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의 '수구꼴통을 위한 분열선동' 이란 발언을 듣고 적잖이 당황했고 경황이 없었다. 말로만 듣던 자주파의 거대한 패권의식의 실체와 전속력으로 부딛쳐 산산이 조각난 몸둥아리를 추스리는 허둥지둥이랄까. 민중을 위한다는 허울 좋은 총론을 빌미삼아 반민중적 수사와 각론이 난잡성을 넘는 이 불안하고 불쾌한 시대에 그나마 민주노동당이 남아 있어 생기는 그 어떤 희망이 김창현씨를 통해 조립 불가능한 파편으로 흩어져 버렸다. 게다가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의 선대본부장까지 맡았던 김창현씨의 인식 속에는 더 이상 진보의 근원적 성찰이나 자기 반성 따위는 찾아 볼 길 없고 더욱이 민주노동당이 이미 자주파, 다수파의 그들만의 권력리그가 되어 있는 실체적 진실을 쏟아 내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고 실망스럽다.
지역당의 위원장 선거에서 보인 관료적인 당규의 적용 논리도 참아 줄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선거의 승자도 패자도 모두 민노당 당원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개 평당원의 소심한 인간정리가 얼마나 이용하기 좋은 표심이었으며 민중이란 이름으로 기득권 수성을 획책하는 보수정당의 애용품으로서의 알량한 당심이었는지 깨닫고 나니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분단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거대한 부조리로 생각했었지만, 김창현씨의 논리대로라면 종북주의는 친북주의이며 친북주의자가 아니면 반북주의자로서 통일의 과업을 통한 평화 지향이 아닌 분단의 고착화를 선동하는 친미 반민족주의자가 된다. 북한과 남한의 관계를 국가대 국가로 규정함이 반북이 아닐 진데 종북이 아니면 통일이 안되는 논리야 말로 해괴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도리어 이러한 주장이 통일의 진정성에서 나왔다기 보다 종북 인식은 오래된 민주노동당의 관행이었으니 이번 대선의 패배와는 무관하다는 책임의식을 통해 여전히 자주파의 종북주의야 말로 패권 수성에만 동원되어 작동하는 진정성이라 생각된다. 어디에도 71만표라는 눈 씻고도 해괴한 결과를 막막한 심정으로 대하는 평당원의 그것보다 못한 치졸한 세력 다툼과 함께 반협박을 일삼으니 김창현씨로 인해 이 분열의 당위성이 100퍼센트 충전되는 역설이 가능해져 버렸다.
민중승리, 민중믿음 같은 민주노동당의 추상적 구호가 보수정당의 상투적 명분과 일치하고 있는 이러한 오만한 권력 투쟁의 결과가 분열적 자성이 아니라 통합적 대동단결이어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 부침개처럼 뭉게고 마는 단결의 조장은 마치 개발독재식 뭉치면 산다의 망령을 보는 듯 하다. 차라리 분열이라 부르는 분열에서 찾는 희망이 휠씬 창조적이다. 이것을 분열선동이라 불린다면 그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분열된 신진보의 모임이 수구꼴통들과 부르조아적 야합의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악랄한 저주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들었을 터, 따라서 그 용감무쌍함은 참으로 고약하다. 이러한 고약스러움은 지금 자신들이 민중의 희망을 빌미삼아 무슨 짓을 해놓았는지, 지난 대선의 참혹스러운 결과를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지점까지 오게 하였다. 민주노동당이라는 통에 사심 없는 노동, 공평한 권리, 자본으로 부터의 해방, 숭고한 인권등과 같은 진보의 사표가 세력화, 내부 권력화를 위한 패션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면 도대체 왜 나와 같은 평당원이 불필요한 파벌 매카니즘에 허망함을 느껴야 하며, 보편적인 진보의 가치는 그대로인데 왜 그들의 권력과 기득권으로 더럽힌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것도 패션이라면, 그렇다 하지만 자주파의 패션은 싫다. 인민과 민중의 눈높이에 있던 민주노동당의 시선이 종북의 틀에서 북한의 관심과 눈치를 살핀 것이 자주파의 미시적 자주성인지 물어야 할 판이다. 민주노동당을 넘는 민주노동당에 진보의 가치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 이러한 종북주의의 폐기 때문인가? 참으로 어이없는 고약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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