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지향'에 대한 1 개의 검색 결과

  1. 2007/05/15 이율배반의 디테일 by DrunkenSTAR

이율배반의 디테일

2007/05/15 03:18 / 생활

전쟁 같은 일상이 함축한 의미는 세계의 실체적 움직임에 순응하느라, 그 전쟁 같은 지독함을 느끼서일 겁니다. 전쟁이 일상 같을 수 없고,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이치입니다만 역한 속물스러움을 느끼는 요즘은 "나 같은" 이란 말맴돌이에 힘겹습니다. 인간을 소통하게 했던 언어가 세계를 구성하면서 예술이 되었고, 과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은유로 들립니다. 은유의 반열에 이율배반이 있고, 표리부동 따위들도 의미적으로 합리하다고 하니 느끼고 말하는 문턱이 높아지긴 했나 봅니다.
세계의 문턱은 더 고달파졌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멀리 있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언어를 끊임 없이 표현해야 하니 일상이 전쟁 같은 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노선이 없는 대중들 보다 다중적인 주체들이 세계를 구성하는 언어들과 화해하지 못하여 반사회적이며, 반민중적이라는 타이틀로 공격을 받는가 봅니다. 언어가 있는 세계라면 형식을 통한 감수성이 표현될 것 입니다. 이러한 사조는 전체적으로 일관적일지 몰라도 디테일은 이율배반적 입니다.
자본주의에 살면서 사회주의를 꿈꾸고, 모더니즘의 바다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항해하는 모든 형식과 표현은 타당성이 없기에 모순이며 이율배반 입니다. 이율배반을 좋거나 좋지 않은 취미 판단으로 규정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옮거나 옮지 않은 윤리 판단의 잣대에 저울질 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사조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현대 사회는 일정량의 물리적 덩어리가 아니라 이율배반이라는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적으로는 은유의 시대이고 정치적으로는 이미지화 되었으며 예술은 이질적이고 탈중심적입니다. 현대사회의 디테일은 절대선과 절대악, 절대행복과 절대불행의 어중간한 지점을 자유롭게 맴도는 이율배반의 논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얼핏 어떤 정체성도 주체도 없어 보이는 이러한 어중간한 추구에 저항하는 이성은 지향 입니다. 정체성은 확고한 독립이 아니라 지향점 입니다. 지향은 스스로를 여러 형식으로 규정하려고 합니다. 잘된 규정은 참 인 두개의 명제를 놓고 이율배반을 노리게 되며 조금이라도 지향에 가깝게 규정하는 것 입니다. 그래도 이율배반인건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얼마나 자율적으로 규정했는가 라는 지점 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판단한줄로 착각하며 삽니다. 그만큼 세계를 구성하는 이율배반의 에너지가 강력합니다.
자율적인 지향과 규정은 이율배반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들을 규제하고 자율적인 실천에 의지적으로 변해가는 것 입니다. 디테일에 이율배반이 있다고 해서 모든 실천적 의지를 멈춰야 하거나 지향을 수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향이 덜 성숙되었고, 세계를 바라보는 피상적 관점이 지배적일 때 대체로 디테일한 이율배반에 좌절하고 구성된 세계로 안락하게 편입하길 원하게 됩니다.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어려운 시도에 열정을 사치하는 것보다 가깝고 먼 지향을 성찰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 입니다. 자율적으로 말 입니다. 고독은 이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7/05/15 03:18 2007/05/15 03:18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