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이 망해 먹을 사회에서 어떻게든 먹고 살겠다고 도시근로를 하고 있는 나에게 밤은 늘어지게 누워 손가락으로 리모콘이나 작동시키다가 자는 게 대부분이지만 소중한 휴식 시간이라오. 그러하니 앞으로는 역겨워 도저히 두고 봐 줄 수 없는 견해(조선일보 시론)를 세상에 밝히지 않아 주었으면 싶소. 일찍 자고 쉬고 싶소. 아무리 볼테르처럼 똘레랑스를 해보려고 해도 당신의 견해는 교수치고 변호사치고는 너무 구리오.
일단 내 정치적 스탠스는 참여연대 시민위원, 진보신당 당원이오. 당신들의 업자 용어로는 빨갱이라고 하지요. 빨갱이, 헌데 나는 여러 차례 이 누추한 블로그를 통해 내 태생적 한계에 대해서 말하곤 했듯이 빨개지려고 노력하는 정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겠소.
내가 하도 바빠서, 막말로 환율 오르고 유가 오르고 주식 떨어지는데도 죽어라고 바쁘오, 9월8일 참여연대 후원의 밤에는 참석하지 못했소. 그나마 한 10만원쯤 후원해야 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좌이체도 못시켰다오. 시민단체가 돈이 없다는 통념과 달리 40억원이나 되는 빌딩을 지었으니 무슨 돈으로 지었는지 질문하는 사람이 많을 터라고 했는데 그렇소, 많이 질문들 하시오. 14년동안 근검절약해서 모은 돈, 보금자리 후원을 통해 추가적으로 후원 받은 돈, 은행융자 이렇게 해서 지었소. 왜 지었냐고요? 집주인 눈치 보며 시민운동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닙디다, 게다가 운동을 하려면 연대를 해야 하는데 그런 연대의 근거지를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고 앞으로 100년동안 쓸 집으로 생각하고 무지 무리해서 걍 지어버렸소. 시민단체는 돈이 없다는 통념? 이게 통념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럼 조선일보는 돈 많다는 통념도 성립이 되는 것이오? 법률가라면 논리로 살아야지 통밥으로 살면 되겠소? 그럼 그 통념부터 얘기해 봅시다. 시민단체 돈 없소, 그래서 시민단체 상근자들 급여는 가히 살인적이오. 노동 강도로만 급여를 받는다면 시민단체 상근자는 당신보다 많이 받아야 할 것이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당신 같은 기득권 세력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오. 뭐 그것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없소. 나는 당신 같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돈 없는 시민단체도 후원하고 시민단체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심도 가지고 힘이 좀 나는 날이면 손수 참여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오. 물론, 당신이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에서 그런 활동을 하고 있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오. 만약 그렇다면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는 돈이 많소? 그쪽이나 이쪽이나 다 같은 시민단체인데 통념에 의하면 똑같이 돈이 없을 것 아니겠소. 그러하니 그 통념으로 시민단체는 다 돈이 없다 그러니 살인적인 급여도 참고 운동에 매진해라 고 말하려고 한다면 당신의 시론은 우파, 좌파를 동시에 양비해야 논리적이지 않겠소? 이상하잔소, 돈이 없는 시민단체는 좌파인 것 처럼 통념을 깔고 가는 당신의 논리가 말이오. 맹세컨데 40억짜리 참여연대 빌딩에는 정부의 돈이 들어 있질 않소. 게다가 난 당신 같은 통념이 사라졌으면 싶소. 우파나 좌파 시민단체가 그 단체에서 상근하는 아이 있는 가장에게 그 잘난 학원은 보낼 수 있을 만큼 급여를 주면서 운동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오. 그러려면 회원이 많아야 하오.
참여연대가 이제 회원이 만명이오. 만명이 만원씩 회비를 내면 한달에 1억인데 형편 껏 내는 제도가 있어서 대략 7천에서 8천 정도가 한달 회비 수입이오. 모 참여연대 홈페이지 가면 다 나오는 자료니까 확인 바라오. 당신이 후원의 밤에서 대기업의 후원금을 안받은 이유가 그동안 순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고 한 것처럼 불필요한 통밥을 예단하고 했던 일이오. 순수? 근데 법률가가 순수 라는 단어도 쓰시오? 이게 당신의 가치관에 빗댄 순수요? 아니면 통념적 순수요? "꼭 순수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뜻인 듯하다." 이런 서술형태는 또 뭐요? 아니었다는 뜻인 듯 하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라면 모를까 법률가가 이런 긴가민가형 서술어를 감히 조선일보 시론에 써도 되는 것인지 당신의 법철학적 양심과 글쓰기 실력에 묻고 싶소.
환경운동연합에도 나쁜 놈은 있기 마련이오. 참여연대에도 내가 모르는 나쁜 놈이 있을 것이오. 조선일보나 뉴라이트에는 나쁜 놈 없소? 사회에는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분포가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인 것이오. 돈을 삥쳐 먹었으면 그게 환경운동연합이던 조선일보던 변호사던 나쁜 놈, 나쁜 짓 되겠소. 이 나쁜 짓을 무슨 집시법 같은 것과 같은 맥락의 불법으로 이해해선 안되는데 벌써 당신은 그렇게 이해했으니 이것 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하오. 모든 법이 똑같은 원리로만 작동되는 것마냥 생각하는 비현실적인 법이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오. 도대체 왜 법률가들은 아직도 소크라테스 시대를 그리워하는지 모르겠오. "자금 관리와 부정에 대한 처리가 동창회만도 못한 듯하다." 당신, 동창회 안해 봤소? 대한민국 동창회에서 총무라는 놈이 동창회 통장 들고 튀는 일 비일비재하오. 부정에 대한 처리요? 에이 친구끼리 왜이래, 걍 술이나 한잔 하고 풀어... 이게 동창회 아닌감요? 뭐 좀 산뜻한 논리 없소? 초장 부터 통밥에 계속 통밥인데다가 변호사 쯤 했으면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 산전수전 다 겪어 봤을 법도 한데 허술하기 이를데가 없소.
"좌파가 주도하는 시민운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 맞은지 오래되었소. 아니 시민단체가 바라보는 사회는 언제나 위기이고 그 위기가 시민운동의 동력인데 오늘날 사회의 위기는 운동의 기폭제가 되지 못하오. 왜냐하면 시민사회가 그 위기를 통채로 감당하려 하는 패배주의에 휩싸였기 때문이라오.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투표하고 저항은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소. 시민단체의 위기는 시민사회의 위기오. 이건 일전의 학생운동에서 사용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자본과 글로벌의 문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오. 근데 무슨 유레카인양, 2000년 총선의 낙선운동에서 그걸 찾으시오? 게다가 혁혁한 성과를 냈는데 정파성과 선거법 위반으로 국민이 견제 없는 권력을 견제 하기 시작해서 좌파적 시민운동이 위기를 맞았다굽쇼? 해괴하구려, 해괴해... 지금 국민은, 아니 시민은, 아니 민중은 자신들의 사회가 어떤 위기를 맞고 있는지도 분간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오. 종부세를 내려 부자들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서민은 이에 대한 저항을 거세하고 언젠가는 나도 종부세를 내고야 말겠다는 허망한 희망으로 노동에 박차를 가하거나 로또를 산다오. 이런 사회 제도에서는 개인의 노동만으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는데도 분간을 하지 못하오. 물론, 당신 같은 신자유주의적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가난한 자의 이런 허망한 희망이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굴리며 자본에 종사하고 당신들은 그런 자본으로 자본을 굴리면 되는 아주 이상적인 사회체제에 박수를 보내겠지만 말이오. 차라리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본 이 셋중에 하나만 나왔어도 당신의 그 좌파가 주도하는 시민운동의 위기론에 논리적으로는 인정을 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오. 근데 이건 도무지 통밥을 넘어 해괴로 가고 있으니 참으로 이 나라 법률이 어떻게 되려고 하는 건지. 걱정만 생기오.
"그 시점에서 시민단체는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으로 전환했어야 했다....... 불법시위에 늘 앞장섰다. 야간의 도심을 '해방구'로 만들었던 광우병 촛불시위에도 어김없이 참가했다." 그 시점이란 2000년 총선 낙선 운동 때를 말하는 것이오?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이란 무엇이오? 광우병 촛불시위에는 수십만명, 아니 연인원으로는 수백만명의 시민이 참여 했소. 이렇게 많은 시민이 거리에서 토론하고 광우병 쇠고기 먹지 않겠다고 저항했는데 이때 시민단체가 참여하지 않으면 무엇이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이오? 당신이 혹여 해괴하게도 청계천 광장에서 비보이 공연을 주최하는 시민단체 같은 것을 설마 떠올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지성을 보호해주고 싶소. 시민단체의 운동성, 최소한 참여연대로 국한해서 보겠소. 물론 당신은 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을 것이오. 참여정부때 참여연대인사들이 청와대나 국무총리실로 많이 가지 않았느냐 모 이런 얘기. 그렇소, 당신들은 140명 갔다고 하는데 당신들이 잃어버린 10년동안 70명 정도 정부기관으로 이동 했다고 하오. 그래도 참여연대는 비판을 끊지 않았소. 예를 들어 이런 가정을 해봅시다. 민주노동당이 집권을 했다고 칩시다. 이때 참여연대인사들이 너도 나도 정부쪽으로 움직이고 민주노동당이 하는 일에 죄다 동의하고 힘실어 주는 운동만 한다고 칩시다. 그럼 참여연대는 끝이오. 시민단체가 아니오. 이런 일은 정부기관이 하는 것이지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위기를 모니터링하여 제도 개선을 운동적으로 해 나아가야 하는 시민단체의 가치는 아닌 것이오. 권력의 코드에 맞는 일을 한다면 이런 가치를 잃어 버린 것이기 때문에 참여연대는 간판을 내려야 하오. 민주노동당이 집권을 해도 권력은 권력인 것이오. 비판이 있어야 하는 법이고 그것이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이 되는 것이오. 왜 뉴라이트가 시민단체가 아닌지 좀 감이 잡히는지 모르겠소.
아마도 당신이 중점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정부에서 보조금 받고 그것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광우병대책회의 활동을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고 싶은 것 아니오? 광우병대책회의에 참여한 시민단체 85곳에서 총 122억원의 정부 보조금이 그야 말로 보조되었다고 하오. 당신의 말에 의하면 그렇소.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한 시민단체는 대략 1,500개 정도 되오. 나는 이런 의문이 생기오. 왜 85곳만 받았을까? 1,500곳 전부 정보 보조금을 받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당신의 최초의 통밥과 이것에 약간의 논리 적용이 가능할 것 같소. 건강하고 민주적인 정부라면 세금으로 시민운동을 보조해야 할 책임 같은 것을 느끼리라 생각하오. 시민단체는 통념적으로 돈 없이 이념만으로 사는 사람들의 오가니제이션이 아니기 때문이오. 불법시위에 앞장서는 시민단체에 돈을 대주는 선진국은 없다고 했는데, 선진국은 시위 자체를 불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같은 뜻으로 회합을 하려면 거리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다가 그 집회에 어울리지 않는 또 다른 시민들을 분리시켜 최대한 보호하고 일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불편을 덜기 위한 방법과 집회를 보장하는 방법을 강구하지 물대포를 쏘진 않는단 말이오. 프랑스 같았으면 수십만명의 시민이 일주일만 거리에서 시위를 하면 연합노조가 자동으로 총파업을 하는 시스템이오. 그렇게 많은 시민이 모여 그만큼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고 정부는 그 소리를 성실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오. 이러한 운동에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해서 활성화 시키는 것이 선진국의 민주적인 정부의 사례이며 권력에 대한 시민의 견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동의 하는 것이 선진적 이성이란 것이오.
"정부지원사업비의 30~40%를 단체의 운영비로 전용한다는 사실은 '업계'의 상식이다." 당신의 논리가 왜 이렇게 해괴한지 보여주는 단어가 드디어 말미에 등장하오. '업계', 시민단체를 업계로 보는 당신의 조악한 인식의 한계 말이오. 그리고 무슨 사업을 하려면 그 사업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법률가라 사업은 잘 모르시나? 어쩌려나... 암튼 사업에는 인건비가 가장 많이 들고 인건비는 곧 운영비오. 30~40% 가 아니라 100% 를 써도 모자른 것이 인건비인데 시민단체 상근자들한테는 급여를 동결하고 그나마 나머지로 더 좋은 스피커, 더 좋은 프랭카드라도 써서 사업하는데 뽀대내서 관심이라도 끌려고 60~70% 를 쓰니까 사업이 되는 것이오.
"시민운동은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자체 회비로 운영되는 게 원칙이다." 아주 좋은 얘기오. 참여연대 자체 회비로만 운영되고 있소. 당신들의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도 반드시 그리해주길 바라오.
"범법자의 생활비를 세금으로 대 주는 일이 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률가라면 집시법 한가지만 운운하지 말고 헌법 같은 것도 읽어 주고, 시대 상황, 그리고 왜 그리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지 전후 사정을 다 고려하고 법을 들이 대길 바라오. 게다가 범법자의 생활비 라는데, 살인자도 국가가 제공하는 감옥에서 먹고 자고 입고 싸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소. 살인자도 그 죄에 벌을 받는 동안은 우리가 그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는 말이오. 이런게 사회요. 서로 의지하고 책임지며 홀로 외롭지 않도록 하는 사회 말이오. 내 생각엔 당신은 범법자에게 생활비를 대주는 것이 너무 아까운 것 같은데 이참에 세금을 내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이오. 게다가 그렇게 순수한 분이 변호사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소. 무죄를 추정해야 겠지만 꼭 무죄인 사람만을 골라 변호하지는 않을 것이지 않소? 그럼 그 범법자가 주는 수임료는 어떻게 순수한 마음으로 받으시는지... 그야말로 범법자가 주는 수임료로 생활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오?
아무쪼록 이 가을, 지성을 흠집내는 이성과 가치관을 키우는 독서를 권장하는 바이오.
P.S
행여 또 오해 할까봐서, 참여연대나 진보신당의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이거나 그런 입장은 아니니 호들갑 떨지는 마시오.
조선일보 시론 [시민단체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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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국가가 민중을 통치하는데 있어서 사용하는 언어의 어려움, 또는 이해 못할 수준의 단어와 문맥을 살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번역하여 이를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지식인으로 하여금 권력과 우상의 언어를 답습하는 것을 경계토록 한다. 또한 오늘날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전환된 정보 전달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상 이미지의 왜곡과 디지털적 재생산에도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된다. 다만, 이 불쾌한 나라의 고약한 사회현상에 대고 꼭 해야 할 얘기를 하는 사람이 적을 뿐이다. 게다가 배울 만큼 배웠다는 사람이 어려운 얘기는 고사하고 이제는 대놓고 터무니 없는 논리로 관료가 되려 하고 세상을 지배하려 든다.
바야흐로 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영리한 혹자는 경기 시간대와 빼앗긴 광장으로 인해 거리 응원인파가 분산 되고 저조한 참여로 4년전만 하겠냐는 분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린 안으로 밖으로 빼앗긴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축구가 싫어서가 아니라 지나친 열광의 대열에 끼어 광분의 도가니에 스멀스멀 녹아 내리기가 내키지 않고, 무엇보다 무분별한 민족주의에 기댄 기업들의 자본 창출의 분위기에 휩쓸려 입맞추기는 더더욱 마땅치가 않습니다. 다만, 내 정성껏 응원을 할 터 입니다.
4년마다 쏟아지는 막연한 애국심으로 인해 우리가 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고취된 애국심으로 인한 증세 논란의 일축?, 붉은 연대의 승화를 통한 아픈 이웃들 챙기기?, 좀 비꼰듯한 것이 사실이지만 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리면 이겼을 때와 졌을 때 다른 광기만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엄밀하게 우린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한총련에서 탈퇴 한다고 기자회견을 했답니다. 반운동권의 총학 집권(?)의 공약이었다고 하네요. 약속을 지키는 모습, 좋습니다. 하지만 거기 꼬리표로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독재의 염증을 자본으로 풀려고 하는구나...
붉은 악마가 집단 응원을 통해 축구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면서 건강한 응원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다중의 응원단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포괄적으로 이 주장에 동의 합니다. 그리고 지금 조급하지 않더라도 대안 체제는 반드시 등장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불행이도 붉은 악마는 정치적으로 독재이기 때문이지요.
서울대의 한총련 탈퇴도 마찬가지 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지역 대학들이 90년대 후반부터 한총련 산하 서총련을 탈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도 그 즈음 탈퇴를 했다지요, 한총련에서 운동과 집회를 결의하면 서총련으로 그리고 각 대학 총학으로 지령이 하달 되어 혹 다른 생각을 가진 총학이라도 막연한 대열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낭만과 정치를 버리는 시대 전환에 대학의 간성이 NL-자주를 오롯하게 주장하는 것은 전근대적이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념과 저항의 주체가 확실한 시대의 전대협과 그 바통을 이어 받은 한총련에 놓인 탈근대적 시대는 분명히 다릅니다. 게다가 학생을 대변하는 집단이 전대협에서 한총련으로 이어졌을 뿐, 대안은 없다는 역사, 그것은 엄밀히 독재 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반운동권이라고 해도 노선(이건 생각의 방향 정도로 이해)이라는 것이 있을 터인데 무엇인지?
그래서 서울대 총학생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총학생회의 약속은 "위대함은 당연함에 깃드는 법입니다. 당연함을 당연하게 만드는 일." 이라네요. 논쟁의 논쟁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나, 위대함은 당연함에 의해 변질되고 당연함은 시대에 의해 변질되지요. 따라서 당연함을 당연하게 만드는 일은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관점에서 판가름 되기 마련입니다. 서울대 총학은 학생정치세력과 분리를 선언함으로서 그 선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라는 인문 개념과도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선언이 아니겠기에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대환영할 선언은 분명하고 당연하겠지요. 설마, 언론이 이 분리선언을 순수한 공약 실천으로 보아 넘기겠거니 순진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아무튼 어떤 노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의 당연한 자치를 당연하게 만들겠다 정도로 해석하겠으나, 정치와의 분리가 운동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의식을 제한하겠다는 말처럼 들려 솔직히 씁쓸합니다.
부탁합니다. 스폰서를 직접 핸들링 하시든, 한총련과 분리를 선언하시든, 학교가 기업의 자본주의를 먼저 답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개혁진보라고 부르는 좌파신자유주의자의 권력감정과 사대주의를 통한 국익 도모에 서울대가 모범을 보이는 사례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이 마감되었다고 해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크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 직시가 부당한 폭력에 대한 굴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경제의 통계만으로 현안을 바라보는 우안이 되지 않기를 소박하게 바랍니다. 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대학생에게 짐지우냐고 때쓰지는 마십시오... 대학생은 사회의 지식인입니다. 지식인은 사회에 그 정도 책임은 있어야 합니다.
축구가 싫어서가 아니라 지나친 열광의 대열에 끼어 광분의 도가니에 스멀스멀 녹아 내리기가 내키지 않고, 무엇보다 무분별한 민족주의에 기댄 기업들의 자본 창출의 분위기에 휩쓸려 입맞추기는 더더욱 마땅치가 않습니다. 다만, 내 정성껏 응원을 할 터 입니다.
4년마다 쏟아지는 막연한 애국심으로 인해 우리가 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고취된 애국심으로 인한 증세 논란의 일축?, 붉은 연대의 승화를 통한 아픈 이웃들 챙기기?, 좀 비꼰듯한 것이 사실이지만 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리면 이겼을 때와 졌을 때 다른 광기만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엄밀하게 우린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한총련에서 탈퇴 한다고 기자회견을 했답니다. 반운동권의 총학 집권(?)의 공약이었다고 하네요. 약속을 지키는 모습, 좋습니다. 하지만 거기 꼬리표로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독재의 염증을 자본으로 풀려고 하는구나...
붉은 악마가 집단 응원을 통해 축구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면서 건강한 응원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다중의 응원단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포괄적으로 이 주장에 동의 합니다. 그리고 지금 조급하지 않더라도 대안 체제는 반드시 등장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불행이도 붉은 악마는 정치적으로 독재이기 때문이지요.
서울대의 한총련 탈퇴도 마찬가지 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지역 대학들이 90년대 후반부터 한총련 산하 서총련을 탈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도 그 즈음 탈퇴를 했다지요, 한총련에서 운동과 집회를 결의하면 서총련으로 그리고 각 대학 총학으로 지령이 하달 되어 혹 다른 생각을 가진 총학이라도 막연한 대열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낭만과 정치를 버리는 시대 전환에 대학의 간성이 NL-자주를 오롯하게 주장하는 것은 전근대적이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념과 저항의 주체가 확실한 시대의 전대협과 그 바통을 이어 받은 한총련에 놓인 탈근대적 시대는 분명히 다릅니다. 게다가 학생을 대변하는 집단이 전대협에서 한총련으로 이어졌을 뿐, 대안은 없다는 역사, 그것은 엄밀히 독재 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반운동권이라고 해도 노선(이건 생각의 방향 정도로 이해)이라는 것이 있을 터인데 무엇인지?
그래서 서울대 총학생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총학생회의 약속은 "위대함은 당연함에 깃드는 법입니다. 당연함을 당연하게 만드는 일." 이라네요. 논쟁의 논쟁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나, 위대함은 당연함에 의해 변질되고 당연함은 시대에 의해 변질되지요. 따라서 당연함을 당연하게 만드는 일은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관점에서 판가름 되기 마련입니다. 서울대 총학은 학생정치세력과 분리를 선언함으로서 그 선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라는 인문 개념과도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선언이 아니겠기에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대환영할 선언은 분명하고 당연하겠지요. 설마, 언론이 이 분리선언을 순수한 공약 실천으로 보아 넘기겠거니 순진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아무튼 어떤 노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의 당연한 자치를 당연하게 만들겠다 정도로 해석하겠으나, 정치와의 분리가 운동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의식을 제한하겠다는 말처럼 들려 솔직히 씁쓸합니다.
부탁합니다. 스폰서를 직접 핸들링 하시든, 한총련과 분리를 선언하시든, 학교가 기업의 자본주의를 먼저 답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개혁진보라고 부르는 좌파신자유주의자의 권력감정과 사대주의를 통한 국익 도모에 서울대가 모범을 보이는 사례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이 마감되었다고 해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크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 직시가 부당한 폭력에 대한 굴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경제의 통계만으로 현안을 바라보는 우안이 되지 않기를 소박하게 바랍니다. 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대학생에게 짐지우냐고 때쓰지는 마십시오... 대학생은 사회의 지식인입니다. 지식인은 사회에 그 정도 책임은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한번도 적빈하게 살아본 적 없고, 한번도 어깨에 쌀포대 이어 본 적도 없는데다가, 거지꼴은 본능적으로 내키지 않은 사람이다. 보고 들은건 있고, 입은 찢어 졌다고 '민중의 노동의 낮은 데로 향하란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최전방에서 제3세계의 어려운 자본을 번거로움 없이 찾아다가 등록금을 대고 기이한 체제와 동족 상잔의 괴뢰 집단으로 북한을 몰아세우는 미국인 급우들과 어울려 시소 놀이를 했었다. 제도권에서 인정 받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잘난체를 하고, 철저한 자본의 시종으로 복종하면서, 체제에 순응하고 굴종하기를 가르쳤다. 이쯤되면 신자유주의적 시민이 아닐수 없다.
돈이 판치는 사회에서 여기 저기 쑤시며 살아오다가, 이제 와서 자본교환적 가치가 어떻고 노동이 어떻고 공평이 어떻다니, 또 다른 세계의 지배를 꿈꾸는 떠돌이 이상주의자냐 넌?
그리하여 난 스스로 헐거움에 대한 토론을 해야 한다. 실은 토론도 최소로 해야 한다는 점에 동참하면서 동시에 이해를 위한 언어의 첫번째 기술은 열거라는 점을 원칙하고 있으니 여전히 패러독스다.
1. 평등하지 못한 담론의 장
내 말이 아무리 개소리라도 대화중에는 절대 비웃을 수 없는 자리, 개소리인줄 알면서도 그 개소리를 억지로 주입시킬 수 있는 자리, 개소리에 대한 반박을 하더라도 논리 정연하지 못하면 논지나 반박으로 받아 들여 지지 않는 노련한 처세와 화술의 장, 불평등할 수록 강한 개소리가 지배되는 대화의 장에 익숙한 사람이 평등한 담론의 장에 참여 하기 위해 갑자기 겸손과 조심스러움의 태도로 임할 수 있을까? 그로인해 평등한 담론 이전에 의식이고 의식 이전에 교양이다. 담론의 장에 계급적 평등이 아닌 교양적 평등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그 장이 토론이 되거나 반목이 되거나 한다.
2. 칼라로 구분되는 노동
블루만이 기계 자본에 억압 받는 노동자가 아니다. 실은 사무직과 현장직을 가른 화이트와 블루의 계급성 자체가 수정자본주의에서 비롯되었으며 현재의 신자유주의로 이어져온 것이다. 노동의 신성함이 블루에만 있다는 주장은 이상주의이면서, 그 구분를 두고 은연중에 사무직이라면, 사무직이라 생각하는 화이트라면, 노동이 아니라는 관계 정립을 통해 근로 기준법의 테두리에서 소외시키고자는 음모이거나 무의식속에 침작하려는 의도이다. 화이트? 당신도 노동자다.
3.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자격
노동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노동 임금이다. 노동임금이 노동자의 삶을 윤택하게 하지 않고 잉여자본으로 남아 축적된 자본의 기능이 역시 노동자의 풍요로움으로 연결되지 않고 지배계급이 수혜함으로써 노동자의 노동만 늘리는 수단으로 쓰여졌기에 자본의, 자본으로써의 이념이 왜곡되었다. 그로인해 자본은 곧 부르주아지, 또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척도, 지배계급의 기득권 등이 되어 노동자는 돈이 없는 사람으로 탈바꿈 되었다. 다시 말해, 없는 자만이 노동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이 되는 희안한 의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4. 노동자이면서 자본가
자본은 노동자의 희생과 피를 먹고 확대된다. 노동자라고 해서 저축하지 말라는 법 없고, 이념 없다. 완전히 화폐가 없는 원시로 회귀하던가 세상을 뒤집지 않고는 노동자가 노동 임금으로 적립식 펀드 넣지 말라는 이념만으로 접근하는 것이야 말로 이상주의다. 우리가 얘기하는 양극화는 어떤 양극화 인가?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양극화인가? 목로의 주점에서 떠드는 양극화는 대게가 노동과 자본의 양극화이다. 하지만 그 양극화가 이념적으로 완전히 구분지어 질 수 있는 양극화인가? 양극의 2할을 제외한 나머지 6할은 자신의 사상을 규정하지 못하는 미성숙자들과 노동자이면서 자본가들이 모인 집단인 셈이된다.
5. 노동을 보호할 의지
그럴줄 몰랐던 현재의 정치적 지배계급이 급속도로 그들의 이념을 수정했을 때, 정반대로도 갈 수 없는 좌파 지지층이 택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이며 어디인가? 비정규직 법안을 통해 곧 노동자가 될 계급들이나 화이트 노동자들의 무관심이 들어나면서 그들은 오로지 돈벌 기회만 궁리하게 되고, 그 궁리만을 하도록 모종의 강요가 있다는 점도 함께 간과해 버리면서 새만금과 대추리가 자연스러운 내용이 되버렸다. 이런 재료를 통해 이제 정부는 더 이상 노동, 인권을 보호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노동자는 더 먹고 살기 어렵게 되고 파괴된 환경의 더미에서 인권에 가차가 있을 턱이 없다.
6. 담백한 선택
더 이상 노동자의 지위를 온전히 보전해주지 못하는 지배계급, 더 이상 현재를 지배하고 미래를 영위해야 할 인권을 확대시키지 못하는 정부에 저항하는 담백하고 솔직한 선택은 계급혁명 뿐이다.
또는 지지층이었던, 그 층에서부터 들고 일어 나야 하는 탄핵 뿐이다.
7. 현안을 바라보는 방법
일단 현안을 보는 교양의 문제다. 미국과의 관계가 사인하라면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면서 사인할때가 되면 사인하고 마는 태도로 보는 현안이 자유를 말하는 교양인가? 자본의 이해로 FTA 며 자본시장 통합에는 반응도 없던 이들이 거대 자본이 은행 하나 먹튀했다고, 또는 블로그 서비스 하나 인수합병 했다고 급작스럽게 성질을 내는 것은 과잉 민족주의와 다를바 없다. 통계적으로 현안을 파악하는 방법에 익숙할 수록 대중속에 숨는 방법도 가지가지로 빨라지는 법이다. 건강한 시선이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가장 먼저 건강한 시선으로 통찰하는 방법은, 통계적으로 현안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좌파라면, 그리고 노동자라면 그렇다.
돈이 판치는 사회에서 여기 저기 쑤시며 살아오다가, 이제 와서 자본교환적 가치가 어떻고 노동이 어떻고 공평이 어떻다니, 또 다른 세계의 지배를 꿈꾸는 떠돌이 이상주의자냐 넌?
그리하여 난 스스로 헐거움에 대한 토론을 해야 한다. 실은 토론도 최소로 해야 한다는 점에 동참하면서 동시에 이해를 위한 언어의 첫번째 기술은 열거라는 점을 원칙하고 있으니 여전히 패러독스다.
1. 평등하지 못한 담론의 장
내 말이 아무리 개소리라도 대화중에는 절대 비웃을 수 없는 자리, 개소리인줄 알면서도 그 개소리를 억지로 주입시킬 수 있는 자리, 개소리에 대한 반박을 하더라도 논리 정연하지 못하면 논지나 반박으로 받아 들여 지지 않는 노련한 처세와 화술의 장, 불평등할 수록 강한 개소리가 지배되는 대화의 장에 익숙한 사람이 평등한 담론의 장에 참여 하기 위해 갑자기 겸손과 조심스러움의 태도로 임할 수 있을까? 그로인해 평등한 담론 이전에 의식이고 의식 이전에 교양이다. 담론의 장에 계급적 평등이 아닌 교양적 평등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그 장이 토론이 되거나 반목이 되거나 한다.
2. 칼라로 구분되는 노동
블루만이 기계 자본에 억압 받는 노동자가 아니다. 실은 사무직과 현장직을 가른 화이트와 블루의 계급성 자체가 수정자본주의에서 비롯되었으며 현재의 신자유주의로 이어져온 것이다. 노동의 신성함이 블루에만 있다는 주장은 이상주의이면서, 그 구분를 두고 은연중에 사무직이라면, 사무직이라 생각하는 화이트라면, 노동이 아니라는 관계 정립을 통해 근로 기준법의 테두리에서 소외시키고자는 음모이거나 무의식속에 침작하려는 의도이다. 화이트? 당신도 노동자다.
3.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자격
노동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노동 임금이다. 노동임금이 노동자의 삶을 윤택하게 하지 않고 잉여자본으로 남아 축적된 자본의 기능이 역시 노동자의 풍요로움으로 연결되지 않고 지배계급이 수혜함으로써 노동자의 노동만 늘리는 수단으로 쓰여졌기에 자본의, 자본으로써의 이념이 왜곡되었다. 그로인해 자본은 곧 부르주아지, 또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척도, 지배계급의 기득권 등이 되어 노동자는 돈이 없는 사람으로 탈바꿈 되었다. 다시 말해, 없는 자만이 노동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이 되는 희안한 의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4. 노동자이면서 자본가
자본은 노동자의 희생과 피를 먹고 확대된다. 노동자라고 해서 저축하지 말라는 법 없고, 이념 없다. 완전히 화폐가 없는 원시로 회귀하던가 세상을 뒤집지 않고는 노동자가 노동 임금으로 적립식 펀드 넣지 말라는 이념만으로 접근하는 것이야 말로 이상주의다. 우리가 얘기하는 양극화는 어떤 양극화 인가?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양극화인가? 목로의 주점에서 떠드는 양극화는 대게가 노동과 자본의 양극화이다. 하지만 그 양극화가 이념적으로 완전히 구분지어 질 수 있는 양극화인가? 양극의 2할을 제외한 나머지 6할은 자신의 사상을 규정하지 못하는 미성숙자들과 노동자이면서 자본가들이 모인 집단인 셈이된다.
5. 노동을 보호할 의지
그럴줄 몰랐던 현재의 정치적 지배계급이 급속도로 그들의 이념을 수정했을 때, 정반대로도 갈 수 없는 좌파 지지층이 택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이며 어디인가? 비정규직 법안을 통해 곧 노동자가 될 계급들이나 화이트 노동자들의 무관심이 들어나면서 그들은 오로지 돈벌 기회만 궁리하게 되고, 그 궁리만을 하도록 모종의 강요가 있다는 점도 함께 간과해 버리면서 새만금과 대추리가 자연스러운 내용이 되버렸다. 이런 재료를 통해 이제 정부는 더 이상 노동, 인권을 보호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노동자는 더 먹고 살기 어렵게 되고 파괴된 환경의 더미에서 인권에 가차가 있을 턱이 없다.
6. 담백한 선택
더 이상 노동자의 지위를 온전히 보전해주지 못하는 지배계급, 더 이상 현재를 지배하고 미래를 영위해야 할 인권을 확대시키지 못하는 정부에 저항하는 담백하고 솔직한 선택은 계급혁명 뿐이다.
또는 지지층이었던, 그 층에서부터 들고 일어 나야 하는 탄핵 뿐이다.
7. 현안을 바라보는 방법
일단 현안을 보는 교양의 문제다. 미국과의 관계가 사인하라면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면서 사인할때가 되면 사인하고 마는 태도로 보는 현안이 자유를 말하는 교양인가? 자본의 이해로 FTA 며 자본시장 통합에는 반응도 없던 이들이 거대 자본이 은행 하나 먹튀했다고, 또는 블로그 서비스 하나 인수합병 했다고 급작스럽게 성질을 내는 것은 과잉 민족주의와 다를바 없다. 통계적으로 현안을 파악하는 방법에 익숙할 수록 대중속에 숨는 방법도 가지가지로 빨라지는 법이다. 건강한 시선이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가장 먼저 건강한 시선으로 통찰하는 방법은, 통계적으로 현안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좌파라면, 그리고 노동자라면 그렇다.
요즘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과 '대화(임헌영과의 대담)'을 읽어 냈고 최근의 술자리 대화에 의하자면, 경제적 중간계급이 상층 20%, 또는 하층 20% 로 급속히 전환되고 그 자본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어느 계급을 할 것 없이 '먹고 사는' 데만 모든 활동이 집중됨으로 인해 '지식인' 이란 생각하는 계급은 사라졌다는 독트린이 유효하다고 한다.
그로인해 지나친 계몽도 좋지 않지만, 우상에 대한 비판적 도전(리영희 선생의 말)조차 시들해진 마당에 존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무리들의 이상한 계몽의식과 우상 반열에 대한 맹목은 점점 그 세를 더하고 있다. 외국인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는 러시아의 네오나치즘의 무리들과 300조원과 국익을 운운하는 황우석 지지자들의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들의 몸을 동학(?)의 혁명적 기운으로 불태우지 않고 그들과 다른 생각의 몸에 신나를 뿌리지 않는다 보장할 수 있겠는가.
걸핏하면, 성조기를 앞세우고 구국기도회를 하던 기독교의 무리들이 세금은 모국에 내고 마음은 미국에 있으며 정체성이 온통 그들과 같지 않아 안달이 나서, 그들을 비판하는 보통의 계급들을 무리단위로 위협하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십일조와 맞바꾸더니, 살생 금지의 경지에서 모든 생명을 긍휼하던 불교가 황우석의 무리와 같은 목탁을 치는 광경은 사뭇 그 맥락이 통하였다 당위해야 하는 현상으로 봐야 하는 지경까지 왔다. 민간과 종교의 범주가 우상의 다름이 아니라 지식의 다름에서 경계된다는 것을 보면 종교의 소리는 오로지 믿음의 소리가 아니라 지식의 소통과도 같다. 그 소통이 이런 현안이고 보면, 오늘날 한국 종교는 신화만이 비타민인 허약한 체질이었음을 반증한다.
이것은 지식인이라 불리워져야 마땅한 계급이 스스로는 자유인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그 책임을 모면하려는 온갖 면피의 처세술의 밝음에서 기인했다. 또, 9할의 노동 보다는 재테크의 램프에 룩스를 높이는데 지식의 9할을 쏟아 붓는 상업주의에서 기인했다. 마땅히 지식인이라 불리워져야 하는 계급은 민중과의 연대에 기꺼이 참여해야 함을 강요 당하지 않더라도, 제대로된 혜안으로 말하지도 게다가 쓰지도 않고 있다면 자유를 향한다는 지식의 본래 목적이 참작된 인간의 이름인 '지식인'이 아니라 빌어 먹을 '양아치' 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그로인해 지나친 계몽도 좋지 않지만, 우상에 대한 비판적 도전(리영희 선생의 말)조차 시들해진 마당에 존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무리들의 이상한 계몽의식과 우상 반열에 대한 맹목은 점점 그 세를 더하고 있다. 외국인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는 러시아의 네오나치즘의 무리들과 300조원과 국익을 운운하는 황우석 지지자들의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들의 몸을 동학(?)의 혁명적 기운으로 불태우지 않고 그들과 다른 생각의 몸에 신나를 뿌리지 않는다 보장할 수 있겠는가.
걸핏하면, 성조기를 앞세우고 구국기도회를 하던 기독교의 무리들이 세금은 모국에 내고 마음은 미국에 있으며 정체성이 온통 그들과 같지 않아 안달이 나서, 그들을 비판하는 보통의 계급들을 무리단위로 위협하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십일조와 맞바꾸더니, 살생 금지의 경지에서 모든 생명을 긍휼하던 불교가 황우석의 무리와 같은 목탁을 치는 광경은 사뭇 그 맥락이 통하였다 당위해야 하는 현상으로 봐야 하는 지경까지 왔다. 민간과 종교의 범주가 우상의 다름이 아니라 지식의 다름에서 경계된다는 것을 보면 종교의 소리는 오로지 믿음의 소리가 아니라 지식의 소통과도 같다. 그 소통이 이런 현안이고 보면, 오늘날 한국 종교는 신화만이 비타민인 허약한 체질이었음을 반증한다.
이것은 지식인이라 불리워져야 마땅한 계급이 스스로는 자유인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그 책임을 모면하려는 온갖 면피의 처세술의 밝음에서 기인했다. 또, 9할의 노동 보다는 재테크의 램프에 룩스를 높이는데 지식의 9할을 쏟아 붓는 상업주의에서 기인했다. 마땅히 지식인이라 불리워져야 하는 계급은 민중과의 연대에 기꺼이 참여해야 함을 강요 당하지 않더라도, 제대로된 혜안으로 말하지도 게다가 쓰지도 않고 있다면 자유를 향한다는 지식의 본래 목적이 참작된 인간의 이름인 '지식인'이 아니라 빌어 먹을 '양아치' 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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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선아빠 2008/10/04 01:28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드렁큰타이거 라는 팀을 생각나게 하면서도 그 촌철살인의 힘과 글쓰기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드렁크스타님의 블로그네요. 참여연대 통블로그를 통해 가끔 들어왔지만, 이재교의 글에 대한 비판글을 이제야 읽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드렁큰스타님의 글쓰기같은 재미는 없지만, 어쩌다 제 블로그도 구경해주세요.
DrunkenSTAR 2008/10/08 13:17 편집/삭제 댓글 주소
안녕하세요, 준선아빠님~
블로그 잘 보고 있습니다..
노숙자 2009/02/14 01:51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이재교 교수님 아니 하수인 님 오늘 토론회 보니까 장난 아닙니다~^^
돈은 얼마나 받고 일하는지 아님 당신도 또 같은 사람 입니까 아님 ~개 돼지 같은 백정 입니까
연설 정말 쫄라 같아여ㅠㅠ
당신 자식들 많이 당하게 되겠어 이재교님 당신을 야바위협회 회장 으로 모십니다~^^
스포피아 2009/04/01 18:0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이재교!
아직 어린 양반이 돈맛과 권력맛만 알아가지고는...
보수쪽에도 얼마나 인물이 없으면 이런 사람을 논객으로 보내는지.....
이사람이 직접 철거를 당해보고, 광주학살에서 처자식과 형제를 잃어보고, 돈없어 자식을
팽개칠수 밖에 없는 대다수 한국서민들의 입장에 놓여 있어봐야 하는데....
어쩌다 판사퇴임후 수임비리로 구속까지 됐던 분이 세상을 바로 잡겠다고 하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