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에 그런 전통이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제대할 때 쯤 뒷산에 벤치를 하나 만들었었다. 처부에 출근도 하지 않고 사역도 나가지 않는 그야말로 민간인과 다름 없는 말년 육군 병장의 짝다리가 꼴 사나워서 중대 행정관이 고안해낸 급전통이었겠지만, 서툰 톱질로 하나 완성하고 나왔다.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물리적인 의자가 되었지만, 고참이 물러나며 의자를 내주는 의식은 빈틈 없이 채우는 시간의 미분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고참의 의자에는 가치의 경중을 떠나 역사와 책임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후배이고 누군가의 의자에 앉아 시간을 적분하고 있다. 시간은 역사와 동일하지 않아서 모든 시간이 역사가 될 수 없다. 무엇이 될까가 아닌 어떻게 살아 보일까를 통해 미분된 시간, 즉 역사를 간직한 의자를 내어 주게 된다.
오로지 나만 책임지면 되었던 의자를 넓혀야 될 시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문제는 의자를 내주고 바닥에 앉거나 비슷한 것을 하나 더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벤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인데, 자꾸만 십여년전 왜 벤치를 만들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인생이란 의자 하나 밖에 내어 놓는 것이라 했던가. 어느 바닷가에 풍덩 던져 넣은 연자 맷돌, 그 무게 같은 것이 아니어서 벤치를 만들고 빈자리를 만들 수 있었는가 보다. 이제 중요한 시간이 다가 온다. 살아 보아야 할 자세를 고쳐 잡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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