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오후 3시 제주도 중문단지에서 컵라면 하나 먹겠다고 편의점을 찾아 다녔다. 연리지 식물원 건너편 패미리마트에는 뜨거운 물이 다 떨어 졌단다. 직원은 성가신 표정도 아쉬움도 없었다. 중문단지에 분식집이 있던가? 어제 말아 마신 술이 여전히 뱃속에서 파도타기를 한다. 잔득 구겨진 속이 미쳐 풀리기도 전에 단출한 산행을 한 후 였다. 컵라면은 있는데 물이 없다. 오전 산행으로 인해 와이프가 들으면 입이 삐쭉 나올 '괜찮음' 을 발견했다. '등산 이거, 괜찮네' 화요일 오전 제주도 한라산행은 차마 누리지 못할 만큼 상쾌한 뻐근함이라고나 할까. 잦은 제주도 방문에도 불구하고 한라산 정상을 먼발치에서 본 적이 없었다. 제주도 택시아방도 겨울에 저렇게 한라산을 또렷히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고 했다.

주상절리 근처에서 떠날 시간을 가늠하고 있는데 방파제 위에서 해녀어멍 몇이 통곡을 하고 있었다. 어멍 한분이 이미 숨이 끊어진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심장마비였다. 구급대가 도착했지만 심장마사지 몇번 하더니 얼굴에 담요를 덮어 급히 실어 갔다. 해녀어멍이 누워있던 자리에 물기가 축축하다. 12월9일 화요일 오후 3시, 제주도는 봄날처럼 더웠고 세상의 모든 물기는 전속력으로 말라가고 있었다. 내 손엔 여전히 컵라면이 들려 있었고 급히 베낭 안에 쑤셔 넣었다.

2008/12/10 10:35 2008/12/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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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건강, 경쟁

2008/07/25 01:29 / 생각
애니콜, 사이언, 모토롤라가 박터지게 경쟁하는데도 핸드폰은 왜 정부 보조금 없인 구입하기 힘든지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없다면 감히 경쟁을 통해 비급여 의료 행위, 즉 인플란트 같은 보험 적용 안되는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 떨어 진다고 말해선 안된다. 건강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된다고 개인을 비판하는 사람과 담배를 파는 기업이 '내일' 을 버젓이 얘기하도록 두는 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마음껏 석유를 태우고 최소한 16년은 사회 적응 훈련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건강은 개인이 오롯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것은 서로 도와야 하는 공공의 문제인데 이러한 공공의 영역에 자본적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서로 도울 필요가 없는 자본 증식의 원리가 도입되기 때문에 결국 공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공멸하지 않는다. 공멸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사회에서 공공은 강부자와 고소영을 제외한 나머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참고 기사
2008/07/25 01:29 2008/07/25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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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2008/03/28 18:03 / 생각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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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젖[동백꽃지다 113쪽, 강요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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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동백꽃지다 133쪽]

"사람들이 동요해 흩어지기 시작하자, 군인들이 사람들 머리 위로 총을 난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너댓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중엔 한 부인도 있었는데, 업혀 있던 아기가 그 죽은 어머니 위에 엎어져 젖을 빨더군요. 그날 그곳에 있었던 북촌리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겁니다." (동백꽃지다 118쪽)

제주도,반성
지켜줄게, 제주도
2008/03/28 18:03 2008/03/2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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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줄께, 제주도

2007/08/29 17:23 / 생각

나는 그간 다섯 번에 걸쳐 제주도에 다녀 왔지만, 그 고장을 따로 표현 할 수 있는 마땅한 수사를 찾지 못했다. 제주도를 방문할 때면, 당연한 듯 랜트카를 빌리고 한림 방향이나 성산 방향 중 한곳을 정해 해안 풍경을 보며 감탄하기 일쑤다. 제주도 해안이야 알려진 대로 대단한 이국적 풍경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 없다. 작년 초가을, 그런 관성적인 여행이 식상도 했거니와 제주도에 그것 뿐이랴, 는 생각도 들고 그동안 차분히 둘러볼 기회가 없었던 것을 빙자하여 혼자 제주도 안쪽을 둘러 볼 요량을 냈다. 제주도의 안쪽은 그동안 항구 중심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난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한다. 구좌읍 송당리, 성산 삼달리를 거쳐 표선읍 가시리를 마을 사내 마냥 돌아다니고 오름을 오르락 내리락 구경만 했는데도 두 가지 울분이 절로 든다.

제주도를 드나 들며 자본주의가 번쩍이는 항구의 이국적 풍경에 들떠 있던 철없이 굴었던 지난 여행들이 첫째로 창피하고,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통해 접한 제주 4.3 사건의 켜켜한 상처를 진지하게 돌아 보지 못했던 가난한 호기심에 둘째로 창피하다. 제주 중산간 일대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마치 잠수한 듯, 묵직한 압력과 심해의 막막함에 비길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공기가 다르다보니 폐활이 급해지고 배시시 웃음마저 훔쳐 나온다.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보는 중산간과 성산 일대는 그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 어차피 지나갈 외지인에겐 이런 피상적 접근 만을 허용하는 듯 보일 정도다. 왜? 뭍에서 온 북인은 제주도의 가해자이기 때문에 부러 숨기는 것은 아닐까?

오름은 도시 인근의 산과 달라서 입구도 없고 오르는 길도 일정치가 않다. 관목들 사이로, 때로는 습지를 넘어 오름에 올라야 하는데 그 외진 어귀에 공사장이 더러 있어서 놀랐다. 하지만 놀랄 일도 아닌 것이 중산간의 난개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공사장은 난데 없는 것도 아닌 난개발의 주범, 골프장들이다. 제주가 국제자유도시가 되면서 골프장에 대한 광범위한 조세 감면 정책을 폈고 이로 인해 급속도로 그 수가 늘어 가기 시작했다. 임야면적에 대한 골프장 허용면적은 5%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이 이 기준을 거의 채운 상태다. 2004년 부터는 대체농지조성비도 50% 이상 감면 받는다. 골프장이 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곧이어 5% 허용 기준도 늘려 달라고 때를 쓸 것이 뻔하다.

최근 제주도는 풍경도 풍경이지만, 기생화산으로 불리는 200여개의 오름과 그중에도 마그마가 차가운 물과 섞이며 폭발을 이뤄 만든 수성화산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여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세계적으로도 보편적 보전가치를 인정 받은 셈이다. 하지만 제주도가 다른 고장과 달리 특별한 아름다움과 역사적 상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세계자연유산과 국제자유도시라는 배치된 이데올로기가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북인들은 자본주의의 찬란한 풍경으로 점철된 항구로 들어와서 골프를 치고 돌아 갈 것이다. 제주도는 북인들의 폭력적 상흔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그들을 손님으로 끌어 들이고 있는 셈이다. 50여년전의 타율적 비극과 오늘의 자율적 난개발을 빗대어 제주인들의 책임을 소급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것은 어리석다. 엄숙하게 신자유주의와의 결탁, 천박한 자본주의 따위를 계보 삼아 장황한 논리를 펼 필요도 없다. 중산간 너머 너머를 걸으며 김영갑 갤러리도 둘러 보고 한동안 고독해보면 참담한 공기를 폐활하느라 저절로 숨이 가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말, 소 똥이 딱지진 용눈이오름 머리에 앉아 있으면 가느다란 풀벌레 소리에 구름이 움직인다. 어떤 철학자는 '자연도 이데올로기다', '몸조차 이미 역사' 라고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골프를 치라고 몇번씩 권유한다. 물론, 회사돈으로 대준단다. 하지만 앞으로 사정이 어찌됐던 간에 절대 골프는 치지 않는다, 다짐을 해본다. 그래도 몸으로 하는 역사를 실천해 본 적 없는 빈곤한 나로서는 여전히 부끄럽고 답답하다. 중산간에 있으면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최근 꽤 진보성향이라는 어떤 분이 유시민을 높이 평가 하는 것을 듣고 꽤나 놀랐다. 제주도 강정포구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반생태적 강군의지의 비평화적 정책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유시민을 감히 높이 평가하는 진보성향을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까. 그분도 4.3 사건으로 2만여명의 무고한 주민이 학살된 중산간에 가서 고독을 느껴 보면 진지한 거부야 말로 양심이란 울림을 느낄 수 있을까.
아무튼 나는 여섯 번째 제주도 방문이 도통 엄두가 나질 않는다. 아직 풍경 너머를 볼 수 있는 혜안도 없는데 여행자의 어리석은 스침으로 제주도를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도... 골프라도 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지켜줄께..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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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9 17:23 2007/08/2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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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2006/10/16 00:33 / 사진
용눈이 오름을 오르는 길 곳곳에는 제주도 전통 무덤들이 있다. 제주도식 무덤은 산의 비탈을 깎지 않고 비탈의 생김새 대로 봉분을 만들어 둘레에 돌담을 쌓는다. 이 담을 제주도에서는 산담이라고 부른다. 봉분이 산이라는 의미이다.
용눈이 오름의 굼부리는 밋밋한 분화구가 아니라 파도처럼 물결친다.
용눈이 오름에서 구좌읍 송당 방향의 스카이라인이다. 제주도의 깊은 내륙은 여인의 가슴처럼 봉긋하다. 침침한 가스가 하루종일 내려 앉아 있다. 성산 방향에서 해풍이 불어 오는 탓이리라. 가벼워 바닥에 접착되지 않는 트라이포트는 흔들거렸고 바다는 안개를 출산해서 뭍으로 밀어 보냈다.
다랑쉬 오름의 굼부리에는 1948년 4.3 사건시 수많은 민간인들이 사변을 피해 살고 있었다. 진압군에 의해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이 굼부리에서 학살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굼부리를 지나 반대편 봉우리로 건너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하루종일 나는 이런 밀림을 뚫고 오름을 오르기 위해 오름 입구를 찾아야만 했다. 사람은 없고 바람과 들풀들이 무릎을 치고 있었다. 무엇을 잘 찍겠다, 인생이 어쩌고 하는 한가로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풀을 헤치면 뭐가 나올지만이 관심사가 되었다. 바로 앞에 무엇이 있을지...
다랑쉬 오름에서 바라본 용눈이 오름과 손지 오름이다. 오른쪽 손지 오름은 삼나무가 서로 걸쳐서 자라고 있다.
아끈 다랑쉬 오름은 얕은 굼부리에 가지런한 초원이 있었다. 풀벌레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생각이 하얗게 변한다.
다랑쉬에서 바라본 아끈 다랑쉬 오름, 멀리 성산이 보인다. 구좌읍에 있는 오름에서 성산을 볼 수 있었던 순간은 이번 뿐이었다. 그렇다고 날씨가 저주스럽지는 않았다. 시원했고, 때론 따뜻했다.
2006/10/16 00:33 2006/10/1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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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기행

2006/10/01 06:26 / 생활

해안선은 볼만큼 본 것 같은 거만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8월에 처음 방문했었던 김영갑 갤러리의 환상적인 오름의 파노라마가 아주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오름에 올라 거창스럽게 뭘 얻겠다느니, 삶이 어쩌구 저쩌구 진지하게 고민할 생각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다만 3박4일의 짧은 일정동안 오름 여섯개(용눈이 오름, 새별오름, 따라비, 아부오름, 다랑쉬, 가메옥) 쯤은 오르겠다는 계획정도가 전부였다. 오름은 오르는 것보다 입구를 찾는게 더 힘들다는 유경험자의 충고는 첫날 부터 격언이 되었다. 김영갑 선생의 오마주인 용눈이 오름은 중산간을 가로지는 16번 도로에 연에 있는데다가 친절하게도 용눈이 오름 이란 돌명패까지 세워져 있어서 가장 손쉽게 찾아 오를 수 있었다. 가파르지도 않은데다가 상냥하기까지한 오름의 곡선을 따라 중간에 한번도 쉬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김영갑 선생이 오름의 아름다움을 담는데 파노라마 기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믿음은 용눈이 오름 정상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15미리 화각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부드러움에 한숨이 나왔다. 35미리나 50미리로 디테일하게 촬영하는 것은 오름의 태생적인 곡선을 잘라내어 지층에서 쏟은 내륙의 산과 평등하게 만드는 작업임을 깨닫게 한다. 특히 용눈이 오름처럼 정상에서 다양한 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오름에게는 치명적인 잘라내기가 된다. 멀리서는 잘자란 잔디처럼 보이는 초원은 거칠고 말과 소의 배설물 투성이 었다. 요리조리 피해 올라가도 어디 한군데 편히 앉을 곳이 없다. 삼각대를 펼치고 낮은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대체로 구름이라는 예보는 제주도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비가 올 수도 있고, 구름이 말짱히 걷힐 수도 있다. 다만, 지속되는 시간이 문제인데 오름 여섯개를 오르겠다는 계획이 발목을 잡는다.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도로에서는 몰랐던 바람이 으슬으슬 춥다. 어떤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높은 구름을 가리고 있는 낮은 구름이 한라산 쪽으로 밀려 올라 갈 수 있도록 해풍이 좀 더 불어줬으면 좋겠고, 이밥 태운 연기처럼 아랫 마을을 온통 덮고 있는 안개도 증발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내내 그런 시간은 오지 않았다.

두번째 오른 오름은 아직도 미스테리다. 아부오름이라고 생각하고 올랐으나 아부오름의 특징인 굼부리에 하트모양의 전나무 숲이 보이질 않았다. 용눈이에서 아부오름 방향으로 가다가 아부오름을 지나치고 착각을 했으니 칡오름이거나 민오름쯤으로 추측만 할 뿐, 여전히 아부오름은 아니다. 굼부리 주위를 솔나무가 곰보처럼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고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용눈이 오름에서보다 제법 시원하고 재잘거린다. 풀벌레 소리 보다 바람이 먼저 얘기를 걸고 지나치고 다시 다른 바람이 와서 전혀 새로운 얘기를 부치고 사라진다. 하늘을 쳐다본다. 바람은 구름을 밀어낼 얘기는 하지 않는 듯 했다. 도리어 성산쪽을 둘러 싸고 있던 구름 뭉치마저 중산간쪽으로 천천히 몰려 오는 듯 했다. 결국 아부 오름은 찾지 못했다. 용눈이 오름에서 너무 오래 지체했고, 그 이름모를 오름에서 내려와 농로를 잘못 타고 들어가는 바람에 길을 잃고 헤맨 시간까지 해서 다른 오름을 오르기엔 무리였다. 구좌읍에서 어떤 농로를 가로 질렀는지 모르겠지만, 벗어나고 보니 표선면이었다. 점심을 김밥으로 해결한 탓에 당케식당의 전복죽도 간절했지만, 일단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의 위치와 입구 정도만 파악해놓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따라비는 표선면 가시리 산 62번지이고 표고 342 미터, 오름의 할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그 자연미가 빼어난 곳이다. 하지만, 입구는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이 편치 못해 당케식당의 전복죽도 잊어 먹고 애월로 돌아와 버렸다.

마음이 급했다. 아부오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송당리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부오름을 앞오름으로 표시해 놓은 것을 알았지만, 입구라고 생각한 곳은 목장 입구였고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오름 주위를 몇차례 돌아 봤지만 도로는 점점 오름과 멀어지기만 했다. 목장 입구 건너편의 작은 농로를 따라 들어갔다.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는 길이 나왔다. 장비를 챙기고 숲을 걸어 올라가기로 작정했다. 가지런히 농로를 따라 둘러쳐진 삼나무 숲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오름을 가리고 버티고 있었다. 숲을 따라 한참을 걸었지만 뚫고 갈만한 오솔길 조차 내주질 않았다. 숲 건너에는 키만한 억새풀이 모험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듯 흔들거렸다. 삼나무 숲을 간신히 지나고 삼각대를 꺼내 억새풀을 휘젓자 마자 꿩 한마리가 푸닥거리를 했다. 간신히 지나왔다고 생각했었던 삼나무 숲을 달음질로 건너오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부오름이 저항을 하고 있었다. 나약한 도시인이란, 저항을 인정하는 것도 빠르고 쉽다. 아무렴 자연인데, 저항한다는데, 아직 오름이 많다, 합리화는 지적활동이 아니라 자기 위로다. 모험심은 더더욱 아니고... 카메라와 랜즈도 놀랐는지 여기저기 글킨 자국이 보인다.

다랑쉬 오름은 비교적 쉬웠다.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장비를 오르 내릴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았는지 계단이며 잡고 올라갈 수 있도록 밧줄을 당겨 놓았다. 그래도 하필 이렇게 경사가 가파른 쪽에 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힘에 겨웠다. 마지막 50여 미터를 남기고는 뒷굽이 바닥에 닿질 않아 거의 까치발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다랑쉬 오름은 높이 만큼이나 굼부리의 깊이도 상당했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 동쪽으로는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중산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날씨는 여전히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대체로 구름, 정확한 예보였다. 안개는 오늘도 새끼들을 낳았는지 마치 연못에서 뿜어져 나온 는개를 광불케 했다. 뭉쳐라 뭉쳐라 바람을 협박에 보았으나 굼부리 안에서 소용돌이 칠 뿐이었다. 다랑쉬의 굼부리 에는 돌탑 몇개가 쌓아져 있었다. 사람이 오르 내린 흔적이 있었지만 내려가진 않았다. 저 아래 깊은 바닥이 왠지 무덤처럼 보였다. 4.3 사건때 민간인들이 오름 굼부리에 숨었다가 발각되어 그 자리에서 학살되었다는 얘기가 진동되어 떨려 왔다. 삼다도, 눈물이 뭉쳐 만든 바람이 많고, 선지피가 마르고 엉켜 붙은 검은 돌이 많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자들을 모두 죽여 여자들이 많고... 그래서 삼다도라... 세월이 변해 이제 그 정상에서 칼라풀한 패러글라이딩을 한다. 나처럼 혼자 여행 온 니콘 유저가 삼각대를 펼치고 촬영 준비를 한다. 그와 날씨 얘기며 오름 얘기를 하다가 다랑쉬 오름 앞에 있는 아끈 다랑쉬 쪽이 일품이긴 한데 날씨가 이런데다가 한 두사람 오르는 사람도 없어서 좀 심심하다는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내려갈 참인데 내가 아끈 다랑쉬에 오를 테니 찍어 보라고 역시 약속 같지 않은 인사를 하고 서둘러 내려 왔다.

아끈 다랑쉬, 다랑쉬 오름의 동생 겪인 이 오름은 높이며 곡선이며 굼부리며 보잘 것이 없다. 다만 아끈 다랑쉬의 정체는 풀벌레 소리에 있었다. 얕으막한 초원 머리를 스치는 바람에 따라 풀벌레 소리가 눈을 감게 만든다. 새근거리는 중단 없는 홀림으로 모든 소리 조차 유혹하고 만다. 사람의 귀는 그저 대책 없는 포로가 된다. 드문드문 떠 있는 개망초꽃의 머리를 손바닥에 스치며 걷다 보면 곤드레 만드레 취한 파열음이 저도 모르게 입안을 맴돈다. 등산로가 없는 오름 그대로의 소리가 들린다. 아끈 다랑쉬 오름에서 굳이 사방을 둘러볼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매년 들꽃 축제가 열리는 새별오름은 제주도의 오름중에서 가장 유명할지도 모른다. 그 유명세 때문인지 허름하지만 오름 입구에 관광단지도 자리잡고 있고 주차장도 있다. 축제는 10월말이다. 지금은 입구에 방목하는 말들이 진을 치고 있을 뿐이다. 시간은 5시30분, 표고 519 미터로 꽤 높고 중산간에서 벗어나 애월읍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비교적 서쪽이라 일몰 시간을 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구름이 문제여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직 축제까진 한참 남아서 인지 길이 있음직한 곳에 키만한 억새가 온통 뒤덮고 있었다. 밀림용 장칼 따위가 있을 턱이 없고 무턱대고 손을 내저으며 걸어 갔다가는 거미줄에 구속되고 만다. 작은 나뭇가지를 앞장 세우고 걸어가면 그나마 거미줄을 걷어 내는데 도움을 준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새별오름 정상을 오르지 못한 이유는 야생 노루 때문이었다. 키만한 억새풀 숲에서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뛰어 다니더니 괴상망측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떠나질 않는다. 제 영역이란 것을 알릴 참인지, 그 소리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질 않았다. 새별오름에서 두려움을 가진 것은 내 다리 밖엔 없었다. 한발 한발 억새풀이 꺾이는 소리가 날 때마다 펄쩍펄쩍 뛰어 다니다가 괴상한 소리를 내고 몸뚱이는 보이질 않는데 가까운 숲이 흔들거렸다. 노루의 사냥감이 된 듯한 서늘한 느낌을 받아본 사람이 있을까 싶다. 역시 아부오름의 저항에 순응했던 것처럼 새별오름의 거샌 저항에 힘 입어 중턱에서 아직 덜 자란 억새를 촬영하는 것으로 오름 기행을 접었다. 며칠후엔 수천명의 사람들 때문에 어차피 제 자리를 내주어야 할 참인데 나까지 나서서 휘둘러 쫒아 보낼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내 자리에 안주해 왔을 때가 있었고, 남의 자리를 새로운 것이란 허울 좋은 핑계로 차지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자리거나 처음 발견한 것은 없다. 자연이 있었거나 사람이 있었거나 했을 터, 그 자리를 차지 했을 때거나 이처럼 잠시 방문 했을 때에 조차도 경외하고 겸손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 자리는 이미 자연이나 사람이 견뎌낸 시간과 역사가 있을 테니까...

2006/10/01 06:26 2006/10/01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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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2006/08/29 00:44 / 사진

어느 고장에 닿았을 때, 그 고장은 아무것도 스스로 내비치지 않습니다. 그 고장이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얘기들을 흔하디 흔한 괭이밥을 통해서도 들려주지 않습니다. 올해만 벌써 두번째 방문인데도 제주도는 낯설은 빛과 바람과 구름만을 좌판에 펼쳐 놓습니다. 시간을 멈춘 노인이 순하디 순한 양치기 개와 나란히 앉아 빛과 바람의 틈에서 소주를 마십니다. 나는 늙어 가고 있습니다. 루게릭 병에 걸린 김영갑님이 1년전 세상을 떠나며 남긴 두모악 갤러리로 가는 외진 동네, 중산간에는 사납게 비가 옵니다. 늙고 시든 왼쪽손을 핑게 삼으려 해도 셔터는 경거망동하고 뷰파인더는 더 이상 간극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편하게 찍으려 했던 자세가 화근이었나 봅니다. 외로움이 더는 깨닫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듯 모든 것이 불편해집니다. 들판에 서 봤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있을까, 언제쯤 저 빛이 행복해지는 시간에 셔터를 누를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서 있어야 이곳에서 사연을 가진 모든 것들과 같은 존재로 바람을 맞으며 조잘거릴 수 있을까, 들판에 서 봅니다. 제주도를 방문할 때마다 그 풍경에 반해 그 너머에 항상 소홀했던 태도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흔하디 흔해 지난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섬으로의 착지가 내내 설레이기만 했었던 이방인의 호기심 그대로였습니다. 그저 조금 불편한 마음, 풀리지 않는 도시에서의 일과 이제는 차분한 어떤 추억들이 흐트러짐 없는 전진의 동력이었습니다. 경이로움 없는 삶과 도시의 오물이 감각을 막아 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덕스럽게 내리치던 비가 그치고 나의 삶도 언젠가 막아 서는 것도 없이 그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한번도 이름을 가져보지 못한 들판은 바람의 리듬에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언제가 그칠 것을 아는 듯, 들판은 그렇게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나의 걸음이 재법 묵직하게 다가 갔는데도 그 낯설은 개입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도시에서 오지 않습니다. 이 들판에서 삽시간에 변하는 빛처럼 그런 희망을 품어 봅니다. 다음에도 구름이 들판을 그늘에 묻어 버리지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기를, 다음에도 처음 온 것처럼 그렇게 대해주기를 바랍니다.







2006/08/29 00:44 2006/08/2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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