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담론의 역습

2006/06/20 22:04 / 생각
거대담론의 효용성이 거대담론이 가진 자체적 가치로 부터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거대담론의 효용성에 평가절하를 단정하진 않지만, 거대담론이 삶의 한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적 체계인 법 또는 제도, 국제사회적 체제인 이념과 협정에 근거 하는 일반적 상식에 의해서 반드시 하향식 영향을 준다고 볼 수는 없다. 공생할 수 없어 충돌하는 한미 FTA 의 저지와 찬성, 동북아 균형자론과 미군기지의 전략적 유연성, 생태와 개발, 노동의 신성함과 자본의 신성함 등의 현재적 거대담론들이 오로지 하향식으로 삶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즉시 미시담론은 스스로 절제의 길을 걷게 된다. 무엇이든지 뭉둥그려 받아 들이도록 훈련시킨 권력집단과 그에 편승한 언론이 주범이겠지만, 뭉둥그려 받아 들일 준비를 마친 대중들이 미시담론을 중단하고 거대담론의 정치적 신념이나 통계적 허구에 휘둘린다면 이 또한 종범이란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종범들의 노예 의식은 그 심각성이 이미 도를 넘었지만, 대체로 나타나는 현상은 두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로 피해 의식 또는 열등 의식, 100분 토론에 나오는 지식인들이 현학적 수사로 현안을 갈기갈기 분해하여 부위별로 이름을 정하는 의식을 보며 질려 버리는 피해 의식은 그나마 애교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따로 공부 할 취미도 없는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이 책이라도 사봐야 한다는 계몽근본주의로 구속시키자는 말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우유 구멍을 밀고 들어와 있는 신문을 펼치고 '액면이 Fact' 라는 고정관념도 모자라 팩트가 아닌 가정에 역사까지 소급하고 적용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작태다. 분리 수거 하시기도 힘든데 스스로 사절을 권유해야 마땅한데, 100분 토론의 현안까지 만이라도 알아야 하는 열등 의식은 그러지도 못하게 한다. 하지만, '액면이 Fact' 다는 말도 안되는 의식이야 말로 근본적인 피해 의식 이다. 이러한 '의심 없는 흡수' 의 상태가 매몰이다. 이러한 상태의 개인들은 대게 '코끼리가 춤을 출 때, 춤을 춘다.'

둘째로 타자적 자아 의식, 보고 배운다는 가부장적 전통에 의해 제자를 보고 배우지 못하고 토고를 보고 배우지 못하는 팽배한 강박 관념은 거대함을 지향한다. 가부장적 형태는 자아의 형성 시기부터 순혈의 관계에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역시 애교라고 하더라도, 자아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에 부터 자아가 지향하는 바가 제대로된 가부장적이었을 때, 그 의식은 오로지 의식, 즉 '거대 지향적 오로지 의식' 이 된다. 이러한 거대한 타자를 향하는 자아는 내가 속해 있는 어떤 거대함이 끊임 없고 성실하게 자신을 보호하고, 거대함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과 동격화 시키는데 능통해진다. 이러한 능통함은 민족주의를 가르는데 대단히 엄격하게 사용되곤 하는데, 자신의 순혈적 민족보다 거대함이 지향하는 민족이 앞서고 언제든지 순혈 민족을 이반시키는 행위 또한 거대함이 거대했을 때 더욱 더 능동적이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거대 지향적 의식이 최근 가장 잘못 받아 들인 유행어가 세계화이다. 세계화가 시작되는 지점이 우리 라면 우리가 향하는 지향점이 세계이며 방방곡곡인가? 세계화는 세계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포장지 이름이 아니란 상식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각종 사회이념 서적들을 봤는가 여부를 떠나, 세계화가 지향하는 단순한 지점을 살펴보면 간단히 마무리 된다. 세계화가 트리니나드 토바고나 우크라이나도 살펴보는가? 오직 미국이 세계화이다. 이쯤에서 향후 20년쯤후에 유행 될 '우주화' 에 있어서 미국이 그 거대함을 유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미국이 점령한 안드로메다 USA42 혹성이 곧 우주화의 정점이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세계화가 꼭 방사형일 필요는 없다는 재정경제부 고위관료 같은 말풍선은 없기를 바란다.'

이러한 미시담론을 절제하는 의식이 없다면, 거대담론을 그대로 충돌시킬 이유가 없다. 불행한 것은 권력의 습성이고 미시담론이 닮지 말아야 되는 감정이 이른바 관료주의이고 보면, 여전히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의식은 패러다임이다. 거대담론을 충돌시키지 않고 종속되지도 않기 위해서 교과서적인 해답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그것이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전환은 저항을 수반하지만, 세계가 지금까지의 세계로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돈과 시간을 팔아 세상을 싸돌아 다니는 것과 다른 경험, 그것이 패러다임의 변화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퇴근 후에 촛불이라도 들 수 있고,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서명이라도 한다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보는 신발을 신은 것이다. 그 역할에 맞게 우리는 세상을 천천히 바꿀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미시담론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 결코 이상주의가 아니다.  
2006/06/20 22:04 2006/06/20 22:04
DrunkenSTAR 이 작성.

다시, 인간의 퀄리티

2006/06/09 14:09 / 생각
어차피 나는 대중의 선을 믿지 않기로 했고, 그런 감수성이 대중들에게 작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대화를 통한 사회비판이나 그에 정성껏 발현되는 활동에 있어서 거대담론의 역할이 자칫 과소평가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경멸스러운 것이 미시담론의 퀄리티이다.

이러한 미시담론의 가장 저급한 퀄리티는 취미권리와 생존에 대한 혼동, 자본 유지를 위한 이기심, 체제 순응의 신화에 대한 매몰이다. 자신의 불편함과 남의 생존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해치고, 돈의 정밀한 해석만으로 현실을 파악하고 그 결정이 돈과 관계 없을 때 슬퍼하는 사람들이 모여 인간성을 모질게 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만으로 경쟁 우위에 서지 못해 부산스럽고 무신경하다 못해 이성과 지성이 쌓이지 못한 교양 없는 사람들이 모여 민주주의를 부서버린다. 실제로 부서져야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고 사회인데도, 본말 전도된 온갖 모습들은 '자신에게 남들에게서 벌어지는 일이 절대 없을 것이고 일어 나더라도 그들에게 빌 붙으면 되는' 더욱 천박스럽게 일그러진다.

어떤 사안에 맞추는 집단 의식의 퀄리티에 개별 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간다고 해도 미시담론의 정체성이 향하고 있는 계급성은 집단 의식의 방향과 거의 같다. 그것을 행복추구권이라고 호도하는 사람이야 말로 저급한 퀄리티와 수미상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퀄리티는 대체로 현안의 문법 읽기 또한 그러할 수 밖에 없다. 한미FTA 가 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를 희망에 부풀어 있고, 외국투기자본의 무분별한 유입이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는 점은 오로지 자신의 주식에 빗대어 상상되어 질 뿐이다. 돈으로 규정되는 여건이 마련되기 전에는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 자본의 노예들이 즐겨쓰는 핑계가 자신이 아니라 가족이고, 도리어 추종하던 돈에게 그 어떤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이들의 중대한 착각은 국가가 잘되어야 개인(아니, 본인이) 잘된다고 믿는 것과 진보성향의 미시담론들이 자기들의 말은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가 잘되었을 때 개인이 잘되는 경우는 국가의 이익이 양극화의 가난쪽에, 다수결의 소수쪽에, 계급의 천대쪽에 사심없이 종사되어 질 때 뿐입니다. 진보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그가 신자유주의적이거나 반공주의일 때 절대 그 사상에 동조나 동의할 수 없지만, 그가 말하는 것을 통제하는 어떤 부당한 폭력 앞에는 엄연히 맞서겠다는 의미이다. 어느 쪽이 진실인가 보다 나의 존재 이유가 고작 결혼해서 가족 건사하며 부동산 투기하는 것에 있는지 부터, 취미활동을 위해 생존의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람들의 몸부림을 걷어차는 후미진 인간성이 본래의 인간성인지까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명확한 진실을 찾기 어려울 텐데, 퀄리티가 퀄리티인지라, 쉽지는 않겠다.


KTX 승무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여길 클릭해서 꼭 읽어 보시라!!
2006/06/09 14:09 2006/06/09 14:09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