7. 협상을 진행한다. &lt;br&gt;&amp;nbsp;- 대체로 사업 범위 조정, 이에 따른 가격 조정, 가격에 따른 용역 조정, 장비나 자재의 퀄리티 수량에 대한 조정이 이뤄진다. &lt;br&gt;&amp;nbsp;- 턴키베이스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갑은 A 사업 안에 여러 업무가 있지만 을 이라는 한 업체와 협상을 하면 된다. &lt;br&gt;&amp;nbsp;- 하지만 을은 A 사업을 위해 갑과 협상하고 그 협상에 따라 가, 나 업체(병)와 별개로 협상을 한다. 마찬가지로 가 업체는 ㄱ, ㄴ 업체(정)와도 협상 한다. &lt;br&gt;&amp;nbsp;- 갑은 을이 병과 어떤 협상을 하는지 알 필요도 없고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을도 병이 정과 어떤 협상을 하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차피 을이, 병이 해당 업무에 총괄적으로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lt;br&gt;&amp;nbsp;- 이때도 갑이 수틀리면 을을 바꿀 수 있듯(차선협상대상자로) 을도 수틀리면 병을 바꾼다. 역시 병은 새 된다.&lt;br&gt;&amp;nbsp;&lt;br&gt;8. 드디어 계약을 한다. &lt;br&gt;&amp;nbsp;- 갑은 4개의 업무가 들어 있는 A 사업을 한번에 을하고 턴키 라는 형식으로 계약한다. 따라서 계약서는 1개다. &lt;br&gt;&amp;nbsp;- 을은 A 사업의 4개의 업무를 담당하는 4개 이상의 병과 각 업무를 대상으로 역시 턴키로 계약한다. 그 업무는 니네들이 책임져 란 뜻이다. 하지만 계약서는 갑과 1개, 병들과 4개 이상이 된다.&lt;br&gt;&amp;nbsp;- 이로서 갑은 A 사업을 하기 위해 을만 조지면 되고 을은 A 사업을 하기 위해 4개 이상의 병을 조진다. &lt;br&gt;&lt;br&gt;따라서 A 사업을 위해 알맞는 업체란, A 라는 사업과 유사한 a 라는 사업을 해봤던, 때문에 그에 알맞은 병 업체를 원활하게 소싱해오고 자신들이 할 일을 대신해서 때론 악질적으로 조질 수 있어서 A 사업을 정해진 일정과 비용 안에서 해결해주는 업체 되겠다. &lt;br&gt;&lt;br&gt;4대강 사업에서 &#039;턴키 담합&#039; 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마치 턴키 자체가 부정부패라는 징후가 있어서 그 과정을 적어 본다. 물론, 위의 절차 안에서 정보 습득과 유리한 고지를 위해 로비가 이뤄지기도 한다. 보통은 RFP 나 과업지시서가 각 업체에 뿌려지기 전에 로비는 시작되고 끝이 난다. RFP 이후 로비는 바보나 하는 짓이다. 왜냐하면 그 절차상에서는 갑도 을을 만나주지 않는다. 보는 눈이 엄청 많으니까. 4대강 턴키 담합이 이런 절차안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을(4대강 사업에서는 대형 건설사들)들이 서로 짜고 치기로 했다면 그건 엄연히 공정거래 위반이다. 다만 턴키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란 점만 얘기하고 싶다. &lt;br&gt;&lt;br&gt;그래도 턴키가 문제다 라는 시각이라면 갑이 해당 사업의 각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잘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어서 각 업무별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발주를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런 갑은 없다. 이미 IMF 를 겪으며 대한민국의 비즈니스 구조는 아웃소싱화 되어 있다. 갑이 모든 업무를 오롯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인력을 갖추는 구조를 포기했다. 한마디로 A 사업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보면 정답이다. 어떤 국회의원은 턴키베이스 공사가 문제이기 때문에 최저가 입찰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즈니스 계약의 ㄱ 자도 모르면서 하는 말이다. 턴키와 최저가 는 완전히 다른 입찰 형태이기 때문에 최저가가 턴키를 보완, 대체할 수 없다. 다음에는 최저가 입찰에 대해 알아 보겠다.&lt;br&gt;&lt;br&gt;아무튼 난 4대강 사업 반댈세...&lt;/p&gt;</description>
			<category>일</category>
			<category>4대강사업</category>
			<category>계약</category>
			<category>입찰</category>
			<category>턴키</category>
			<category>턴키계약</category>
			<category>턴키베이스</category>
			<author>(DrunkenSTAR)</author>
			<guid>http://drunkenstar.x-y.net/tt/704</guid>
			<comments>http://drunkenstar.x-y.net/tt/704#entry704comment</comments>
			<pubDate>Fri, 13 Nov 2009 17:41:4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미실과 애국, 우파에 대한 단상</title>
			<link>http://drunkenstar.x-y.net/tt/703</link>
			<description>하얀거탑의 능수능란한 칼솜씨만큼 선덕여왕은 사극의 문법을 현실정치의 맥락으로 바꿔버린 보기 드문 드라마다. 생활속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이합집산의 정치를 다룬 하얀거탑은 선덕여왕에 비하면 차라리 아기자기하다. 조금만 시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씬은 여의도의 날치기를, 요 씬은 대의명분을 앞세워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을 거대하게 묘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이러한 지점에서 절대선인양 그려지는 선덕여왕은 대립구도인 미실의 오묘하고 미묘한 감수성을 이기지 못한다. 하얀거탑에서 비열하기까지 한 장준혁에 동화되고 감정이 이입되던 수많은 현대인들은 선덕여왕이 아니라 미실에게서 그 역할을 찾고 열광한다. 자신은 왜 현실에서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몸을 바쳐서라도 내 사람을 만들고 의기양양하게 &quot;내 사람은 그러면 안된다.&quot; 말할 수 있는 배짱이 없었을까. 마치 저것이 사회생활의 다 인데, 느끼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었을까. 다시 보면 미실은 사람들의 욕망을 뭉쳐 놓은 덩어리다. 성골이 아니면서 나라의 주인이 되기를 욕망했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첨단 정치공학을 몸으로 치밀하게 수행한다. 있는 계급(기득권)은 낙점만 받으면 출세가 보장되지만 없는 계급(서민)들이 출세하기 위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방향을 미실은 발가 벗고 보여 준 셈이다. 봉건시대의 일이지만 현실과 다르지 않다. &lt;br&gt;&lt;br&gt;우파는 기득권, 이란 공식이 있을지 모르나 우리나라의 현실 우파는 대략 세 부류다. 기득권을 가졌지만 애국심이 없는, 애국심은 있지만 기득권이 없는, 둘 다 있는 부류는 극소수 진성우파라 볼 수 있다. 애국심이 있지만 기득권이 없는 부류는 대체로 전쟁세대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인지라 이 나라의 기반을 다졌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빨갱이와의 전쟁에서 나라를 지켰으며 그 폐허에서 물적 기반을 이뤘다는 주장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그 분들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같은 우파라는 범주에서 애국이라는 이념만 가졌을 뿐 물질 기반은 다졌으나 실물 기득권이 없어서 애국심이 없는 부류에게 지배 당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행동대를 자처 한다. 전쟁이 없고 폐허가 아닌 시대에서 그 자부심을 표출하기 위한 분노로 행동한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애국이 있기에 풍요롭다. 하지만 언제나 기득권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 명분은 언제나 애국과 빨갱이다. 이 부류가 영리하기만 한다면 오늘날 완전한 미실의 부활이라 부를만 하다.&lt;br&gt;&lt;br&gt;기득권을 가졌지만 애국심이 없는 부류들은 애국에 봉사하고 빨갱이에 치를 떨며 자본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부류들의 권리와 물질을 상속 받은 자들이다. 이들은 애국적 우파, 민족 우파의 이념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돈이 되면 하고 돈이 안되면 안하는 자유주의 우파다. 이들은 실물만을 상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이념과 경제이념을 분리하지 않는다. 그것이 권리, 즉 권력이며 권력의 생성 조합이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질을 만들었으나 그것을 증여하고 애국에 보험을 든 부류들은 여전히 생활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자유주의 우파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손 벌릴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버렸다. 자유주의 우파는 애국적인 일에 돈을 쓰지 않는다. 빨갱이라도 노동력이 있고 동일한 물질을 추구한다면 자유주의 우파에겐 환영이다. 돈을 써서 돈이 될만 하니까 말이다. 이들에겐 민족이나 국가 개념이 없다. 그것들은 이들에게 명분일 뿐이다. 이 부류는 사익에 영리하지만 국가에 대해서는 무지한 귀족들이다. 화백회의의 대등의 부활이라 부를만 하다. &lt;br&gt;&lt;br&gt;선덕여왕에는 서민이나 백성이 존재하지 않지만 미실이 존재함으로서 계급투쟁의 역사를 그렸다. 오랑캐와 맞서 싸우는 애국투쟁의 역사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영리하지 못한 애국 우파들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이념을 빗대어 권리를 행사하는 오늘날 기득권층에게 계급투쟁은 살벌한 정치적 경제적 도전이기에 이 드라마는 좌빨 드라마가 된다. 이런 정의가 가능해야만 애국 우파들이 깨어나 조건 없이 행동할 수 있다. 문제는 드라마에 존재하지 않는 백성들, 오늘날의 서민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목도하는가 이다. 목도는 하겠으나 행간을 조명하진 못한다. 우파도 좌파도 아닌 그들은 언젠가 골프채에 왁스칠 하고 그저 제 새끼들 잘먹고 잘사는데 미실의 역량이 참고될 수 있냐는 것이 관심이다. 그 참고를 현실에 적용하면 십중팔구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대의 명문이 딱 하나 있다. 미실이 가진 애국 때문이다. 기껏 현실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대의란 회사를 위해, 비전을 위해 가 전부다. 차라리 내 새끼를 위해 가 휠씬 숭고하기 때문에 &#039;내 사람&#039; 이란 개념이 만들어 질 수 없다.&lt;br&gt;&lt;br&gt;미실은 국경에 있던 군대가 자신을 돕기 위해 출병하는 보고를 받고도 그 출병을 거두고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명령으로 자신이 최후를 맞을 것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신국을 위한 대의를 미실은 결코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미실의 그런 숙연함을 오늘날 오마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현실이다. 애국하겠다는 사람들 조차도 어떻게 애국을 해야 할지 모른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애국은 돈을 벌어 오는 것이다. 그걸 못하는 애국 우파들에게 삶의 이유는 당연히 빨갱이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여기에 논리나 정작 애국 따위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현대인들은 애국을 거세한 미실을, 미실의 욕망을 추종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계급과 무관하게 부자가 되는 희망으로 기득권에 투표하는 것이 그들 나름의 계급투쟁이다. 그러한 사람들을 보듬는 척 실용적인 정치 수사로 현혹하여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 기득권이면서 애국심이 없는 자유주의 우파들의 사명이다. 제 새끼 잘먹고 잘살아야 하는데 우파나 좌파나 애국이 뭔 상관이란 말이냐, 미실의 역량을 참고하여 어떻게든 계급투쟁의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데 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영리하고 사려 깊은 중도 서민들이다. &lt;br&gt;&lt;br&gt;하지만 어찌하냐.. 미실은 죽었다.</description>
			<category>생각</category>
			<category>계급</category>
			<category>계급투쟁</category>
			<category>드라마</category>
			<category>미실</category>
			<category>선덕여왕</category>
			<category>애국</category>
			<category>우파</category>
			<author>(DrunkenSTAR)</author>
			<guid>http://drunkenstar.x-y.net/tt/703</guid>
			<comments>http://drunkenstar.x-y.net/tt/703#entry703comment</comments>
			<pubDate>Thu, 12 Nov 2009 12:59:5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용산참사재판</title>
			<link>http://drunkenstar.x-y.net/tt/702</link>
			<description>오늘 용산참사 재판 선고가 있었다. &lt;br&gt;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분노가 어디를 겨냥해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경찰? 사법부? 공권력? 공적시스템. 다 아니다. 그런 국가와 국가기관이 아니다. 인간들이 밉고 저주스럽다. 죽은 그들이 무슨 열사냐? 의사냐? 아니다. 그들은 그저 우리처럼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나약한 약자일 뿐이다. 제대로된 법치는 이들의 생존을 지켜주는 것이다. 누가? 경찰이, 사법부가, 공권력이, 국가의 모든 기관이 그런 법치로 움직여야 되는 것이다. 이건 국가 기관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문제다. 오늘 이 사법부 참사에 가까운 선고를 내린 서울중앙법원 형사합의27부 판사들의 비겁과 비열함의 문제다. 지금 정제되지 않은 분노와 저주는 분명 사람을 향하고 있다.&lt;span class=&quot;status-body&quot;&gt;&lt;span class=&quot;entry-content&quot;&gt;&lt;br&gt;&lt;/span&gt;&lt;/span&gt;</description>
			<category>생각</category>
			<category>분노</category>
			<category>용산</category>
			<category>용산참사</category>
			<category>용산참사재판</category>
			<author>(DrunkenSTAR)</author>
			<guid>http://drunkenstar.x-y.net/tt/702</guid>
			<comments>http://drunkenstar.x-y.net/tt/702#entry702comment</comments>
			<pubDate>Wed, 28 Oct 2009 19:15:5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지켜주세요.</title>
			<link>http://drunkenstar.x-y.net/tt/700</link>
			<description>손석희와 김제동의 하차가 액면으로는 고비용에 의한 구조 조정 활동일 수 있지만 시기적, 정치적 맥락은 이면을 겨냥하고 있다. 그들은 방송 내외적으로 상식을 지키려 했던 보기 드문 사람들이다. 그들을 잘라낸 몰상식하고 교양머리 떨어지는 반대편의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인가. &lt;BR&gt;&lt;BR&gt;하지만, 우리는 지켜야 할 대상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권력의 미디어 장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망하게도 어떤 정권이나 미디어, 언론을 장악하려 시도했다. 솔직히 MBC 가 인민의 위한 방송은 아니질 않는가? KBS 는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다만, 그것 밖에 지킬 것이 없는 착한 사람들이 나서서 절절한 방아쇠를 당기는 중이라 생각한다.&lt;BR&gt;&lt;BR&gt;정연주씨나 최문순씨가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도 코드 인사라 했다. 권력이 바뀌면 코드를 바꾸는 건 당연한 일이다.(물론, 자연스럽지만 옳은 방법은 아니다.) 다만 그 영역이 국민 대다수가 인정하는 균형있는 토론 사회자에게 개그와 코미디로 사람을 웃기는 딴따라의 영역에까지 코드토론, 코드웃음을 조장하는 악랄함을 자연스러운 경영, 개편활동이라 볼 수가 없게 만든다. 하지만 착한 사람들은 여기에도 반MB 구도의 절체절명의 싸움으로 명분화시킨다. &lt;BR&gt;&lt;BR&gt;그들이 누구보다 먹고 살만 했고 서민의 지위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맥락으로 파악되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하차하게 된건 애석한 일이다. 하지만 너도나도 &#039;지못미&#039; 를 외치며 김제동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는 것은 사려 깊어 보이지 않는다. 지켜주지 못해 죽어간 사람들, 생존을 위해 모욕 당하는 사람들, 웃지 않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lt;BR&gt;&lt;BR&gt;손석희씨나 김제동씨는 약자를 보호해줘야 할 사회적 강자가 됐다. 하지만 강자이면서 약자를 탄압하는 반대편의 사람들에 비해 명백한 차이가 있고 그 자긍심도 반드시 인정해줘야 한다. &lt;BR&gt;&lt;BR&gt;손석희는 스스로도 &#039;인본주의자&#039; 라 했다. 김제동은 &#039;사람이 사람에게&#039; 라는 주제로 열렸던 마들산연구소 강의에서 상식은 &quot;사람이 죽었으면 예의를 표하고 국민은 계몽과 협박의 대상이 아니라 꾸준히 희망을 주고 끝까지 끌고 가야 할 대상이다. 강자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은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quot; 라고 말했다. &lt;BR&gt;&lt;BR&gt;이제는 손석희나 김제동이 우리를 지켜줘야 한다. 어쩌면 개그나 균형 있는 토론이 아닌 어떤 편으로 어떤 계급으로 말이다. 우리는 그들의 상식이나 균형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금과 같은 성원이 있으면 된다. 그들의 상식이 우리의 상식이고, 지금껏 그나마 사람처럼 살 수 있는 상식이 서로 다르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면 감정적인 지못미가 아니라 지금 그들에게 세상이 어떤 결정을 요구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해봐도 되지 않을까?</description>
			<category>생각</category>
			<category>김제동</category>
			<category>상식</category>
			<category>손석희</category>
			<author>(DrunkenSTAR)</author>
			<guid>http://drunkenstar.x-y.net/tt/700</guid>
			<comments>http://drunkenstar.x-y.net/tt/700#entry700comment</comments>
			<pubDate>Tue, 13 Oct 2009 17:54:0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우리가 목격해야 할 사회</title>
			<link>http://drunkenstar.x-y.net/tt/698</link>
			<description>나영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에 치를 떨립니다. 딸아이를 키우는 아비의 입장이 아니어도 심정적으로는 신체를 찢어 버리고 싶을 지경이지요. 사정이 이러하니 가해자의 형량을 12년에서 무기징역으로,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보편적 양심이나 정서에 지나치게 벗어난, 게다가 보기 드물게 그 피해의 정도가 적나라하게 보도되었기 때문에 적잖은 파장이 일 수 밖에 없겠지요.&lt;BR&gt;&lt;BR&gt;왜 12년 밖에 안되냐는 말이 많습니다. 다 찾아 보지는 못했겠지만,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관련법 형법 297조를 뒤져 봐도 10년형이상 이란 예는 없네요. 특별법과 연계하여 12년 형량이 나왔겠지요. 물론, 대한변협 인권담당 변호사에 의하면 다른 법률을 적용하면 무기징역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판사가 적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렇다는 군요. 만취 상태를 감안했다는 지점에서는 판사들이 별별 꼴을 많이 봐서 기계가 됐구나 란 생각도 들었지요. &lt;BR&gt;&lt;BR&gt;양형 기준이 있는 각론은 꼼꼼히 점검한다지만 총칙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총칙 제 5조는 사회와 국민의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lt;BR&gt;&lt;BR&gt;&lt;FONT size=2&gt;&lt;FONT class=item&gt;[제5조(사회의 책임)&lt;/FONT&gt; 모든 국민은 아동·청소년이 이 법에서 정한 범죄의 상대방이나 피해자가 되거나 이 법에서 정한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하도록 사회 환경을 정비하고 아동·청소년을 보호·선도·교육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lt;BR&gt;&lt;/FONT&gt;&lt;BR&gt;가해자에게 전자발찌를 7년동안 채우게 됩니다. 잠재적 가해자를 잠재적 피해자로 부터 격리하려는 공공적 시도라고 보여 집니다. 이런 시도가 가능해진 것도 최근의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회적 합의도 합의 자체로 종결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또 다른 문제가 반드시 발생하니까요. 즉, 이런 짐승들을 완전히 사회와 사람으로 부터 격리시키려는 법규정이 짐승과 사람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과정의 장치를 가지고 있는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무고, 억울함에 대한 염려 또한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는 성범죄 뿐만 아니라 무고함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수업료를 많이 치뤘고 학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lt;BR&gt;&lt;BR&gt;범죄로 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가해자를 죽도록 때리거나 거세를 한다거나 찢어 죽인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일까요. 그런 해소 이상으로 법정형량을 높이는 법개정도 중요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보호 대상에 대한 조치가 끝나고 개선되어야 할 어떤 현상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아니지요. 분노가 진공상태가 되어 가해자를 더 가혹하게 처벌해달라고 청원하고 무시무시한 형량으로 법개정을 원하는 것만으로 사회적 합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lt;BR&gt;&lt;BR&gt;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통해 이루어진 체제와 그 장치의 옳바른 작동이 더 중요 합니다. 범죄의 가해자가 되는 생각의 틀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인권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눠서 생각하게 되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분노로만 작동되게 된다는 점이지요. 스스로 범죄의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는 일은 아이와 사회를 보호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 한가로운 생각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지켜 보면 잠재적 범죄를 축적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lt;BR&gt;&lt;BR&gt;어떤 남성은 여기자의 가슴을 주물럭 거리고 술집 마담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남성의 친구들은 남자가 그럴수도 있지 라고 하지요. 여자들은 이뻐야 1등 신부감이 된다고 어느 미모의 여성은 여성들을 모아 놓고 연설 합니다. 모여 있는 여성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디 그뿐 일까요. 어떤 범죄와 보호를 다루는 공권력과 병원등의 행태는 어떻습니까. 이런 어른들이 아이들을 교육시키겠다고 하는 일이 입시경쟁이고 사교육 정진이며 남보다 앞서고 남보다 잘나야만 하는 약육강식 교육 입니다. 아이들은 성의 희롱과 비하에 관대한 어른들의 태도를 배우고 그러거나 말거나 남을 이기기만 하면 죄가 사하여 진다는 자세를 교양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가령, 나영이의 가해자가 돈있고 힘있는 자였다면 사전에 돈으로 빽으로 다 해결했을 텐데 병신처럼 살아서 저렇다고 더 끔찍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을까요.&lt;BR&gt;&lt;BR&gt;법이 있어도 작동되지 않는 것이 문제 입니다. 작동시키는 사람들의 인식이 문제지요. 가해자를 찢어 죽이는 상상만으로 대중들과 함께 피를 토하는 들끓음 말입니다. 어떤 정치를 용인했고 어떤 사회를 구축했는지 반성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죠. 벌써 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 보십시오. 권력은 뭐든 정치적으로 이용 가능하게 만듭니다. 나영이의 끔찍함을 위로하며 다른 쪽으로는 여기서 파생되는 대중적 효과, 인권의 저울질, 정치적으로 이용 가능한 목적성의 법률 개정으로 파장을 만들어 내는 것 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차단하고 더 근본적인 것에 매스를 댈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lt;BR&gt;&lt;BR&gt;우리가 목격해야 할 지점은 피해나 가해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식과 주위를 목격해내야 합니다. 우리가 끊임 없이 만들어 내는 사회의 패단에 대처하는 방법 말입니다. 우리는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작동하게 하는 법과 일련의 매카니즘이 거치는 과정에 대해서 말입니다. 현재의 법과 사회가 왜 우리의 요구를 보호할 수 없는지 개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빌미를, 원치 않는 목적성을 띤 정치적 명목을 주어선 안됩니다. 우리가 나영이를 지킬 수 없었지만 또 지켜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돈과 경쟁적 교육으로 사회가 썪어 들어가고 있지만 그나마 인류가 인간다움으로 살아 왔던 그것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lt;BR&gt;&lt;BR&gt;이제사 그 아이를 지키겠다며 덤벼드는 동정과 연민조차 잔인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lt;BR&gt;</description>
			<category>생각</category>
			<category>용서받지못할짓</category>
			<author>(DrunkenSTAR)</author>
			<guid>http://drunkenstar.x-y.net/tt/698</guid>
			<comments>http://drunkenstar.x-y.net/tt/698#entry698comment</comments>
			<pubDate>Thu, 01 Oct 2009 12:51:5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커뮤니케이션2</title>
			<link>http://drunkenstar.x-y.net/tt/697</link>
			<description>프로젝트 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논쟁은 당연 커뮤니케이션이다. 논쟁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범주지만, 프로젝트라는 작은 경영단위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엄연한 업무 중 하나다. 커뮤니케이션 업무란 무엇일까? &lt;br&gt;&lt;br&gt;개인이 해야 할 커뮤니케이션 업무&lt;br&gt;1. 프로젝트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lt;br&gt;2. 그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 중에 앞으로 나와 얘기할 사람은 누구인가?&lt;br&gt;3. 얘기할 사람의 연락처는? : 내선전화, 핸드폰, 이메일, 메신저 등등&lt;br&gt;4. 여러 연락처 중 상황에 따라 활용할 매체는 무엇인가?&lt;br&gt;5.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이 있는가? : 서버, 게시판, 프로젝터, 아웃룩, 기타 지정된 스토로지&lt;br&gt;6.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에는 어떤 것을 공유하는가?&lt;br&gt;7. 이메일을 TO 로 보낼 사람과 CC 로 보낼 사람은 누구인가?&lt;br&gt;&lt;br&gt;매니지먼트가 해야 할 커뮤니케이션 업무&lt;br&gt;1. 매니지먼트에 속한 사람은 누구 인가?&lt;br&gt;2. 그외 이해당사자는 누구인가?&lt;br&gt;3. 매니지먼트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보고 일정은?(일일, 주간, 월간 등)&lt;br&gt;4. 보고 탬플릿은?&lt;br&gt;5. 업무 트랙킹과 Panding 리스트 관리 체계는?&lt;br&gt;6. WBS 의 업무 담당자 Matching 은?&lt;br&gt;7. 각종 문서의 표준화는 무엇으로 하는가?&lt;br&gt;&lt;br&gt;복잡하다. 이렇게 열거하는 이유는 &#039;복잡성경제를 기반한 업무프로세스의 다양함&#039; 따위의 멋드러짐이 아니다. 대게가 위계를 위한 &#039;질서 잡기&#039;의 일환이다. 너 위에 나 있다, 란 식을 세련되게 말하는 것이다. 그래야 뒤에 참여한 사람이 겁을 집어 먹고 숨이 턱에 차도록 프로세스를 익히면서 이른바 &#039;업무를 배운다&#039; 는 암묵적 윽박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이란 이렇게 쿨하며 조용하다.&lt;br&gt;&lt;br&gt;프로젝트 안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은 순식간에 만들어 졌다가 프로젝트가 끝나면 공중분해된다. 그 많던 말들은 진공상태로 빨려 들어가고 문서만 켜켜이 쌓인다. 1년에 단 한번 펼칠 문서라고 해도 1톤트럭을 대절해야 운반이 가능할 때도 있다. 부대낌과 말과 관계는 사라진다. 때로는 쿨하지 못하고 회복될 수 없는 원수가 되거나 아삼육이 되기도 한다. 시스템은 쿨했으나 인간은 그럴 수 없는 것, 인지상정이다. 그러하다 보니 시스템은 더더욱 쿨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lt;br&gt;&lt;br&gt;어차피 공중분해 될 것 정해진 커뮤니케이션만 하면 되지 않나, 반문하게 되면 문제는 프로젝트 기간에 따라 견딤의 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해진 것 이상의, 시스템보다 더 시스템적이어서 반문할 수 없는 협업이 이루어지거나, 인지상정을 통해 비즈니스 관계가 전면 부정되어야 그 기간을 넘어 인간답게 살아 남을 수 있다. 넓게 보아 커뮤니케이션은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lt;br&gt;&lt;br&gt;프로젝트는 짧고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매카니즘이다. 삶은 길고 목적이 다르다. 하지만, 일과 삶, 공과 사를 완벽히 분리하고 냉정한 듯, 양쪽을 다 제단하며 살수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들 중에도 프로젝트를 한다. 프로젝트의 커뮤니케이션은 완벽하게 구축된 시스템이 아니다. 시스템은 있으나 그것의 접근 방식은 삶의 접근 방식과 일치한다. 공동체에서 너도 나도 인간답게 잘 살 수 있는 기본 선은 무엇인가? 그것은 태도와 교양이다. 또는 성의와 진정이다. 시스템 안에서의 진정성이 아니다. 시스템은 고안단계에서 이미 냉정하고 진정성을 갖추도록 설계 되어 있다. &lt;br&gt;&lt;br&gt;커뮤니케이션은 말과 언어다. 말은 말투에 언어는 텍스트에 기댄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것은 말투에 태도와 교양이 묻어 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말투에 단어를 골라 쓰는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텍스트에도 제스쳐가 있다. 입속에서 꿀을 삼키기도 하고 가시를 씹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껍데기는 그렇다. 하지만 그 안에 성의와 진정이 있지 않으면 태도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 지점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여지 없이 붕괴한다. 시간 차만 있을 뿐.&lt;br&gt;&lt;br&gt;인간의 진정을 보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태도가 곧 진정이다. 사람을 보고 빠르게 판단하는 만큼 실수도 잦다. 하지만 오래도록 켜켜이 쌓인 삶에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 있다면 그런 성찰이 있다면, 뛰듯 걷듯 자신의 주위와 사람을 살피며 몸으로 살아온 시간이 있다면 태도는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프로젝트던 삶에서든 커뮤니케이션은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을 오늘 요약해내는 일일 것이다.&lt;br&gt;&lt;br&gt;오늘 클라이언트와 &#039;커뮤니케이션&#039; 이란 것에 힘들어 하는 에이전트, 컨설턴트에게..&lt;br&gt;클라이언트 옆에 앉아 보시라, 고 권하고 싶다.&lt;br&gt;</description>
			<category>일</category>
			<category>말</category>
			<category>말투</category>
			<category>언어</category>
			<category>커뮤니케이션</category>
			<category>태도</category>
			<category>프로젝트</category>
			<author>(DrunkenSTAR)</author>
			<guid>http://drunkenstar.x-y.net/tt/697</guid>
			<comments>http://drunkenstar.x-y.net/tt/697#entry697comment</comments>
			<pubDate>Tue, 29 Sep 2009 15:11:24 +0900</pubDate>
		</item>
		<item>
			<title>부활</title>
			<link>http://drunkenstar.x-y.net/tt/696</link>
			<description>요즘 김태원은 &#039;부활&#039; 로 보여지지 않고 예능인으로 자주 보인다. 실제로 그는 웃긴다. 나는 박명수 팬이다. 박명수의 나이와 내 나이가 그게 그것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짜증 섞인 개그가 웃긴다. 마치 내 모습을 투영하듯 그 짜증은 곧 내 일상의 짜증과 같기 때문이다. 김태원이 그렇다. 그는 더 나아가 귀찮음을 소재로 활용한다. 게다가 그들은 신체의 허술함을 무기로 한다. 아버지로 국민할매로 자신을 조롱한다. 한창 사회에서 일할 나이라는 이유로 절제를 미덕으로 섬기는 끼인 나이의 그들, 그들과 비슷한 우리들도 때때로 부리고 싶은 애교와 엄살이 있다. 박명수와 김태원이 그걸 보여준다. &lt;BR&gt;&lt;BR&gt;김태원은 이승철과 함께 부활 맴버다. 삼사십대 사람들은 부활, 들국화와 청춘을 같이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창시절 김태원이 대마초로 걸려 들었을 때 나는 담배를 배웠다. 창작을 하기 위해 대마초를 피웠다고 한 발언을 믿었다. 나도 한때 학교밴드를 조직했고 곡을 만들기 위해 술을 마셨다.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불렀다. 고만고만한 학교밴드에서 유행가를 재생하던 것 이상으로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사랑과 이별, 그 자체였다. 밑고 끝도 없이 이승철이 부활을 탈퇴한 것으로 믿었고 이승철을 저주했다. 이승철이 복귀 했을 때 다시 열광 했다. 김태원이 부활을 재결성하고 김재기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단 소식에 팔뚝으로 눈을 훔쳤다. &lt;BR&gt;&lt;BR&gt;부활은 부활 그 자체를 보여주는 밴드다. 사회 생활을 하며 한동안 부활을 잊었었다. 그러다 사랑을 하고 또 이별을 했다. 그때 부활은 &#039;사랑할수록&#039; 이란 노래를 발표 했다. 나는 이별을 아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됐다. &lt;STRONG&gt;부활은 &#039;위대한 밴드&#039; 다.&lt;/STRONG&gt; 삶의 목적이 있었던 시절마다 그들의 노래가 있었기에 그렇다. 인생을 반추하는데 있어서 그것을 목격한 노래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부활은 위대하다. 그런 김태원이 예능을 하며 스스로를 조롱하고 엄살 부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는 네버엔딩스토리를 통해 그런 웃음과 감수성이 나오기 위한 자양분은 괴롭고 쓰디 쓸 수 밖에 없음을 모든 음표를 동원하여 보여줬다. 그것으로 엔드다.&lt;BR&gt;&lt;BR&gt;지난 달 부활이 25주년 기념 앨범을 발표 했다. 그들은 또 부활했다. 일어나 박수를 보낸다. &lt;BR&gt;&lt;BR&gt;&lt;object width=&quot;560&quot; height=&quot;340&quot;&gt;&lt;param name=&quot;movie&quot; value=&quot;http://www.youtube.com/v/Va1NSB93Uqk&amp;amp;hl=ko&amp;amp;fs=1&amp;amp;&quot;&gt;&lt;/param&gt;&lt;param name=&quot;allowFullScreen&quot; value=&quot;true&quot;&gt;&lt;/param&gt;&lt;param name=&quot;allowscriptaccess&quot; value=&quot;always&quot;&gt;&lt;/param&gt;&lt;embed src=&quot;http://www.youtube.com/v/Va1NSB93Uqk&amp;amp;hl=ko&amp;amp;fs=1&amp;amp;&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width=&quot;560&quot; height=&quot;340&quot;&gt;&lt;/embed&gt;&lt;/object&gt;&lt;BR&gt;</description>
			<category>관심</category>
			<category>김태원</category>
			<category>부활</category>
			<category>생각이 나</category>
			<category>음악</category>
			<category>이승철</category>
			<author>(DrunkenSTAR)</author>
			<guid>http://drunkenstar.x-y.net/tt/696</guid>
			<comments>http://drunkenstar.x-y.net/tt/696#entry696comment</comments>
			<pubDate>Tue, 22 Sep 2009 13:31:1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위장전입에 대하여</title>
			<link>http://drunkenstar.x-y.net/tt/695</link>
			<description>&lt;P&gt;우리 사회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교육은 인간 답게 살기 위한 인간에 대한 학습이 아닌 잘 살기 위한 수단이란 점을 수긍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잘 살기 위함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당위를 내포하고 있는 것도 부인이 안되는 사회다. 아이 사랑을 앞세운 이 시대의 돈 잘 벌기 대열에 가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위장전입이다. 위장 전입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친척 집에 세대주를 하나 더 꾸리는 형태, 이때 친척과의 협조로 위장 전세, 월세 계약서를 마련하는 것. 서울에 주거용 오피스텔이나 집을 사두고 거주는 지방에 하면서 주소지는 서울로 해두는 형태. 전자는 서민들이 후자는 돈 좀 있다는 부류들이 하는 형태다. 이렇게 주소지를 이전해 두면 교육제도에 혜택(?)을 받는다. 세대까지 구성해 두면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분양되는 아파트나 준주거지의 분양권을 노릴 수 있다. 위장전입의 노림수는 이 두가지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임태희씨가 장인의 출마 지역구로 주소지를 이전하여 1표 더 행사하려 했다는 고백은 차라리 애교다. &lt;BR&gt;&lt;BR&gt;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 후보들이 줄줄이 고백하지 않아도 시중에서 성행하는 불법행위다. 법치를 중요시 하는 이 나라 정부에 의하면 위장전입은 척결해야 할 중차대한 과업이다. 위장전입이란 불법행위의 전제로 인해 제도권의 교육은 사악한 존재가 된다. 가서 사는 것도 아니고 위장으로 살아야 교육이 되는 교육제도가 교육이 된다면 그야 말로 뭐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거 아닌가. 그래서 재테크가 양념으로 낄 수 밖에 없다. 위장전입을 오로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어쩔 수 없는 위장만으로는 당위가 떨어 진다. 누군들 자식 사랑하지 않나? 하지만 잘 살기 위해 그것이 돈이니까 그렇게 했다고 하면 어이 없게도 용서가 된다. 그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잘 사는 기준, 잘 사는 사람의 모범, 그렇게 살아 보고자는 서민들의 희망이니까 말이다. &lt;BR&gt;&lt;BR&gt;저렇게 살지 못해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것이 싫어 죽어라고 그들을 목표로 삼아 사교육에 가랭이 찢어 져도 자식들 몰아 넣고 공부 시키는 것이 오늘날 서민의 군상아니던가.&lt;BR&gt;&lt;BR&gt;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이 되지 못한 조상을 탓하며 우리 자식은 그거 꼭 시키 겠다는 희망으로 지금 그들의 불법 행위는 눈감아 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는 것, 그들은 우리보다 고위이기 때문에 저 정도 성역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 을 공연히 얘기하는 것이 오늘날 서민의 의식아니던가.&lt;BR&gt;&lt;BR&gt;서민이나 중산층이나 대게가 이렇게 살아 가거나 살고 싶어 한다. 자식들에게 제도권에서 우대적인 교육을 시키고 재테크를 통해 자산 증식을 꾸미는데 위장전입이 도덕성과 일면식이 있어도 &#039;어쩔 수 없는 일&#039; 이 된다. 오로지 노동을 통해 몇십억씩 벌었다는 악바리 연예인들 얘기는 기본적인 수익이 되니까로 해석되고 김밥 장사로 수십억을 벌어 사회에 쾌척하는 할머니들의 얘기는 더러운 앞차마의 이미지에서, 결코 그렇게 살 수 없기 때문에 깨져 버린다. 서민들에게 노동을 통한 자산증식은 통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증식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카테고리 된다. 교육은 잘 살아야 하는 자본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기본 수익이 되는 노동의 일자리를 찾고 주식과 부동산에 잘 투자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밑거름인 셈이다. 위장전입까지 했는데 그 밑거름도 못배우면 사람들은 대번에 교육 잘못시켰다고 할 것이다. &lt;BR&gt;&lt;BR&gt;국민들이 죄다 이런데 국민이었던 하지만 이제 고위 공직자가 되겠다는 사람의 위장전입이 무슨 문제인가. 어제 라디오 토론을 듣다 보니 어느 대학교수가 &#039;도덕성과 자질은 별개의 문제&#039; 라고 위장전입과 그와 관련된 모든 사회악의 어쩔 수 없음에 연대의사를 밝혔다. 아울러 어느 TV 토론에서 &#039;이런 나라에서 땅투기 안한 사람이 바보 아닌가&#039; 라며 솔직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 사회는 그런 매카니즘을 토대로 만들어 졌다. 이 매카니즘에서는 누구든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적이익에 관계된 활동을 해야 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하는 방식, 순진한 노동 추구형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깨달음은 행복이라는 인문적 감수성과 조우하고 자식 사랑이란 보편적 인류애의 어쩔 수 없음으로 가슴 벅차 오른다. 어찌 이것을 고위 공직자라는 정치적 지위에 불편부당하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사회가 국민이 다 그런데 말이다. &lt;BR&gt;&lt;BR&gt;그래서 공공이 필요하다. 공공을 다루는 공인과 이를 통해 옳바른 공공선에 봉사하도록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 근대 국가의 형성 결과다. 그 체제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공평하고 평등하게 인간답게 살아 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공공의 목적인 셈이다. 공공의 목적을 수행할 인간, 즉 공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윤리다. 오늘날 선과 악을 구별하는 양심이 완전히 다른 보편성을 지닌다면, 즉 위장전입 따위는 양심에 털난 행위가 아니라 사적이익과 개인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권장해야 할 수단이라면 이미 잣대가 아니다. 이때는 어느 교수의 지적처럼 안하면 바보가 되는 마땅함이 된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공공이며 양심인가?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이상적인 공허 인가.&lt;BR&gt;&lt;BR&gt;오늘날 공공의 영역이 사적 영역화 내지는 민영화된 사실은 쉽게 발견된다. 특히 법치를 치료제로 사용하는 국가에서 더 자주 목도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생존을 위해 저항하는 사람들을 민간용역업체와 경찰이 합작하여 불태워 죽인다. 파업이 일어나면 역시 용역과 경찰이 자원을 총동원하여 진압한다. 국민 한사람이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도 경찰이 잡아 들인다. 법치가 사람의 생존과 양심을 거둬들인다면 거기에 대처해야 할 자세는 역시 두 가지로 귀결된다. 사적인 행복 추구는 공공의 영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지금은 아니꼽고 더럽지만 자식을 교육시켜 저 계급으로 소환시키는 것, 남들이야 뭘하든 위장전입, 그 할애비의 방법이라도 동원하여 더럽고 치사하게라도 돈을 글어 모으는 방법, 이 두 가지다. 그럼 다시 이 두 가지가 번갈아 바퀴 도는 매카니즘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너무나 단조로운 우리 사회의 플랫폼 아니겠는가.&lt;BR&gt;&lt;BR&gt;이로서 공공이 더더욱 필요하다. 너무 가혹한 잣대, 재능에 비하면 허물도 아닌 것이 위장전입, 논문표절, 세금탈루 라는 것이라면 이 사회는 세금을 내고 법치 따위가 존재하는 근대 국가가 아니다. 국민에게는 3년이하의 징역이나 천만원의 벌금을 내라고 할 사람들이 같은 범죄를 진행하고 있다면 그것이 허물도 아니고 명령을 할 줄 아는 재능이 있기에 문제가 아니라면 이게 도대체 어찌된 세상일까? 이게 무슨 &#039;발견&#039; 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들에게 필요한 건 &#039;수사&#039; 이지 인사청문회가 아니다. 하지만 불행이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공이 강해질수록 자신의 삶이 윤택해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교육과 위장전입의 자본주의 기술을 통해 저들이 누리는 부가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데 무슨 공공이냐. 매몰비용이 너무 아쉽다는 얘기다. 게다가 대게는 완전히 무지하다. 대통령이 시장을 방문하여 오뎅이라도 먹으면 그 오뎅집에 프리미엄이 붙어 시장경제가 활성화 될 것이란 &#039;무지&#039;한 환상에 젖는 것, 그것을 제도에 탓하랴, 무슨무슨 이데올로기에 탓하랴.&lt;BR&gt;&lt;BR&gt;위장전입이 악의 시작이겠으나 국민입장에서야 그것이 무슨 큰 허물이랴. 그렇게 살지 못해 안달이고 그렇게 살는 것이 미덕인 사회가 구축된 것을. 하지만 공공의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공, 사의 영역에서는 마땅히 편견이 존재해야 한다. 당신이 그렇게 산다고 하여 공공을 비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국민이기 때문에 요구할 수 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사적영역에서 모두가 돈이며 인간적이며 그런 것들이 한데 뭉쳐 잘 살기 위해서는 공공이 도덕적 규제를 행위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경쟁적 능력만으로 잘 살 수 있다? 공공이 어떻든 간에? 체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절대 잘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불가능할 것만 같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희망이니까. 위장전입한 사람들의 양심을 부끄럽게 만들어야 공공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생각</category>
			<category>고위공직자</category>
			<category>공공</category>
			<category>교육</category>
			<category>사회</category>
			<category>위장전입</category>
			<category>인사청문회</category>
			<author>(DrunkenSTAR)</author>
			<guid>http://drunkenstar.x-y.net/tt/695</guid>
			<comments>http://drunkenstar.x-y.net/tt/695#entry695comment</comments>
			<pubDate>Wed, 16 Sep 2009 13:40:55 +0900</pubDate>
		</item>
		<item>
			<title>감당할 수 있을 만큼</title>
			<link>http://drunkenstar.x-y.net/tt/694</link>
			<description>누구나 떠나기 위해 공항에 간다. 공항은 마음이며 옷가지가 온통 구겨진 채 치르는 이별의 장소다. 공항에서 한 젊은이가 떠난다고 해서 새로울 것은 전혀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039;법에도 없는 강제추방&#039; 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의 살점을 격하게 뜯어 냈다. 또 몇몇은 급하게 빨간약을 발라 댔지만 뜯기고 바르는 짓을 동시에 하다보니 어떻게 베었는지 조차 정신이 없었고 아물어야 하는 시간도 가질 수 없었다. 우리나라 특유의 연예 시스템인 연습생은 꿈을 먹은 자에게 독이다. 하지만 그걸 마셔야 꿈을 이룬다니 못 마실 이유도 없다. 독을 마시고 독하게 견뎌도 고만고만한 꿈을 이루는 자도 독하게도 몇 되지 않는다. 4년이라 했던가, 게다가 그 시간이 그 시스템의 암묵적인 기본 이라면 치뤄야 할 시간은 온통 비정규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이나 이른바 공부 잘해 사회에서 성공이란 수식으로 대접 받을 전문직 종사자가 되는 꿈이거나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준다. 우리는 그것을 견뎌야 한다고 가르치고 배웠다. 꿈이 어떻든 간에 일정한 독을 마셔야 하는 것이 당위인 세상이다. 감당의 여부는 개인의 문제다. 우리는 제도적으로도 일관된 사회적인 삶을 위해 비정규적인 시간이 2년이상 지속되면 안된다는 합의를 가지고 있다. 물론 4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꿈이 있다하여 2년이든 4년이든 견디는 몫은 오로지 개인이 진다. &lt;br&gt;&lt;br&gt;감당할 수 있는 시간 끝에 꿈을 이뤘다고 치자. 모든 꿈의 이룸은 기득권이 된다. 누구나 이 기득권을 지키고 싶어 한다.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꿈을 이뤘으니 이제 그 꿈을 버려라, 너를 위해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해 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기득권을 지키는 것은 후천적인 본능이 된다. 어떻게 이룬 건데 버린다는 건 말이 안된다. 우리는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책임이란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책임지고 뭘 하겠다, 책임 져라 따위의 말을 수없이 많이 듣는다. 이 언어의 정치적 감수성 때문에 무책임이 책임인 등식이 성립되는 일들도 한 없이 목도했다. 좌우간 책임은 현상의 귀속이고 자유로운 인격의 결정이다. 청춘들의 꿈이나 어른들의 꿈이나 매한가지로 사회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에서의 획득, 돈이거나 위치이거나, 이기 때문에 책임을 가장 가시적인 돈이나 위치의 변동으로만 얘기한다. 현상의 귀속이 사람에게 되어야 하는 것이 보편적일지 모르나 책임의 형태가 반드시 돈이나 거취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는 참으로 엥똘레랑스 하다. 인격이 그 둘을 합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니까.&lt;br&gt;&lt;br&gt;우리는 책임을 다 져가면서 인격을 실현하는 양심을 부여 잡고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조금씩 악을 행하며 거대한 행복을 추구한다. 누구나 세상을 민망하게 살아 간다. 특히나 책임을 어떤 제도로 구속하고 그 안에서 기득권이 추구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민망함은 우리의 모습으로 일반화하여 쓰기에는 너무 구리고 상스럽다. 언어도 현상도 스스로에게 귀속시켜 본적이 없는 태도를 통해 우리는 기득권이 수성되는 방식을 배웠다. 나아가 저것이 정치 라는 왜곡도 서슴치 않는다. 그로 인해 우리에겐 면역이 생겼다. 아울러 그 유전자가 세계의 어느 곳에 있든, 재미교포건 재일교포건 상관 없이 같은 진화성을 품고 퍼진다. 꿈? 시간이 걸릴 뿐 다시 꿀 수 있다. 버림을 당하면 당했지 이룬 꿈인 기득권을 버려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책임지며 살아 가는 법 대신 그것이 무엇이든 한번 얻은 기득권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며 살아 왔다. 다시 꿈 꾸기 위해 새로운 독을 마실 시간을 떠올리면 심장이 저절로 떨린다. 소박한 꿈은 그야말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필요가 없는 꿈일 뿐이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지향만 하는 꿈이 사실 행복인데도 우리는 그런 꿈을 꿈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어떤 교환가치적 인정을 받을 수 없고 민망해 할 필요도 없으니까. &lt;br&gt;&lt;br&gt;재범이 한국, 한국인을 욕한 것 그것도 그의 인격이었다. 게다가 그의 인격이 리더로서 민망하고 그 발언 자체도 잘못이었다고 생각했던가 보다. 두말 않고 격한 청소년의 감정 처럼 시원하게 떠났다. 어떤 이는 그는 계약기간도 남아 있고, 반드시 복귀한다, 그게 시나리오다 라고 한다. 회사차원에서 잠수 좀 타라는 조폭스러운 감수성에 기대어 결과적으론 동정이 될 여론에 줄서 보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어른들의 애국심 같은 것에 호들갑을 떨어 봤자 아마 이건 극복 안될꺼야, 냉소하고 만다. 그가 복귀하는 시점까지의 시간 동안 그가 치룰 개인적인 고통 또한 낡아 빠진 타인의 고통 중에 하나일 뿐이다. 다만, 민망하게 사는 어른들의 그 자랑스러운 민망함이 도무지 이해가 안될 뿐이다. 그것이 정의 인양 행복인양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사회의 척박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오늘 나의 호주머니속으로 들어온 돈은 누군가의 피다. 누군가의 피로 우리 스스로의 살을 찌우는 삶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미안해 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독을 마셔야 하고 소박한 꿈을 지향하는 것에 슬퍼해야 하고 감당하지 못할 삶을 강요 당하는 아이며 어른들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가.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젊은이 하나가 기득권을 버리고 떠났는데 여러 생각이 든다. 왜일까... 부엉이 바위도 오버랩 된다. &lt;br&gt;</description>
			<category>생각</category>
			<category>2PM</category>
			<category>꿈</category>
			<category>박재범</category>
			<category>책임</category>
			<category>행복</category>
			<author>(DrunkenSTAR)</author>
			<guid>http://drunkenstar.x-y.net/tt/694</guid>
			<comments>http://drunkenstar.x-y.net/tt/694#entry694comment</comments>
			<pubDate>Wed, 09 Sep 2009 12:55:38 +0900</pubDate>
		</item>
		<item>
			<title>개때들의 애국심</title>
			<link>http://drunkenstar.x-y.net/tt/693</link>
			<description>&lt;p&gt;2PM, 재범의 린치 과정을 보면서 또 애국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공통의 소속감에 반하는 행동에 대한 집단 린치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데다가 천박하게도 애국심을 경제적 차원에 속해 있는 교환가치로 승화시키는 절차에도 매우 익숙해져 버렸다. 재범의 한국 비하는 바로 유승준과 비교된다. 오래된 기억이 아니더라도 미수다의 베라가 발간한 책 &#039;잠 못드는 서울&#039; 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이른바 &#039;한국 내지는 한국인을 비하 하며 한탕질을 해대는 양아치들&#039; 의 범주에 모두가 속한다. 이러한 네이션적인 감정의 폭발은 비논리적이긴 하지만 그 열정에 논리를 덮어 씌운다고 해서 정신병리가 해소되진 않는다. 한국이란 국가를 한국인이란 덩어리를 비하하면 안된다는 사고의 체계는 명백히 어떤 지적 영역이 아니다. 재범의 말에 대한 스팩타클한 반응과 10대 청소년의 욕지거리 수준과 어울리는 격하고 상스러운 언어들은 단순히 감정이 이입되어 만들어지는 일종의 정신병일 뿐이다. 이런 지적에 대게는 &#039;같은 민족에게, 우리나라를 욕하는데 넌 아무렇치도 않냐? 넌 어느 나라 사람이냐?&#039; 라는 병적인 답변으로 돌아 온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그러면 안되나?&lt;br&gt;&lt;br&gt;이런 반응의 부류는 대체로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 하거나 국가가 개인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을 가지는게 보통인데 이 때문에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정신 상태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전쟁세대라면 모를까 젊은이들 조차 국가일심동체에 이바지하는 감수성은 측은하다. 애국이 자신의 현상황을 구제할 지도 모르는 절박함에 처해 있다면, 이를테면 청년실업, 비정규직문제 따위들, 왜 국가에 이토록 애국하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는 자본을 일방적으로 취득하고 적절한 재분배는 하지 않는지 고민해야지 남들이 이성을 놓았다고 스스로도 이성을 놓고 재범 따위를 린치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국가가 잘했다고 궁둥이 만져주는 것도 아니고 그 소속감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없다. 제성찰도 환경적응도 안된 아이의 욕지거리에 개때들처럼 몰려 들어 살점을 뜯어내는 태도가 나라 사랑, 겨레 사랑으로 명제되는 것이 얼마나 비생산적이고 이성적이지 않은 집단폭력인가.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 좀비들도 아니고... 민주적인 메카니즘이 존재한다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게다가 스스로 진보 성향이라며 블로그에 노무현이나 김대중의 근조 리본 따위를 걸어 놓고 한다는 짓이 이렇게 얕은 수준이니 실제로 선거가 일어나면 죄다 이명박 따위나 그 아류들에 표를 던지고 재미삼아 비판질에 날새는 줄 모르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lt;br&gt;&lt;br&gt;박재범에 대한 배심감, 한국에서 건드려서는 안될 애국심, 그런 것들을 네티즌들이 회자시키자 언론은 악랄한 받아 쓰기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동안 박재범에 대해 어떤 신뢰를 가졌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이 범주에 반드시 끼는 것이 공인 이란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연예인이 공인이라면 그야말고 국가에서 녹이라도 줘야지 왜 기획사에 속해서 연습생 생활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박재범에 대한 신뢰는 저 친구가 얼마나 우리를 즐겁게 하면서 자본을 축적할까 일 뿐이다. 그가 좀 되먹었으면 문근영처럼 기부도 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애국심, 이런 시시콜콜한 애국심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좋아할 부류는 오직 지배 계층 뿐이다. 애국심이란 것이 특징적으로 자본 교환을 전재로 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호혜적이란 것을 잘 알고 있는 지배 체제가 이런 국민들이 많을 수록 지배당하는 것,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싶은 마음을 끌어 내는데 용의하다는 것을 알게 해줄 뿐이다. 그리하여 너희들이 그렇게 살아도 스스로 괜찮다고 위로하고 국가에 헌신할 것을 알아 버린 다는 점이다. 박재범에 시간과 애국심을 투자하느니 제 스스로 살길 찾는 일에 몰두하는 편이 휠씬 낫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곧 입에서 단내나며 &#039;한국 좆같네&#039;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생각</category>
			<category>국가</category>
			<category>박재범</category>
			<category>애국심</category>
			<category>정신병</category>
			<author>(DrunkenSTAR)</author>
			<guid>http://drunkenstar.x-y.net/tt/693</guid>
			<comments>http://drunkenstar.x-y.net/tt/693#entry693comment</comments>
			<pubDate>Mon, 07 Sep 2009 14:13:22 +0900</pubDat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