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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20 혁명가를 떠올리며 by DrunkenSTAR

혁명가를 떠올리며

2008/02/20 16:13 / 인물

라울, 체와 함께 멕시코를 넘어 쿠바 해변에 도착한 피델은 80명의 게릴라 전사들과 함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전복시키고 마침내 쿠바 혁명을 이뤄냈다. 쿠바 혁명으로 사회주의체제에 접어 든 쿠바에 안주하지 않은 체는 콩고와 볼리비아 등지에서 반정부 게릴라 활동을 계속하다 1967년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그로부터 40여년 후 9명의 미국 대통령을 당해내며 갈등했던 체의 동지, 피델 카스트로가 국가 평의회 의장직을 내놓으면서 49년전 덥수룩한 수염으로 기세등등하게 쿠바 해변에 상륙했던 혁명가들은 비로서 완전히 죽거나 늙어 버린 듯 하다.

미국의 정치선전으로 인해 북한과 다를바 없는 빨갱이의 나라로 취급 받아 온 쿠바가 알려진 것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통한 쿠바(라틴) 음악과 1990년대 부터 일기 시작한 혁명가 체 의 자본주의적 이미지 소비가 급속히 번지면서 부터다. 깡패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화장기 가득한 트럼펫, 콘트라베이스의 리듬은 고사하고서라도 굳게 다문 입술에서 질기게 피워 오르는 시거는 체 의 상징이 되었다. 체 는 곧바로 맥주 받침, 티셔츠, 관광지 좌판의 기념품에 찍혀 패션으로 입혀졌다 벗겨지고 젖었다가 푸석푸석 말려지는 이미지가 되었다. 이런 이미지는 체 의 평전(붉은 양장에 덮힌)을 끼고 다니며 유아적인 반사회적 행동을 짐짓 혁명인양 착각하며 겉멋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게 만들었다. 진심으로 체 의 파르티잔적 투쟁과 뼛속까지 사무친 민족해방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이러한 체 의 이미지화는 팝아트가 상업적으로 대중에게 스며든 맥락과 일치한다. 어쨌든 체 는 멋있지만 미국의 선전처럼 '과격한 사회주의 게릴라'에 불과하고 그의 동지로 여겨지는 카스트로가 지배하는(그것도 독재로)쿠바는 자유세계의 위협으로 여겨진다. 한마디로 깡패가 득실대는 소굴로 알려졌다.  

우리가 체 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맥주병에 깔린 체 를 우연히 발견했을 때 뿐이다. 어느 누구도 체 의 리얼리티와 불가능한 꿈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어떤 부조리와 조응시키려 하지 않는다. 쿠바는 더욱 심해서 케네디의 지략(?)으로 봉쇄 조치된 나라에서 고작해야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나라로 변신되었을 뿐이다. 최근 마이클 무어의 영화"식코"를 통해 잠시 등장하는 쿠바의 의료체계가 아픈 미국인들을 무상으로 치료해주는 호혜적 장면마저도 쿠바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장면에서 세계 최강의 나라에서 병들어 치료 받지 못해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원수 지간의 나라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는다고 하여 어이가 없다거나 쿠바 사람들이 이러한 무상 의료체계와 라틴 음악에 맞춰 모두 행복한 것도 아니다. 미국이나 쿠바나 그것이 어느 한쪽의 척도로 최고가 되고 최악이 되는 구도일지라도, 인간의 행복은 개인적일 수밖에 없고 최고에서도 행복하지 않으며 최악에서도 행복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 리얼리티 아닐까. 따라서 이제 피델이 물러 난다고 하여 쿠바 민중이 해방 된 것도 행복 시작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입장과 미디어의 서구적 메가폰에 귀기울여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정신적 사상적 귀머거리야 말로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피델이 체 의 영웅적 이미지만큼 상업적으로 전파될 소지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쿠바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서구 언론들은 하나 같이 늙고 장출혈로 병든 피델의 무기력한 현재 모습을 부각시킨다. BBC 마저도 피델의 인생이란 포토슬라이드를 통해 젊은 시절 체 의 카리스마를 능가하던 피델의 모습은 슬그머니 뒤로 숨기고 있다. 이것은 피델의 리얼리티가 체 만큼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둘만한 상품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가 거둔 어떠한 성취나 불행이 정치적으로 왜곡되거나 감춰질 징조이다. 이러한 징조는 지금까지 세기를 풍미한 파르티잔의 모든 저항 역사에서 확인 된다. 확실히 제국주의와 파트레스에 과격하게 저항한 파르티잔 중에 체 만큼 유명해진 사람도, 서구 사회의 일부 지식인(장 폴 샤르트르 같은)에게 짐짓 존경을 받는 혁명가도 없을 것이다. 이는 체 가 저항한 식민지제국주의가 자본제국주의로 변하면서 이념과 혁명도 이미지로 소비될 수 있고 자본처럼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미디어나 시장이 그것을 상품으로서 가치를 부여해줄 때 뿐이다. 피델은 이러한 틀에서 벗어난다. 이미 그는 노병으로 죽지 않고 금방이라도 벽에 똥칠할 분위기로 취급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그의 혁명 정신 따위는 안중에 없다, 다만 병들고 늙은 이미지가 싫기 때문이다.

피델 카스트로의 역사적 뒤안길로 쿠바의 해방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강경했던 카스트로의 권력을 이양 받은 라울의 실용주의가 미국과 소통할 것이라는 섣부른 예단을 통해 드디어 쿠바가 자유 세계의 세계화적 품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부류들은 오로지 다국적 기업들과 투기 자본 뿐이다. 피델은 곧 소비될 수 있는 이미지인지 시장에서 확인되고 약탈의 대상인지 폐기처분 될 대상인지 가려질 것이다.(사실 아직 활발한 저항 활동 중인 사파티스타의 마르코스도 언제 이런 자본의 처분 대상이 될지 알 수 없다.) 멀리 있는 체 나 피델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의 저항 정신으로 남아 있어야 할 우리들의 파르티잔에게도 영웅적은 아닐지라도 무엇에 그토록 저항하고 죽어 사라졌는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번도 조명되지 못한 우리 시대의 혁명가 "김산"과 "이현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다.

2008/02/20 16:13 2008/02/20 16:13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