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오늘날의 위작은 위작 자체의 논란을 비켜갑니다. 위작 자체에 대한 검증은 차라리 순진합니다. 예를 들어, 사본인줄 모르고 또 사본을 배껴서 나온 것은 사본의 사본인지, 비록 사본이지만 사본 자체가 사본의 사본에게는 원본이기 때문에 시뮬라크르인지 아닌지 판별도 안되기 때문 입니다. 즉, 어렵사리 사본이라 또는 위작이라 판별해도 그것이 원본의 위작인지 위작의 위작인지 알 수가 없는 것 입니다. 기계적 사본과 달리 위작은 예술의 경계와 아주 멀지 않습니다. 따라서 위작은 사본처럼 널리 공유하는 기계적 기능만을 함축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가지게 됩니다. 즉, 윤리적이며 상업적인 목적입니다. 예술적 윤리는 일단 버려야 상업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윤리는 합목적적이진 않겠습니다. 일단 위작이 만들어지면 위작을 간직하고 혼자 감상하며 나름대로 감흥을 받는 것이 아닐테죠, 그렇다면 전혀 문제가 없겠지만, 일단 위작은 논란을 비켜서 목적을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유통 과정을 거칩니다. 상업적인 가치를 부여 받기 위해 상업적인 유통을 거쳐 사람들의 믿음을 얻어 내는 과정, 즉 위작의 세탁 과정을 거치게 되있습니다. 이때, 이 믿음에 가장 훌륭한 조력자는 위작의 배포자 뿐만 아니라 원본에 비과학적인 신념을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원작자의 가족이거나 원작자를 대표, 대변할 수 있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측근이라면 이 조력자의 반열에 들 수 있습니다.
박수근과 이중섭선생의 위작 논란이 있던 작년 가을께, 제주도에 남아 있는 이중섭선생의 셋방에는 여전히 서귀포 섶섬, 그 너머 가족이 살고 있는 일본을 바라보는 이중섭선생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이중섭선생의 평생 꿈은 가족과 함께 소박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아시는지요? 이중섭 미술관에 가보면 이 애틋함으로 절절한 편지로 인해 사뭇 그리움과 소의 깊은 눈망울이 닮아 있다는 것을요. 이중섭이 이쁜 소에 반해서 소를 그렸다는 단순한 동기가 믿기지 않지만 실제로 제주도에는 이쁜 소들이 많습니다. 방목하여 생긴 그 이쁨과 이중섭선생의 삶은 아주 달랐지요. 사람들에게 이것 저것으로 당하고 결국 적십자 병원에서 홀로 숨을 거뒀지만 오늘날 우리가 이중섭선생을 평가하는 것은 그저 수식어에 불과합니다.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정도. 대신에 위작논란, 경매장에서 수억원에 거래 쯤이 오늘날 우리가 만든 이중섭선생의 스탠스가 아닐까 합니다.
최근 검찰은 이중섭선생 뿐만 아니라 박수근선생의 작품 2천8백여점이 모두 위작이라고 판명했습니다. 여기에는 이 위작을 배포한 정황이 있는 김용수씨와 조력자로서 공모한 정황이 있는 이중섭선생의 아들 이태성씨가 끼어 있습니다. 박수근선생과 이중섭선생이 서양미술사의 폴고갱이나 반고흐의 반열에 오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국미술의 패트런이라 할 수 있는 김용수씨, 이중섭선생에 관한한 그 누구보다 애정 어린 사무침을 가져야 했을 아들 이태성씨가 "호당 얼마"의 서글픈 상업주의에 복무한 결과입니다. 예술? 이것도 이젠 가격 입니다. 세계적으로 가격이 비싼 작품을 내걸고 그것을 감상하는 것이야 말로 문화적 유희인양 생각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태도가 만들어낸 우리 모두의 위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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