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버스를 탔다.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는 마을 버스도 오후 1시에는 텅 비어 있다.
앞자리에 앉은 아줌마의 두피가 훤하다.
봄 햇살이 머리칼 구석 구석을 비춘다.
남편, 자식들 뒷바라지에 머리가 다 빠져 버린 아줌마들만 오후 1시
마을 버스를 타고 내린다.
마르크스가 사라진 도시에서 마르크스적인 것은 햇살 뿐이다.
이 햇살 눈에 익다.
1년전, 아이가 태어 나고 어미는 현대적 의료 시설에서 몸을 가눌 때
빤스, 양말 챙기러 빈집에 들어 가던 날, 그 햇살이다.
마을 버스는 곧 재개발이 있을 것이란 현수막을 히뿌엿게 지나면서
곧 부서질 동네를 닮은 구겨진 몸둥이들을 내동댕이 치고 있었다.
그 더미에 그 햇살이다.
그 햇살에 마른 빤스를 걷어 개고 신문 위에 발톱을 자르는데
안양에서 초등생이 변을 당했다, 그 활자에 그 햇살이 비춘다.
마을 버스를 탔다
배웅을 모르는 아이가 아비를 배웅한다.
아내가 흰머리칼 좀 보라고 한다. 아이가 자라니 흰머리가 생긴다.
안양은 여전히 안전하지 못하고 재개발이 사람들을 옥상에서
태워 버렸다.
햇살에 빤스는 잘 마르는데 그 햇살에 그 활자가 눈에 익다.
출근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진 마을 버스에는 화장끼가 빠진 세대만이
웅크리고 있다.
아비가 어떻게 살았길래 그 햇살은 그대로 공평하고 지폐 뭉치가 증발된
이 도시에 재개발 현수막은 어떻게 새 것으로 매달릴까.
아이가 배웅을 알고 마중을 아는 인생이 되면 아비의 삶은 끝날 것이다.
재개발로 마을 버스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고
그 햇살에 아이는 아이를 기를텐데
마을 버스를 타다가 아비가 졸던 그 햇살에
아이도 고된 머리를 떨구겠지
검색어 '아이'에 대한 6 개의 검색 결과
출산 휴가를 끝내고 회사로 복귀한 아내가 복귀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2박3일 워크샾을 가게 됐다. 갓난 아기 핑계로 빠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아내의 회사는 허락하지 않았다. 너만 애 키우냐, 따위의 아주 유치한 이유로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종일 맡아 주시기로 했다. 나 마저 그 잘난 프로젝트에 목이 매어 야근이 잦은 터여서 아침에 잠깐 보고 밤 늦게나 되어야 아이를 잠깐 안아 볼 수 있었다. 아이는 뭘 아는지 모르는지 시큰둥한 표정이다. 아이를 한팔에 안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현지야 엄마하고 전화해 볼래? 여보, 현지 안고 있으니까 한번 불러봐
아내가 전화 넘어로 현지야 현지야 부르기 시작하자마자 아이는 금새 표정이 달라지고 전화기 속으로 빨려 들어 갈듯이 몸을 뒤틀어 얼굴을 기울여 들이 민다.
여보, 당신 목소리 어떻게 알아 듣고 전화기로 얼굴 들이 민다.
그새 아내의 목소리가 뚝 끊기 더니 미안해 미안해 하며 펑펑 운다.
괜시리 나도 울컥해서 울고 말았다.
애기랑 처음 떨어져 보니 울만도 하지, 어머니가 한마디 거드시고 아이를 재운다며 들쳐 업으신다.
꿈이 많았던 잠에서 깨면 아내와 뱃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이 걱정이 빗살처럼 쏟아진다. 괜한 걱정, 이라며 양치를 하고 중얼거리지만 천년동안 모든 아비가 그러했듯이 깨어 있으면서도 온낮을 설친다. 아무런 걱정이 없던 시절에는 무슨 일이 벌어 질 것만 같아 초조했다.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았지만 아내가 아이를 낳기까지 겪어야 할 이루 짐작할 수 없는 모진 고통과 살고 숨쉬려는 아이의 결코 평화로울 수 없는 힘겨움만 생각해도 눈알이 벌겋게 뜨거워진다. 하지만 남편과 남자의 이러한 뜨거움은 아내와 아이의 그것에 비하면 우리 삶의 더 없는 인연의 경계에 서서 너무 가볍고 낭만적인 자세일 뿐. 염려는 뜨겁지만 그 모진 경계를 넘지 못하고 서성인다. 대신 남편은 오랜 일처럼 본능처럼 전투하듯 세상의 경계를 넘어 생활을 지탱하려 욕심내고 부대낀다. 아내는 제 욕심에 마신 술과 꼬릿한 담배 연기에 무기력해지는 남편을 걱정하고 아이에게 얘기한다. 어느날 딱 한번 읽어 준 동화처럼 새가 다닐 길을 내려 아빠는 늦는다고. 제 인연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세상의 경계를 넘는 남편을 사무치게 기다리며 속태우는 국경의 밤처럼, 나도 아내도 서로 염려하며 늙어 간다.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