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집권세력이 우파는 말할 것도 없고, 좌파 진영에서 조차 외면 당하는 작금의 사정에 있어서 사상적 피아 식별이 여간 쉽지 않다. 진성 우파가 아닌 성격화된 뉴라이트라든가 또는 스스로 개혁성향이라는 일단의 민족주의 우파논객들의 식견이 비난하는 대상의 공통성, 즉 대상동질의 감수성으로 인해 여간해서 어떤 편향을 지니고 있는지 정리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매한가지다. 따라서 논지에 대한 짜투리성 문서와 동조하는 논객들을 면밀히 살피지 않고는 그 문법 자체의 비약만으로 넘겨 짚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논리를 동원하여 실제로 비판 되어야 할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매혹되기 쉽상이란 생각이다.
실은, 정치적 피아식별이 미시담론에서 명확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최근의 이유가 이러한 대상동질의 감수성에 있는게 사실이지만, 진성 좌파라 하더라도 그 사상을 담는 테두리가 제도권안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체제적 현실이 지리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우파적 논리가 유효한, 사회 구성원의, 미시담론의 암묵적 합의가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최근의 반목적 현안인 한미 FTA 와 같은 내용을 보았을 때, 한미 FTA 를 찬성하거나 그 이상으로 예찬하는 진영에서 반대하는 진영에 흔히 쏟아 내는 질문이 '그럼 안하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인 것을 보면 우파, 매파의 한미 동맹은 결연한 의지의 차원이 아니라 이미 근본주의의 표상이 되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한다.
지난 총선에서 10석의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의 강령에는 '자본주의의 질곡을 극복하고,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를 구축한다' 는 거대담론이 있다. 즉, 사회주의에 대한 목표를 설정한 바 다름 없다. 한미 FTA 찬성론자들, 즉 우파들의 그러면 어떻할껀데? 라는 대안 압박에 있어서 사회경제체제의 구축이다 라는 거대담론간의 충돌이 우파에게 끊임 없이 이상주의다 라고 매장되는 것은 첫째, 현존하는 이념과 경제 체제가 이미 자본주의이고 침체 없이 진행될 것을 믿는 전반적 매몰과 안락함에 있겠지만 둘째, 사회경제체제, 사회주의의 공동체 건설이 생산한 생태, 소수자, 인권, 분배, 젠더, 노동, 인간성 등의 미시담론이 거대담론에 흡수되지 못하고 여전히 겉돌면서 어떠한 사회주의적 표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내부적 이슈에 휠씬 더 진중한 비판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렇듯 피아의 식별이나 대상 동질성을 떠나, 좌파의 좌파적 신화가 끊임없이 현실감각이 없는 것처럼 매도(?)되는 이유는 의지는 있으되 표상이 없는 운동으로 진화된데 있고, 그 개별 운동들이 집단 이기와 영합 아닌 영합의 길을 걸음으로써 '고귀한 척' 하는 좌파적 패션이 일반 민중에게 어필되어 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비판의 대상일 것이다. 물론, 계급성에 대한 인식이 민중들에게 공산당, 맑스적 사관으로 배격되어 실제로 그 계급적 정체성을 희석시킨 사회적 책임이 언론과 정권에 있고 그에 대한 저항에 좌파의 운동가나 활동가들의 숭고함을 모르지 않지만, 그저 유토피아를 음성신호로 스피커를 울리는 일이 우파의 나팔수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지 말아야 할 像의 부재가 여전히 무게감을 더 한다. 이러한 사회주의적체계의 상이 집권 이후로 마냥 미뤄지는 일련의 게으름이 오늘의 실패한 집권세력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장황한 민주노동당이 나아갈 길에서 선두되어져야 할 것은 진보라는 체제의 상 이다. 이러한 아쌀한 정리 정돈을 그 브레인들이 몰랐을 리 없다. 물론, 지금도 그에 대한 매진도 5년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일 것이라 희망한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노동당의 감수성이 빛나는 어떤 상을 보진 못했다. 그 짐이 민주노총도 아니고 NGO 도 아니고 왜 민주노동당에 집중되어야 하는가? 는, 상상력 넘치는 운동의 개념에서 비로서 그 운동을 권력으로 법으로 집결시킬 수 있는 거대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민주노동당이기 때문이다. 이미 2년전에 만들어낸 그 통로로 언젠가는 빛나는 감수성이 유유히 걸어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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