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미 육군대장
마크 W.클라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원수
김 일 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팽 덕 희
포로교환문제로 교착상태 있던 한국전쟁 정전회담은 아이젠하워 취임, 스탈린의 사망으로 포로교환문제에 돌파구를 열고 1953년 7월27일에 판문점에서 마크 W.클라크, 김일성, 팽덕희가 서명한 한국 전쟁의 정전에 관한 협정을 조인합니다. 당시 남한의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불사하며 정전협정 조인을 거부합니다. 이승만의 이런 몽니와 북진통일론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통해 미국으로 부터 한미상호조약을 이끌어내기도 하였습니다만, 이승만의 서명거부로 인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끈 '3자, 또는 4자간 종전선언 추진' 에서 그 당사자에 대한 논란은 사실 중국이 아니라 남한의 소외 내지는 남한을 염두에 둔 것 입니다.
창비논평을 통해 이남주 교수가 주장한 '3자 혹은 4자의 종전선언 추진, 중국이 섭섭할 일만은 아니다' 는 마치 남한은 당연히 종전선언 대상자로 규정하고 중국에 대한 외교적 건설적 사고 전환을 요구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인용한 중국 관계자의 발언, 즉 "유감 이상의 것"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식의 발언은 중국정부의 입장으로 받아들이기에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보도를 근거로 중국정부의 태도를 판단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자 혹은 4자"라는 표현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과 관련한 논의에서 중국의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인정한 측면도 있기 때문에, 냉정하게 판단하면 중국이 섭섭해할 일만은 아니다.]
국가간 계약에 준하는 협정은 개인간 또는 법인간 계약의 조항과 단어보다 높은 단계의 법적 근거를 가집니다. 흔히 신의와 성실로 계약을 이행한다는 정성적 조항이 들어가는 개인, 또는 법인간 계약서에도 계약서를 날인하지 않은 당사자가 감내라 밤내라 훈수 둘 수 없는 것은 상식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거와 대상의 상위 개념이 존재하는 국가간 협정에 당사자로서 법적 지위가 없는 3자가 협정의 선언적 효력상실을 논하는 것은 유아적이지 않는가라는 점 입니다. 감성적으로는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는 북한의 신의와 남과 북이 한 테이블에서 서명한 남북공동성명의 당사자라는 것 만으로 북한이 남한을 종전선언 당사자로 인정했고, 국제사회도 이의가 없을 것이란 발상은 그야말로 추측과 낭만적 접근에 불과한 것 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남주 교수의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적 중국 역할은 그 자체가 감정적입니다. 논평에 의하면 논의와 선언을 따로 분리하여 궁극적으로 포럼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 단계임을 주장하시는데 논의와 선언의 당사자가 바뀐 국제회의나 사적회의를 본 적이 없습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할 포럼의 목적이 종전선언이라면 4자 였을 경우 남한이 현실적 당사자가 될 수 있겠지만, 3자 였을 경우 남한이 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습니다. 물론, 사실상의 정전위원회가 북한의 도발로 그 기능을 상실했고 1994년 중국도 정전위원회에서 무단 철수한 것을 들어 3자일 때 중국을 종전선언 당사자에서 제외하는 것도 무의미 합니다. 정치적 행동과 정치적 선언을 통해 텍스트를 쓰고 지우는 행위는 염연히 다른 것이지요. 이 문제는 너무나도 명백한 텍스트적 역사여서 이견이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한미FTA 나 NLL 에 관한 논란도 마찬가지 입니다. 먼저 텍스트로 쓰여져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나서 유권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유권적 해석도 직접 당사자간 합의나 사회적으로 공인할 수 있는 높은 단계의 민주주의적 협의체에서나 가능한 일이지요. 한미FTA 에 개성공단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으면 개성공단 생산품은 메이드 인 코리아로 수출될 수 없는 것 입니다. 이것을 두고 포함되어 있네 없네 라며 논란을 할 깜이 안된다는 겁니다. NLL 은 육지의 군사분계선에 준하는 영토선이라는 단어로 규정한 협의문이 없다면 모두가 자의적 해석일 뿐 입니다. 이것은 잘못 정해진 총론을 합리화하기 위한 어떤 각론도 논리적이지 않아 난독증을 유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전동화가 아닌 다음에야 텍스트로 쓰여졌고 그것을 증명한 당사자의 서명까지 존재하는 역사를 그럴리가 없거나, 그럴수는 없다는 감성적인 태도로 접근하게 되면 우격다짐만 늘어나기 마련 입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남주 교수가 주장한 것 처럼 정전협정이나 정전위원회보다 더 높은 정치적 합의체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를 일 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호한 주장을 통해 당연히 남한이 종전선언의 당사자라고 믿게 되는 민중이 많아 진다는 것 입니다. 꽃다운 젊은이들로 구성된 남한의 군대가 남한의 사령관이나 국군 최고 통수권자의 이름으로 평시에 작전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도 불과 몇년 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전시에 남한의 젊은이들은 미국에 의해 움직여 집니다. 남한의 젊은이니까 당연히 우리 민족이나 국가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명령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것이 바로 낭만적인 현실시각 입니다. 지식인이라면 명백한 역사를 논해야지 정치적으로 해석 가능한 것들을 유념해서 역사를 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남주 교수의 3자 혹은 4자의 종전선언 추진, 중국이 섭섭할 일만은 아니다 는 주장은 유감스럽습니다. 우리는 정전협정의 대상자가 아니고 아직 까진 종전선언을 할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습니다.
검색어 '평화'에 대한 2 개의 검색 결과
자이툰 부대가 파병된지 2년 됐나요?
2004년 8월3일 전세기를 통해 파병이 시작되었으니 꼭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처음 파병될 때는 말도 많고 언론과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지만, 현재 우리는 자이툰 부대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이툰 부대 홈페이지를 통해서 화장실 개보수 공사를 지원했고, 월드컵 응원을 했다는 활동 정도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CNN 에서 이라크 관련 소식과 미군의 애국적(?) 활약상(현재는 이라크 여성을 납치,강간하고 살해한 두 병사에 대한 보도가 Top Story 로 보도되고 있다.)에 대해서 매일 보도되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고작해야 우리 언론은 파병 교대자 신고식 같은 것을 보도하면서 '서방님 잘 다녀오세요' 라든가, 꼭지점 댄스를 추는 장병들을 보여주며 저 모습이 전쟁터에 파병되는 병사와 가족들에 대한 예의인지, 전쟁터에 젊은 병사들을 보내는 국민들에게 알릴 언론의 보도 태도인지 헛갈릴 지경입니다. 정부의 보도 통제 이후에 이라크와 쿠웨이트에는 대한민국 국적의 기자가 한명도 없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23명의 젊은이가 독일에 파견되어 치른 월드컵에는 수십명의 기자들이 동행했다고 합니다. 언론이 모든 세계를 커버하고 모든 사건을 뉴스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언론이 어떤 현안을 기사로 채택하게 되는 저널리즘적 기준이 현재 무엇인지간에,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내몰린 3,000여명의 젊은이들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특히 월드컵에 비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없으니 이라크 전쟁의 사실을 외신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테고, 더욱이 자이툰 부대의 소식은 일반 언론기관에서 함구로 일관하니 정부홍보기관의 우리나라만세식 보도 밖에는 접할 수 없습니다. 자연히 전쟁터에 그 나라의 젊은이들을 파병해 놓고 이렇게 온 국민이 태평한 나라는 아마도 UN 가입국 중 대~한민국 밖에는 없을 겁니다. 정부의 주도와 언론의 허약 체질이 전쟁의 실상을 방치하고 제나라 군대의 젊은이들 마저 관심의 영역에서 애써 외면하고 있으니 이보다 한심스러운게 또 있을까요?
2004년 8월3일 전세기를 통해 파병이 시작되었으니 꼭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처음 파병될 때는 말도 많고 언론과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지만, 현재 우리는 자이툰 부대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이툰 부대 홈페이지를 통해서 화장실 개보수 공사를 지원했고, 월드컵 응원을 했다는 활동 정도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CNN 에서 이라크 관련 소식과 미군의 애국적(?) 활약상(현재는 이라크 여성을 납치,강간하고 살해한 두 병사에 대한 보도가 Top Story 로 보도되고 있다.)에 대해서 매일 보도되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고작해야 우리 언론은 파병 교대자 신고식 같은 것을 보도하면서 '서방님 잘 다녀오세요' 라든가, 꼭지점 댄스를 추는 장병들을 보여주며 저 모습이 전쟁터에 파병되는 병사와 가족들에 대한 예의인지, 전쟁터에 젊은 병사들을 보내는 국민들에게 알릴 언론의 보도 태도인지 헛갈릴 지경입니다. 정부의 보도 통제 이후에 이라크와 쿠웨이트에는 대한민국 국적의 기자가 한명도 없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23명의 젊은이가 독일에 파견되어 치른 월드컵에는 수십명의 기자들이 동행했다고 합니다. 언론이 모든 세계를 커버하고 모든 사건을 뉴스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언론이 어떤 현안을 기사로 채택하게 되는 저널리즘적 기준이 현재 무엇인지간에,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내몰린 3,000여명의 젊은이들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특히 월드컵에 비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없으니 이라크 전쟁의 사실을 외신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테고, 더욱이 자이툰 부대의 소식은 일반 언론기관에서 함구로 일관하니 정부홍보기관의 우리나라만세식 보도 밖에는 접할 수 없습니다. 자연히 전쟁터에 그 나라의 젊은이들을 파병해 놓고 이렇게 온 국민이 태평한 나라는 아마도 UN 가입국 중 대~한민국 밖에는 없을 겁니다. 정부의 주도와 언론의 허약 체질이 전쟁의 실상을 방치하고 제나라 군대의 젊은이들 마저 관심의 영역에서 애써 외면하고 있으니 이보다 한심스러운게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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