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이 망해 먹을 사회에서 어떻게든 먹고 살겠다고 도시근로를 하고 있는 나에게 밤은 늘어지게 누워 손가락으로 리모콘이나 작동시키다가 자는 게 대부분이지만 소중한 휴식 시간이라오. 그러하니 앞으로는 역겨워 도저히 두고 봐 줄 수 없는 견해(조선일보 시론)를 세상에 밝히지 않아 주었으면 싶소. 일찍 자고 쉬고 싶소. 아무리 볼테르처럼 똘레랑스를 해보려고 해도 당신의 견해는 교수치고 변호사치고는 너무 구리오.
일단 내 정치적 스탠스는 참여연대 시민위원, 진보신당 당원이오. 당신들의 업자 용어로는 빨갱이라고 하지요. 빨갱이, 헌데 나는 여러 차례 이 누추한 블로그를 통해 내 태생적 한계에 대해서 말하곤 했듯이 빨개지려고 노력하는 정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겠소.
내가 하도 바빠서, 막말로 환율 오르고 유가 오르고 주식 떨어지는데도 죽어라고 바쁘오, 9월8일 참여연대 후원의 밤에는 참석하지 못했소. 그나마 한 10만원쯤 후원해야 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좌이체도 못시켰다오. 시민단체가 돈이 없다는 통념과 달리 40억원이나 되는 빌딩을 지었으니 무슨 돈으로 지었는지 질문하는 사람이 많을 터라고 했는데 그렇소, 많이 질문들 하시오. 14년동안 근검절약해서 모은 돈, 보금자리 후원을 통해 추가적으로 후원 받은 돈, 은행융자 이렇게 해서 지었소. 왜 지었냐고요? 집주인 눈치 보며 시민운동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닙디다, 게다가 운동을 하려면 연대를 해야 하는데 그런 연대의 근거지를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고 앞으로 100년동안 쓸 집으로 생각하고 무지 무리해서 걍 지어버렸소. 시민단체는 돈이 없다는 통념? 이게 통념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럼 조선일보는 돈 많다는 통념도 성립이 되는 것이오? 법률가라면 논리로 살아야지 통밥으로 살면 되겠소? 그럼 그 통념부터 얘기해 봅시다. 시민단체 돈 없소, 그래서 시민단체 상근자들 급여는 가히 살인적이오. 노동 강도로만 급여를 받는다면 시민단체 상근자는 당신보다 많이 받아야 할 것이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당신 같은 기득권 세력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오. 뭐 그것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없소. 나는 당신 같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돈 없는 시민단체도 후원하고 시민단체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심도 가지고 힘이 좀 나는 날이면 손수 참여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오. 물론, 당신이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에서 그런 활동을 하고 있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오. 만약 그렇다면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는 돈이 많소? 그쪽이나 이쪽이나 다 같은 시민단체인데 통념에 의하면 똑같이 돈이 없을 것 아니겠소. 그러하니 그 통념으로 시민단체는 다 돈이 없다 그러니 살인적인 급여도 참고 운동에 매진해라 고 말하려고 한다면 당신의 시론은 우파, 좌파를 동시에 양비해야 논리적이지 않겠소? 이상하잔소, 돈이 없는 시민단체는 좌파인 것 처럼 통념을 깔고 가는 당신의 논리가 말이오. 맹세컨데 40억짜리 참여연대 빌딩에는 정부의 돈이 들어 있질 않소. 게다가 난 당신 같은 통념이 사라졌으면 싶소. 우파나 좌파 시민단체가 그 단체에서 상근하는 아이 있는 가장에게 그 잘난 학원은 보낼 수 있을 만큼 급여를 주면서 운동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오. 그러려면 회원이 많아야 하오.
참여연대가 이제 회원이 만명이오. 만명이 만원씩 회비를 내면 한달에 1억인데 형편 껏 내는 제도가 있어서 대략 7천에서 8천 정도가 한달 회비 수입이오. 모 참여연대 홈페이지 가면 다 나오는 자료니까 확인 바라오. 당신이 후원의 밤에서 대기업의 후원금을 안받은 이유가 그동안 순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고 한 것처럼 불필요한 통밥을 예단하고 했던 일이오. 순수? 근데 법률가가 순수 라는 단어도 쓰시오? 이게 당신의 가치관에 빗댄 순수요? 아니면 통념적 순수요? "꼭 순수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뜻인 듯하다." 이런 서술형태는 또 뭐요? 아니었다는 뜻인 듯 하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라면 모를까 법률가가 이런 긴가민가형 서술어를 감히 조선일보 시론에 써도 되는 것인지 당신의 법철학적 양심과 글쓰기 실력에 묻고 싶소.
환경운동연합에도 나쁜 놈은 있기 마련이오. 참여연대에도 내가 모르는 나쁜 놈이 있을 것이오. 조선일보나 뉴라이트에는 나쁜 놈 없소? 사회에는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분포가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인 것이오. 돈을 삥쳐 먹었으면 그게 환경운동연합이던 조선일보던 변호사던 나쁜 놈, 나쁜 짓 되겠소. 이 나쁜 짓을 무슨 집시법 같은 것과 같은 맥락의 불법으로 이해해선 안되는데 벌써 당신은 그렇게 이해했으니 이것 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하오. 모든 법이 똑같은 원리로만 작동되는 것마냥 생각하는 비현실적인 법이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오. 도대체 왜 법률가들은 아직도 소크라테스 시대를 그리워하는지 모르겠오. "자금 관리와 부정에 대한 처리가 동창회만도 못한 듯하다." 당신, 동창회 안해 봤소? 대한민국 동창회에서 총무라는 놈이 동창회 통장 들고 튀는 일 비일비재하오. 부정에 대한 처리요? 에이 친구끼리 왜이래, 걍 술이나 한잔 하고 풀어... 이게 동창회 아닌감요? 뭐 좀 산뜻한 논리 없소? 초장 부터 통밥에 계속 통밥인데다가 변호사 쯤 했으면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 산전수전 다 겪어 봤을 법도 한데 허술하기 이를데가 없소.
"좌파가 주도하는 시민운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 맞은지 오래되었소. 아니 시민단체가 바라보는 사회는 언제나 위기이고 그 위기가 시민운동의 동력인데 오늘날 사회의 위기는 운동의 기폭제가 되지 못하오. 왜냐하면 시민사회가 그 위기를 통채로 감당하려 하는 패배주의에 휩싸였기 때문이라오.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투표하고 저항은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소. 시민단체의 위기는 시민사회의 위기오. 이건 일전의 학생운동에서 사용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자본과 글로벌의 문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오. 근데 무슨 유레카인양, 2000년 총선의 낙선운동에서 그걸 찾으시오? 게다가 혁혁한 성과를 냈는데 정파성과 선거법 위반으로 국민이 견제 없는 권력을 견제 하기 시작해서 좌파적 시민운동이 위기를 맞았다굽쇼? 해괴하구려, 해괴해... 지금 국민은, 아니 시민은, 아니 민중은 자신들의 사회가 어떤 위기를 맞고 있는지도 분간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오. 종부세를 내려 부자들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서민은 이에 대한 저항을 거세하고 언젠가는 나도 종부세를 내고야 말겠다는 허망한 희망으로 노동에 박차를 가하거나 로또를 산다오. 이런 사회 제도에서는 개인의 노동만으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는데도 분간을 하지 못하오. 물론, 당신 같은 신자유주의적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가난한 자의 이런 허망한 희망이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굴리며 자본에 종사하고 당신들은 그런 자본으로 자본을 굴리면 되는 아주 이상적인 사회체제에 박수를 보내겠지만 말이오. 차라리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본 이 셋중에 하나만 나왔어도 당신의 그 좌파가 주도하는 시민운동의 위기론에 논리적으로는 인정을 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오. 근데 이건 도무지 통밥을 넘어 해괴로 가고 있으니 참으로 이 나라 법률이 어떻게 되려고 하는 건지. 걱정만 생기오.
"그 시점에서 시민단체는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으로 전환했어야 했다....... 불법시위에 늘 앞장섰다. 야간의 도심을 '해방구'로 만들었던 광우병 촛불시위에도 어김없이 참가했다." 그 시점이란 2000년 총선 낙선 운동 때를 말하는 것이오?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이란 무엇이오? 광우병 촛불시위에는 수십만명, 아니 연인원으로는 수백만명의 시민이 참여 했소. 이렇게 많은 시민이 거리에서 토론하고 광우병 쇠고기 먹지 않겠다고 저항했는데 이때 시민단체가 참여하지 않으면 무엇이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이오? 당신이 혹여 해괴하게도 청계천 광장에서 비보이 공연을 주최하는 시민단체 같은 것을 설마 떠올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지성을 보호해주고 싶소. 시민단체의 운동성, 최소한 참여연대로 국한해서 보겠소. 물론 당신은 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을 것이오. 참여정부때 참여연대인사들이 청와대나 국무총리실로 많이 가지 않았느냐 모 이런 얘기. 그렇소, 당신들은 140명 갔다고 하는데 당신들이 잃어버린 10년동안 70명 정도 정부기관으로 이동 했다고 하오. 그래도 참여연대는 비판을 끊지 않았소. 예를 들어 이런 가정을 해봅시다. 민주노동당이 집권을 했다고 칩시다. 이때 참여연대인사들이 너도 나도 정부쪽으로 움직이고 민주노동당이 하는 일에 죄다 동의하고 힘실어 주는 운동만 한다고 칩시다. 그럼 참여연대는 끝이오. 시민단체가 아니오. 이런 일은 정부기관이 하는 것이지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위기를 모니터링하여 제도 개선을 운동적으로 해 나아가야 하는 시민단체의 가치는 아닌 것이오. 권력의 코드에 맞는 일을 한다면 이런 가치를 잃어 버린 것이기 때문에 참여연대는 간판을 내려야 하오. 민주노동당이 집권을 해도 권력은 권력인 것이오. 비판이 있어야 하는 법이고 그것이 시민을 위한 시민운동이 되는 것이오. 왜 뉴라이트가 시민단체가 아닌지 좀 감이 잡히는지 모르겠소.
아마도 당신이 중점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정부에서 보조금 받고 그것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광우병대책회의 활동을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고 싶은 것 아니오? 광우병대책회의에 참여한 시민단체 85곳에서 총 122억원의 정부 보조금이 그야 말로 보조되었다고 하오. 당신의 말에 의하면 그렇소.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한 시민단체는 대략 1,500개 정도 되오. 나는 이런 의문이 생기오. 왜 85곳만 받았을까? 1,500곳 전부 정보 보조금을 받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당신의 최초의 통밥과 이것에 약간의 논리 적용이 가능할 것 같소. 건강하고 민주적인 정부라면 세금으로 시민운동을 보조해야 할 책임 같은 것을 느끼리라 생각하오. 시민단체는 통념적으로 돈 없이 이념만으로 사는 사람들의 오가니제이션이 아니기 때문이오. 불법시위에 앞장서는 시민단체에 돈을 대주는 선진국은 없다고 했는데, 선진국은 시위 자체를 불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같은 뜻으로 회합을 하려면 거리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다가 그 집회에 어울리지 않는 또 다른 시민들을 분리시켜 최대한 보호하고 일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불편을 덜기 위한 방법과 집회를 보장하는 방법을 강구하지 물대포를 쏘진 않는단 말이오. 프랑스 같았으면 수십만명의 시민이 일주일만 거리에서 시위를 하면 연합노조가 자동으로 총파업을 하는 시스템이오. 그렇게 많은 시민이 모여 그만큼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고 정부는 그 소리를 성실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오. 이러한 운동에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해서 활성화 시키는 것이 선진국의 민주적인 정부의 사례이며 권력에 대한 시민의 견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동의 하는 것이 선진적 이성이란 것이오.
"정부지원사업비의 30~40%를 단체의 운영비로 전용한다는 사실은 '업계'의 상식이다." 당신의 논리가 왜 이렇게 해괴한지 보여주는 단어가 드디어 말미에 등장하오. '업계', 시민단체를 업계로 보는 당신의 조악한 인식의 한계 말이오. 그리고 무슨 사업을 하려면 그 사업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법률가라 사업은 잘 모르시나? 어쩌려나... 암튼 사업에는 인건비가 가장 많이 들고 인건비는 곧 운영비오. 30~40% 가 아니라 100% 를 써도 모자른 것이 인건비인데 시민단체 상근자들한테는 급여를 동결하고 그나마 나머지로 더 좋은 스피커, 더 좋은 프랭카드라도 써서 사업하는데 뽀대내서 관심이라도 끌려고 60~70% 를 쓰니까 사업이 되는 것이오.
"시민운동은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자체 회비로 운영되는 게 원칙이다." 아주 좋은 얘기오. 참여연대 자체 회비로만 운영되고 있소. 당신들의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도 반드시 그리해주길 바라오.
"범법자의 생활비를 세금으로 대 주는 일이 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률가라면 집시법 한가지만 운운하지 말고 헌법 같은 것도 읽어 주고, 시대 상황, 그리고 왜 그리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지 전후 사정을 다 고려하고 법을 들이 대길 바라오. 게다가 범법자의 생활비 라는데, 살인자도 국가가 제공하는 감옥에서 먹고 자고 입고 싸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소. 살인자도 그 죄에 벌을 받는 동안은 우리가 그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는 말이오. 이런게 사회요. 서로 의지하고 책임지며 홀로 외롭지 않도록 하는 사회 말이오. 내 생각엔 당신은 범법자에게 생활비를 대주는 것이 너무 아까운 것 같은데 이참에 세금을 내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이오. 게다가 그렇게 순수한 분이 변호사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소. 무죄를 추정해야 겠지만 꼭 무죄인 사람만을 골라 변호하지는 않을 것이지 않소? 그럼 그 범법자가 주는 수임료는 어떻게 순수한 마음으로 받으시는지... 그야말로 범법자가 주는 수임료로 생활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오?
아무쪼록 이 가을, 지성을 흠집내는 이성과 가치관을 키우는 독서를 권장하는 바이오.
P.S
행여 또 오해 할까봐서, 참여연대나 진보신당의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이거나 그런 입장은 아니니 호들갑 떨지는 마시오.
조선일보 시론 [시민단체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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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든지 그 사회가 방어하고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는 법이다. 우리보다 더한 정치상황을 빗대어 제사회가 그것보다 덜하니 더 참고 더 견뎌야 한다는 논리는 그럴싸 하지도 않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희망' 자체가 어려워졌으며 희망이 지닌 무궁한 범주 또한 좁아져 버렸다. 대박을 쫓고 대박만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절망은 희망보다 쉽고 더 깊어졌다.
제로섬 게임인 자본주의에서 확률적으로도 대박은 1%안에서도 이뤄지기 힘든 우연이지만 이를 쫓는 99%에게는 언제부터인가 희망보다 절망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언어가 되버렸다. 현대사회는 희망이니 절망이니 하는 관념적 단어가 디테일해진다. 예컨데, 14조원의 무역수지 흑자는 19조원의 해외펀드 손실액이 날려 버렸다는 식으로 디테일한 절망이 우리의 관념적 희망마저 날려버리는 것이다.
마치 더 견뎌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빼앗아 와야 한다. 자본주의는 제로섬 게임이다. 한국은행에서 돈을 따오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정책입안자들은 민중이 절망에 접근하는 매우 일반적인 경로를 시스템으로 깨줘야 한다. 우리는 다 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좀 더 경쟁하여 빼앗아 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책임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계몽하고 선동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제는 고소영, 강부자, 명계남으로 코미디된 정권의 도덕적 상식적 무소유를 복기하는 일도 지겹다. 어물어물 하다 국가가 바뀌었고 지속가능한 '나은 삶' 의 열망 또한 금기시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스스로 5년동안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자 하는데 더 이상 무엇을 말리고 저항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나 또한 절망에 쉽게 방점을 찍어 버리고 냉소하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도 바람은 분다. 옥탑 위에 빤스를 널던 여자가 혼잣말 한다. 오늘 빨래 잘 마르겠다고.. 문득, 서럽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러워서 살아야 하는 실존이 기가 막힐 따름이지만 집안에 묵혀 두었던 빤스를 빨아 널어 보려 한다. 나은 삶에 대한 기대는 잠시 접어 두고 서러워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말려 보자.. 참여연대 회원으로 진보신당 당원으로 말이다.

참여연대에서 강의를 한게 겨우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동시대를 살면서 언제나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그것이 무엇이냐는 개념적 논리에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전형적 담론의 방식조차 수구적인 것으로 일단 미뤄두는 사람들이 사이버 꼬뮨을 건설하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멋진 생각을 해내버린 사람들이 누구인지 두고두고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여름휴가마저 투자하고 싶게 만든다.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이 일반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들이 내는 논평의 줄거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될 수 있는 한마디 슬로건일 수도 있다.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박원순 변호사께서 만드신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라는 멋진 말이 회원카드에서 10년동안 잠자고 있었던 케이스만으로도 그동안 참여연대로 대변되는 시민단체가 정작 시민들에게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시민들의 권익을 대변해왔고, 권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딘지 감시하고 대안을 찾아내며 세계를 바꿔왔는지 알리는 일에 소홀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조중동과 같은 기득권을 가진 언론들을 통해 시민단체에 시민이 있는가? 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손쓸 수 있는 장치가 없어 멍하니 바라봐야만 하고 괜한 소주에 분통을 터트리는 것이 고작 대응이었다면 대응이었다. 굳이 대응이 필요한가라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왜 알리지 못했을까? 라는 문제가 본질적인 문제였으며 그리하여 오늘 모임의 담론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한 전략의 방식이 아닌 방법에 대한 방식은 다시금 생각해볼 꺼리다.
국내 최대의 시민단체라는 곳이 고작 만명의 회원이라는 입 벌어지는 사실은 고사하고 만명의 개별적인 회원의, 개별적인 꿈을 평등한 공간에서 내보일 수 있게 하고 공평하게 사유할 수 있는 경험의 공간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크다 못해 거대한 문제다. 여기서의 해결 방식은 일반기업들의 일반적인 홍보 방식에서 부터 출발해서는 안된다. 이를테면 기존 매체를 이용하고 매스적으로 퍼트리는 방식은 담론도 함께 꾸는 꿈도 아니다. 주입이 아닌 담론이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과 더 다양한 세계와 생각들을 공유하게 하는 공간, 즉 경험의 공간을 통해 알림과 전달을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늘 나의 주장이다. 계급적으로 응당 가져야 된다고 생각한 진보적 정당성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알게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 즉 담론의 형성 방식에서 오늘날 가장 저렴하고 파괴적인 방식은 역시 온라인이다.
진중권씨가 논객으로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가 온라인의 저급한 파괴성과 집단 권력의 저열함 때문이었겠으나, 아직도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해야 하고 현장을 지켜야 하는 신념어린 활동가들에게 온라인은 하나의 희망일 수 있다. 더 이상 모르는 사람들로 부터 자신들의 활동이 폄하되는 일이 없고, 솔직히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사회악의 존재인양 취급되는 모양을 더 이상 간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막사이사이상 정도 수상한 박원순 변호사님이나 진중권씨 정도면 모를까, 알려야 하는 문제는 너무도 시급한 사안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알려야 된다는 관념에 지나치게 편집될 필요는 없다. 주체는 있되, 주도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주도하려고 하기 시작하면 피곤해진다. 안그래도 조금씩 전진하기 조차 힘겨운 마당에 담론까지 주도하려면 매분초가 극기가 아니고서야 가능한 일도 아니다. 소통의 공간이 구체성을 띄어야 했던 과거의 소통은 피아를 확인하는 것조차 많은 시간과 이동이 필요했다. 온라인에서 진보는 널려 있다. 그들 스스로 서로 알게 하면 된다. 거기에서 참여연대의 주도는 마쳐야 한다. 어차피 서로를 확인한 그들이 만들어갈 세상이고 그들이 함께 꾸는 꿈은 참여연대가 고민한 세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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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선아빠 2008/10/04 01:28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드렁큰타이거 라는 팀을 생각나게 하면서도 그 촌철살인의 힘과 글쓰기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드렁크스타님의 블로그네요. 참여연대 통블로그를 통해 가끔 들어왔지만, 이재교의 글에 대한 비판글을 이제야 읽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드렁큰스타님의 글쓰기같은 재미는 없지만, 어쩌다 제 블로그도 구경해주세요.
DrunkenSTAR 2008/10/08 13:17 편집/삭제 댓글 주소
안녕하세요, 준선아빠님~
블로그 잘 보고 있습니다..
노숙자 2009/02/14 01:51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이재교 교수님 아니 하수인 님 오늘 토론회 보니까 장난 아닙니다~^^
돈은 얼마나 받고 일하는지 아님 당신도 또 같은 사람 입니까 아님 ~개 돼지 같은 백정 입니까
연설 정말 쫄라 같아여ㅠㅠ
당신 자식들 많이 당하게 되겠어 이재교님 당신을 야바위협회 회장 으로 모십니다~^^
스포피아 2009/04/01 18:0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이재교!
아직 어린 양반이 돈맛과 권력맛만 알아가지고는...
보수쪽에도 얼마나 인물이 없으면 이런 사람을 논객으로 보내는지.....
이사람이 직접 철거를 당해보고, 광주학살에서 처자식과 형제를 잃어보고, 돈없어 자식을
팽개칠수 밖에 없는 대다수 한국서민들의 입장에 놓여 있어봐야 하는데....
어쩌다 판사퇴임후 수임비리로 구속까지 됐던 분이 세상을 바로 잡겠다고 하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