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Bilateral Investment Treaty)는 내, 외국인을 구별하지 않고 투자에 관해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자유무역협정 이다. 전세계적으로 30여국이 협정에 조인하고 있는데, 한국과 미국은 1960년에 조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8년전, 미국 최대의 영화 배급사인 UIP 는 한국의 스크린 쿼터제가 지나치게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조치라며 한미투자협정을 빌어 시비를 걸어 왔다. 당시, 한미투자협정에 관해 스크린쿼터는 논의 대상은 아니었다.
이에, 정부는 미국의 스크린쿼터 폐지 압력을 받아 들일 것처럼 물렁한 자세를 보였고, 안성기, 문성근, 박중훈 등은 서둘러 거리 시위를 감행했다. 특히, 명계남등은 삭발까지 하는 결의를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케인즈의 아들이었던 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리카르도의 비교우위의 법칙만으로 스크린 쿼터제를 사수하자는 영화인들의 공허한 목소리가 어떻게 씁쓸한지 설명한 적이 있다.(당시 여론은 스크린 쿼터제 폐지 왠말이냐? 가 주류였다.)
오늘은 다른 생각을 가진 뇌가 다른 관점으로 씁쓸한 담즙을 내보려고 한다.


1. 스크린 쿼터, 반드시 보호 받아야 한다.


8년전 스크린 쿼터의 보호는 문화의 보호, 정체성의 보호로 비춰졌다. 대중은 그렇게 믿었고, 기껏해야 20%를 조금 넘는 한국영화의 점유율 또한 대중의 측은함에 쉽게 기댈 수 있었다. 이름만으로도 긴장되는 안성기, 박중훈 등이 거리에 나서고 머리까지 깎는 퍼포먼스를 함으로써 대중을 집단 광기로 몰기에 충분한 조건이 됐다.(결과적으로 광기였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문화 보호란 명제에 설득력이 있었다.)

당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에 대한 나의 지배적 아포리즘은 바스티야의 짧은 편지에 있었다.


『 양초, 양초심지, 심지절단기, 칸델라, 촛대, 가로등, 소등기 등의 제조업자들과 등유, 수지, 송진, 알코올 등의 생산업자 그리고 기타 모든 조명 관련업자들로 부터...


고결하신 국회의원님께,


저희들은 저희에 비해 지나치리만큼 월등한 조건에서 빛을 생산해 내는 외부 경쟁자 때문에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저가와 고품질로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습니다. 그 경쟁자는 다름 아닌, 바로 바로...... 태양올시다.
나으리들께서 이 불평등을 시정할 법을 하나 통과시켜 주셨으면 하고 저희들은 탄원 하는 바입니다. 낮에는 국민들이 모든 창문과 지붕창, 채광창, 곁문, 커튼, 블라인드 등을 닫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이렇게 자연광을 차단하고 인공광의 수요를 창출해 내면 프랑스 국내에 번창하지 않을 산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양초의 원료인 유지방은 소와 양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프랑스 전역의 낙농업이 번성할 것이고... 선택을 하시되 논리적으로 하십시오, 국내 산업을 보호한답시고 거의 거저나 다름없이 값싼 외국산 철강, 곡물, 직물 등의 수입은 막으면서 참말로 거저인 태양광은 막지 않고 통과시킨다면 이 얼마나 비논리적인 처사입니까?』

[1840년대 프랑스 정부가 수입관세를 올려 국내산업에 보호무역을 취하자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 Frederic Bastiat 가 쓴 편지.]


바스티아의 아포리즘에 기대어 생각해본다면, 스크린쿼터야 말로 자유경제론자들에게는 거품 물고 덤빌 투쟁의 대상이 된다. 진보와 참여의 양의 탈을 쓴 정부가 헌신적으로 기대는 사상 역시, 1840년대 바스티아의 편지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스크린쿼터제는 보호되어져야 한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정부의 탈(그 탈을 쓴 경제정책가들)은 스크린 쿼터를 보호함으로써 알량한 충무로 종사자들의 고용은 보장되겠지만,(물론, 국민들은 우리문화의 다양한 섭취가 우연적으로 보장될 수도 있고) 그로인해 그의 어머니는 재래 시장에서 100% 가격이 오른 콩나물 가격을 흥정조차 못하게 될 것이라는 세계화적인 논리를 펼 테니까 말이다.


그러한 논리는 결국, 현 정부가 서두마다 꺼내는 양극화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를테면, 칠레와의 FTA 이후에 핸드폰은 많이 팔았지만, 서민들의 생활에 있어서 질적 향상은 기껏해야 칠레산 포도주가 피부에 와 닿을 뿐이다. 핸드폰을 판 부와 기득권은 어디로 갔는가? 그 부의 창출은 삼성의 기득권을 수성하는데 오로지 쓰여지고 있지 않은가? 정부는 여전히 양극화라며 감세, 증세를 넘나들며 투명한 소득 정보 제공자인 서민들을 노릴 뿐이다. 실제로는 콩나물 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소득이 줄어 든 것이다.(어디로 노동의 가치가 빨려 가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리카르도의 비교우위의 법칙은 세계화에 있어서 적절한 조언은 아니다. 기득권을 버리고 상대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취하자는 고전적인 경제 논리는 도리어 부와 기득권은 분배되지 않고 견고하게 통합 되는데 기여할 뿐이다.(고전적 자유방임보다 더욱 견고한 자본주의로)

분명, 스크린 쿼터의 축소는 강한 자의 기득권(다국적 배급사, 멀티플랙스 영화관)에 선택적인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줄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 부는 분배 되지 않는다.(간단히, 7천원짜리를 6천5백원으로 분배 하지도 않을 것이다.)온갖 다른 분야의 기득권과 결탁하여 견고하게 지켜질 테고, 진보의 탈을 쓴 정부는 해소를 위해 투명한 지갑을 찾는 것이 지금이고 나중이고 쉬워 보일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7천원짜리(언제 1만원이 되고 2만원이 될지 모른다) 문화 기득권에 즐거워 했던 순진한 서민들은 6천원이 된 소득에 식겁할 것이다.
스크린 쿼터의 보호는, 우리는 보호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의 다른 말이다. 문화나, 경제나, 정체성이나 할 것 없이...


2. 태도와 연대의 문제이다.


신지식인 1호인 심형래 감독은 "못해서 안하는게 아니라, 안하니까 못하는 것 아닙니까?" 라 했다. '안하니까' 는 의지 있는 마음 가짐에서 비롯된 행위의 여부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모르는데 어떻게 합니까? 모르는데 어떻게 CG 를 이용한 스팩타클한 화면을 만들 수 있습니까? 그런 기술을 배우려면 다양한 신제품과 접촉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틀리지 않다. 8년전 나의 생각이다.


행위와 의지는 별개의 문제다. 마찬가지로 행위와 태도는 그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다는 말은 얼핏 프로페셔널의 전유물처럼 멋지게 들린다. 의지 그리고 행위 이것만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은 천둥벌거숭이의 공허한 날개짓과 같다.


스크린 쿼터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지는 영화의 현장에 종사하며 신성한 노동을 바치는 열정(그 열정이 카메라 보조 보다 안성기가 더 높다고 제단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공평한 가치를 부여하자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공평은 10 에서 5와 5로 나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급진 자유주의자들의 계산법이다.)
8년전처럼 이름만 들어도 긴장되는 배우들이(영화인이라는 타이틀은 현장의 모든 열정들의 총합이어야 한다) 거리로 뛰어 나왔다. 그들이 거대 세력 즉, 눈앞에 보이는 정부와 앞으로 보일 다국적 배급사들에 반동하는 투쟁에 대해서 그들의 노동은 값비싼 노동이었지 않은가 라며 비아냥 거릴 생각은 없다.(노동은 똑같이 신성하다)


8년전처럼 배우들은 스크린쿼터는 문화 정체성의 최소한의 장치라는 주장으로 설득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유통의 문제란다. 얼핏 문화와 유통이 톱니가 맞지 않는 말처럼 느껴지지만, 경로로 바꿔 말하면 그럴싸하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문화를 섭취하는 경로가 언제부터 오로지 영화 뿐이었을까? 정체성이라면 더더욱 패러독스가 심각하다. 언제부터 배우들이 국민들의 문화 정체성을 깊이 고려하고 염려해 주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문화 정체성은 아직 멀었단 말인가? 도무지 갈피가 없다.


내용 있는 태도의 새우가 자본 있는 절대독점의 고래에 반동하는 투쟁의 형국이 아니라, 기득권 있는 상어와 자본 있는 유통의 고래가 싸우는 이상한 형국이 되어버려, 람보를 만들면 우리는 웰컴투 동막골을 만들자는 황당한 비난마저 받게 하고 있다. 태도 없는 의지의 집단들이 주위의 헐어 버린 노동에 대해서는 립싱크를 하고 문화 정체성을 앞세운 기득권 보호에는 소리 높여 영원한 광대이고 싶다니...


"영화는 매력적이며 아름답다, 때문에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
이처럼 그들의 소리는 외부의 환경이 바뀌면 언제든지 태도가 바뀔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들의 주장이 좀 더 관계의 숭고함(인간대 인간, 인간대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면,
"나는 영화를 존경과 사랑으로 대한다, 왜냐하면 영화는 그것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라고 바뀌지 않았을까?
글세, 그들은 공길이고 싶을지 모르나 영화를 보는 태도는 연산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싶다.


주위의 열정의 총합은 개별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억압의 객체는 아니다.
우리의 문화 정체성(거대 자본과 유통의 테마에서 정체성이 몇 퍼센트나 영화에 반영되는지 알 수 없지만)을 지키기 위해 배우들은 걸핏하면 제작 시스템을 얘기한다. 8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서 잘 먹었다는 얘기는 우리에게는 보편적으로 감동이지만, 카메라 보조에 보조도 감동일지는 잘 모르겠다.
걸핏하면 공인의 입장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립싱크를 동원하여 대중을 집단적인 엑스터시 상태로 몰고 가면서, 가까운 주위의 열정의 총합에 대해서 어떤 립싱크를 구사하였는지 먼저 돌이켜 봐야 하지 않겠는가?
8년전이나 지금이나 박중훈은 열악한 제작 시스템 그대로 두고 보지 않겠단다. 그가 두고 보지 않았을 때, 박수를 치겠다. 부도덕한 경로로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 최민식(파이란 이후, 나의 존경의 반열에 오른 배우)의 말이다. 부도덕 = 불법의 잣대이다. 아직, 법과 도덕을 깊이 사유해보지 않은 공인의 말이다.


인간적 연대를 찾아 볼 수 없는 스크린 쿼터 사수자들의 생각이다. 시스템은 더 두고 볼 것이고, 부도덕하지 않게 시스템의 노드들을 클러스트하게 억압할 것이다. 그래도 그건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이 없고, 영화 발전을 위해서 무수한 배우들이 그렇게 해왔다고 전통을 들먹일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영화속에서 남들이 세워준 아우라로 활동하는 공인일 뿐임을 인정한 격이다.
가까운 주위, 또는 공인이기에 범인 보다 멀리 볼 수 있는 현명한 눈으로 사회의 열정의 총합이 받는 억압에 대해서 공인의 열정을 연대한 적이 있는가?
그 연대야 말로 진정성 있는 우리 인간적 문화 정체성의 회복이다. 느그들이 말하는 태도와 연대 없는 스크린 쿼터가 그것을 지켜주지는 않는다. 먼저, 태도와 연대를 가지고 그 다음에 문화 정체성을 지키겠다고 나서라, 문화 정체성은 느그들만 지키나...
2006/02/02 20:52 2006/02/02 20:52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함부로 뚫린 입

2006/01/25 01:57 / 생각
대체로, 인격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임에도, 자신이 온전한 자신으로 공동체속에서 존재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부조리하다 생각하는 것에 대해 그렇다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이 무의식중에 게다가 자연히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인격 때문이라며 단정 짓는 인간들이 많은 사회일 수록 곰팡내 날 만큼 썩은 사회이다.


대체로 이런 인간들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누리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인권의 투명한 가치가 자신의 찬란한 인격 때문이며, 온 사회에 자연스럽게 퍼져, 누구도 그럴 수 밖에 없는 보편성이 된다고 흥분한다.


어느 옛날, 또는 아주 고전에 어느 한명, 또는 많은 사람들이 투명해야만 하는 가치에 숭고하게 내 던진 피와 생명의 연대로 인해 지금 네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한다. 연대는 고사하고 후대에 대한 공동체적 사명 같은 것도 없다.


대체로 이런 인간들은, 지율스님과 황우석 교수가 같은 생명을 논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비정규직의 노동은 정규직의 노동과 다르다고 폄하하고, 비전향 장기수는 감옥에 있다는 것만으로 그 신념이 자신들의 썩은 양심에 비해 범죄스럽다고 호도하고, 그동안 그릇되게 박힌 가치관에 빗대어 잘못은 이에는 이로 대항하고 잘못에 그저 혈육으로 그저 친구로 그저 한민족으로 연루됐다는 것 만으로 칼을 내 뱉는데 서슴치 않는, 뚫린 입이라고 닥치지 않는다.


그런 인간들에게도 공평하게 돌아간 인권을 거두지 않는 것은,(하느님이, 그리고 우리를 보살펴 연대하여 쓰러져간 영혼들이) 그들의 그릇된 후대에게도 공평하게 누리게 해줘야 하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2006/01/25 01:57 2006/01/25 01:57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