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할아버지들이 전투복을 입고 여의도며 덕수궁을 순회하며 그 모종의 연대를 실현하고 있다. 어떤 노년의 외로움의 발현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어처구니가 없다. 모든 현실의 잣대가 좌파척결에 있는 늙은 마초들의 덩어리에서 그 옛날 몇몇 전우(?)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만날 지 모를 사재 여성의 호기심에 들기 위해 사고 다렸던 사재 군복의 컴플렉스를 본다. 군대라는 것이 개개인적으로는 온통 열등에 쌓여 있을 수 밖에 없다. 돈많은 애들은 면제 받고 사회에서 자기보다 앞서서 공부하거나 경력을 쌓을 텐데, 여자친구는 짧은 머리보다 긴머리에 컬이 출렁이는 멋쟁이와 눈맞아서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열등과 불안을 애국과 계급으로 승화시키는 조직이다. 할아버지들이 다시 군복을 입고 돌격 명령을 기다리는 것은 애국도 계급의 지배적인 인식도 아니다. 다만 전역 후에도 그들의 삶이 군대와 다를 바 없이 온통 불안했고 열등했다는 반증이다. 왜 그랬을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언제나 친북좌파척결로 귀결된다. 격결만 되면 로또라는 생각, 뒤집지 못한다. 따라서 군대나 사회나 별반 다를게 없으면 차라리 전투복을 입고 컴플렉스라도 분출하는 편이 여생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는가는 계산은 응당 가능하다. 다만, 예의와 공경에 대한 단어적 의미를 규범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 안쓰럽고 우려스럽고 그렇다. 게다가 경찰이 저런 덩어리를 대하는 태도란, 열등의 연대 인식이 얼마나 감염이 빠른 신종플루인지 가늠이 되고도 남음이다.
검색어 '경찰'에 대한 9 개의 검색 결과
- 2009/06/26 할아버지들의 군복 by DrunkenSTAR
- 2009/06/03 경찰 출신은 이력서 내지 마세요. by DrunkenSTAR
- 2008/09/23 경찰과 부자 by DrunkenSTAR
- 2008/08/20 브래지어 by DrunkenSTAR
- 2008/08/06 개좆은 실용적이다. by DrunkenSTAR
- 2008/07/05 국민 승리를 선언하면 되는 것일까? by DrunkenSTAR
- 2008/06/30 집회를 거두고 촛불항쟁으로 가야 할 때다. by DrunkenSTAR (1)
- 2008/05/29 어느 현직 경찰관의 인식의 한계 by DrunkenSTAR (4)
- 2007/03/19 경찰 by DrunkenSTAR
요즘 할아버지들이 전투복을 입고 여의도며 덕수궁을 순회하며 그 모종의 연대를 실현하고 있다. 어떤 노년의 외로움의 발현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어처구니가 없다. 모든 현실의 잣대가 좌파척결에 있는 늙은 마초들의 덩어리에서 그 옛날 몇몇 전우(?)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만날 지 모를 사재 여성의 호기심에 들기 위해 사고 다렸던 사재 군복의 컴플렉스를 본다. 군대라는 것이 개개인적으로는 온통 열등에 쌓여 있을 수 밖에 없다. 돈많은 애들은 면제 받고 사회에서 자기보다 앞서서 공부하거나 경력을 쌓을 텐데, 여자친구는 짧은 머리보다 긴머리에 컬이 출렁이는 멋쟁이와 눈맞아서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열등과 불안을 애국과 계급으로 승화시키는 조직이다. 할아버지들이 다시 군복을 입고 돌격 명령을 기다리는 것은 애국도 계급의 지배적인 인식도 아니다. 다만 전역 후에도 그들의 삶이 군대와 다를 바 없이 온통 불안했고 열등했다는 반증이다. 왜 그랬을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언제나 친북좌파척결로 귀결된다. 격결만 되면 로또라는 생각, 뒤집지 못한다. 따라서 군대나 사회나 별반 다를게 없으면 차라리 전투복을 입고 컴플렉스라도 분출하는 편이 여생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는가는 계산은 응당 가능하다. 다만, 예의와 공경에 대한 단어적 의미를 규범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 안쓰럽고 우려스럽고 그렇다. 게다가 경찰이 저런 덩어리를 대하는 태도란, 열등의 연대 인식이 얼마나 감염이 빠른 신종플루인지 가늠이 되고도 남음이다.
는 신자유주의, 반민주주의 정권을 지탱하는 두 계급이다. 부자는 경찰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경찰은 권력을 가진 부자나 또는 그냥 부자를 성심 성의껏 지킨다. 부자와 권력을 겨냥한 비판은 경찰과 부자가 아닌 계급에서 나오고 경찰은 부자를 위해 기꺼이 비판과 맞선다. 서민은, 엄밀히 말하면 돈없고 빽없는 서민은 자신들을 지켜주는 경찰을 때론 존경할 때도 있지만, 부자는 자신들을 아무리 지켜줘도 경찰을 존경하는 법이 없다. 지팡이와 끄나불의 차이다. 게다가 경찰은 부자가 되지 못하고 부자는 경찰이 되지 않는다. 이런 사정에 밝은 어떤 경찰은 경찰이면서 부자가 되는 방법을 모색한다. 경찰이 부자가 되려면 로또에 당첨되거나 권력을 핥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에 열심히 헐떡 거린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반민주주의로 전속력을 내는 이유는 경찰이 경찰이 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부자가 되려는 노력을 경주하기 때문에 가속화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부자인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서에서 자살 방지를 위해 면티 하나 입고 있는 촛불집회 연행자에게 브래지어를 벗으라 했다 한다. 놀랄만한 일이 아닌 것이 여기자와 술집 여주인의 가슴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교양에 마사지걸의 얼굴과 서비스의 질적 수준 정도는 알고 있어야 정치가 되는 세상에서 브래지어 호크 열고 닫는 것 쯤이야 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의 양심적(?)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경찰서에 유치되기 전에 브래지어를 벗으라는 법은 없다. 자살이 어떤 실존적 의미인지 알길이 없는 경찰관에게 브래지어가 자살용 도구 일리도 없다. 브래지어가 50kg 정도 되는 보통의 여성을 매달 만큼 장력을 지닌 섬유구조로 짜여 있는지 그 좋아하는 과학적이며 국제적 근거가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이건 법이 아니라 법집행, 아니 인간의 양심의 문제인데 도대체 그 양심에 털이 난 건지 가출을 한건지 모를 일이다. 아주 수준 낮은 양심을 스스로 고발한 셈인데, 브래지어 벗기는 일이 예삿일인 사람 아니고서야 생면부지의 여성에게 브래지어 벗어, 이런 말 평생하기 힘들다. 경찰관? 법의 집행 따위를 들먹이는 사람들이 존재할 텐데 분명 변태마초들이다. 브래지어 벗기면 팬티 벗기고 싶은게 마초들이고 그 성질은 대통령이고 나도 모두 공통분모다. 아니라면 거세다. 다만 변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아무데서나 벗기지 않는 것 뿐이고, 함부로 누구한테 명령하지 않는 것 뿐이다. 함부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초딩적 양심인데 경찰의 양심은 법 아래 존재한다는 유아적 양심의 자기 고발인 셈인데다가 일말의 양심 따위를 교육한다는 대한민국 교육제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자본은 스스로 복제를 하고 예술도 복제를 한다는데 위에서 하는 못되쳐먹은 양심을 아랫것도 복제를 하고 난리다. 이거 무슨 포스트포스트 모더니즘인가. 더 희안한 건 옆에 있었다는 여경이다. 경찰 되려면 여성성을 제거하는 훈련이라도 받는 것인지, 남성이 마초와 변태마초로 구별되듯 성기가 같다고 다 여성은 아닌 것이다. 아무튼, 남자 경찰관들의 그 변태마초적 기질과 못된 양심의 복제에서 비롯된 것, 법대로 하려면 브.래.지.어. 가 법조항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 자살 방지의 확대 해석은 아닌 것이고, 이건 솔직히 브래지어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의 문제 아니겠는가.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빨고 싶은 판타지에서 비롯된 이 변태적 법집행이 새로운 예술 사조의 개척이 아니라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 어머니, 아내의 가슴 그리고 세상 모든 여성의 가슴에 반성하라는 뜻으로 시인 박영희의 시 하나 남긴다. 잘 읽고 가출한 양심 찾아 왔으면 싶다. 뭐 양심도 복제하는 사이보그 클론들에게 바라기엔 무리이긴 하지만.
- 글을 쓰고 나서 기사를 검색해 보니 마포, 강남에 이어 중부에서도 브래지어를 벗으라 했다는 군요. 이제 보니 경찰들, 색소 묻은 여성 속옷 수집광들이었군요. 양심이 없어도 정신병은 걸리나 봅니다. 이런 변태들이 바바리맨 잡아서 바바리는 벗겨서 유치하는지 모르겠군요.
아내의 브래지어
욕을 안할라고 했지만 저절로 나온다. 참말로 개좆같은 짓을 하는 개같은 나라다. 에라이.. 씨발놈들.
[지나는 시민 때리는 경찰에 돈까지 준다?] 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요즘 블로그에 욕이 많다. 낯뜨겁다. 자랑삼지 못할 인격인데도 괜히 스스로 손해 보는 짓 하는 건 아닌지 생각도 했다. 이쁘고 아름답고 거창삼삼한 단어 골라서 쓸 걸.. 하지만, 욕지거리 좀 있는 블로그는 진짜가 아니다. 진짜는 거리에 있다. 나라? 요즘 이건 블로그에서는 진짜지만 거리에선 가짜다. 거리엔 민주공화국이며 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오는 진짜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개좆같은 짓을 하는 개같은 나라, 즉 가짜 나라가 존재할 뿐이다. 실용도 실용 나름이고, 신자유주의도 신자유주의 나름이다. 영장 없이 48시간 구속하는 연행의 건을 당하는 사람에겐 48시간은 치명적일 수 있다. 그 시간이면 이 가짜 나라의 반대편으로 날아가 썬탠을 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나라에선 그걸 5만원에 가격 형성을 하고 거리에서 팔고 있다. 백골단이란 수요가 있고 100번을 쉬지 않고 거리에 나오는 시민이란 공급이 있다. 거리에서 보고 있자면 좀 덜 폭력적일 때에 한해 두 사람이 양팔을 끼워 연행하든데 그럼 2만5천원씩 나눠가질 수 있도록 관리 되는지 궁금해진다. 실용은 개좆같은게 실용이다. 개좆은 유용하다. 한번에 몇마리씩 번식할 수 있도록 돕고, 그래서 낳게 되면 인간에게 이로움을 준다. 우울증도 치료해주고, 맹인의 길잡이도 하며, 독신자의 로망인데다가, 기빠진 사람들의 보신으로까지 몸 바칠 수 있도록 기능하는 그야말로 실용적인 거시기 되겠다. 개좆같은 짓만 해도 나라가 실용적은 된다. 그나마 실용적이지도 않으니 개좆이 들으면 어디가 좆들이대냐고 하겠다.
짐짓 고귀한 척 하는 최시중이 어청수니 하는 무리들은 거리의 껌이다. 씹히고 밟힌다. 어차피 이명박 내지는 이명박으로 아우라 되는 권력에 영혼을 바쳤으니 껌이 되도 알길이 없는 좀비들이다. 거리의 얘기만 해보자, 경찰, 복잡한 전투경찰제도 따위는 내려 놓고 어쨌든 경찰로 보고 맞닥드려보자. 시뻘건 눈에서 5만원짜리 광선이 나온다. 살기등등, 방패갈갈 한다. 어디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살수차가 등장한다. '미국산 쇠고기 안먹고 싶어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와요' 다 잊어 버린다. 그들도 잊어 버린다. 국민이란 사실을 잊도록 교육 받는다. 폭도다, 포획 대상이다, 어젠 더했다. 5만원짜리 상품권이다. 거리의 얘기다. 그 거리에서 경찰을 우리의 아들이다? 라고 소리친다고? 그 경찰의 어미, 아비에게 이 따위 오만방자한 족보 들쑤시는 주장이 어딨겠는가. 대오에서 시민들에게 끌려 나온 전경과 그를 잡아 끄는 시민들에게 "놓아줘", "때리지 마" 갈기갈기 소리친 적이 있다. 그러다 다시 앞을 보면 광선 뿜는 눈알을 깃대로 꽉 찍어 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난 폭도인가? 거리에서 잡혀 갈 수 있다. 정말 눈알을 찍었으면 잡혀 가야지, 잡혀 가다가 귀싸대기 한대 맞았으면 그럴수도 있겠다. 눈알 찍은거에 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근데, '부시 오지마, 싫어', '미국산 쇠고기 먹기 싫어, 광우병 걸리지 말자', '이명박 물러가, 난 맘에 안들어' 라고 외치는데 잡아 가려면 좀 품위는 지켜야지, 명색이 법의 수호, 민중의 지팡이라면.. 기자들 카메라 막고 개같이 패고 몸이 구겨져라 쑤셔 넣고 인도고 상점이고 나발이고 어쩌고 5만원짜리 상품권을 포획하는 짓은 개좆을 다루는 개장수가 할 일이지 경찰의 품위가 아니다. 거리의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지 못할 거라면 변호사라도 선임할 수 있게 면담할 수 있게는 해줘야지. 그래 도로교통법위반이지? 맞아... 도로교통법위반은 변호사 선임이 안된다. 개좆같네 실용적이라서, 맞아 헌법은 실용적이지 않아.
그러니까 가짜 나라다. 법은 국민들만 지키면 되고 법의 집행자들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실용적이네, 역시 개좆같네. 엇, 그러고보니 저 댓글 이제 이해가 되네. 우린 개좆같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힘겨운 저항과 '짓' 을 하고 있는거지. 인간을 실용적으로 대접하지 않으며 양심에 맞게 표현하고 서로 모여 토론하고 주장할 수 있는 그런 진짜 나라를 위해 말이지. 맞네. 그럼 진짜 나라는 어디있나? 이거 누구 한테 빼앗겨 이렇게 힘들게 찾아 와야 하는 것일까? 독도? 그래 이것도 이젠 미국한테서 찾아 오는 신세지.. 바쁘네, 일본에서도 찾아야 하고 미국에서도 찾아야 하고.. 진짜 나라는 어디 있는가? 빼앗긴 나라에도 개좆은 있는가? 말되네. 근데 왜 이렇게 허무한거야...
정권이 시위의 불법성에 대처하는 폭력적 자세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그때는 군과 철조망도 동원되었고 두명이나 비명횡사했다. 어청수가 지금 사용하는 물대포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맥락일까? 한번 생각해 보자. 사회적 인간의 폭발적 의지가 동일했을 때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몇이나 될까? 그건 그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가에 달려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리의 크기에도 관계가 있다. 집회는 언어의 근원과도 일치한다. 의지는 언어를 생산하고 언어는 인간들끼리 모여 대화를 통해 작동한다. 모이지 않는 이상 의지도 언어도 집회도 아무것도 일어 나지 않는다. 10만명? 20만명? 이 정도 인간이 모여 집회를 할만한 공공 장소가 서울에는 없다. 조중동이나 이명박 일당이 말하는 합법적 집회란 인도에서나 가능하다. 선거만으로 민주주의의 가치가 모두 완성될 수는 없다. 뽑았으니 믿으라는 교조적인 담화는 소망교회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민주주의의 의지는 이명박이 말은 할 수 있어도 절대 실천할 수 없는 소통에 있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모여서 대면해야 하는데 도대체 서울엔 이 강력한 인간의지가 모일 장소가 없다. 그러하니 어떠한 철학도 필요치 않은 무리들은 이 부분만 물고 늘어지며 불법, 위법만을 강조하면 된다. 철학이 없으니 불법말고 다른 논리를 만들면 더 추해진다.
미국산 쇠고기, 이명박 퇴진과 함께 폭력 비폭력은 거리의 절대 화두 중 하나다. 폭력과 비폭력은 촛불을 든 시민들만의 화두는 아니다. 저들, 즉 권력을 비호하는 일당에게도 그런 비슷한 화두가 있다. 철학은 없고 더러운 기름으로 작동하는 기계처럼 불법에 대처하는 그들의 기계적인 폭력말이다. 거리에서 공권력은 권력을 지키는 경찰로 대리된다. 이 나라에 공권력이란 장애인과 여성, 노인은 카메라 없는 곳에서 패라고 명령하는 직업경찰과 멋도 모르고 인간들을 족치는 2년짜리 비정규직 전투경찰더미가 전부다. 솔직히 그 거리에서 나쁜놈은 몇명 밖에 안된다고 구분하는 시민을 보면 성자를 보는 듯 하다. 나는 그만큼 넉넉한 오지랖을 가지지 못한 것 일까. 촛불을 든 시민 중에도 나쁜놈과 좋은놈이 있다고 구분이 가능할까. 어청수는 가능하다고 한다. 물대포에 형광물질을 넣어 뿌리면 물대포 맞은 놈은 나쁜놈이라고 구분 가능하다고 한다. 촛불소녀가 웃는다. 저는 나쁜년인데요. 거리에는 촛불을 든 시민과 방패를 든 경찰로 나뉜다. 이건 의지와 명령의 차이다. 육체를 타고난 인간은 어차피 그 자체가 폭력이다. 우리가 나눠야 하는 것은 폭력과 비폭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로인해 어떤 폭력이냐는 구별이 가능해진다. 여성을 넘어 뜨려 발로 차는 인간이 있다. 그냥 쳐다 보는 인간과 발로 차는 인간의 면상을 후려치는 인간과 어느 쪽이 더 폭력적일까? 좁은 도시에 10만, 20만이 더 많은 사적이익을 도모할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모일 만큼의 언어가 작동하고 소통을 원하는 하나의 인간 의지가 있다. 이것을 불법이라는 집시법 위에 두고 이 인간들을 토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정자들이 그 민주적 의지를 제단할 수 있을까? 폭력이 구별 가능해지면 어떤 폭력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이 역사이며 역사가 오늘을 비춘다. 명령이 의지를 이겨 본 적이 없다.
이제 오늘 국민이 승리 했다고 선언하자고 한다. 900여명이 강제연행 되었고 10명이 구속됐다. 미국산 쇠고기는 유통되고 있고 조중동은 여전히 설레발치고 있다. 이명박은 뒤에 숨어 대폭 개각할 듯 하더니 소폭 개각하고 지들끼리 재신임 중이다. 거지 같은 인권은 동물적으로 변질되고 조중동을 제외한 언론과 통신은 각종 탄압의 전조를 울리고 있다. 게다가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대중들을 위해 공약한 이명박의 대표적인 공약인 747 은 미국소 주저 앉듯 앞대가리 부터 4로 시작할 조짐이다. 우리는 무엇을 승리한 것일까? 신부님, 마음속에서 그렇게 가다듬고 외쳐야 하는 건가요? 고해성사 하듯요? 우리는 아무것도 승리한 것이 없다. 앞으로 시민들이 계속 촛불을 들 것이니 조바심내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나마 주최자인양 하던 국민대책회의도 뿔뿔이 흩어 졌다. 어느 누구도 음향기기나 무대차를 촛불집회에 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의지가 있다. 시민들이 더 다치지 않게 승리를 선언해주시는 32인의 지식인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 감사하다. 하지만, 승리했다고 월드컵 그날 처럼 시청광장에서 미쳐 날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에도 며칠 촛불집회 하다가 물대포 맞고 방패에 찍혀 백병원 들락 거리다가 어느날 승리를 선언해 버리고 말 것인가? 아직 우리는 승리하지 않았고 의지가 남아 있다. 이런 거지 같은 인간들이 권력을 잡고 국민에게 말도 안되는 명령 따위를 할 것이 분명한 미래지향이 이 거리에서 목도 되고 있는데 밑도 끝도 없이 승리를 선언하는 고해성사에 반대한다.
정부의 몇몇 장관들이 대국민 담화라는 협박을 발표 했다. 이 협박은 거리에서 경찰의 확성기를 통해 듣던 확성녀의 헛소리와 다른 점이 없다. 맥락은 아주 간단하다. 오늘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다' 고 알려 주기 위해 어제 확성녀는 '당신들 미친 것 아니냐' 고 떠들어 댄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본은 이랬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전경버스를 파손하는 행위는 불법' 이라고, 그러더니 대본 없이 이런다 '당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돌아 보라고' 반성하란 얘긴데 매일매일 좆 잡고 반성하다보니 순정 어린 마음을 주체 못하고 거리에 나왔다. 구호라도 외치지 않고 노래라도 부르지 않으면 그것도 못하느냐며 반성하다가 돌아 버릴 것 같아서 그런다. 이제 새로운 대본이 나왔다. 국민이 아니라고 선포할 것이니 미친 집단으로 몰아가라는 대본이 그들끼리 존경해 마지 않는 청와대에서 내려 온 것이다.
전경버스를 끌어 내는 밧줄을 잡고 있으면 앞뒤에 선 건장한 시민들에 부대껴 두 다리가 공중에 떴다가 가라앉았다를 반복한다. 그렇다, 저 버스는 내가 그동안 꼬박꼬박 낸 소득세, 주민세, 방위세, 자동차세 등이 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내 갈 길을 막는 저 버스는 내가 파괴할 권리가 있다. 좆 잡고 반성해 보았다. 저 버스는 온갖 세금을 탈루하고도 불구속 입건 조차 되지 않는 이건희 따위의 원조 강부자 계급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이건희가 저 버스를 파괴하려고 했을 때 그게 불법인 것이고, 그게 진정한 폭력이다. 우리에게 비폭력은 맞아 주는 것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아야 하는 것이 마치 촛불집회의 존재 이유처럼 된 논리는 거부 되어야 한다. '이 개새끼야' 라며 방패를 아스팔트 바닥에 갈고 오는 경찰 앞에 서 보라, 두팔 벌려 우리 아들이고 형제고 동생들 입니다 며 끌어 안겠다고? 미친 짓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산 하이바와 방패를 내리고 맨 주먹으로 맞짱 뜨고 싶은 생각 말고 없다.
비폭력은 저항 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한다. 시위대에 끌려 나온 전경을 폭행하지 않고 돌려 보내는 것, 길바닥에 쓰러진 여성이나 노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을 군화발로 짖이기지 않는 것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패를 갈며 '개새끼야' 라며 덤벼드는 경찰이 있다면 난 눈에 보이는 뭐라도 들고 싸울 수 밖에 없다. 내가 한 일은 내 양심의 울림에 따라 촛불 든 것 밖에 없으니 당연히 정당방위다. 경찰도 양심의 소리에 따라 방패로 시민의 정수리를 깐 것일까? 그러니까 우린 더 이상 맞아 줄 수가 없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 짓밟았다고? 보편적인 인간은 누가 명령한다고 해서 여성을 짖이기고 아이에게 소화기를 뿌리지 않으며 노인을 질질 끌고가 방패날로 내리치진 않는다.
광우병 쇠고기 따위가 이제 이 집회의 목적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 버스를 넘어야 이명박을 만나 대통령으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온갖 악질적 행위에 대해 따질 것 아닌가. 이 거리의 상황은 광우병 쇠고기 고시 철폐를 넘어 섰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는 것도 그들에게 지나치게 명예스럽다. 이명박 정권은 폭력 집단이지 독재 집단이 아니다. 이 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폭력 집단에게 그냥 맞고 버티는 것이 국민의 의무 인 양 한가한 토론을 하는 것이다. 요즘 이 토론은 패배주의를 양산하고 있다. 정권의 힘이 얼마나 센지 알겠다는 둥, 저 윗분들이 비웃고 있다는 둥, 결국 우리는 해도 안된다며 절대 해서는 안되는 반성모드로 접어 든다. 이 반성모드의 끝에는 현대판 노예의 삶 만이 기다린다. 게다가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폭력 집단을 어디다가 신고도 고소도 할 수 없을 만큼 기능이 중지된 쇗덩어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남은 법은 헌법 1조 밖에 없다. 하지만, 이 폭력 집단은 국민도 국민 나름이라고 선언했다. 그들이 국민이 아니라고 한 우리는 그럼 무엇일까? 갑자기 정체성이 확 사라져 버리면서 두려움에 떨리는가. 얼마나 고마운 말씀인가 인간이 아닌 그들과 인간인 우리를 구별해 주었다. 촛불집회를 더 이상 촛불집회라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데 이 또한 바라는 바다. 이제 집회는 때려 치우자. 집회를 빙자하여 이 폭력 집단에게 맞아 주고 감금되는 일은 무기력한 일이다. 이제 촛불집회를 항쟁으로 부르자. 유모차도 그동안 고생하셨다. 촛불소녀도 그동안 고마웠다. 이제 항쟁을 할 강철 대오가 상상력이고 감수성이다. 더 이상 이명박 정권을 간지럽혀 이 거리의 폭력과 끝장난 권력을 끝낼 수가 없다.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