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유엔 결의안의 압박으로 남한은 한미 FTA 반대 세력과 추진 세력의 첨예한 갈등으로 양측 모두 심각한 국면에 처해 있다. 한민족, 두나라, 두체제의 3중 갈등층을 형성한지 50여년... 폭우는 북과 남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넘치게 했다.
미국의 패권적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안보와 경제의 두 축의 대척점에 남과 북이 위태하게 시소를 타고 있는 이러한 형국을 해소할 만한 재료는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 미국의 핵우산에 의지하고 한미 동맹의 허상에 함몰된 남한의 우익과 보수주의자들의 프로파간다는 여전히 그 교조적인 신화가 부족하여 북한에 당하고 있다고 설파 하고 있다. 50여년 동안 변하지 않는 우익들의 이러한 프로파간다는 북이 하면 뭐든지 잘못된 것이고 미국이 하면 정의라는 간편한 논리를 근거로 한다. 그러므로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유엔의 결의안으로 이어지면서 강제성은 없지만 얼마든지 무력적인 장치의 가동이 가능한 유권해석을 서슴치 않는 미국의 패권주의는 같은 시기 인도가 발사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 이스라엘의 핵무장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침묵 조차 유도한다. 미국의 패권주의 앞에 국제사회의 양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홍의 문제가 된 한미 FTA 도 마찬가지이다. 경제 패권주의를 통해 안보까지 엮는 미국의 전략을 관철하는 국가 대 국가 협상 테이블에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중요한 히든카드 네장(스크린쿼터, 쇠고기, 자동차, 의약품)을 자발적으로 펼쳐 놓고 시작하는 개혁우파와 극우파의 화합에 비로서 민중들이 그들의 생활에 미칠 악영향을 알아챈 격이다. 이를 추진하는 우파 세력에게 민중에 대한 양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으로 주한미군에 배치되어 있던 전략핵이 해체 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방위 공동체 안에 아직은 남한이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일본에게 동북아를 비롯한 남한의 방위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일부 이전하는 단계 속에서 만이 남한의 비핵화가 가능할 뿐이다.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한 북한의 경우, 1991년 쏘련이 남한과 국교를 정상화하기를 희망하며 북한에 드리워웠던 핵우산을 스스로 거두워 가면서 북한은 자구책인 핵개발을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이어 중국과 남한이 대표부까지 세우면서 북한이 느낄 위기감은, 1970년 닉슨 독트린과 함께 1972년 주한미군 1개사단 철수로 이어지는 정세에 남한이 느꼈던 위기감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남한의 정권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또는 그보다 먼저 핵개발을 추진했던 전력이 있다. 이러한 역사를 보았을 때, 현재 북한이 주권적 국가로써 자국과 자국의 민중을 보호하고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느끼는 소외의 타계책으로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다는 사실을 비추는데 있어서, 우파 세력들이 요구하는 이른바 북한에게 보여주어야 할 더욱 강력한 조치라든가, 북한 스스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미국의 패권주의가 위협하는 국제사회의 위기 상황에 내몰린 쪽이 우파의 패러다임 안에서 북한으로 보이기만 할 뿐, 실제로 절대 불리한 상황에 몰린 것은 남한이다.
한미 FTA 의 가장 않좋은 시나리오는 현정부가 협상을 조인하지 못하고 다음 정부, 예를 들어 사표심리로 던진 무지한 민중들의 표로 집권한 한나라당이 협상을 포괄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물론 민중의 반대를 불사하는 쪽은 언제나 권력이었고 남한은 한번도 민중을 이해하는 권력이 집권한 적이 없다. 이러한 불행은 민중의 삶을 경쟁과 낙오로 이분법 하도록 만들었다. 공동체와 공동재에 대한 인식을 자유주의적 우파 노선에 비추어 보는 법만을 가르친 이제, 드디어 한미 FTA 가 민중 스스로 민중의 삶에 미칠 영향을 비로서 깨달아 가는 근소한 차이를 본다. 하지만 이건 아직 희망이 아니다. 이런 근소한 차이는 아직 수적 열세다. 정부의 프로파간다와 우파의 프로파간다가 충돌하지 않을 수 있는 많은 거대 담론들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눈치를 보는 통에 전통 기득권 세력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논리는 사뭇 진지하다. 하지만 민중은 움직이고 있다. 스스로 의식화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무능이 도리어 민중을 깨우치게 하는 패러독스를 일으키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또한 북한이 스스로 깨우친 주체가 아니라 미국의 패권주의가 깨우치게 한 패러독스 이다. 어느 국가가 다른 국가에 순종적일 수 밖에 없다는 심드렁한 힘의 논리는 경쟁의식을 모티베이션하지 않고 패배의식을 키운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미국이라는 악덕한 나라까지 끼워 넣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파의 패러다임 안에서 깨우치기를 반복했던 무리들은 북한을 보호하고 있는 최소한의 나라로 구쏘련(러시아)과 중국을 든다. 북한이 감히 러시아와 중국의 말을 듣지 않고 미사일을 쏘고 어떠한 설득도 되지 않는다는 중국 정부의 말을 통해 우파 정론지들은 이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고, 곧 절대 불리한 상황을 맞아 내부 붕괴되거나 미국이 자랑하는 CNN 카메라가 달린 미사일에 선제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떠든다. 앞서 말했듯 국가주의를 냉소한 고르바초프를 통해 구쏘련에 자본주의 시장제도가 도입되고,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한 등소평의 등장과 자본주의 개혁의지가 진행되면서 부터 북한은 쏘련과 중국이 영원히 자신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란 냉정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로부터 북한이 우파들의 무대인 국제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벌인 그간의 노력과 첨예한 외교 전략은 미국의 속국임을 자처하는 남한의 우익 인텔리겐차들에게는 악의 축일지 모르지만, 얼마나 눈물 겨운 민족주의였으며, 외교 안보적 성공이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비해 남한의 주권적 결정은 그렇게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 했으면서도 그 힘의 논리에서 꾸준히 배제되고 있는데다가, 그 생존의 판단 또한 미국의 주판알에 내맡겨지고 있다. 남한의 절대 위기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한미 FTA 자체에 있는 것보다 우리 스스로 챙기지 않은 주체 판단에 있다. 고매한 기득권 의식과 관료주의는 민중을 이해하는 어떠한 성장도 없는 경제 통합 협정을 추진하려고 하고, 냉전논리와 반공주의에 교조적인 무리들은 미사일을 통해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이 미국의 패권적 야망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으로 규정해 마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생존의 문제라도 주체적 판단 같은 것은 워싱턴에 맡겨 놓은지 오래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남한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1994년 6월15일을 전쟁 개시일로 잡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보듯 우리의 목숨은 우리 것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정부가 미국의 치맛바람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남한에 대한 위기는 북한으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 부터 올 것이며 우리는 어떤 판단에도 철저히 배제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경제, 안보적 위기를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쪽은 남북한의 민중이지,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온 우파세력이나 미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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