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2006/10/16 00:33 / 사진
용눈이 오름을 오르는 길 곳곳에는 제주도 전통 무덤들이 있다. 제주도식 무덤은 산의 비탈을 깎지 않고 비탈의 생김새 대로 봉분을 만들어 둘레에 돌담을 쌓는다. 이 담을 제주도에서는 산담이라고 부른다. 봉분이 산이라는 의미이다.
용눈이 오름의 굼부리는 밋밋한 분화구가 아니라 파도처럼 물결친다.
용눈이 오름에서 구좌읍 송당 방향의 스카이라인이다. 제주도의 깊은 내륙은 여인의 가슴처럼 봉긋하다. 침침한 가스가 하루종일 내려 앉아 있다. 성산 방향에서 해풍이 불어 오는 탓이리라. 가벼워 바닥에 접착되지 않는 트라이포트는 흔들거렸고 바다는 안개를 출산해서 뭍으로 밀어 보냈다.
다랑쉬 오름의 굼부리에는 1948년 4.3 사건시 수많은 민간인들이 사변을 피해 살고 있었다. 진압군에 의해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이 굼부리에서 학살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굼부리를 지나 반대편 봉우리로 건너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하루종일 나는 이런 밀림을 뚫고 오름을 오르기 위해 오름 입구를 찾아야만 했다. 사람은 없고 바람과 들풀들이 무릎을 치고 있었다. 무엇을 잘 찍겠다, 인생이 어쩌고 하는 한가로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풀을 헤치면 뭐가 나올지만이 관심사가 되었다. 바로 앞에 무엇이 있을지...
다랑쉬 오름에서 바라본 용눈이 오름과 손지 오름이다. 오른쪽 손지 오름은 삼나무가 서로 걸쳐서 자라고 있다.
아끈 다랑쉬 오름은 얕은 굼부리에 가지런한 초원이 있었다. 풀벌레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생각이 하얗게 변한다.
다랑쉬에서 바라본 아끈 다랑쉬 오름, 멀리 성산이 보인다. 구좌읍에 있는 오름에서 성산을 볼 수 있었던 순간은 이번 뿐이었다. 그렇다고 날씨가 저주스럽지는 않았다. 시원했고, 때론 따뜻했다.
2006/10/16 00:33 2006/10/16 00:33
DrunkenSTAR 이 작성.

오름 기행

2006/10/01 06:26 / 생활

해안선은 볼만큼 본 것 같은 거만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8월에 처음 방문했었던 김영갑 갤러리의 환상적인 오름의 파노라마가 아주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오름에 올라 거창스럽게 뭘 얻겠다느니, 삶이 어쩌구 저쩌구 진지하게 고민할 생각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다만 3박4일의 짧은 일정동안 오름 여섯개(용눈이 오름, 새별오름, 따라비, 아부오름, 다랑쉬, 가메옥) 쯤은 오르겠다는 계획정도가 전부였다. 오름은 오르는 것보다 입구를 찾는게 더 힘들다는 유경험자의 충고는 첫날 부터 격언이 되었다. 김영갑 선생의 오마주인 용눈이 오름은 중산간을 가로지는 16번 도로에 연에 있는데다가 친절하게도 용눈이 오름 이란 돌명패까지 세워져 있어서 가장 손쉽게 찾아 오를 수 있었다. 가파르지도 않은데다가 상냥하기까지한 오름의 곡선을 따라 중간에 한번도 쉬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김영갑 선생이 오름의 아름다움을 담는데 파노라마 기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믿음은 용눈이 오름 정상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15미리 화각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부드러움에 한숨이 나왔다. 35미리나 50미리로 디테일하게 촬영하는 것은 오름의 태생적인 곡선을 잘라내어 지층에서 쏟은 내륙의 산과 평등하게 만드는 작업임을 깨닫게 한다. 특히 용눈이 오름처럼 정상에서 다양한 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오름에게는 치명적인 잘라내기가 된다. 멀리서는 잘자란 잔디처럼 보이는 초원은 거칠고 말과 소의 배설물 투성이 었다. 요리조리 피해 올라가도 어디 한군데 편히 앉을 곳이 없다. 삼각대를 펼치고 낮은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대체로 구름이라는 예보는 제주도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비가 올 수도 있고, 구름이 말짱히 걷힐 수도 있다. 다만, 지속되는 시간이 문제인데 오름 여섯개를 오르겠다는 계획이 발목을 잡는다.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도로에서는 몰랐던 바람이 으슬으슬 춥다. 어떤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높은 구름을 가리고 있는 낮은 구름이 한라산 쪽으로 밀려 올라 갈 수 있도록 해풍이 좀 더 불어줬으면 좋겠고, 이밥 태운 연기처럼 아랫 마을을 온통 덮고 있는 안개도 증발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내내 그런 시간은 오지 않았다.

두번째 오른 오름은 아직도 미스테리다. 아부오름이라고 생각하고 올랐으나 아부오름의 특징인 굼부리에 하트모양의 전나무 숲이 보이질 않았다. 용눈이에서 아부오름 방향으로 가다가 아부오름을 지나치고 착각을 했으니 칡오름이거나 민오름쯤으로 추측만 할 뿐, 여전히 아부오름은 아니다. 굼부리 주위를 솔나무가 곰보처럼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고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용눈이 오름에서보다 제법 시원하고 재잘거린다. 풀벌레 소리 보다 바람이 먼저 얘기를 걸고 지나치고 다시 다른 바람이 와서 전혀 새로운 얘기를 부치고 사라진다. 하늘을 쳐다본다. 바람은 구름을 밀어낼 얘기는 하지 않는 듯 했다. 도리어 성산쪽을 둘러 싸고 있던 구름 뭉치마저 중산간쪽으로 천천히 몰려 오는 듯 했다. 결국 아부 오름은 찾지 못했다. 용눈이 오름에서 너무 오래 지체했고, 그 이름모를 오름에서 내려와 농로를 잘못 타고 들어가는 바람에 길을 잃고 헤맨 시간까지 해서 다른 오름을 오르기엔 무리였다. 구좌읍에서 어떤 농로를 가로 질렀는지 모르겠지만, 벗어나고 보니 표선면이었다. 점심을 김밥으로 해결한 탓에 당케식당의 전복죽도 간절했지만, 일단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의 위치와 입구 정도만 파악해놓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따라비는 표선면 가시리 산 62번지이고 표고 342 미터, 오름의 할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그 자연미가 빼어난 곳이다. 하지만, 입구는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이 편치 못해 당케식당의 전복죽도 잊어 먹고 애월로 돌아와 버렸다.

마음이 급했다. 아부오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송당리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부오름을 앞오름으로 표시해 놓은 것을 알았지만, 입구라고 생각한 곳은 목장 입구였고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오름 주위를 몇차례 돌아 봤지만 도로는 점점 오름과 멀어지기만 했다. 목장 입구 건너편의 작은 농로를 따라 들어갔다.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는 길이 나왔다. 장비를 챙기고 숲을 걸어 올라가기로 작정했다. 가지런히 농로를 따라 둘러쳐진 삼나무 숲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오름을 가리고 버티고 있었다. 숲을 따라 한참을 걸었지만 뚫고 갈만한 오솔길 조차 내주질 않았다. 숲 건너에는 키만한 억새풀이 모험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듯 흔들거렸다. 삼나무 숲을 간신히 지나고 삼각대를 꺼내 억새풀을 휘젓자 마자 꿩 한마리가 푸닥거리를 했다. 간신히 지나왔다고 생각했었던 삼나무 숲을 달음질로 건너오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부오름이 저항을 하고 있었다. 나약한 도시인이란, 저항을 인정하는 것도 빠르고 쉽다. 아무렴 자연인데, 저항한다는데, 아직 오름이 많다, 합리화는 지적활동이 아니라 자기 위로다. 모험심은 더더욱 아니고... 카메라와 랜즈도 놀랐는지 여기저기 글킨 자국이 보인다.

다랑쉬 오름은 비교적 쉬웠다.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장비를 오르 내릴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았는지 계단이며 잡고 올라갈 수 있도록 밧줄을 당겨 놓았다. 그래도 하필 이렇게 경사가 가파른 쪽에 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힘에 겨웠다. 마지막 50여 미터를 남기고는 뒷굽이 바닥에 닿질 않아 거의 까치발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다랑쉬 오름은 높이 만큼이나 굼부리의 깊이도 상당했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 동쪽으로는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중산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날씨는 여전히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대체로 구름, 정확한 예보였다. 안개는 오늘도 새끼들을 낳았는지 마치 연못에서 뿜어져 나온 는개를 광불케 했다. 뭉쳐라 뭉쳐라 바람을 협박에 보았으나 굼부리 안에서 소용돌이 칠 뿐이었다. 다랑쉬의 굼부리 에는 돌탑 몇개가 쌓아져 있었다. 사람이 오르 내린 흔적이 있었지만 내려가진 않았다. 저 아래 깊은 바닥이 왠지 무덤처럼 보였다. 4.3 사건때 민간인들이 오름 굼부리에 숨었다가 발각되어 그 자리에서 학살되었다는 얘기가 진동되어 떨려 왔다. 삼다도, 눈물이 뭉쳐 만든 바람이 많고, 선지피가 마르고 엉켜 붙은 검은 돌이 많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자들을 모두 죽여 여자들이 많고... 그래서 삼다도라... 세월이 변해 이제 그 정상에서 칼라풀한 패러글라이딩을 한다. 나처럼 혼자 여행 온 니콘 유저가 삼각대를 펼치고 촬영 준비를 한다. 그와 날씨 얘기며 오름 얘기를 하다가 다랑쉬 오름 앞에 있는 아끈 다랑쉬 쪽이 일품이긴 한데 날씨가 이런데다가 한 두사람 오르는 사람도 없어서 좀 심심하다는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내려갈 참인데 내가 아끈 다랑쉬에 오를 테니 찍어 보라고 역시 약속 같지 않은 인사를 하고 서둘러 내려 왔다.

아끈 다랑쉬, 다랑쉬 오름의 동생 겪인 이 오름은 높이며 곡선이며 굼부리며 보잘 것이 없다. 다만 아끈 다랑쉬의 정체는 풀벌레 소리에 있었다. 얕으막한 초원 머리를 스치는 바람에 따라 풀벌레 소리가 눈을 감게 만든다. 새근거리는 중단 없는 홀림으로 모든 소리 조차 유혹하고 만다. 사람의 귀는 그저 대책 없는 포로가 된다. 드문드문 떠 있는 개망초꽃의 머리를 손바닥에 스치며 걷다 보면 곤드레 만드레 취한 파열음이 저도 모르게 입안을 맴돈다. 등산로가 없는 오름 그대로의 소리가 들린다. 아끈 다랑쉬 오름에서 굳이 사방을 둘러볼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매년 들꽃 축제가 열리는 새별오름은 제주도의 오름중에서 가장 유명할지도 모른다. 그 유명세 때문인지 허름하지만 오름 입구에 관광단지도 자리잡고 있고 주차장도 있다. 축제는 10월말이다. 지금은 입구에 방목하는 말들이 진을 치고 있을 뿐이다. 시간은 5시30분, 표고 519 미터로 꽤 높고 중산간에서 벗어나 애월읍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비교적 서쪽이라 일몰 시간을 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구름이 문제여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직 축제까진 한참 남아서 인지 길이 있음직한 곳에 키만한 억새가 온통 뒤덮고 있었다. 밀림용 장칼 따위가 있을 턱이 없고 무턱대고 손을 내저으며 걸어 갔다가는 거미줄에 구속되고 만다. 작은 나뭇가지를 앞장 세우고 걸어가면 그나마 거미줄을 걷어 내는데 도움을 준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새별오름 정상을 오르지 못한 이유는 야생 노루 때문이었다. 키만한 억새풀 숲에서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뛰어 다니더니 괴상망측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떠나질 않는다. 제 영역이란 것을 알릴 참인지, 그 소리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질 않았다. 새별오름에서 두려움을 가진 것은 내 다리 밖엔 없었다. 한발 한발 억새풀이 꺾이는 소리가 날 때마다 펄쩍펄쩍 뛰어 다니다가 괴상한 소리를 내고 몸뚱이는 보이질 않는데 가까운 숲이 흔들거렸다. 노루의 사냥감이 된 듯한 서늘한 느낌을 받아본 사람이 있을까 싶다. 역시 아부오름의 저항에 순응했던 것처럼 새별오름의 거샌 저항에 힘 입어 중턱에서 아직 덜 자란 억새를 촬영하는 것으로 오름 기행을 접었다. 며칠후엔 수천명의 사람들 때문에 어차피 제 자리를 내주어야 할 참인데 나까지 나서서 휘둘러 쫒아 보낼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내 자리에 안주해 왔을 때가 있었고, 남의 자리를 새로운 것이란 허울 좋은 핑계로 차지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자리거나 처음 발견한 것은 없다. 자연이 있었거나 사람이 있었거나 했을 터, 그 자리를 차지 했을 때거나 이처럼 잠시 방문 했을 때에 조차도 경외하고 겸손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 자리는 이미 자연이나 사람이 견뎌낸 시간과 역사가 있을 테니까...

2006/10/01 06:26 2006/10/01 06:26
DrunkenSTAR 이 작성.

들판에 서서

2006/08/29 00:44 / 사진

어느 고장에 닿았을 때, 그 고장은 아무것도 스스로 내비치지 않습니다. 그 고장이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얘기들을 흔하디 흔한 괭이밥을 통해서도 들려주지 않습니다. 올해만 벌써 두번째 방문인데도 제주도는 낯설은 빛과 바람과 구름만을 좌판에 펼쳐 놓습니다. 시간을 멈춘 노인이 순하디 순한 양치기 개와 나란히 앉아 빛과 바람의 틈에서 소주를 마십니다. 나는 늙어 가고 있습니다. 루게릭 병에 걸린 김영갑님이 1년전 세상을 떠나며 남긴 두모악 갤러리로 가는 외진 동네, 중산간에는 사납게 비가 옵니다. 늙고 시든 왼쪽손을 핑게 삼으려 해도 셔터는 경거망동하고 뷰파인더는 더 이상 간극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편하게 찍으려 했던 자세가 화근이었나 봅니다. 외로움이 더는 깨닫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듯 모든 것이 불편해집니다. 들판에 서 봤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있을까, 언제쯤 저 빛이 행복해지는 시간에 셔터를 누를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서 있어야 이곳에서 사연을 가진 모든 것들과 같은 존재로 바람을 맞으며 조잘거릴 수 있을까, 들판에 서 봅니다. 제주도를 방문할 때마다 그 풍경에 반해 그 너머에 항상 소홀했던 태도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흔하디 흔해 지난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섬으로의 착지가 내내 설레이기만 했었던 이방인의 호기심 그대로였습니다. 그저 조금 불편한 마음, 풀리지 않는 도시에서의 일과 이제는 차분한 어떤 추억들이 흐트러짐 없는 전진의 동력이었습니다. 경이로움 없는 삶과 도시의 오물이 감각을 막아 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덕스럽게 내리치던 비가 그치고 나의 삶도 언젠가 막아 서는 것도 없이 그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한번도 이름을 가져보지 못한 들판은 바람의 리듬에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언제가 그칠 것을 아는 듯, 들판은 그렇게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나의 걸음이 재법 묵직하게 다가 갔는데도 그 낯설은 개입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도시에서 오지 않습니다. 이 들판에서 삽시간에 변하는 빛처럼 그런 희망을 품어 봅니다. 다음에도 구름이 들판을 그늘에 묻어 버리지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기를, 다음에도 처음 온 것처럼 그렇게 대해주기를 바랍니다.







2006/08/29 00:44 2006/08/29 00:44
DrunkenSTAR 이 작성.

행복한 착륙

2006/07/31 19:25 / 사진

일행과 떨어져 나왔는데 핸드폰이 바다 바람에 삭아 작동을 멈췄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서둘러 연락을 취해야 했지만, 나는 늘 그랬던 배짱이처럼 굴었다. 어슬렁 어슬렁 동네 사내도 나처럼 다니질 않는데, 일행과 연락할 마땅한 방법도 없으면서 맥주 한캔 사서 길바닥에 주저 앉아 버린다. 나에게 제주도는 늘 행복한 착륙이다.

바다 거북과 조오련을 시합 시킬 수 있는 시절의 친구들을 보았다.

사진열기..

2006/07/31 19:25 2006/07/31 19:25
DrunkenSTAR 이 작성.

궁평포구에 가 보았더니 아직 일러 절경이라는 낙조는 없고 샛바람만 가득 채운 소주잔을 흔든다. 든든하게 횟집에 엉덩이를 부치고 낙조 말고는 더 바랄게 없는 포구에서 인정 사나운 뱃사람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취할 생각은 일찌감치 침몰하고 고물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찬 소주병을 주머니에 차고 일부러 찾아올 턱이 없는 멋대가리 없는 포구 반대편에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건너가 보았더니, 역시 아무도 있을 턱이 없는 작은 모래사장에서 사랑을 천칭에 달면서 시작된 일체의 상념들을 들춰내 보았다. 그러므로 응당 통속적인 감정으로 부터 센티멘탈한 자세를 가져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는데, 그런 자세가 도대체 별 볼일 없는 세간 살이와 유폐된 감수성에 무슨 호사스러움으로 사기를 치려 하는지 알아채 버리고 나니 넉넉히 할 일도, 사색도 신통치 않게 되었다.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설레이는 끈과 의심스러운 묶임들이 있었던 시절에서 착잡한 잡념들을 끌고 어여쁘게 입을 벌린 지옥문 같은 포구에 정박하는 배가 있어, 한사코 올라 타 보았더니 얼마나 멀리 갔다 오는 길인지 인연들이 만선이다. 이렇게 살았구나, 한번에 묶고 풀 수 있는 배를 기다리는 판타지가 뱃사람들 눈총 피해 들이킨 찬 소주 한병 탓은 아니겠지만, 이미 인연을 묶고 풀었던 배들이 궁평 포구 모래사장에 한가득이라, 아니 막연히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도 취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었다.


궁평포구 사진

2006/04/20 21:12 2006/04/20 21:12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