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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15 마그리뜨와 피카소 by DrunkenSTAR
스스로 본인의 그림에 상징이 없고, 어떠한 의미도 감추고 있지 않다고 말한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자 마그리뜨의 그림 앞에 서면 정작 '무슨 의미일까' 자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현실을 창조하는 데는 과거의 일에 철저히 관심을 끊는 방법이 있다. 보이는 것을 믿고(믿는다고 생각하고), 현실의 실제적 사물을 자각하는 것은 과거의 현상을 미메시스 하는 행위일 뿐 창조의 행위는 아니다. 눈에 대한 적응력이 진리 보다 우위에 있는 현실주의적인 우리들은, 과거를 모방한 현재의 믿음에 해석을 달리하거나 새로운 언어로 수정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사물이 주는 교훈에 충실하기만 해도 상식적인 사람으로 오늘날 대접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게의 사람들은 사물을 고전적으로 이해하고 언어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한다. 이러한 경향은 개성이나 초전도적인 유행 때문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만 보고, 일단 믿어 보고 보이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는 믿음과 합리화의 황홀경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러한 부류의 관심은 전통에 있기 때문에 미적 관심 보다는 예측 될 수 있는 의미 관심에 더 민감하다. 앞과 뒤가 없고, 안과 밖도 없는데다가 심지어는 새와 잎이 한몸인 마그리뜨의 그림에서 전통의 반응은 대체로 희안함이거나 괴리일 것이다. 애써 아는체를 해보아도 작품과 나 사이에 좀처럼 괴리감이 가까워지지 않을 때 현실과 소외된 감정을 가지게 된다. 작품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데, 그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현실주의는 고통스럽다. 그래서 일까? 마그리뜨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며 칼리그램을 한다. 온통 이치에 맞지 않고 직관되지 않는 현실속에 존재하면서도 그런 존재자를 만나면 반갑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한계를 구원하기 위해 마그리뜨가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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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결혼, 1926
캔버스에 유채
139.5 x 105.5cm
어떤 머리틀을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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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1964-65
캔버스에 유채
41 x 33cm
더비 해트도 아니고 파이프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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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추구, 1963
캔버스에 유채
130 x 97cm
죽은 물고기는 생선이다.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도달할 수 없는 이유가 진실이나 진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추구에 있을지도 모른다. 추구하는 행위에 진실이 묶여 있고 진실은 더 이상 주목 받지 못하고 죽어간다. 죽은 것을 살리는 초현실주의자들의 활동은 재현일까, 아니면 진실일까? 죽은 것을 통해 현실을 보게 되면 그때 보이는 것이 진실일까?
보이는 것만 믿어도 상식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일차원적인 시각에 매몰되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실현되기가 실로 어렵다. 노빠의 좌파신자유주의의 낯설게 하기가 그랬고, 황빠의 말씀만으로 존재한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그랬다. 보이는 것 자체가 저열한 분열을 일삼았고 광기만을 지닌 텍스트들이 난무한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세계는 정치적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 자체가 초현실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엄청나게 늘어난 정보량, 감당하기 힘든 패러독스를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의심치 말아야 할 세계가 있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우상안에 갇히기를 원한다. 편안한 세상, 안락한 금가르기의 현실에 필요한 건 죽은 것을 살려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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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바다, 1951
캔버스에 유채
65 x 80cm
그럼, 여긴 바다속??

[프랑스 공산당 당원이었던 피카소는 1937년 프랑코파를 지원하는 나치 독일의 폭격기들이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카를 공격한 일에 충격을 받았다. 피카소는 파리 국제박람회의 스페인공화국 정부관 주최의 전시회에서 폭탄에 놀라 부릅뜬 눈동자와 전쟁의 공포,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표현한 벽화 게르니카를 출품했다. 피카소는 죽음에 대항하는 삶의 편에,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의 편에 서 있다고 말했다.]

초현실주의이나 큐비즘이 부르주아지적 현실을 거부하는 정신에서 비롯 됐다는 점에서 대게의 큐비즘 작가들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읽었다. 따라서 이들의 삶은 예술적 영감에 의한 미적 형식을 추구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과 독재에 저항하는 논리적 귀결을 가지고 있다. 세계는 파괴를 창조의 미덕으로 삼고 평화를 권력의 반동으로 연관지었던 시대에 피카소의 입체주의적 양식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적 결집을 만들어 냈으며 정치적 준거로서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피카소의 열정이 지나쳐 주위의 사람들을 망치거나 분열시키고 가족들 마저 그를 경멸하는 것을 읽으면서, 하지만 나는 그의 삶을 점령한 열정적 젊음과 좌파 지향을 한없이 부러워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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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 349.3cm * 776.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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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1951년
2007/04/15 04:02 2007/04/15 04:02
DrunkenSTAR 이 작성.