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의 고민

2006/08/25 03:38 / 생각

참여연대에서 강의를 한게 겨우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동시대를 살면서 언제나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그것이 무엇이냐는 개념적 논리에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전형적 담론의 방식조차 수구적인 것으로 일단 미뤄두는 사람들이 사이버 꼬뮨을 건설하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멋진 생각을 해내버린 사람들이 누구인지 두고두고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여름휴가마저 투자하고 싶게 만든다.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이 일반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들이 내는 논평의 줄거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될 수 있는 한마디 슬로건일 수도 있다.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박원순 변호사께서 만드신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라는 멋진 말이 회원카드에서 10년동안 잠자고 있었던 케이스만으로도 그동안 참여연대로 대변되는 시민단체가 정작 시민들에게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시민들의 권익을 대변해왔고, 권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딘지 감시하고 대안을 찾아내며 세계를 바꿔왔는지 알리는 일에 소홀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조중동과 같은 기득권을 가진 언론들을 통해 시민단체에 시민이 있는가? 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손쓸 수 있는 장치가 없어 멍하니 바라봐야만 하고 괜한 소주에 분통을 터트리는 것이 고작 대응이었다면 대응이었다. 굳이 대응이 필요한가라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왜 알리지 못했을까? 라는 문제가 본질적인 문제였으며 그리하여 오늘 모임의 담론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한 전략의 방식이 아닌 방법에 대한 방식은 다시금 생각해볼 꺼리다.

국내 최대의 시민단체라는 곳이 고작 만명의 회원이라는 입 벌어지는 사실은 고사하고 만명의 개별적인 회원의, 개별적인 꿈을 평등한 공간에서 내보일 수 있게 하고 공평하게 사유할 수 있는 경험의 공간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크다 못해 거대한 문제다. 여기서의 해결 방식은 일반기업들의 일반적인 홍보 방식에서 부터 출발해서는 안된다. 이를테면 기존 매체를 이용하고 매스적으로 퍼트리는 방식은 담론도 함께 꾸는 꿈도 아니다. 주입이 아닌 담론이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과 더 다양한 세계와 생각들을 공유하게 하는 공간, 즉 경험의 공간을 통해 알림과 전달을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늘 나의 주장이다. 계급적으로 응당 가져야 된다고 생각한 진보적 정당성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알게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 즉 담론의 형성 방식에서 오늘날 가장 저렴하고 파괴적인 방식은 역시 온라인이다.

진중권씨가 논객으로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가 온라인의 저급한 파괴성과 집단 권력의 저열함 때문이었겠으나, 아직도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해야 하고 현장을 지켜야 하는 신념어린 활동가들에게 온라인은 하나의 희망일 수 있다. 더 이상 모르는 사람들로 부터 자신들의 활동이 폄하되는 일이 없고, 솔직히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사회악의 존재인양 취급되는 모양을 더 이상 간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막사이사이상 정도 수상한 박원순 변호사님이나 진중권씨 정도면 모를까, 알려야 하는 문제는 너무도 시급한 사안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알려야 된다는 관념에 지나치게 편집될 필요는 없다. 주체는 있되, 주도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주도하려고 하기 시작하면 피곤해진다. 안그래도 조금씩 전진하기 조차 힘겨운 마당에 담론까지 주도하려면 매분초가 극기가 아니고서야 가능한 일도 아니다. 소통의 공간이 구체성을 띄어야 했던 과거의 소통은 피아를 확인하는 것조차 많은 시간과 이동이 필요했다. 온라인에서 진보는 널려 있다. 그들 스스로 서로 알게 하면 된다. 거기에서 참여연대의 주도는 마쳐야 한다. 어차피 서로를 확인한 그들이 만들어갈 세상이고 그들이 함께 꾸는 꿈은 참여연대가 고민한 세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06/08/25 03:38 2006/08/25 03:38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미시담론의 역습

2006/06/20 22:04 / 생각
거대담론의 효용성이 거대담론이 가진 자체적 가치로 부터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거대담론의 효용성에 평가절하를 단정하진 않지만, 거대담론이 삶의 한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적 체계인 법 또는 제도, 국제사회적 체제인 이념과 협정에 근거 하는 일반적 상식에 의해서 반드시 하향식 영향을 준다고 볼 수는 없다. 공생할 수 없어 충돌하는 한미 FTA 의 저지와 찬성, 동북아 균형자론과 미군기지의 전략적 유연성, 생태와 개발, 노동의 신성함과 자본의 신성함 등의 현재적 거대담론들이 오로지 하향식으로 삶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즉시 미시담론은 스스로 절제의 길을 걷게 된다. 무엇이든지 뭉둥그려 받아 들이도록 훈련시킨 권력집단과 그에 편승한 언론이 주범이겠지만, 뭉둥그려 받아 들일 준비를 마친 대중들이 미시담론을 중단하고 거대담론의 정치적 신념이나 통계적 허구에 휘둘린다면 이 또한 종범이란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종범들의 노예 의식은 그 심각성이 이미 도를 넘었지만, 대체로 나타나는 현상은 두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로 피해 의식 또는 열등 의식, 100분 토론에 나오는 지식인들이 현학적 수사로 현안을 갈기갈기 분해하여 부위별로 이름을 정하는 의식을 보며 질려 버리는 피해 의식은 그나마 애교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따로 공부 할 취미도 없는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이 책이라도 사봐야 한다는 계몽근본주의로 구속시키자는 말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우유 구멍을 밀고 들어와 있는 신문을 펼치고 '액면이 Fact' 라는 고정관념도 모자라 팩트가 아닌 가정에 역사까지 소급하고 적용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작태다. 분리 수거 하시기도 힘든데 스스로 사절을 권유해야 마땅한데, 100분 토론의 현안까지 만이라도 알아야 하는 열등 의식은 그러지도 못하게 한다. 하지만, '액면이 Fact' 다는 말도 안되는 의식이야 말로 근본적인 피해 의식 이다. 이러한 '의심 없는 흡수' 의 상태가 매몰이다. 이러한 상태의 개인들은 대게 '코끼리가 춤을 출 때, 춤을 춘다.'

둘째로 타자적 자아 의식, 보고 배운다는 가부장적 전통에 의해 제자를 보고 배우지 못하고 토고를 보고 배우지 못하는 팽배한 강박 관념은 거대함을 지향한다. 가부장적 형태는 자아의 형성 시기부터 순혈의 관계에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역시 애교라고 하더라도, 자아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에 부터 자아가 지향하는 바가 제대로된 가부장적이었을 때, 그 의식은 오로지 의식, 즉 '거대 지향적 오로지 의식' 이 된다. 이러한 거대한 타자를 향하는 자아는 내가 속해 있는 어떤 거대함이 끊임 없고 성실하게 자신을 보호하고, 거대함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과 동격화 시키는데 능통해진다. 이러한 능통함은 민족주의를 가르는데 대단히 엄격하게 사용되곤 하는데, 자신의 순혈적 민족보다 거대함이 지향하는 민족이 앞서고 언제든지 순혈 민족을 이반시키는 행위 또한 거대함이 거대했을 때 더욱 더 능동적이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거대 지향적 의식이 최근 가장 잘못 받아 들인 유행어가 세계화이다. 세계화가 시작되는 지점이 우리 라면 우리가 향하는 지향점이 세계이며 방방곡곡인가? 세계화는 세계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포장지 이름이 아니란 상식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각종 사회이념 서적들을 봤는가 여부를 떠나, 세계화가 지향하는 단순한 지점을 살펴보면 간단히 마무리 된다. 세계화가 트리니나드 토바고나 우크라이나도 살펴보는가? 오직 미국이 세계화이다. 이쯤에서 향후 20년쯤후에 유행 될 '우주화' 에 있어서 미국이 그 거대함을 유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미국이 점령한 안드로메다 USA42 혹성이 곧 우주화의 정점이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세계화가 꼭 방사형일 필요는 없다는 재정경제부 고위관료 같은 말풍선은 없기를 바란다.'

이러한 미시담론을 절제하는 의식이 없다면, 거대담론을 그대로 충돌시킬 이유가 없다. 불행한 것은 권력의 습성이고 미시담론이 닮지 말아야 되는 감정이 이른바 관료주의이고 보면, 여전히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의식은 패러다임이다. 거대담론을 충돌시키지 않고 종속되지도 않기 위해서 교과서적인 해답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그것이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전환은 저항을 수반하지만, 세계가 지금까지의 세계로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돈과 시간을 팔아 세상을 싸돌아 다니는 것과 다른 경험, 그것이 패러다임의 변화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퇴근 후에 촛불이라도 들 수 있고,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서명이라도 한다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보는 신발을 신은 것이다. 그 역할에 맞게 우리는 세상을 천천히 바꿀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미시담론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 결코 이상주의가 아니다.  
2006/06/20 22:04 2006/06/20 22:04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Hundertwasser

2005/05/04 01:10 / 관심/페인팅
화사한듯, 찬란한듯 하지만 서울의 봄은 도처에 모순 투성이다. 본래의 색을 내는 물질은 찾아 볼 수 없다. 햇빛 아래 발가벗고 서 있어도 내 그림자는 검지 않다. 무엇하나 생명의 세계가 아닌 굴절된 현대의 구축, 누구도 서울을 상대로 그림을 그리거나 동화를 꿈꾸지 않는다. 빈틈없는 공학과 엄숙한 조형으로 서울에선 다른 곳에서 그려온 감성의 색과 다른 곳에서 복원된 동화를 전시만 할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불쾌한 이성만으로 조립된 도시에서 오로지 행복이란 야수적인 왜곡으로만 완성될 수 있다. 세계를 표현하지 못하고 세상을 세계안에 넣어 광포하게 왜곡할수록 행복해지는 것, 이 도시에서 보통으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겸 화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 바서 Friedensreich Hundertwasser 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오스트리아 빈의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Hundertwasser House)다. 빈 시내 헤츠가세역 근처에 있는 이 연립주택은 삭막하고 특징이나 국적 없는 현대주택을 지양하고, 현대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주거건축물을 목표로 하여 과거 왕이 살던 위엄 있는 왕궁과 같은 대중의 집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특히 강렬한 색채와 서로 다른 모양의 창틀, 둥근 탑, 곡선으로 이루어진 복도 등이 조화를 이루며, 스카이라인이 신과 사람을 맺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생각 아래 중요시 하였다. 훈데르트 바서는 반지의 제왕에서 호비튼 마을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Hundertwasser House
1983-86 Vienna

인간이 세계의 진실이 아니라 세상의 진실로만 살아 가는 것은 얼마나 미덥지 않은가? 자를 대고 그린 선이 아니라 크레용으로 그린 가건축물은 진실이 아니라며 도태시켜버리는 파쇼의 도시에서 우리는, 훈데르트 바서의 호기심을 이미지로 저장하여 킨코스나 링코에 가서 확대 프린트하여 액자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조금은 디오니소스에 위로가 된다.


The 30 Day Fax Picture 1994
Mixed media (thirty A4 size FAXes)
151 x 130 cm Vienna

훈데르트를 반문명주의자, 생태주의자라고 하지만 그는 사람이 보통으로 자신의 세계를 꿈꾸고 표현하는 것을 지향했던 사람이다. 세계의 한계가 세상으로 인해 지워지지 않았음을 형식으로 보여준 사람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그것은 단지 꿈일 뿐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 [훈데르트 바서]
훈데르트 바서는 그 자체가 미궁의 도시였고 아날로그 였다.


Kunsthaus Wien - Blue Version
오스트리아 빈의 쿤스트하우스(Kunsthaus=개인화랑)


Last changed on 01/28/05. This album contains 2 items.
Island of Lost Desire. Mixed technique (1975), 59 x 48 cm.
Private Collection


Les Emanations - The Emanations 1999
Mixed Media : watercolor, egg tempera, oil, sheets of gold and silver
SIZE: h: 112 x w: 140 cm / h: 44.1 x w: 55.1 in


http://www.hundertwasserhaus.at/1st.html


2005/05/04 01:10 2005/05/04 01:10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