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의 기초적인 이론서조차 남북한의 대립에 대해 함구하거나 뜨거운 감자만을 소통할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반공주의는 안된다. 상기하자 육이오, 표어 교육을 구사하던 유신시대에 교실 곳곳에 급훈과 나란히 걸리던 이 말이 어처구니 없게도 조선일보의 반공주의자들에게 재단 되어져서도 안된다. 작금의 현안에서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겠다는 북한의 움직임에 언제적 반공주의로 즉석 연결되어서도 안된다. 상기하자 육이오, 전쟁은 세상이 두쪽나도, 제아무리 신의 이름이라고 해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임을 상기해야 하지, 반공으로 대변되는 대적의 개념으로 상기해서는 안된다.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육이오가 일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민족 통일의 염원으로 김일성이 일으킨 통일전쟁의 민족주의적 관점은 김일성이 주도하여 일으켰기 때문일 뿐이며, 이승만이 미군정과 협잡하여 부정하고 부폐하게 권력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 정략정리에 몰두하지만 않았다면 그의 민족주의도 김일성과 같은 민족염원에 마땅히 복무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가롭게 민족주의의 정념만을 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육이오를 순진하게 김일성이 일으킨 민족전쟁 내지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맞짱으로 상기하는 것이 사실일지 모르나 역사는 아니다. 최소한 육이오를 역사로 상기하려면, 응당 1945년 모스크바 3상회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카이로에서 조선의 식민지 해방을 결의한 승전국들이 왜 굳이 모스크바에 다시 모여 조선, 중국(내정간섭에 대한),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주권행사에 대해 논의를 해야 했고 왜 그 중 조선만 신탁통치에 의해 주권을 담보 잡혀야 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대체로 쏘련이 찬탁, 미국이 반탁했다는 어용역사의 가르침을 굳이 스딸린의 고백으로 소급 기억할 필요는 없겠다. 조선의 독립과 민주주의적 통일정부 수립에 미국이 훼방을 놓기 시작한 이유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시도한 도입기적 정책이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판단은 남지나반도의 미군이 조속히 조선으로 이동하여 주둔함으로써 주둔군 지위(식민지 지위)를 얻으려는 것이었으나, 2차대전을 마친 미군이 조선까지 이동하기 위해 정비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쏘련이 대륙의 육상경로를 통해 대규모 군대가 주둔하는 시간보다 턱 없이 모자르게 된다. 루즈벨트를 비롯한 백악관 관료들은 황급히 카이로 선언을 보완하는 3국외상 회의를 제안하고 조선의 국민성이 아직은 독립국가를 이룰 자격이 없다는 점을 중점 부각, 쏘미공위를 조치하여 5~10년간 탁치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된 이유, 전후 식민지 패권정책의 확장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쏘미공위를 통해 통일정부를 위한 민주주의적 선거를 할 의사는 애초에 있지 않았다. 끄나불인 이승만 동원하여 반탁운동에 간접지원토록 하고 공위 1차 협상이 결렬되자마나 1946년말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을 설치하면서 적극적 찬탁으로 돌아서게 된다. 여전히 반탁을 주장하며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민족주의 인사들과 좌익 세력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이승만의 특기는 이때부터 잘 발휘되기 시작한다. 1947년 본격적인 우익의 좌익 탄압이 이루어지고 2차 협상이 결렬되자 더 이상 조선의 문제는 쏘미공회가 아닌 UN 으로 넘어가게 된다. 미군정이 남조선에 그들의 제도를 펼쳐 놓고 그 제도를 이끌어 갈 세력이 우파의 뿌리인 한국민주당임을 선언함으로써 그동안 반민족주의자, 매국노로 찍혔던 낙인을 벗게 된다. 좌익을 불법화하고 박헌영,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민공화국(후 남로당)은 불법단체로 법제화시켜 탄압하기에 이른다. 지금까지 여러 인사와 조직들을 거쳐 현재까지 확고한 반공주의와 미국지향적 사대주의를 신념하는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상기하자 육이오, 강정구 교수의 통일전쟁의 시각은 실은 김일성이 일으켰기 때문이지, 이승만이라도 민족염원에 조금이라도 기대어 있었다면 그도 같은 방법을 활용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의 관심이 미군정의 의도와 반대세력의 숙청에만 있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우파의 거두 조선생처럼 우파통일전쟁을 조장하는 듯한 뉘앙스는 절대 아니다. 전쟁은 어떤 신념으로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인간 행위이다. 반공주의자들이 흔히 착각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 이다. 전쟁이 나더라도 적화가 아니라 右화 여야 된다는 착각, 그로인해 미군은 핵무기를 남한에 배치해도 되고 북한은 안되는 일방적 사고방식, 더 나아가 북한에 의한 적화전쟁의 전쟁을 지지하지도 현재 북한의 체제를 이상향인양 추구하지도 않는 않는 진보세력(그들은 좌파라고 하는)들을 마치 김정일의 괴뢰세력으로 매도하고 국가보안법으로 매장시키려는 시도들은 스스로 부르짓는 자유? 자유라는 의미를 다시금 상기해야 할 것이다. 해방전후 우파인 그들이 처음부터 민족주의자 였는지, 민족의 염원을 헤아릴 줄 알았던 무리였는지 따위들을 증명해보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육이오로 상기해야 할 점은 바로 그런 점과 전쟁의 참상이다.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자, 현재 전쟁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키를 누가 쥐고 있으며 그 키를 꽂고 돌리는데 우리의 주권적 자세가 마땅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키를 가진 자의 의도에 순응하고 있는지.. 생명에 관계된 명백한 일들이 벌어져도 반공타령만 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이고 무엇때문인지.. 어려운 조합이 아니다.
육이오를 순진하게 김일성이 일으킨 민족전쟁 내지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맞짱으로 상기하는 것이 사실일지 모르나 역사는 아니다. 최소한 육이오를 역사로 상기하려면, 응당 1945년 모스크바 3상회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카이로에서 조선의 식민지 해방을 결의한 승전국들이 왜 굳이 모스크바에 다시 모여 조선, 중국(내정간섭에 대한),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주권행사에 대해 논의를 해야 했고 왜 그 중 조선만 신탁통치에 의해 주권을 담보 잡혀야 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대체로 쏘련이 찬탁, 미국이 반탁했다는 어용역사의 가르침을 굳이 스딸린의 고백으로 소급 기억할 필요는 없겠다. 조선의 독립과 민주주의적 통일정부 수립에 미국이 훼방을 놓기 시작한 이유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시도한 도입기적 정책이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판단은 남지나반도의 미군이 조속히 조선으로 이동하여 주둔함으로써 주둔군 지위(식민지 지위)를 얻으려는 것이었으나, 2차대전을 마친 미군이 조선까지 이동하기 위해 정비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쏘련이 대륙의 육상경로를 통해 대규모 군대가 주둔하는 시간보다 턱 없이 모자르게 된다. 루즈벨트를 비롯한 백악관 관료들은 황급히 카이로 선언을 보완하는 3국외상 회의를 제안하고 조선의 국민성이 아직은 독립국가를 이룰 자격이 없다는 점을 중점 부각, 쏘미공위를 조치하여 5~10년간 탁치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된 이유, 전후 식민지 패권정책의 확장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쏘미공위를 통해 통일정부를 위한 민주주의적 선거를 할 의사는 애초에 있지 않았다. 끄나불인 이승만 동원하여 반탁운동에 간접지원토록 하고 공위 1차 협상이 결렬되자마나 1946년말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을 설치하면서 적극적 찬탁으로 돌아서게 된다. 여전히 반탁을 주장하며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민족주의 인사들과 좌익 세력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이승만의 특기는 이때부터 잘 발휘되기 시작한다. 1947년 본격적인 우익의 좌익 탄압이 이루어지고 2차 협상이 결렬되자 더 이상 조선의 문제는 쏘미공회가 아닌 UN 으로 넘어가게 된다. 미군정이 남조선에 그들의 제도를 펼쳐 놓고 그 제도를 이끌어 갈 세력이 우파의 뿌리인 한국민주당임을 선언함으로써 그동안 반민족주의자, 매국노로 찍혔던 낙인을 벗게 된다. 좌익을 불법화하고 박헌영,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민공화국(후 남로당)은 불법단체로 법제화시켜 탄압하기에 이른다. 지금까지 여러 인사와 조직들을 거쳐 현재까지 확고한 반공주의와 미국지향적 사대주의를 신념하는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상기하자 육이오, 강정구 교수의 통일전쟁의 시각은 실은 김일성이 일으켰기 때문이지, 이승만이라도 민족염원에 조금이라도 기대어 있었다면 그도 같은 방법을 활용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의 관심이 미군정의 의도와 반대세력의 숙청에만 있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우파의 거두 조선생처럼 우파통일전쟁을 조장하는 듯한 뉘앙스는 절대 아니다. 전쟁은 어떤 신념으로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인간 행위이다. 반공주의자들이 흔히 착각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 이다. 전쟁이 나더라도 적화가 아니라 右화 여야 된다는 착각, 그로인해 미군은 핵무기를 남한에 배치해도 되고 북한은 안되는 일방적 사고방식, 더 나아가 북한에 의한 적화전쟁의 전쟁을 지지하지도 현재 북한의 체제를 이상향인양 추구하지도 않는 않는 진보세력(그들은 좌파라고 하는)들을 마치 김정일의 괴뢰세력으로 매도하고 국가보안법으로 매장시키려는 시도들은 스스로 부르짓는 자유? 자유라는 의미를 다시금 상기해야 할 것이다. 해방전후 우파인 그들이 처음부터 민족주의자 였는지, 민족의 염원을 헤아릴 줄 알았던 무리였는지 따위들을 증명해보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육이오로 상기해야 할 점은 바로 그런 점과 전쟁의 참상이다.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자, 현재 전쟁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키를 누가 쥐고 있으며 그 키를 꽂고 돌리는데 우리의 주권적 자세가 마땅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키를 가진 자의 의도에 순응하고 있는지.. 생명에 관계된 명백한 일들이 벌어져도 반공타령만 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이고 무엇때문인지.. 어려운 조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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