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던 세상

2008/07/31 02:20 / 생각
이제 그 고대하고 기대하던 세상이 왔습니다. 자사고, 국제고, 외고에 몰입할 교육의 패러다임이 왔습니다. 전교조가 무서워 공정택에 한표 찍어 준 서민들, 그나마 남은 중산층들은 좋겠습니다. 희망이 생겼으니까요, 개구창에 쳐 박아도 시원치 않은 싸가지 자식을 싸가지 있게 만들기 보다는 자사고며 국제고에 보내면 되는 기틀? 따위를 마련했으니 말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강남구에서 영어몰입식 교육시키듯 몰입해서 몰아 부치니까 강북에 있는 모든 구에서 이겨도 궁극의 승리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 확! 깨네요. 솔직히 이 순간, 촛불 들고 개지랄 떨던 유모차며 계몽도 안되는 글이나 씨부렁 대며 뒷구녕으로 지 살궁리나 하던 진보 지식인들이나 모조리 병신육갑이란 생각 밖에 안듭니다. 염병알~ 촛불이 문화네 어쩌네 하며 광장에 나와 쇼를 해대는 것이 지도부의 존재와 조율보다 더 나은 21세기형 시위라며 입바른 개소리를 하던 청와대 쥐새끼와 같은 부류들은 다 어디 갔나 묻고 싶군요. 그러니까 결국 촛불은 엿 바꿔먹어도 되는 쇼였다, 이게 성립되는 거죠. 생각도 없고 할 것도 없는 대다수의 심심한 놈, 딱히 할 것 없는 놈, 마누라에 떠 밀린 놈들이 촛불 들고 가족이며 친구 단위로 모여 뒤에서 쇼하고 쇼보고 앞에선 하염 없이 잡혀 가던 현실을 단박에 보여 주는 리얼리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현실이지 않냐며 자괴하던 자들이 마치 월드컵 응원하듯 광장에 나와 아무런 각성 없이 놀고 돌아 갔다는 것 밖에 달리 설명할 꺼리가 없습니다. 그것을 짐짓 시민의 힘인양, 온갖 계층의 참여인 양 떠벌리던 사람들이 존재 합니다. 그 인간들 이번 기회에 좆 잡고 집구석에서 반성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심심하지도 않고 할 것도 있고 마누라가 돈이나 벌어 오라고 떠미는 수요일에 이상한 놈 처럼 투표소를 찾아 촛불의 의미 따위를 되새길 인간이 없었다는 겁니다. 결코 각성이 안되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촛불이고 민주주의고 말하지도 행위할 수도 없는 거세적 인간들이었다는 결론을 아니 도달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고대하고 기대한 세상이 오게 된겁니다. 젠장, 소주도 받아줄 위장이며 소장, 대장이 있어야 하는 건데, 이 사회를 같이 사는 인간들의 정말 이해 못할 계급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받아 줄 배알이 없습니다. 분명 이런 배알 좋은 놈들 있을 겁니다. 촛불 들었던 사람들에 대해 지나친 비하네, 지나친 일반화네 하며 솜씨 좋게 포장하는 씨방새들의 주둥아리가 있을 겁니다. 이게 촛불 들었다는 사람들의 한계! 되겠다는 생각 입니다. 째고 꼬매고 지 좋(좆)대로 양자 비판하고 균형 좋게 살아가며 가진 것도 없으면서 무식한 병신들이 기대하던 그런 세상이 왔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2008/07/31 02:20 2008/07/31 02:20
DrunkenSTAR 이 작성.

혁명, 소통, 쟁취

2008/06/11 20:46 / 생각

대열에서 빠져 나와 인사동 근처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모처럼 한낮 열기가 뜨거웠다. 그 온도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늙어 버린 보수단체집회 참석자들이 걱정 됐다. 스트로폼도 쇠파이프로 바꿔버리는 언론 때문에 행여 햇빛에 쓰러져도 촛불에 데였다고 보도 할지도 모를 일이기에 그랬다.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초등학생 얼굴이 촛불과 한낮의 열기를 식히는 아스팔트 위에서 벌겋게 달아 올라 있다. 측은했다. 한낮 열기를 견디던 노인들은 모두 그늘로 숨고 그 틈을 아이들이 메우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은 명백한 시위다. 하지만 생때 같은 가족들을 동원해서 산책 삼아 거리로 나온 엄마, 아빠가 태반인 이 거리의 시위에 명백한 시위라는 수식은 얼핏 가당치 않아 보인다. 오늘도 아침이슬을 부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하지만 명백한 이란 수식을 잃어 버린 우리는 낡은 뼈조각들이 또각또각 내는 소리를 경청했다. 해장국에 소주를 말아 먹으며 뉴스를 봤다. 조금전 대책위로 부터 70만 추산이란 문자를 받았으나 경찰 추산 8만이란 보도가 나왔다. 피식, 야유가 일었다. 70만이나 8만이나 도대체 얼마나 되는 규모인지 알 수가 없다. 세종로가 순식간에 사람들로 차 버리고 아무렇게나 걸어 다니는 흔치 않은 일은 이 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잠시 사람의 끝을 확인하러 떠난 일행이 이제 남대문에서 끝을 봤다고 연락이 왔다.  세종로사거리에서 남대문까지 사람이 들어 차면 8만일까, 70만일까. 언론은 양측의 추산에 반땅을 해버린다. 대략 40만. 설에 의하면 경찰은 축구장 크기에 사람이 얼마나 들어 가는지 평균치를 잡고 축구장 몇개 정도의 규모인지 파악해서 인원을 추산한다고 한다. 여기에 인도에 있는 사람들은 제외된다. 인도에 있는 사람은 시위자가 아니라 행인이기에. 하지만 정작 궁금한 축구장에 얼마나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느냐는 경찰 기밀인듯 아무도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70만에서 8만까지, 일단 시위를 시작했으면 세싸움이다. 요소요소에서 벌어지는 자유발언, 문화제를 형태한 공연이 6.10 항쟁의 대동단결 스크럼과 결사행진의 그것과는 달라진 모습이지만 세싸움은 여전하다. 사실 민주주의에는 숫자가 필요하지 않다. 게다가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거부하는 의식, 다수의 횡포가 아닌 다수의 양해가 이뤄지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이 거리에서 펼쳐지는 민주주의라는 스팩타클은 여전히 70만, 8만의 치열한 세싸움을 벌인다. 이 세싸움이 필요한 이유는 이 거리의 민주주의는 요소요소에서 저들마다 펼치는 자유발언과 경청 그리고 공연에 있을 뿐, 이것의 전체는 혁명이란 이름으로 마음속에 불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혁명을 시작했으면 숫자는 대단히 중요하다. 소수가 혁명을 일으키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아빠를 따라가던 그 측은한 아이는 집에 돌아 갔을까. 아이를 데리고 대열의 맨 앞에 서거나 밤 늦도록 시위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이건 우리 마음속에 이미 혁명이다. 아이가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존재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명박산성' 이 관광인파 5만 정도는 끌어 모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가족과 연인과 이 역사의 스팩타클에 동참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혁명을 이룰 수 없다. 이 거리가 가족끼리 나와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되어 어떤 점진적인 혁명의 세불림에 일조 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마음속에 혁명일지라도 이미 거리는 격동적인 시위의 현장이다. 아이는 어른들의 이러한 저항을 통해 더 나은 먹거리로 건강해지고 더 재미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해줘야 하는 것이지 아이 마저 8만에서 70만까지 추산되는 세력에 포함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해장국을 먹고 다시 대열로 돌아 가는 일행에서 빠져 나왔다. 다행인 것은 이명박 정부가 입에 달고 사는 '섬기는 정부' 와 '소통' 은 거짓이라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증거를 삼으려 해도 되지 않았으나 어제 세종로에 쌓은 콘테이너 박스 퍼포먼스로 관념적인 거짓은 명백한 실체가 되었다. 하지만 정부가 그 담을 넘어 국민의 요구를 경청하지 않고 불필요한 내각 총사퇴 같은 동문서답으로 '이 정도까지 한다' 며 국민을 설득하는 것처럼 거리에 모인 사람들도 그 담을 넘어 '들으라' 며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가슴이 뜨거웠지만 혁명을 할 만큼 진지하거나 절실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고 더 많은 읽을 거리와 정보를 원하고 있지만 아이의 손을 잡은 아빠와 연인의 손을 잡은 선남선녀는 집으로 돌아간 뒤다. 우리는 이 거리가 항시적으로 놀이터가 되기를 바라고 모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하물며 청와대로 전진해 가야 하는 물음에도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언론은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났다는 것에 포커스 되기 시작한다. 아직 쟁취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쟁취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 가는 것은 아닐까. 벌써 33차 촛불집회다. 이 장관을 그저 스팩타클로 남기느냐 아니면 촛불이 원하는 궁극의 이유를 쟁취할 수 있을지... 이제 마음속의 혁명을 밖으로 내 던져 그 울림을 경청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2008/06/11 20:46 2008/06/11 20:46
DrunkenSTAR 이 작성.

아침에 출근하다보니 무심한 담벼락에 관할 경찰서에서 부쳐 놓은 푯말이 보인다. "경찰은 항상 국민의 편에서 생각합니다" 경찰은 담벼락에 팻말 뿐만 아니라 무심한 도시 곳곳에 국민을 향한 갖가지 애정을 표시한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영화배우 이준기씨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촛불문화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올려 놓았나 보다. 이를 보고 어느 현직 경찰관이 반론을 한 기사를 보았다. 요지는 '촛불문화제는 더 이상 현행법상 평화로운 집회가 아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해산 시킬 수 밖에 없다' 는 것이다. 짐짓 이준기씨한테 어른으로써 충고와 타이름까지 덧부치는 글을 보니 오늘 아침 무심한 담벼락에 붙어 있던 경찰의 푯말의 생각났다. 역시, 립싱크인 것을 확인시켜 줄 것까진 없었는데 말이다.

현직 경찰관에게 현행법 좀 무시해주고 마음속의 얘기를 들어 달라고 관념적인 요청을 할 이유는 없다. 그 또한 추후도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한발도 전진하지 않는 호두껍질의 단단함을 천명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위법행위자는 경찰의 연행에 순순히 동행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현직 경찰관의 비애는 그래서 강제적일 수 밖에 없는 연행의 절차를 '강제적' 이었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니까 절대 불법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찰의 행위는 '항상' 정당하기에 그렇다는 거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러하니 촛불집회에는 비보이가 나와 랩에 맞춰 공연하고 이를 구경하고 돌아가면 평화롭고 아름답다고 한다. 그는 촛불집회를 그저그런 '하이 서울 패스티발'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상황이 아주 평화롭지 않고 게다가 집시법 14조에 의거 주최자는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의 질서를 문란케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15명의 전의경이 시위현장에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쓰러지고 머리 터지고 방패에 찍힌 촛불집회참가자들 수를 취합해 들이 대고 부등식을 하자는 얘기인가? 누가 더 얻어 터졌는지, 그런 것을 상호 견주어 보자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보호 할 사람에게 맞는 것과 보호 받을 줄 알았던 사람에게 맞은 것의 차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다. 글세, 경찰과 국민의 차이가 어떤 차이인지 경찰임용교육과정엔 없는 것일까?

도로점거만을 준법의 준거로 삼는 현직 경찰관의 말은 역시 현직은 현직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왜 이렇게 얄굿게 들릴까. 이는 오래도록 우리 사회의 무분별한 준법의식에 또아리를 튼 대표적인 인식의 한계와 같다. 군사독재를 종식시킬 민주화의 과정에도 이 무단 거리 점거의 준법의식은 경찰의 주된 자세였다. 민주화건 뭐건 광장과 거리를 지키는 경찰의 모습은 민주화 이후에도 똑 같은 경찰의 모토다. 왜 민주화가 필요한지, 왜 저들은 저런 주장을 하는지, 경찰의 수동적이며 관성적인 거리지키기의 강제적 연행방식을 알면서도 왜 저들은 거리로 나오는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무지한 인식의 한계가 오늘 서울 거리에서 시민과 경찰이 대치할 수 밖에 없는 방점인 것이다. 민주화를 이루는 것도 미친소를 먹지 않는 것도 교통 보다 중요하지 않고 그런 주장이 있다면 조용히 집구석에서 평화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반민주적인 경찰들이 짐짓 충고어린 말투로 가증스러운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대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한계를 양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주장을 자율적으로 주장해본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왜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들은 사용자들의 영업을 방해하다가 경찰에 강제로 연행될까? 왜 사람들은 경찰이 수십명을 연행했다는 보도를 접했는데도 다음날 거리에 나와 자발적으로 닭장차에 올라타고 '나를 연행하라' 며 스스로를 고발할까? 마음속의 울림에 귀기울이고 그것을 옮다고 믿고, 그렇지 아니하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것을 표현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런 사람들의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 같은 거리에서도 누군가는 우리 모두 미친소를 먹지 않아야 된다고 외치는데 누군가는 재미나게 공연 감상하다가 거리로 나오기만 하면 폭력적으로 연행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해시킬 수도 없다. 정말 불가피하게 거리로 나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자신의 자유권을 내던지면서까지 공공을 위해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의 주장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그런 주장을 집에서 소리 높여 평화롭게 외치면 국가는 그것을 들어주었던가? 현직 경찰관인 당신이 경찰이 될 수 있었고 당신이 가정에서 민주적이며 사람답게 살아 가며 당신의 가족 모두가 반드시 건강하게 살아야만 하는 고귀한 일이 오직 당신이 어느날 고시학원에서 밤낮으로 공부한 경찰 시험 때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집회, 결사, 해야 할 것이 있으면 해야 하고 그것을 방해할 어떠한 공권력이나 외부 압력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이 나라의 헌법이고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당당히 거부하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의 마땅한 권리이며 존엄인데다가 그것이 1987년부터 이 나라가 작동한 방식이다. 자신들도 연행될 수 있고 얼마간 자유를 박탈당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생계에 지장을 받을 것인데도 왜 거리에 나와 저항하는가? 이것은 우리가 민주화를 이뤘던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과 1987년 6월항쟁의 정신이 그러했기 때문이고 누가 이해시켜주지 않아도 그것을 이어 받을 수 밖에 없는 시민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잡아 가라, 잡아 가지 말라고 구차하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경찰들이 한가롭게 거리점거를 운운할 때 시민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학습하고 그에 따라 자율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20년전 항쟁의 그것보다 더한 시대정신을 지닌 시민들이 뭉치고 있는데 이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한번이라도 그런 이유를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것이다. 현직 경찰관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경찰관을 해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설프게 집시법 2개 조항을 들먹이며 가당치도 않는 충고를 늘어 놓기 전에 말이다.

이준기씨에게 띄우는 현직 경찰관의 글
2008/05/29 14:53 2008/05/29 14:53
DrunkenSTAR 이 작성.

나의 투쟁

2008/05/28 15:30 / 생각
몇 달 전부터 내가 사는 아파트는 간판을 바꿔다느라 분주하다. 입주 당시의 아파트 브랜드를 새로운 아파트 브랜드로 바꾸는 작업이다. 이일을 하는데 입주자대표회의와 조합은 입주민들에게 부당한 동의서를 요구했다. 신규 브랜드로 교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간판 변경과 기타 도색작업 등이 필요한데 이에 필요한 비용을 평수별로 분담금을 부과한 것이다. 이 분담금을 내지 않을시는 소유재산에 법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협박도 일삼는다. 나는 이런 독소 조항이 있는 동의서를 거부했다. 하지만 주민 80%는 자신들의 재산이 브랜드를 바꿔달아 자산가치가 증대할 것이란 희망으로 동의서에 서명을 했고 서둘러 분담금을 입금하고 있다. 독소 조항도 독소 조항이지만 아파트 간판만 바꾼다고 그 브랜드의 상업적 가치가 그대로 흡수되는 것이 아닐진대 너도나도 포장을 바꾸는데 혈안이다. 누군가는 손쉽게 자기집을 구입했을지는 몰라도 대게의 사람들은 지리한 현실과 꿈 같은 꿈으로 어렵게 자기 집 한칸을 마련한다. 이마저도 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사람축에 든다. 그런 집은 브랜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식구가 안전하게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갑작스럽게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오래도록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서 중요하다. 그러한 공간에 건설회사의 상업적 브랜드는 그 안의 고귀한 삶에 어떠한 간섭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아파트가 집이 아니라 상업적 가치의 브랜드화 되면서 집이라는 인간적 의미를 쉽게 팔아 먹어 버린다. 그 집에 제식구가 브랜드와 관계 없이 행복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식은 브랜드로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 브랜드의 개명은 이 아파트를 사고자 하는 다른 수요자에 어필하여 조금이라도 더 높은 가치를 받아 챙기기 위한 수단이란 점에서 간판을 바꾸고 도색을 한다고 해서 거기에 사는 사람의 삶이 윤택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80%의 이런 선량한 상업적 식민들이 있기에 그것을 등에 업은 조합이나 대표회의는 그것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소수자들에게 온갖 악랄한 횡포를 일삼는다. 이권만을 쫒는 조합에는 이성이나 양심, 인간의 영혼따위는 있을 수 없다. 오로지 다수결을 민주주의로 믿는 무식한 폭력만이 존재한다. 나는 걱정이다, 저런 아비와 어미에게서 자란 아이의 장래가 결코 인간적이지 않을 것이기에 두렵다. 이미 이 상업적 세대는 계몽이나 반성이 불가능하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가난한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남들이 해놓은 것을 받아 먹으며 기생하며 이권을 챙긴 사회암적 세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식을 믿는 사람들이 80% 이며, 우리나라의 법철학은 다수결 중심적이다. 즉, 반대해도 할 수 없다. 다수가 맞다고 하면 맞는 것이고 다수가 하자고 하면 따를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우리나라의 법은 애초에 약자나 소수자를 보호할 의지나 근거가 없는 강자의 철학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하다 보니 80% 정도의 상업적 동의는 법적으로 유의미하다. 법적으로 말이다. 결코 수긍할 수 없는 법적 근거로서 말이다.

나는 이 80%에 주목한다. 이 80%는 우리 사회의 도처에 존재하는 80% 다. 이 80%는 사회전체적으로 약자이면서 미래에 강자가 되고 싶은 헛된 희망에 투표하는 사람들의 분포와 같다. 제 아이가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는 것이 안타깝지만, 자신의 아이가 똑똑하다고 믿고 싶고 게다가 MB식 성공까지 보장 받게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고 짐짓 현실직시한 양 행동하는 사람들의 분포다. 자신들의 욕망이 아이를 위해서는 인간적인 것이 되는 부모 됨됨이의 왜곡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분포다.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정책을 격렬하게 비난하면서도 이명박의 자사고 정책이나 서열화 따위는 궁극적으로 인정하는, 즉 자신의 아이는 똑똑하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런 학교가 필요하다고 믿는 이명박 지지자들의 분포다. 이제 이런 80% 와 홀로 수개월동안 대치하고 나니 너무 피곤하다. 이 80%는 분담금을 내지 않는 소수가 자신들의 분담금으로 도색한 브랜드의 가치를 분담 없이 취하려 한다고 난리인 분포다. 그래서 법적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 선다. 법은 어차피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종사하는 교양 없는 자본 식민들의 편에서 이해 못할 용어들을 쏟아 낼 것이다. 우리 사회를 좀 더 신중히 대하려 해도 그런 이성이 받아 들여 질 수 있는 곳인지 매우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방금 전 강남경찰서로 어제 촛불문화제에서 강제연행된 후배를 면회 갔다 왔다. 면회를 거부 당했지만, 먼저 면회한 사람들의 전언으로는 '48시간 자고 나올테니 걱정말라' 는 것이다. 미국산쇠고기 수입 반대해서 혼자서만 그거 안먹겠다고 거리에 나서는 것이라 생각하는 몰지각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고 싶지만, 우리 사회의 80%는 20%의 희생으로 나중에 생길 이권을 취하거나 이롭게 바뀐 사회현상을 공기처럼 거저 마실 사람들이다. 나는 이 후배와 또 강제로 자발적으로 연행당한 사람들의 활동만큼 동참을 하지 못했고, 그런 부실한 오지랖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거저 마실 사람으로 남아서는 안된다. 최소한 이 사회를 같이 살아 갈 사람이라면 이 사람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마저도 하지 못하면 짐짓 양식있는 양 행동하며 브랜드만 갈아 치우는 일에 열중인 이명박 지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교양으로 아이를 키워 세상으로 내보내면 내 욕망의 성공신화가 써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기는 죽어도 싫다.
2008/05/28 15:30 2008/05/28 15:30
DrunkenSTAR 이 작성.

아침이슬

2008/05/27 13:08 / 생각

이렇게 된 이상,
다시 아침이슬이다.
아가야, 이제 아빠도 촛불을 들어야 겠다.
아가야, 울지마, 아침에 새 세상과 함께 돌아 올테니..

2008/05/27 13:08 2008/05/27 13:08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